또 하나의 가족…입양을 통한 가족사랑 실천
2003-11-30 글/박혜연 기자
우리나라 국민들은 대체적으로 입양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어 국내 대부분의 고아들은 해외로 입양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의 관심은 극히 미비한 수준으로 체계적인 대책 또한 정립되어 있지 않아 세계적으로 ‘고아수출국’이라는 오명과 함께 손가락질을 받고 있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입양에 대한 국내의 편협한
고아들에게서는 웃는 얼굴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밝게 웃는 웃음소리 또한 듣기 어렵다. 걱정과 고민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며 웃고, 뛰놀아야 할 나이의 어린아이들이 부모에게 버림받아 세상을 등지며 살아가고 있다. 미혼모의 아이, 가정형편이 어려워 버려지게 된 아이, 장애인으로 태어나 몰래 버려진 아이...
부모의 따스한 손길 한번 받지 못한 채 그대로 버려지는 아이들은 아직도 우리 주위에서 늘어만 가고있으며, 그나마 입양되고 있는 아이들도 입양문화가 정착되지 않은 현실로 인해 대부분 비밀리에 시행되고 있는 실정이다.
과거에는 경제적인 사정상 입양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정도 풍요로운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된 만큼,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책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해마다 수천 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조국에 버림받고 해외로 입양되는 것은 변명의 여지조차 갖지 못할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듯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우리나라가 중국과 러시아에 이어 ‘고아수출국’ 3위라는 오명을 안게 된 것은 반성해야 할 일이며, 이는 국민의 의식전환과 더불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마련을 통해 해결되어야 한다.
사실 국내에서 바라보는 입양에 대한 시각은 그리 긍정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입양을 할 경우 그 사실을 숨기거나 불법적으로 입양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80년대 연평균 3,000명 안팎이던 국내입양 건수가 90년대에는 1,200명 선으로 줄어들었고 2000년대에 들어서 더 감소한 것을 보면, 그만큼 불법적인 개인입양이 많아졌음을 알 수 있다.
불법적인 개인입양은 친부모의 친권포기 등 법적절차가 불완전하고 양부모의 이혼 등으로 입양 취소가 될 경우 아이가 방치되는 등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크다. 대한사회복지회 김명우 회장은 “입양기관을 통해 입양하더라도 비밀은 철저히 보장된다”며 “법적 절차를 분명히 하고 충분한 상담과 교육을 받는 것이 아이와 양부모 모두에게 좋다”고 덧붙였다.
불임가정에서 입양을 할 경우, 주위에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몇 달동안 임신한 것처럼 행세를 하거나 혈액형이 같은 아이를 입양하고, 출산 예정일에 맞춰 집을 떠난 뒤 아이를 안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또한 친자인 것처럼 꾸미기 위해 입양시설과 아예 연락을 끊고 이사를 하기도 한다.
경기도의 A입양원에서는 30대 불임부부가 입양을 신청했다가 ‘조건이 맞는 아이가 있다’고 연락하자 ‘입양을 한 달 미뤄야겠다’는 대답을 했다. 이유인 즉, 이웃에 알린 ‘출산예정일’이 한달 뒤라는 것. 경기도 남부 아동일시보호소 심양금 소장은 “우리 현실에서는 누구도 비밀입양을 손가락질할 수 없다. 입양아라는 사실이 결혼이나 사회생활에 걸림돌이 되는 한 비밀입양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고 말한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입양에 대해 잘못된 편견을 갖고 있으며, 입양아들은 사회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 친자에 비해 차별화 된 대접을 받기도 한다. 때문에 수많은 아이들이 해외로 입양되고 있으며 이는 또다른 문제점들을 낳기도 한다.
정부의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책마련 필요
정부는 지난 96년부터 「해외입양자 모국방문 연수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입양촉진 및 절차에 관한 특례법」을 제정하는 등 여러 방안들을 내놓았지만 전혀 앞으로 나아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해외입양을 부끄럽게 여기면서도 뿌리깊은 혈통주의와 입양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 때문에 입양에 관한 현실적 대안이나 노력을 적극 펼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해외입양을 ‘국제적인 망신’으로 여기며 수치스러워 하는 것과 정작 자신들이 입양을 하기를 꺼려 국내 고아들이 갈 곳이 없어지는 것은 혈통주의와 폐쇄성이라는 동전의 양면을 보는 것과도 같다.
국제적으로 입양제도는 「완전입양제도」(자녀가 입양을 통해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실상으로도 생가와 완전히 분리되는 것)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자신을 돌봐줄 부모도, 친척도 없는 아동에게는 완전 입양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되고 있다. 따라서 입양된 아동이 새 가족 내에서 친생자와 똑같은 지위를 누리도록 법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양자와 친생자 사이의 법적인 차별은 그것이 무엇이든 입양 아동의 복리를 위태롭게 하기 때문이다.
또한 입양부모가 적법한 방법으로 호적에 올리면서도 서류를 접했을 때 입양사실을 본인의 동의 없이 제 삼자가 열람할 수 없도록 제도화해야 한다. 정부는 입양가정이 잘 자립할 수 있도록 출산휴가와 동일한 입양휴가도 주고 입양 관련 도서출판을 지원해야 한다.
입양부모가 부담해야 하는 2백여 만원의 입양수수료에 대한 지원, 나아가 입양의사는 있지만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가정에는 유아보육비 지원을 해서라도 입양을 확산시키겠다는 적극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
이렇듯 정부는 해외입양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이제껏 취해오던 강건너 불보기 식의 입장에서 벗어나 늦었지만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들어야 할 때이다. 말바꾸기식으로 취해오던 방식으로는 입양에 대한 한국민의 배타적인 시각을 없애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 입양
부산 사상구에 살고 있는 소아과 전문의인 이규하씨와 최선영씨 부부는 올해로 19살이 된 아들 호승군과 2001년 부산 시립아동일시보호소에서 입양한 딸 하영, 그리고 지난해 입양한 러시아 혼혈아 호영이와 함께 살고 있다.
동그란 얼굴에 유난히 고집이 센 딸 하영이는 친모 밑에서 자라오다 시설에 맡겨진 아이였다. 이들 부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스트레스를 받았던지 모든 것을 울음으로 해결하던 하영이를 보고, 보다 나은 환경에서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도록 돕기 위해서 입양하기로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호영이는 쏙 들어간 두 눈매와 눈동자, 이색적인 갈색머리로 누가 봐도 혼혈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유독 눈에 띄던 호영이를 데려오기로 결심한 것은 본국으로 돌아가 버린 러시아 미혼모가 돌아오리란 보장이 없었고 선뜻 입양할 사람이 많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공개입양을 하기로도 했지만 최씨부부가 호영이를 친자로 올릴 수 없었던 것은 순전히 이국적인 외모 때문이다. 자라면서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 수도 있고, 나중에 병역문제도 불가피하기 때문에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입양절차가 그리 까다로운지 처음 알았습니다. 행정에서는 친자입양이 아닐 경우 입양호적사례가 없어 만들기가 어렵다고 하더군요. 심지어 관계자들은 고아원에 일단 보냈다가 재입양하라고 권하기도 해 난감했습니다”
구청관계자와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는 남편 이씨는 “서류 하나 만드는데 몇 개월이 걸리고 모든 절차가 번거롭고 까다로워 국내입양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 해 시설에 7천여명의 아동이 입양을 대기하고 있고 그 중 2천여명이 해외, 1천7백여명이 국내 입양되는 등 3∼4천명은 시설에 유예되고있다”며 입양문화실태의 점검과 의식변화로 국내입양을 좀 더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입양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마음을 먹었다면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바로 입양하는 게 상책이죠. 일단 일을 치르고 나면 다음은 저절로 해결돼죠. 아이들 커 가는 모습을 보면 삶의 또 다른 재미를 맛보는 것 기쁩니다”라며 입양을 통해 아이를 얻은 사실이 행복하다고 한다.
최씨부부는 나이가 더 들고 여유가 생긴다면 위탁가정을 꾸려 보고싶다는 작은 소망을 밝히며, 이번에 어렵게 입양절차를 밟으면서 “입양문제는 반드시 사회와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라는 말을 남겼다.
국외에서 받아들이는 장애아 해외 입양
지난해 프로야구 개막전 때 시구를 해 가슴을 뭉클하게 했던 ‘티타늄다리의 천사’ 애덤 킹군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올해 열 살이 된 애덤은 정강이뼈가 없는데다 손가락마저 붙은 채 태어났다. 미국의 찰스 킹 부부는 그를 세 살이 되던 해에 입양했고, 애덤의 허벅지 아래 부분을 절단하는 수차례 수술 끝에 티타늄으로 만든 새 다리로 걷게 해주었다. 이들 부부는 또한 희귀성 뇌질환을 앓는 네살배기 김경빈군을 아홉 번째 자녀로 입양했다. 그래도 양엄마는 ‘신(神)이 주신 선물’이라고 기뻐했다고 한다. 친부모로부터, 모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장애우를 받아들인 이는 다름 아닌 외국인이었다. 정상인 아이조차 입양하기를 꺼리는 국내의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아름답지만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국내의 장애아 입양은 연간 10여명에 불과하다. 장애아라는 이유로 매년 버려지는 아이들은 1,000여명에 달하지만, 대부분 미국·호주·스웨덴 등의 외국으로 입양되거나 국내 재활원등의 수용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2000년 한 해 동안 국내 입양 장애아는 18명인 데 비해 외국으로 입양된 장애아는 그 35배인 634명이었다. 1999년에도 국내 입양 장애아는 14명, 외국 입양 장애아는 58배인 825명이었다. 또한 2002년에 외국으로 입양된 장애아는 미국 1,149명, 호주 76명, 스웨덴 74명, 노르웨이 69명 등 모두 1,558명이다.
장애아의 국내 입양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장애아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가장 큰 이유지만, 장애아를 키우는 데 드는 의료비 또한 만만찮고, 부족한 재활·치료시설 등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제도가 변변찮은 것도 주요 원인으로 분석된다.
대한사회복지회의 한 직원은 “장애아동을 입양하라고 권유해도 의료비 부담과 다른 사람들의 눈총 때문에 대부분 고개를 젓는다”며 “어쩔 수 없이 외국으로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장애아의 국내 입양을 활성화시키려면 치료·재활시설 확충과 의료비 전액 지원 같은 획기적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최근 들어 국내 가정의 장애아 입양이 조금씩 늘고 있다는 점이다. 98년 국내 입양아 1,426명 중 장애아는 6명(0.4%)이었지만, 99년 국내 입양아 1,726명 중 장애아 14명(0.8%), 2,000년에는 1.06% 등으로 장애아의 국내 입양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해에만 해외에 입양된 장애아가 634명으로 해외에 입양되는 장애아 숫자가 국내 입양 장애아보다 35배 이상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국내에서는 현행법상 장애아를 입양한 가정에 대해서는 월 20만원의 생활비와 연 40만원까지 의료비가 지원된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도로 장애아 입양 가정이 월 평균 50여 만원의 추가 생활비를 지출하는 것을 감안한다면 정부 지원이 충분하다고 말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한국입양홍보회 한현희 회장은 “재활원 등 수용시설에 있는 장애아들은 의료비 전액을 국고에서 지원하고 있다”며 “장애아를 입양한 가정에도 똑같은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입양이 활성화되는데 더 큰 장애는 사회적인 분위기라 할 수 있다. 장애인 시설기관인 ‘한사랑마을’김종우(김종우·45) 원장은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내 자식만 잘되면 된다는 이기주의가 우선 극복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입양에 대한 새로운 의식전환이 필요
외국의 경우 입양가정이 불임가정과 유자녀가정의 반반을 차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입양가정의 80%를 불임가정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예전과는 달리 남아보다 여아를 선호하는 변화를 보이고 있는 등, 불임가정이라고 해서 입양이 반드시 성과 재산을 이어가는 수단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입양가정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입양에 대한 새로운 시선과 도전으로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변하고 경직된 사고가 바뀔 때 입양아들이 자신의 입양사실에 건강한 정체성을 형성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일익을 담당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국내입양에만 국한된 얘기가 아니다. 해외 입양아들에 대한 고정관념을 탈피, 재외국민으로서 법적 제도적인 보장을 뒷받침해주어야 하며 해외입양아 조직구성 및 지원책 강구 등의 구체적인 대안책이 필요하다.
해외입양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면서도 마땅한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연, ‘혈족’을 중시하는 잘못된 가치관과 고정관념 때문이다. 즉 해외입양을 민족적 수치로 여기면서도 국내 입양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은 우리 사회 깊숙이 뿌리 박혀있는 모순에 대해 ‘혈연’을 중시하며, 이를 우리의 고유한 문화적 특성으로 인식하는 잘못된 사상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입양은 갈 곳 없고 부모없는 아이들을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따뜻하게 보살펴 주는 숭고하면서도 아름다운 정신의 발로이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사람들이 친자인양 보이기 위한 개인적인 욕심에 의한 것이 아니다. 피부색마저 다른 외국에서 국내 아이들을 데려다 보살펴 주고 장애아들을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안는 현실 앞에, 장애아를 낳으면 내다 버리거나 해외로 입양시키기에 바쁜 우리는 어찌되었건 이러한 순수한 정신과 마음가짐을 배워야만 하며 고개 숙여 감사해야 한다.
해외입양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입양에 대한 국내의 시각 변화, 정부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안 방안, 국내입양 활성화, 그리고 해외입양에 대한 사후관리 등으로 연결지을 수 있다.
입양 전문가들은 “무자녀 또는 한 자녀 가정의 증가로 잠재적인 입양수요가 많아졌기 때문에 실효성 있는 대책과 국민 의식 변화가 뒷받침되면 우리 스스로 입양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안타까운 것은 국내입양을 촉진하기 위한 정부 대책이 현실과 동떨어져 겉돌고 있다는 점이다. ‘정책의지 없이 국민 의식과 사회 분위기를 핑계로 수수방관하겠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정도다.
입양은 시간과 경제적인 부담을 안아야 함은 물론, 고생을 감내해야 하는 등 쉽지 않은 문제지만, 우리의 아이들을 보다 따뜻한 곳에서 바르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이들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입양’이라는 제도가 쉽게 바뀔 수도, 바꾸라고 강요할 수도 없는 예민한 부분인 만큼 입양이나 고아에 대한 우리들의 시선을 바꾸는 일이 가장 시급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