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슨-엔씨소프트 ‘경영권 분쟁’ 실마리 찾나
넥슨 ‘단순 투자’에서 ‘경영 참여’ 입장 번복…3월 주주총회서 ‘승부수’
경영권 분쟁에 휩싸인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형제의 난’으로 평가하고 있을 만큼 한 때 사이좋았던 두 대표다. 하지만 양사가 계획했던 EA 인수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고 함께 진행 중인 사업 또한 시너지효과를 발휘하지 못하자 두 사람 사이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3월 개최되는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에서 마주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과연 두 회사의 경영권 분쟁이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그러나 함께 추진했던 EA 인수에 실패하고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함께 진행 중인 사업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지 못하면서 서서히 두 사람 사이가 금이 가기 시작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넥슨이 장내 매입을 통해 엔씨소프트 지분 0.4%를 추가로 확보하며, 경영권 분쟁은 수면 위로 드러났다. 당시 넥슨은 ‘단순 투자’이라고 밝혔지만 3개월 만인 지난 1월28일 ‘경영 참여’로 입장을 번복했다. 이후 지난 2월3일 넥슨은 엔씨소프트 경영참여 요구사항을 담은 주주제안서를 발송했다.
넥슨은 ▲넥슨과 적극적인 협업 강화를 위한 IP(지식재산권 활용) ▲삼성동 토지 및 건물 매각 후 배당률 상향 ▲자사주 매입 및 소각 ▲김택진 대표이사 가족들의 보수 내역 및 산정 기준 공개를 요구했다. 10일로 데드라인을 정해준 ▲주주총회 목적사항에 대한 주주의안 제안 ▲실질주주명부의 열람·등사 요청 ▲전자투표제 도입에 대한 답변과는 달리 위의 사항은 답변 기한을 따로 명시하지 않았다.
하지만 엔씨소프트가 ‘기업·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요청사항’에 대해서는 여전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넥슨은 주주제안서를 통해 서울 삼성동에 소재한 연면적 3만 914㎡의 엔씨타워와 연면적 2만 6,839㎡의 경암빌딩 및 토지를 매각하고, 그 수익의 일부를 주주에게 환원하라고 요청했다.
넥슨은 “삼성동 부동산들은 엔씨소프트의 핵심 영업 활동에 투입되지 않는 비영업용 자산으로 이를 통해 엔씨소프트가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이 낮을 것으로 예상된다”며 “경암빌딩, 엔씨타워 및 관련 토지를 매각하고 이를 통해 개선된 수익으로 적극적으로 영업 활동에 재투자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삼성동 부동산과 토지의 임대수익률은 6%에 육박한다”며 “중·장기 대형게임을 개발할 때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해주는 자산”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삼성동에 현대자동차 입주가 결정되면서 가치가 상승하는 시기”라며 “더 큰 수익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 무리해 매각할 필요가 없다”고 덧붙였다.
넥슨은 5억 원 이상의 연간보수를 받는 비등기 임원의 연간보수 내역 및 산정기준 공개 요구에 대해서도 엔씨소프트는 “무리한 요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넥슨이 이 같은 요구는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배우자인 윤송이 엔씨소프트의 사장과 동생 김택헌 전무에 대한 견제를 공식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가운데 엔씨소프트가 ‘수비’가 아닌 ‘공격’으로 포지션을 바꿨다. 이 같은 배경에는 엔씨소프트의 지난해 실적이 상당 부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보인다. 넥슨은 그동안 엔씨소프트의 ‘실적 부진’을 명분으로 경영권을 압박해왔다.
넥슨은 “엔씨소프트가 적극적인 주주 환원 없이 현금을 사내에 유보시켰고, 그 결과 자기자본이익률은 10% 중반까지 떨어졌다”며 “엔씨소프트의 비효율적인 자본 배치가 침체된 주가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주제안서를 통해서도 “엔씨소프트의 온라인게임이 PC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했고, 글로벌 시장에서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며 성과 부진을 꼬집었다.
하지만 엔씨소프트는 2월11일 지난해 실적(매출 8,387억 원·영업이익 2,781억 원)을 공시하며 1997년 창사 이후 최고치라고 밝혔다. 글로벌 시장 매출 역시 전체 매출의 41%에 해당하는 3,400억 원을 달성, 윤재수 엔씨소프트 CFO(최고재무책임자)는 “글로벌 시장 매출로는 역대 최고”라고 강조하며 실적 부진에 대해 반박했다.
넥슨이 요구한 엔씨소프트의 주식 8.9%(195만 8,583주) 소각에 대해서도 ‘완강히’ 거부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가 자사주 일부를 임직원의 장기보상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사용되는 부분이 소규모에 불과하고 또한 자사주를 활용한 M&A도 적극적이지 않은 점을 고려하면 가용성이 떨어지는 자산”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는 “자사주는 앞으로 공격적인 투자나 M&A에서 사용할 자
산 중 하나”라며 “엔씨소프트는 훌륭한 인재들을 가지고 게임을 개발하는, 인력이 핵심인 회사다. 우수한 인재를 영입할 때 쓰는 인재 투자 카드를 소각시키라는 건 가능성과 도전에 제약을 거는 행위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지금으로는 소각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밝혔다.
엔씨소프트가 넥슨이 주주제안서를 통해 요청한 사항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거부 의사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경영권 분쟁으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양사는 3월에 개최되는 주주총회에서 넥슨은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를 교체하거나 사내이사 및 감사를 통해 엔씨소프트를 견제하는 방안으로 경영권 확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김택진 대표의 임기는 3월28일 만료된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는 “넥슨과 엔씨소프트는 게임 개발 및 비즈니스 철학 등 문화적인 측면이 많이 다르다”면서 “넥슨도 현실적으로 이 부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대표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택진 대표이사를 제외하고 엔씨소프트 이사 중 올해 임기가 만료되는 이사가 없으므로 당장 넥슨의 이사가 선임될 확률은 희박하다.
김택진 대표가 주주총회 전까지 추가 지분을 매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김택진 대표는 현재 9.98%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 1대 주주로 올라서기 위해서는 최소한 5% 이상의 지분을 확보해야 가능한 것으로 나온다. 넥슨에 매각한 주당 25만 원보다 비싼 가격에 살 가능성이 높은 상태지만 넥슨이 주식을 되팔 가능성은 현저히 낮아 이마저도 불가능한 상황이다.
결국 김택진 대표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자사주 매각을 통한 우회지분 확보에 나서는 것. 현재 엔씨소프트가 보유한 자사주는 8.93%를 우회지분으로 확보, 김택진 대표의 지분 9.98%와 합치면 18.91%로 넥슨이 보유한 지분 15.08%보다 많아진다.
업계 관계자는 “넥슨과 엔씨소프트의 갈등이 고조될수록 양사 모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알 것”이라며 “이사 선임 등 경영에 일부만 참여하고 김택진 대표가 경영권을 쥐고 있는 게 최상의 시나리오”라고 내다봤다.
일부에서는 지난 1월 공시 이후 관계가 빠르게 냉각됐던 양사 갈등의 골이 쉽게 풀리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지난 2월16일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 주식 2만 9,214주를 3,802억 6,490만 7,420원에 신주 배정 방식으로 취득했다고 공시했다. 신주 발행이 완료되면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의 지분 9.8%를 보유할 예정이다. 엔씨소프트는 넷마블게임즈의 주식을 취득하는 이유로 게임사업의 시너지 효과 창출을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넥슨과의 경영권 분쟁이 상당한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고 있다. 모바일 캐주얼 게임의 강자인 넷마블게임즈와 손잡으며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로 분석하고 있다.
지난 2월3일 발송한 주주제안서를 통해 엔씨소프트 이사 공석 발생 시 넥슨 측 이사 파견을 요구하기도 했다. ▲주주명부 열람·등사 요청 ▲전자투표제 도입 등 넥슨 측 요구에 엔씨소프트는 긍정적인 대답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져, 사실상 ‘넥슨의 승리’로 평가됐다. 하지만 넷마블이 엔씨소프트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경영권 분쟁’ 싸움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김택진 대표의 엔씨소프트 보유지분 9.98%에 넷마블의 우호지분 8.93%를 합치면 넥슨이 소유한 지분보다 높아지면서 경영권 방어를 할 수 있게 된다.
업계에서는 엔씨소프트와 넷마블의 협업으로 그동안 휩싸였던 엔씨소프트의 도덕성 시비도 잠잠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더불어 넥슨 측이 주주제안서에서 요구한 ‘자사주 소각’에 대해서도 ‘명분’을 챙길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PC와 모바일게임의 거대 공룡 간의 주식거래 및 협업 발표로 인해 그동안 따라붙었던 경영진 도덕성 시비 및 분쟁거리가 단숨에 처리된 모양새”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