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침체가 가져온 전경련 외연확대 위기

3연임 허창수 회장, ‘고사(固辭)냐 vs 고사(枯死)냐

2015-02-23     공동취재단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가 내달 10일경 제54회 정기총회를 개최한다. 지난 해 새로운 기업회원 입회를 통해 ‘외연 확대’하는 데 관심을 기울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노력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올 총회 분위기는 더욱 무거울 것이라는 예상이다. 또한 후임 인선이 불투명한 상태에서 재추대에 이은 3연임 회장직 가능성이 높아져 정중하게 ‘고사(固辭)’할 것인지 아니면 부재중으로 ‘고사(枯死)할 것인지’에 대한 허 회장의 고민이 날로 깊어가고 있다.

지난 1월24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 제45차 연례총회에 참석하고 귀국한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여의도의 음식점에서 한 언론사 기자를 만나 경재계의 3연임 추대 움직임에 대해 부담감을 드러냈다. 지난 2011년 2월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의 뒤를 이어 제33대 전경련 회장을 맡은 뒤, 2년 후인 2013년 2월에 재추대되어 제34대 회장직을 연임했다. 그리고 올 2015년 조용히 사퇴 의사를 밝힌 상황이지만 전경련의 후임 회장에 대한 대안 부재로 또 다시 3연임을 요청받고 있다.


이에 대해 허 회장은 “지난 22일부터 다보스시 모로사니 슈바이처호프 호텔에서 ‘통일한국, 무한한 가능성’을 주제로 한 ‘코리아 나이트(Korea Night)’ 행사가 열렸다. 그곳에 참석한 42개국 500여 명의 글로벌 리더들과 함께 통일한국의 미래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다. 모두 한반도 통일이 전 세계적으로 공동 번영할 수 있는 신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치를 드러냈다. 그중 자스팔 빈드라 스탠다드차타드 아시아지역 사장은 통일이 될 경우 짐 로저스처럼 전 자산을 통일한국에 투자하겠다고 대답할 정도였다. GS그룹 역시 통일한국에 더 많은 투자를 하도록 역량을 집중할 생각이다”고 의지를 밝히며 “3연임은 하기 싫은데 자꾸 그런다”면서 “후임을 찾고 있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지난 2013년 총회와 같이 전경련 회장단의 재추대가 이어질 경우 허창수 회장은 정중히 ‘고사(固辭)’할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매년 국제 경제인 대회가 새롭게 기획되고 있는 상황에서 명실공이 한국 경제계를 대표하는 상징성 있는 전경련 회장의 부재는 향후 국가 브랜드 위상을 제고하는 데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허 회장과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이 직접 나서서 기업인 회장단 영입에 정성을 들였다. 지난 2013년 11월14일 회장단 월례회의 직후부터 ‘경제계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해 30대 그룹·제조업 중심으로 꾸렸던 회장단의 외연을 넓히겠다’고 공공연히 천명한 바 있다. 보통 전경련 회장은 2년마다 한 번씩 열리는 회장 선출을 통해 총회에서 4백여 명에 달하는 회원들의 동의를 얻어 선임되는 절차를 밟는다.


그리고 회장단 가입 자격을 기존 30대 그룹 총수에서 50대 그룹으로 확대하고 영입전을 펼쳤다. 당시 신규 회장단 후보 그룹으로는 부영, 영풍, 미래에셋, 대성, 교보생명, 하이트진로, 태영, 아모레퍼시픽 등이 있다. 그러나 거론된 이들 그룹 총수들은 회장단 가입을 고사한 상태다. 해당 그룹 한 관계자는 “기업의 역할은 경영을 잘 해서 실적을 내고, 고용을 늘리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며 “회장 역시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어 전경련과 같은 외부 단체 활동을 자제하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한다. 


또 다른 그룹의 한 핵심 측근은 “일정 규모 이상 기업 집단으로 참가 자격을 정해 놓은 전경련이 어떻게 우리나라 한국경제를 대표하겠는가. 또한 전경련이 대표성을 갖기 위해서는 먼저 여러 기업들의 의견을 받을 수 있는 구조로 바뀌어야 하고, 지금보다 참여 자격도 낮추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개진했다.
그 외 다른 재계 관계자는 “한국경제가 안 좋은 상황에서 기업이 전경련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기류다. 작년에도 회장단에 가입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 그런데 올해 그 명단에서 거론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고 의견을 낸다. 따라서 전경련의 관계자는 “회장단에서 방안이 나와야 구체적으로 윤곽을 알 수 있다. 아직까지 새로운 회장단에 대한 얘기를 듣지 못했고 이사회나 정기총회가 끝나봐야 회장단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을 듯하다”고 전달한다.


허창수 회장의 GS그룹 경영이 해외로 집중하고 있는 이유를 들어 이번 임기를 끝으로 전경련 회장직에서 물러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실상 정기총회가 점점 가까워옴에 따라 기존 전경련 회장단 명단에 어떠한 변화가 생길지는 결과는 지켜봐야 한다. 허 회장이 3연임을 하든지 고사를 하든지 전경련 활동은 당분간 현 상태를 유지할 듯 예측된다.


과거 2010년 7월경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이 건강상 이유로 전경련 회장직을 갑작스럽게 사퇴했을 때도 약 7개월간 공석이었던 적이 있다. 이와 같은 회장직은 초대 회장인 故 이병철 삼성회장을 시작으로 김용완 경방, 이정림 대한유화, 홍재선 금성방직, 정주영 현대, 구자경 LG, 故 최종현 SK회장과 유창순, 김우중 대우, 김각중 경방 회장 등이 맡아왔다.


그리고 현재는 허창수 GS그룹 회장(전경련 회장)을 주측으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현재현 전 동양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산업 회장,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김윤 삼양그룹 회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류진 풍산 회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장세주 동국제강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이승철 전경련 상근 부회장 등 21명이 기존 회장단으로 구성돼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급성심근경색으로 병상에 누워있고, 현재현 회장과 강덕수 회장은 그룹이 와해돼 사실상 전경련 활동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박용만 회장은 지난해 전경련 회장단에서 사퇴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최태원 회장은 수감 중이며 조양호 회장은 땅콩회항 사건으로 외부 활동을 차단한 상태다.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전경련 회의에 불참하는 총수들이 많아지면서 전경련 회장단은 유명무실한 내부 기구로 전락해 가고 있다.


여기에 허창수 회장의 GS칼텍스는 지난 2012년 일본의 쇼와셀과 50대50의 지분 투자를 통해 합작사를 설립한 데에 총 1조 원을 투입, 단일 PX 공장 기준으로는 세계 최대 생산규모(235만t)을 보유한 공장을 짓기로 했다. 하지만 일본 쇼와쉘 등과 공동 추진하고 있는 여수공장 내 100만t 규모의 PX(파라자일렌)시설 증설이 늦춰지는 가운데 허 회장의 걱정은 늘고 있다. 그는 “경기가 이렇게 안 좋은데 투자할 수 있겠느냐. 현재 보류 상태가 지연되고 있다”고 심정을 토로한다. 


무엇보다 당시 GS칼텍스는 외국인투자촉진법에 가로막혀 PX사업을 진행할 수 없었다. 이에 정부에 외촉법 개정안의 필요성을 강력하게 요청했고, 이를 받아들인 정부도 국회에서 법안 개정이 이뤄질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준 상황이다. 결국 외촉법 개정안은 지난해 초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그 영향으로 GS칼텍스 역시 일본 쇼와셀과 공동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전경련 후임 회장 인선과 차기 회장단 구성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