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드는 유사휴발유
2006-12-28 글_김정숙 기자
고유가 현상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으면서 유사휘발유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유사휘발유를 써도 차에 큰 무리가 없다는 입소문까지 더해지면서 이동식 판매차량이 주택가 진입로마다 진을 치고 있는 형국이다.
국회 산업자원위원회의 산업자원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했다. 유사휘발유 유통량이 국내 휘발유시장의 11%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될 정도로 급증했기 때문이다. 산업자원부는 서갑원 열린우리당 의원의 질의에 대해 지난해 불법 유사휘발유 유통량을 전체 휘발유 소비량의 11%에 달하는 676만배럴로 추정했다.
불법 휘발유 제조에 사용되는 용제(일명 솔벤트)의 지난해 사용량이 438만배럴인데 이 중 정상적으로 산업용으로 사용된 용제 소비량은 100만배럴에 불과하다는 것. 따라서 나머지 용제 338만배럴이 유사휘발유를 만드는 데 사용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유사휘발유에는 용제가 절반 정도 섞인다고 보면 유사휘발유 유통량이 676만배럴이 되는 셈이다.
이를 가격으로 환산하면 지난해만 무려 1조6,000억여 원(정상 휘발유가격으로 환산한 금액)대의 유사휘발유가 시중에 유통된 것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로 인한 탈세규모가 9,400억여 원에 달한다는 점이다.
기승부리는 유사 휘발유 판매상
고유가 행진이 계속되는 데다 성인오락실 단속 바람 등으로 사회적 감시가 소홀해지자 유사휘발유 판매상들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제는 도심 한가운데서도 버젓이 간판을 내걸고 영업하는 것은 물론,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거나 마일리지 혜택을 제공하는 등 판매 상술도 한층 진일보한 모습이다.
부산진구 부전동의 한 도로. 부산에서 교통량이 가장 많은 곳 중 하나인 이 도로 주변엔‘순도 99.9% 정품 세녹스와 유사휘발유 판매’라는 간판이 버젓이 세워져 있다.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세녹스를 판매한다며 연락처와 가격, 판매 종류까지 적어놓은 플래카드까지 여기 저기 걸려있다.
법원에서 최종 불법 판정을 받은 이후 유사 휘발유 판매행위는 음지로 숨어든 듯 했지만, 최근 사행성오락 파문 등으로 사회적 감시가 소홀해지자 다시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이처럼 간판까지 내건 대담한 상행위는 부산진구뿐만 아니라 북구 화명동 신시가지를 비롯해 부산 곳곳에 퍼져있는 실정. 부산 외곽지역인 강서구, 김해 장유 지역의 경우는 일반 주유소보다 유사 휘발유를 파는 곳이 더 많을 정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최근에는 인터넷 카페나 게시판 등 사이버 공간을 통해 판촉행위를 하고, 마일리지 혜택까지 제공해 유류비를 아끼려는 운전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
또 판매업자끼리 무선 연락망을 갖춰놓고 한명이 단속되면 일제히 자취를 감추는 조직성까지 보이는 등 지능화되고 있다.
관계 기관이 단속의 손을 놓고 있는 사이 손쉽게 돈을 벌려는 영세업자들과 기름 값 부담을 덜려는 운전자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지면서 또 한 번 활개를 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가짜 휘발유를 쓰면 연료계통에 고장이 생겨 생각지 않은 큰 돈을 쓰게 될 위험이 크다.
길가에서 흔히 연료첨가제로 팔리는 유사휘발유는 용제로 쓰이는 신너나 솔벤트에 벤젠과 톨루엔 등 석유화학 제품을 일정비율로 섞어 만드는 게 보통이다.
연료통에 전부 이런 유사 휘발유를 채우기도 하지만 보통은 정상적인 휘발유에 가짜 휘발유를 일정비율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런 유사휘발유의 주재료인 솔벤트는 다른 고무제품을 녹이는 성분이 강하기 때문에 연료계통이나 연소장치를 구성하는 고무제품을 녹일 수 있다.
자동차 정비전문가인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런 경우 밸브스템실 등에 이상을 일으키기가 쉬운데 흰 연기를 내뿜으며 엔진오일을 소모시켜 수리에 많은 비용을 지출하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값싼 유사연료 사용으로 눈앞의 금전적 이익을 챙기려다 막대한 차량 수리비를 쓰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런 불량연료를 장시간 사용하면엔진의 피스톤 링 턱이 갈라지는 손상도 자주 생긴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여기다 엔진에 탄소 찌꺼기가 많이 끼면서 엔진이 손상되고 시동이 꺼질 수도 있다.
특히 유사연료는 연비가 정상연료보다 10% 가까이 떨어지기 때문에 실제로는 별로 싸지도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또 일산화탄소나 질소산화물 등 오염물질 배출도 정상 연료보다 16% 이상 많아져 대기오염을 가중시킬 수 있다.
유사휘발유, 정유사 탓인가
정유사 등의 톨루엔, 신너 등 용제 판매가 증가할수록 유사휘발유 적발건수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용제는 용질을 녹여 용액을 만드는 액체로, 유사휘발유의 원료로 사용된다.
민주당 이상열 의원은 산업자원부 국정감사 자료에서 “2002∼2005년 사이 정유사와 석유화학사가 판매한 용제의 증가 추이를 보면 같은 기간 유사휘발유 적발건수 증가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유사나 석유화학사가 생산, 판매한 용제 물량은 2002년 127만1,000배럴에서 2003년 270만3,000배럴, 2004년 389만4,000배럴로 증가했고 지난해에는 438만배럴로 크게 늘었다. 유사휘발유 적발건수는 2002년 275건에서 2003년 1,497건, 2004년 4,010건으로 증가했고 2005년에는 6,620건으로 폭증했다.
올해 들어서도 용제 추적단속실적을 보면 12개 지방경찰청에서 399명이 검거됐으며 유사휘발유의 원료인 용제 351㎘,완제품 4,500통이 압수됐다. 금액으로는 1158억원에 달한다.
이 의원은 “용제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유사휘발유 적발 건수도 증가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도 정유사나 석유화학사는 수익을 위해 매년 엄청난 물량을 증산, 판매하고 있다”며 “연간 도로용과 세척용 용제 사용량은 100만배럴 정도로 추산되는데 2005년 438만배럴이 소비됐다는 것은 곧 338만배럴이 유사휘발유를 만드는 데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정유업체 관계자는 “용제 판매량 증가가 유사휘발유의 유통 증가로 이어진다는 점은 알고 있다”며 “하지만 용제를 공급받은 대리점들이 어떤 소비자들에게 판매하는지 파악하기란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세녹스'와 같은 불법 유사휘발유 등을 통한 세금탈루 규모가 연간 수 천억원에 달하는 등 유사휘발유 유통 근절을 위해 제조원료인 솔벤트 등 '용제'에 교통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주장이 국세청, 산업자원부 등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세제정책 당국인 재정경제부는 '법리상 문제점'을 이유로 용제에 대한 과세는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제시, 논란이 예상된다. 재경부는 특히 경찰청 등 사법당국의 단속만이 유사휘발유 근절 대책이라고 밝혔다.
재경부는 유사휘발유 근절을 위한 용제과세에 대한 의견을 물은 열린우리당 송영길 의원의 질의에 대해 “용제과세는 법리적 측면에서 과세대상 명확화와 곤란하고 교통세 과세체계의 근본적 변동을 발생시킬 수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내놨다.
재경부는 또 “과세대상 사업자가 대폭 증가해 과도한 납세의무를 발생시키고 정상적인 용제 사용자의 자금부담을 유발하는 등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유사휘발유 근절은 사법당국의 단속을 통해 이뤄져야 할 문제”라고 사실상 과세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유사휘발유 제조원료인 용제란 ▲솔벤트 나프타 ▲클리닝 솔벤트 ▲톨루엔 ▲메탄올 등 세척, 용해, 희석, 추출 등의 용도로 사용되는 20가지 석유제품으로 정유사나 석유화학회사에서 출고될 때 교통세가 과세되지 않고 있다(부가가치세 과세).
용제가 자동차 연료가 아닌 공업원료나 세탁소 등에서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이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에서다.
그러나 이들 용제를 적정비율로 섞을 경우 세녹스(석유용제와 톨루엔, 메탄올 등 6:3:1 비율로 섞어 제조)와 같은 유사휘발유 제조가 가능하고 이렇게 만들어진 유사휘발유가 암암리에 정상휘발유가에 비해 낮은 가격으로 시중에 유통,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산자부는 불법 유사휘발유가 길거리 판매나 배달판매 등 게릴라식 영업으로 근절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열린우리당 서갑원 의원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 석유용제에 교통세를 과세하는 내용의(유사휘발유 제조와 상관없는 사업자는 전액환급)교통세법 개정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세청도 현행 과세체계로는 유사휘발유 제조자 및 판매자 근절이 어렵다고 판단, 실제로 공업원료로 사용하는 업체들을 제외한 용제출고에 대해서는 교통세를 과세해야 한다는 내용의 세법개정건의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유사휘발유 유통에 따른 세금 탈루액이 지난해 1조원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9,393억원). 곽 의원은 이에 대해 "불법 석유제품 유통을 절반 수준만 걸러내도 유류세를 10%인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유사휘발유 중국시장 진출
한국업체들의 중국 세녹스(CENOX)의 시장 진출이 시작되고 있다. 세녹스는 불법 유사휘발유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휘발유 대체제로 국내에서는 불법 유사휘발유로 간주돼 제조 및 판매가 금지돼 있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보광그룹은 지난달 27일 중국 랴오닝성 푸순시 첨단산업기술개발구에서 중국석유화학과 공동으로 연산 100만t 규모의 세녹스 생산공장 기공식을 개최했다.
보광그룹은 “한국 세녹스 제조업체로부터 제조기술 전반을 이전받았고, 오는 2007년 10월까지 공장을 완공해 생산에 들어간 뒤 2008년 말까지 생산능력을 300만t까지 확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보광그룹에 이어 에너지더엠파이어도 26일 중국 랴오닝성 영구시와 윈난성에서 식물성 신품종인 카사바를 원료로 한 세녹스의 제조 및 판매 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에너지더엠파이어는 칭다오, 상하이 등 5개성에서도 허가를 추진 중이다.
에너지더엠파이어는 “우리가 개발한 카사바를 주원료로 만들어진 에탄올 성분 세녹스는 휘발유가 첨가되지 않는 순수 대체에너지”라며 “중국석화(시노펙)과 중국해양석유개발유한공사 등 중국 최대 국영 정유업체들을 통해 세녹스를 판매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에너지더엠파이어는 내년 3월까지 랴오닝성 영구시에 생산공장을 완공해 내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공급을 시작할 예정이다.
원료인 카사바의 안정적인 확보를 위해 윈난성과 라오스, 미안마의 3개국 국경지역에 1,100만평 규모의 재배농장도 마련했고, 계약재배 지역을 인도네시아, 베트남, 중국, 필리핀, 한국 등으로 확대해 2009년에는 원료의 70~80%를 자체 조달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