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심회 논란

2006-12-08     글/김정숙 기자
신386세대 간첩설, ‘일심회 사건’의 진실은
물증 있는가 여부, 성격규정 등을 놓고 사건처리 고심

북한공작원 접촉 의혹사건인 ‘일심회’ 사건이 다시 한번 언론의 관심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 정보위원회는 11월 20일 오전 10시 본청 245호에서 김만복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회를 진행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일심회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을 놓고 여야의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었다. 한나라당과 일부 언론들은 김승규 국정원장의 경질과 일심회 사건이 연관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지만 여당은 이를 일축한 바 있다. 김승규 원장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언론플레이’를 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어 일심회 사건은이날 인사청문회의 뜨거운 쟁점이 되었다. 이와 관련 김만복 후보자는 국회 정보위원회에 제출한 서면 답변을 통해 일심회 사건이 간첩단인지 여부를 미리 말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지난 10월 26일 오전. 자택을 나서 출근을 서두르던 최기영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41)과 부인 김은주 씨(38)는 골목 앞 정체불명 승용차에서 내린 서너 명 건장한 사내와 맞닥뜨린다. 26개월 된 아들을 안고 휴대전화로 통화 중이던 김씨는 사내들이 막무가내로 남편을 연행하며 체포 사실을 고지할 때에야 비로소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순식간에 마무리된 상황. 김씨는 남편을 태운 승용차가 시야에서 사라지고 난 뒤에도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골목을 에워싼 10여 명 수사관이 철수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른바 ‘일심회 사건’. 386세대 간첩단 사건으로도 불리는 이 사건은 일주일 넘게 진실공방 성격을 띤 채 논란의 쳇바퀴를 돌고 있다. 공안사건 성격상 명확한 실체 공개 없이 설만 무성한 탓이다.
국정원과 서울중앙지검은 10월26일 사업가 장민호 씨(44)를 고정간첩으로 지목해 구속하고 십수 년 전부터 행적을 감시해왔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사업가 손정목 씨(42)와 이정훈 전 민노당 중앙위원(44)을, 이틀 뒤 2차로 최기영 민노당 사무부총장과 이진강 씨(43)를 구속했다. 이어 1980년대 중반 대학 총학생회에서 활동했던 386운동권 출신 인사를 포섭했다며 수사를 확대, 속속 관련자 구속을 암시하거나 내사하고 있다.



일심회 사건, 물증 있나 논란
“확실한 물증이 있다” “깜짝 놀랄 만한 사실이 있다”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지만 정작 수사자료가 국정원에서 검찰로 이관된 후에야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문제는 일부 언론을 통해 흘러나온 관련 문건과 경질이 발표된 김승규 국정원장의 발언. ‘수괴’로 지목된 장씨의 일산 자택에서 발견됐다는 디스켓 안에는 관련 정황을 내포한 여러 문건과 명단 등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어 경질된 김 원장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간첩단 사건이 확실하다”고 확정하는 발언을 했다.
과연 이 사건은 치밀한 간첩단 사건인가, 아니면 무리하게 꿰맞춰지고 있는 사건인가. 현 상황에선 명확한 답을 내놓기 어렵다. 다만 여러 정황상 국정원이 서두르고 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우선 간첩혐의 부분. 서울중앙지검과 국정원은 2차 구속자에 대해선 국보법상 회합·통신 혐의만 두고 있던 상황. 애초 공안당국은 1·2차 구속자 대부분에게 “이들의 간첩혐의가 확인된 것은 없다”며 “그러나 일부 사람은 북한에 갔다 온 전력이 있어 간첩 혐의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발표내용도 다소 엇갈렸다. 최씨와 이진강 씨는 앞서 구속영장이 청구된 전 민노당 중앙위원 이정훈 씨가 2005년 3월 중국 베이징에서 북한 공작원을 접촉할 때 동행한 것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하지만 이내 방문시기가 달랐던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해답의 열쇠는 장씨가 쥐고 있는 셈이다. 성대 1학년 재학 중 도미해 기자, 주한미군, IT 전문가의 궤적을 밟은 장씨는 미디어 관련업체 경영자로 두각을 드러냈다. 사업상 각계 인사 접촉이 필수인 데다 실제로 정·재계를 오가는 광범위한 인맥을 형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여당이 탐내는 ‘젊은 피 300명’에 선정된 게 단적인 예. 그 때문에 정가에선 “국회의원 A, B, C도 연관돼 있다” “곧 386출신 D씨도 연행 된다” “청와대가 50명 선 관련자 발표를 막고 있다”는 등 정체불명 소문만 파다하다.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민노당 당원 40여 명이 간첩단 사건과 관련해 항의집회를 열고 있다. 경찰 저지선을 경계로 보수단체 회원들이 벌인 ‘간첩색출 집회’가 눈길을 끈다.

“공작원으로선 직무유기감”
하지만 그에 대한 의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정가에선 “아버지가 미 LA에서 한의원을 경영하고 있다” “부인이 한미연합사 고위 간부의 비서 출신”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확실한 건 그가 인맥을 잘 활용했다는 점. 구속되거나 거론된 인사 중에선 장씨의 출신학교인 용산고·성대 인맥이 눈에 띄게 많다. 관련자들은 “전혀 장씨의 정체를 알지 못했다”며 발뺌하는 데 바쁘다. 이 때문에 민노당측에선 “장씨와 직·간접 연관된 수많은 인물 중 유독 민노당 인사만 잡아들이고 있다”는 불평이 나올 만하다.
주한미군 복무 뒤 미 시민권을 획득한 장씨의 구속 후 미 정부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도 의외다. 일단 장씨는 영장실질심사를 스스로 포기하고 일부 혐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1989년 이후 모두 3차례 북한을 방문한 것으로도 전해졌다.
여기에 덧붙여지는 게 공작금 문제. 공안당국은 장씨가 미화 1만9,000달러, 손씨와 이정훈씨가 각각 2,000달러와 3,000달러를 받은 단서를 잡았다고 한다. 그러나 아직 확실한 것은 없다.



공동변호인단 입단속 나서
이렇게 ‘혐의’만 무성한 가운데 이번 사건은 간첩사건으로 매우 특이한 양상을 띤다. 민노당의 한 관계자는 “지난 50여 년간 간첩단 사건은 하부 조직원 일망타진 뒤 마지막에 상부 조직원을 잡아들였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라고 지적했다. 정보를 언론에 흘리는 ‘선공개 후수사’ 방식도 이례적이다. 특히 1989년 포섭된 뒤 16년간 10여 회 접선 끝에 1만9,000달러 공작금을 수령했다는 부분이 그렇다. 연봉 20만 달러 이상을 벌던 장씨에겐 약소하다는 얘기다. 게다가 12년간 달랑 조직원 1~2명만 확보한 채 최근 1년간 보고내용을 집중했다는 점도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 민노당 관계자는 “이는 분명 공작원으로선 직무유기감”이라고 꼬집었다.
조직 계보도 논란거리. 공안당국은 장씨가 작성한 문건 및 압수물을 토대로 장민호→손정목→이진강·이정훈·최기영으로 이어지는 계보도를 완성했지만 실제 몇 명이 진정한 조직원인지 뚜렷하지 않다. 옛 운동권 인사는 “보통 하위 조직원은 바로 위 상위 조직원 윗선으론 접선시키지 않는 게 점조직의 특징”이라며 “이씨와 최씨가 어떻게 두 단계 위인 부장급 유기순을 만났다는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이밖에 공안당국 수사가 장씨의 진술 및 장씨와 손씨가 작성한 일방적 보고서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도 여지를 남긴다. 강령과 규약의 부실도 지적받는 주요 대목. 일각에선 일심회란 단체명도 흔히 불리는 친목단체 한마음회와 크게 다르지 않아 촌스러운 간첩단 이름이라 부르고 있다.
이에 대해 변호인단은 확답을 꺼리고 있다. 공동변호인단인 이덕우, 장경욱, 김승교 변호사 등은 전화통화에서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며 입단속에 나섰다. 이는 묵비권 행사 중인 구속자들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한 민노당 관계자는 “자칫 국정원 조사과정에서 ‘조작’ 등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한 까닭”이라며 “변호사들은 법리상 대법원에선 승산이 높은 것으로 본다. 과대포장한 간첩단 사건일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기소 뒤 대법 판결까진 최소 2~3년이 소요돼 자칫 증거 없는 간첩단 사건으로 혐의자에게 주홍글씨만 새긴 채 끝날 수도 있다.
대표적 사례가 1998년의 ‘영남위원회 사건’이다. 그해 7월 경찰은 최연소 현직 구청장인 김창현씨(전 민노당 사무총장) 등 8명을 전격 구속해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국보법상 반국가단체 구성 등이 주된 죄목. 경찰은 디스켓 100여 개를 증거물로 제시하며 “3년을 준비한 사건”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법에선 2명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마찬가지로 이번 ‘일심회 사건’도 국정원과 검찰의 명확한 증거제출이 없다면 국보법상 단순 회합·통신죄(8조)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논점은 보고자료의 이적성·비밀 여부. 국보법상 목적수행(4조)에 해당하려면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 또는 중개하거나 군사기밀을 누설한 사실을 밝혀야 한다.
그러나 최씨의 경우, 그가 보고했다는 민노당 내 동향은 당 홈페이지에서 일반에 공개된 자료들뿐이다. 장씨의 경우에도 보고했다는 민노당, 시민단체 동향을 국가기밀로 보기 어려우며 주한미군 근무 당시 참고해 보고했다는 ‘신동아’ 등 월간지 내용도 마찬가지다.

공안단국 혐의입증에 자신감
반면 공안당국은 “장씨의 USB 메모리칩에 담긴 문건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고, 관련자 움직임에 대한 보고서와 일치한다. 장씨 등이 어떻게 활동했는지 정확히 기재돼 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다. 일부 언론은 장씨에게 입수한 CD를 암호 해독기로 풀었다고도 보도했다. 일부가 작성했다는 ‘충성결의문’과 이진강 씨 차 안에서 발견된 ‘새해인사’ ‘시민단체 포섭 계획’ 등도 주요 증거물. 다년간 축적됐다는 내사 기록도 관심거리다. 결과적으로 광범위한 386 거물급 간첩단 사건일지, 간첩단 미수 사건일지는 법원만이 판단해줄 수 있다.
이해삼 대책위원장은 “원칙적으로 흐름을 지켜보고 있지만 이 단계에서 초상권은 물론 이름, 직장 등이 밝혀져 판결 전 무죄원칙에 위배됐다. 사건 뒤 악의적 오보와 인권침해 등에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일심회’사건 성격규정 논란
한편 국회 정보위의 11월 20일 김만복 국정원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국정원이 수사한 이른바 ‘일심회’ 사건의 성격 규정 등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다.
김 후보자는 이번 사건 관련자들이 ‘간첩’ 피의자인지를 묻는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의에 “모두 간첩죄를 의율해 송치했다”면서도 ‘간첩단’인지 여부에 대해선 “제가 이 자리에서 간첩단사건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직 이르고 부적절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김 후보자는 간첩 혐의와 관련 “실무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나라당 김형오 의원은 “사건의 성격 규정을 못한다면 문제 아니냐”며 “오랜만에 간첩을 잡았다면서 첫 국정원 출신 원장 후보자가 이렇게 흐리멍덩한 답을 하다니 이해가 안된다”고 추궁했다.
김 후보자는 이에 대해 사건 관련자 5명의 검찰 송치가 김승규 원장의 지휘에 따라 이뤄진 점을 감안한 듯 “그동안 내정자 입장으로 지휘선상에 있지 않았다”며 빠져나갔다.
김 의원은 특히 “5명에 대해 간첩죄를 의율했다면 간첩단 사건이 아니냐”며 다시 반문했지만 김후보자는 “대북보고에는 일심회라는 게 있었지만 각자들은 아직도 일심회라는 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의원은 국정원의 서면답변 자료에 ‘일심회 사건에서 확인된 것처럼 제도권의 정당침투, 비공개활동 등을 보아 상당수가 활동하는 것으로 본다’고 돼 있다며 이를 근거로 질의를 계속했고 김 후보자는 “송치된 5명 중에 2명이 민주노동당”이라고 답한 뒤 다른 정당의 관련성이나 민노당 내 침투대상자 등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같은 당 송영선, 박진 의원도 집요하게 ‘간첩단’ 여부를 따졌다. 송 의원은 “내정자에게 서면답변을 요구했더니 일심회사건은 조직사건이라고 했다. 그게 간첩단 아니냐”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간첩단이란 용어는 부적절하다”며 “조직사건은 한 사람이 아니라 여러 사람 개념”이라고 답했다.
그는 송 의원이 계속 추궁하자 “조직사건이라는 것 자체가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이 만나거나 특정한 목적을 갖고 의사소통을 해야 하는데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송 의원은 나아가 “3년 간 100만쪽이나 수사했는데 그것을 못 찾았다면 대공수사권을 내놓아야 할 것”이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김 후보자는 박 의원의 질의에 대해서도 “일심회는 아직 마이클 장 혼자 사용한 단어”라며 “5명이 일심회로 다 만난 적 없고 마이클이 개별적으로 만났다”고 답했다.
열린우리당 박명광 의원도 “간첩단 사건이냐”고 물었지만 김 후보자는 “체포할 땐 잠입탈출 혐의였지만 송치할 때는 간첩단이란 용어는 없고 간첩 혐의자들로 송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당 유선호 의원은 “당사자들이 간첩이 아니라고 부인하는데 (김승규) 국정원장이 그럼에도 간첩단사건이라고 발표한 것은 너무 나간 것 아니냐”고 말해 한나라당과 다소 온도차를 보였다.
논란은 피의사실 유출 배경, 변호인 참여권 문제 등으로도 이어졌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일심회 수사과정에서 변호인의 수사방해가 있었다며 이를 위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이냐고 물었고 김 후보자는 “다음 사건 때는 대검 지침을 충실히 따르겠다”고 답했다.
반면 유선호 의원은 변호인을 “대검 지침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고 선을 긋고 법원의 판례가 있다면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는 헌법이 보장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열린우리당 선병렬 의원도 “인권적 측면에서 흠이 있어선 안된다”며 “앞으로 국보법 사건은 과장확대도 안되지만 축소은폐도 안된다”며 엄격한 수사를 강조했다.
선 의원은 수사상황 유출과 관련, 김승규 원장과 김 후보자 사이의 갈등설에 따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고 묻자 김 후보자는 “아니다”며 “(갈등설은) 군대조직 다음으로 위계질서가 엄격한 국정원 조직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 의원은 “자료에 의하면 98년 이후 국정원 정보가 외부에 무단 유출된 케이스가 여러 건으로, 보안문제가 심각하다”며 “특히 퇴직자보다 현직 직원이 저지른 게 4배 이상 많다”고 지적한 뒤 정보유출이 한 건도 없었다는 기무사를 벤치마킹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같은 당 문희상(文喜相) 의원은 “간첩 혐의를 추적해 발본색원할 책임이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강조한 뒤 김승규 원장의 언론 인터뷰를 겨냥, “국정원법 위반이고 피의사실이 공표된 것 뿐만 아니라 국정원 기본윤리강령도 안 지킨 것”이며 “자질이 안돼 있다”고 비난했다.
김 후보자는 이날 답변에서 김승규 원장과 관련한 질문에는 “모신 분을 평가하는 게 부담 된다”며 답을 피해 눈길을 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