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대통령의 시간’ 어떻길래, 후폭풍 거세

자화자찬에 훈수까지…여야 막론 비판 쏟아져

2015-03-03     이지원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월2일 자신의 대통령 재직 기간을 뒤돌아 본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2008-12013’을 출간했다. 남북정상회담부터 세종시 수정안, 자원외교, 4대강 살리기 사업, 한미 소고기 협상 등 민감한 내용들이 담겨 있어 논란이 됐다. 여야를 막론하고 비판의 목소리를 쏟아 냈고, 한 시민단체는 회고록을 기록누설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출간 전부터 책 내용이 공개되는 등 주목을 받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2008-2013’은 모두 12개 장 800쪽으로 구성됐다.
1장 ‘나는 대통령을 꿈꾸지 않았다’에는 이 전 대통령의 어린 시절과 현대에서 보낸 27년 등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겼다. 2장에서 11장까지는 정치, 경제, 외교, 사회 등 제반 정책에 대한 설명이, 마지막 장은 ‘한 일과 못다 한 일들’로 정책의 아쉬운 점을 담고 있다.
4대강 사업, 국외 자원 외교 등을 비롯해 광우병 사태, 세계 금융위기 대처, 세종시 문제에 대한 철학과 추진 배경 및 과정, G20 정상회의 유치 배경, 대북 철학과 대처 방안 등 민감한 사안까지 담고 있어 출판 전부터 정국을 강타했다.
특히 이 전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 부결사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을 지적한 듯한 모습을 보이고, 남북정상회담 추진 관련 내용을 폭로한 것을 두고 청와대가 불편한 심기를 가감 없이 드러내면서 전·현 정권 간 충돌양상으로까지 번졌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 ‘안타까운 세종시’ 편에서 “내가 세종시 수정을 고리로 정운찬 총리 후보자를 2012년 여당의 대선후보로 내세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의심을 사게 됐다. 박근혜 전 대표 측이 끝까지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한 이유도 이와 전혀 무관치는 않다고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정부가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강력히 반대해 부결시킨 것은 당시 차기 대권주자로 급부상하고 있던 정운찬 전 국무총리의 대망론을 견제하기 이한 정치적 속내에 따른 것이라는 의미다.
뿐만 아니라 2009년 남북정상회담 논의과정에 대해 “북한은 임태희 장관이 싱가포르에서 서명한 내용이라며 세 장짜리 합의서라는 것을 들고 왔다”고 기술하며 북한이 정상회담 조건으로 식량과 돈을 요구했다는 점 등을 밝혔다. 이는 박 대통령이 광복 및 분단 70주년을 맞은 올해를 남북 관계 개선의 적기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와중에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찬물을 끼얹는 격이 됐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대북 교류협력 제안에 대한 반대 의견을 표명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자기 정당화에 급급한 MB 회고록’이라는 글에서 “이 전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드레스덴 선언 등 교류협력 제안에 대해 불편함을 간접적으로 표출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대화를 위한 대화를 해서는 안 되고 도발 후 대가 요구라는 북한의 행태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며 자신의 대북정책이 올바른 것임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회고록은 수차례 정상회담 제안이 있었지만 북한의 잘못된 버릇을 고치기 위해 정상 회담에 매달리지 않고 당당하게 대응했다는 자기 정당화 논리로 가득하다. 기회가 있었지만 원칙을 지키려고 정상회담을 성사시키지 않았음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정부도 정상회담 때 매달리지 말고 원칙을 지키라고 훈수하는 셈”이라고 강조했다. 정상회담이 성사되지 않은 것이 자랑스럽다는 이 전 대통령의 자화자찬은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를 결과했다는 점에서 칭찬이 아니라 반성의 대목이 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 그는 “무모한 고집과 오기만을 내세워 북한관리에 실패하면서 한반도 긴장고조와 남북관계 진전을 가져오지 못했다는 역사적 오점에 대해 겸허하게 반성해야 한다”고 밝혔다.


청와대 측은 지난 1월30일 오전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저희들은 입장을 내놓기 어렵다”고 말한 지 불과 두 시간 만에, 당초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갖고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유감을 표명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정리된 반론을 제기한 것인데, 이는 박 대통령의 의중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청와대 측은 박 대통령이 세종시 수정안을 반대해 부결시킨 것에 대해 박 대통령은 균형발전이라는 소신에 입각해 세종시 수정안을 끝까지 반대한 것인데도 이 전 대통령이 다분히 정치공학적인 주장으로 여당과 국민을 분열시키고 있다고 책망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 전 대통령의 이야기)는 사실에 근거했다기 보다는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한다”며 “정운찬 국무총리가 돼서 세종시 수정안 이야기가 나왔을 때 당시 박 대통령이 정치적으로 어려움 속에서 국토 균형 발전이라는 문제를 갖고 결단을 내려 판단한 것으로 알고 있으며, 그게 지금 정치 공학적으로 해석되는 게 과연 우리나라나 국민이나 당의 단합에 어떤 도움이 되느냐”며 반발했다.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인 ‘신뢰’와 ‘원칙’이 가장 빛났던 순간이 훼손되는데 대한 심한  거부감으로도 읽힌다. 이 관계자는 또 “남북대화를 비롯해 외교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하게 밝히는 게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도 언론에 많이 있더라”며 우려를 표했다.
청와대가 이처럼 불만을 가감 없이 표출한 것은 최근 연말정산 세금폭탄과 증세 없는 복지 논란 등 여러 악재를 겪고 있는 중에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또 다른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란이 커지자 이 전 대통령이 자신의 회고록이 정치적 논란을 불러일으킨 것에 대해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에 다르면 “MB측 인사가 청와대 인사에게 전화해서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설명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이는 현전 정권 충돌 양상까지 벌어지자 이 전 대통령이 서둘러 진화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민 대변인은 MB측의 누가 청와대 어떤 인사에게 입장을 전달해왔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청와대에 설명 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특히 친박계 의원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세종시 수정안 반대 내막과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등의 사안에 대해 언급한 것을 놓고 강하게 질타했다.
친박계 노철래 의원은 1월30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아직 논란의 불씨가 꺼지지 않은 4대강 사업과 자원외교 개발 등에 대해 언급한 부분을 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노 의원은 “최근 4대강이니 자원외교니 해서 ‘청문회한다’, ‘국정조사한다’ 얘기가 나오니 사전에 브레이크를 걸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표현을 하다 보니 그런 식으로 한 것인지라는 생각이 든다”며 “최소한 임기가 끝나고 10~20년 후에 회고록을 내는 것이지 2~3년 만에 책을 내는 것은 전직으로서 모양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친박계인 함진규 의원도 “회고록을 아무 때나 쓸 수는 있지만, 민감한 문제 등은 객관적으로 기술해야 하고, 거기에 자신을 홍보하는 것이나 객관성이 떨어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며 “회고록 내용 중에는 현재 진행형인 것이 많은데 국가의 중대사나 현재 진행 중인 것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며 부정적인 시각을 드러냈다.
비박계 의원들도 이 전 대통령이 회고록에 남북문제를 거론한 것에 대해 ‘외교상 우려된다’며 문제 삼았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은 자신의 SNS을 통해 “MB가 회고록에서 남북정상회담과 관련해 북한이 뭘 요구했다는 등 시시콜콜히 밝힌 것은 그 내용이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날을 세웠다.
그는 “외교상 기밀은 당연 외교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국가가 수십 년간 공개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MB가 공개한 내용은 어떻게든 현 남북관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면서 “우리 형법에는 외교상 기밀누설죄를 처벌하는 조항이 있다. 이번 MB회고록은 형법 위반 소지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 “MB가 본인 명예 회복을 위해 회고록을 냈다면 공과 사를 구분 못하는 대통령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며 지금이라도 책 출판은 반드시 철회되어야 하며 책 안의 기밀 성격의 내용은 더 이상 유포되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친이계 의원들은 말을 아끼면서도 전직 대통령의 역사에 대한 기록으로 정책적인 측면에서 바라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친이계 김영우 의원은 “지난 정권 때리기 식이 이어지고 있는데 정책적인 측면에서는 올바로 인식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며 “현 정권이 국정현안을 잘 돌파하는데 오히려 좋은 자료로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도 강력 비판하고 나섰다.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수 대변인은 1월29일 오전 현안 브리핑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특히 4대강 사업이 한국 세계금융위기를 극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이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주장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김 대변인은 “강을 살리겠다며 4대강에 수십조의 혈세를 쏟아 붓고서 비판이 일어나자 이제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재정투자라고 우기려는 모양”이라며 “운하라고 했다가 강 살리기라고 했다가 이제는 재정투자라고 한다. 번번이 말을 바꾸는 이 전 대통령의 변명은 조금도 신뢰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자원외교와 관련해서도 “재임 당시 자원외교의 빛나는 성과를 역설했던 이 전 대통령이 국정조사를 앞두고 책임을 총리실에 떠넘기고 있다”며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전직 대통령을 보며 단 한 번이라도 사과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수 없는 것인지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자원 외교는 그 성과가 10년에서 30년에 거쳐 나타나는 장기사업’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해외자원개발국조특위 간사를 맡고 있는 홍영표 의원은 “많은 사업들이 사실상 실패해 정리해야할 단계”라며 “기다릴 사업이 없음에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은 28건의 VIP자원외교를 통해 MOU를 체결한 당사자인 만큼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나와 진실을 국민들에게 증언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한편 한 시민단체는 지난 9일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위반 등에 해당한다며 검찰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이명박심판을위한범국민행동본부와 무궁화클럽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이 단체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은 한미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시 이면계약서가 없다고 말했으나 회고록에 이면계약서가 있었다는 내용을 싣는 등 전직 대통령으로서 발설해서는 안 될 기밀들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주장이다.
또한 회고록에서 ‘북한이 정상회담 조건으로 옥수수 10만 톤, 쌀 40만 톤, 비료 30만 톤과 국가개발은행 설립 자본금 100억 달러를 요구했다’는 것과 ‘천안함 침몰 당시 이 전 대통령이 긴급안보 관계장관회의를 소집하고, 청와대 지하 별관의 상황실로 향했다’는 내용 등이 대통령기록물관리법 위반과 공무상 기밀누설 혐의에 해당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이 자서전에 사실과 다른 거짓을 진술함으로써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후손에게 전해질 역사를 왜곡하는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이 전 대통의 자서전을 막지 못한다면 우리는 후손들에게 왜곡된 역사를 넘겨주는 꼴이라는 지적이다. 


이 전 대통령의 ‘대통령의 시간’이 출간된 다음날 MB 정권의 실정을 다룬 ‘MB의 비용’이 출간됐다. 절묘한 타이밍에 출간된 두 책. 전자가 이 전 대통령의 의혹에 대한 해명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이명박 정권의 잘못에 대한 논의를 담고 있다.
‘MB의 비용’은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 외 16명의 전문가들이 MB정부가 야기한 문제점들을 짚으며 그 피해 금액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MB 정부가 추진한 자원외교가 국가에 큰 채무를 남겼다고 지적한다. 고기영 한신대 교수는 주요 에너지 공기업 3사에 생긴 새로운 빚만 해도 42조 원에 이른다고 밝혔으며, 박창근 관동대 교수는 MB 정부의 대표적인 사업인 ‘4대강 사업’에 앞으로 예상되는 비용이 84조 원이라고 주장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제2롯데월드의 기원 역시 롯데그룹과 특별한 관계에 있던 MB가 일사천리로 허가를 내준 데 있다는 주장이다.
이 책을 엮은 지식협동조합 좋은 나라는 “이 책이 결코 MB 개인을 인격적으로 탓하거나 소위 ‘반MB’를 정교하게 하기 위한 책이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거울삼아 법 제도와 관행을 개혁하고 심각한 비리와 범죄에 대해 엄중한 책임 추궁과 처벌을 해야 하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MB 정권의 일탈과 잘못을 기록한 것”이라고 밝혔다.
두 책은 출판 초기부터 민감한 정치적 발언들을 통해 숱한 화제를 불러 일으켰음에도 일주일여 만에 판매량이 하락세로 돌아서며 그 열기가 오래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 출판 전문가는 “역대 대통령들의 회고록이 베스트셀러가 된 전례가 없고, 이 전 대통령의 낮은 인기에 비하면 많이 팔린 것”이라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은 2013년 2월 대통령 임기가 끝난 뒤 그해 5월부터 회고록 집필에 착수, 1년10개월의 집필 과정을 거쳐 회고록을 완성했다고 한다. 퇴임한 대통령이 2~3년 내에 회고록을 출간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역대 대통령 중 6명이 회고록을 냈고, 출판 당시 마다 후폭풍이 일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자신이 서자 출신임을 밝혔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영광과 성공의 이야기가 아닌 좌절과 실패, 자기 성찰의 내용을 담았다. 이 전 대통령 측은 현 정부에 도움을 주기 위해 회고록을 썼다고 밝혔지만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부터 내용의 진위여부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라면, 자신의 난자리를 돌아보고 역사의 평가를 기다리는 겸허한 마음으로 써야할진데,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