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핵실험 강행 파문
2006-11-03 글_신혜영 기자
지난 10월 9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오전 11시48분 ‘성공적이고 안전한 핵실험’을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앞서 미국 AP통신은 오전 11시34분 ‘북 핵실험 관련 동향 있다’는 소식을 연합뉴스를 인용해 전 세계에 가장 먼저 타전했다. 이 소식에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국, 중국, 일본은 물론 전 세계가 앞 다퉈 북 핵실험 소식을 속속 보도했다. 지난 10월 3일 핵보유 선언이 있은 지 딱 6일만의 일이다.
북한은 지난 2005년 2월 ‘2·10성명’을 통해 핵보유 선언에 이어 지난 10월 3일 성명을 통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연구 부문에서는 앞으로 안전성이 철저히 담보된 핵실험을 하게 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미국의 극단적인 핵전쟁 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은 우리로 하여금 상응한 방어적 대응조치로서 핵 억제력 확보의 필수적인 공정상 요구인 핵실험을 진행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핵전쟁위협과 제재압력 책동이 계단식으로 확대되는데 따라 우리는 투명한 대응과정을 거쳐 합법적으로 현대적인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것을 공식 선포했다”며 “핵무기 보유 선포는 핵실험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로부터 6일 뒤인 지난 10월 9일 북한은 노동당 창건일을 기념해 핵실험을 강행했다. 또한 지난 10월 9일은 한일정상회담이 열리는 날이기도 했다.
당시 북한의 핵실험을 둘러싸고 갖가지 의혹과 추측이 난무하기도 했다. AFP통신은 미국 정보 당국의 말을 인용해 “폭발 규모가 1㏏미만이어서 핵실험에 의한 것인지 단정할 수 없다”고 보도했으며 로이터통신도 다른 미 국방부 관리의 말을 인용해 “규모 4㏏미만이 진동 결과로 볼 때 핵실험보다는 TNT 수백t의 폭발로 일어날 수 있는 종류의 일”이라고도 전했다. 이처럼 일부에서는 핵탄두가 아닌 재래식 고성능 폭탄을 터뜨렸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지난 10월 13일 미국의 존 네그로폰테 국가정보국장은 미 의회에 북한 핵실험 장소에서 지난 10월 11일에 채취한 대기 샘플에서 방사능 물질이 검출됐다며 이는 핵실험의 것과 일치한다고 서명 보고했다. 그 이튿날 미국 CNN은 긴급 속보를 통해 “북한이 핵실험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부근에서 방사능이 검출됐다는 증거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지난 25일 과학기술부는 남한지역에서 포집한 공기 중에서 핵실험 때 발생하는 방사성 물질 ‘제논’이 검출됐다고 밝혀 북한의 지난 9일 지하 핵실험을 처음으로 공식 확인했다. 정부는 지질자원연구원의 분석결과에 따라 함북 길주군 풍계리 지역을 핵실험 장소로 추정했다. 이로써 북 핵실험은 사실로 판명된 셈이다.
통상적으로 핵실험을 실시할 경우 5~15㏏의 폭발력이 발생한다고 한다. 따라서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소형 핵폭발이었거나 부분적으로 폭발에 성공했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북, 핵 억제력을 갖기 위해 이뤄진 일
그렇다면 북한은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왜 핵실험을 강행했을까.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북한이 핵실험을 천명한 이유 중 하나는 핵 포기에 따른 대가를 염두에 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실제 ‘억제력’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이었다”며 “북한의 핵실험 강행은 무게중심이 후자에 있었다는 것을 확인해준 셈”이라고 해석했다.
사실상 지난 10월 10일 유럽연합 방문에 나선 북한의 최고인민회의 리종혁 대표단장은 “핵실험은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적인 책동과 위협을 계속하는 현 정세 하에서 자주권을 지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핵 억제력을 가져야 한다는 자위권적인 판단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하며 “핵실험은 북한의 주권을 위협한 미국의 혹독한 압박의 결과”라고 전한 바 있다.
아울러 “미국의 압박과 위협에 맞서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것이 핵무장이다”며 “미국의 위협이 없다면 우리한테 핵이 필요할 이유가 없다. 지금이라도 조선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와 책동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한다면 우리는 핵을 포기할 수 있다”고해 실제 억제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사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며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동북아시아의 핵개발 경쟁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북한의 대량살상괴무기 개발을 억제해 왔다. 특히 지난해 10월 제 4차 6자회담을 통해 북한이 원해오던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 등의 내용이 담긴 9·19공동성명을 만들어냈지만 미국은 북한의 위조화폐 제조 혐의를 거론하면서 금융자산을 동결해 압박 했다. 이후 북한은 ‘선-금융제재 해제, 후-6자회담 복귀’를 요구했으나 미국은 불법행위에 대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는 원칙론을 내세우며 북한의 요구를 외면했다. 결국 북한은 미국을 압박하기 위해서 핵실험이라는 카드를 뽑아든 셈이다. 상황이 긴박해질수록 대화와 협상의 필요성이 커지는 점을 북한이 이용한 것이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남북한관계연구실장은 “미국, 일본 등이 외부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를 내겠지만 핵보유국이 된 북한에 대해 쉽게 공격할 수는 없다”며 “북한은 상황을 내버려 두고 대화와 협상 기회를 기다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와 더불어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지난 10월 9일 보도를 통해 “핵실험은 100% 우리 지혜와 기술에 의거해 진행된 것이다. 강위력한 자위적 국방력을 갈망해온 우리 군대와 인민에게 커다란 고무와 기쁨을 안겨준 역사적 사변이다”라고 강조함으로써 북한은 억제력 외에도 이번 핵실험을 통해 내부적인 결속을 강화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이번 핵실험은 국제사회의 압력에 전혀 굴복할 생각이 없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특히 북한의 초대 동맹국인 중국이 공개적으로 경고했음에도 핵실험을 강행했다는 것은 북한의 이러한 의지가 확고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핵실험을 강행한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미국의 북한에 대한 태도다. 때문에 이번 북 핵실험을 두고 관심이 집중되는 건 무엇보다도 미국의 대북정책이다.
지난 10월 25일 백악관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북 핵문제에 대한 원칙과 방향을 밝힘으로써 미국 정부 대북정책 기조의 윤곽을 서서히 드러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은 “우리가 단결할 때 북 핵문제를 외교적으로 해결한다는 목적을 더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하며 특히 안보리 결의 이행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더라도 비핵화에 진전을 이룰 때까지 제재결의 1718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이는 지난 9일 북한의 핵실험 이후 미국의 일관된 입장으로 ‘제재는 제재대로 회담은 회담대로’하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안보결의 1718호는 북한의 핵실험 성공 발표 닷새 만인 14일 안보리 전체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채택된 대북 제재안으로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지원하는 자금과 금융자산의 동결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날 라이스 국무장관도 “북한의 건설적인 결단을 유도하기 위한 포괄적 정책을 갖고 있다”며 북한에 대한 공격이나 침공 의사가 전혀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북한이 핵 등 대량살상무기를 제 3국이나 단체에 이전할 경우 미국에 대한 중대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며, 만약 그런 행위가 있으면 그 결과에 대한 전적인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해 북 핵의 제 3국 이전 방지에 최종 목표를 두고 있음을 암시했다. 라이스 장관의 말처럼 부시 행정부는 대북 봉쇄정책의 유지를 거듭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 내에서는 민주당은 물론 공화당에서도 대북 직접대화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부시행정부 대북정책이 비난의 표적이 되고 있다.
한편 스위스 정부는 유엔 안보리의 대북 제재 결의안에 따라 10월 26일부터 대북제재 조치에 착수했다. 이에 따라 북한에 대해 핵무기와 미사일을 개발하는데 사용될 수 있는 물품과 기술뿐만 아니라 사치 품목 등도 수출입이 제한된다.
반면 중국은 북한의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대북원조를 삭감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류젠차오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북한 주민들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원조를 제공하는 것이 중국 정부의 정책이었다”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채택한 대북 제재 결의에는 국제원조에 대한 삭감을 요구하는 문구가 포함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여야, 북 핵 행보 놓고 갈피 못 잡아
그런데 우리 정부 당국은 북 핵실을 두고 여야 당내에서조차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핵실험에도 불구하고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게 기본입장이지만 최근 당 지도부 회의에서도 북 핵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충돌이 심심치 않게 있다.
한나라당은 지난 10월 17일 김성조 전략기획본부장이 “햇볕정책은 기적적 성과를 이룩했으나 포용정책은 안보불안으로 귀착됐을 뿐”이라고 언급한데 이어 같은 날 강재섭 대표가 전남 지역 재보선 지원유세에서 “노 대통령은 남북관계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뤄놓은 것을 다 깽판쳤다”며 햇볕정책의 비교우위를 강조하는 등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대북정책 평가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모습이다.
민주당은 당초 대북제재에 대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으나 지난 10월 19일 긴급 의원단 회의를 기점으로 한 미공조를 통해 북 핵 해법을 도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민주노동당은 당내 양대 세력인 ‘자주파(NL.민족해방)’와 ‘범좌파(PD.민중민주)’가 북한 핵실험의 자위권 여부 등을 둘러싸고 첨예한 의견 대립을 보이고 있다.
당내 혼선조차 정리가 안 된 상황에서 앞으로 정치권이 어떻게 대북정책을 펼쳐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0월 26일 이종석 통일부 장관은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 국감에서 ‘북한 핵실험 관련 정부 조치방향’에 대한 보고를 통해 결의안 이행 조치의 골격을 발표했다.
이행조치는 크게 ▲대량살상무기(WMD), 재래식 무기, 사치품 등의 공급·판매·이전 금지 ▲제재 대상 개인·단체에 대한 자산 동결 및 자산활용 방지 ▲북한 출입화물 검색 ▲제재위 지정 북한 인사 및 가족의 출입·체류 금지 등으로 분류됐다.
이는 유엔 결의 8조를 반영해 국내 법령을 개정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8조는 WMD 및 주요 재래식 무기, 사치품의 이전 금지와 북한 출입화물에 대한 검색 강화, 금융제재 등에 초점이 맞춰진 조항으로 이번 유엔 결의의 알맹이에 해당된다.
정부는 우선 WMD 공급·이전 금지 조치와 관련해서는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전략물자 수출통제시스템을 더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행조치를 만들기로 했다. 또 ‘각국의 법 절차에 따라 북한의 핵, WMD, 탄도미사일 관련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자국 내 자금과 금융자산들을 동결하고 북한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이나 단체들도 자국내 자금이나 금융자산을 사용치 못하도록 한다’고 규정한 유엔 결의 8조d항에 따라 정부는 제재위원회가 문제의 개인이나 단체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내놓으면 이들과의 남북교역·투자 관련 대금 결제와 송금 등을 통제할 방침이다. 정부는 이와 함께 결의안 8조e항이 북한의 핵, 탄도미사일, WMD와 연루된 것으로 지정된 자와 그 가족에 대해 입국 및 경유 금지를 위해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함에 따라 해당 인사나 가족에 대해서는 국내 출입 및 체류를 막기로 했다. 또 북한 선박에 대해서는 남북해운합의서를 근거로 활용키로 했다. 이와 별개로 한미 간 양자 문제의 성격이 강한 PSI도 관심사다.
이에 앞서 지난 10월 25일, 대남 기구인 조평통은 남측의 대북 제재 참여 움직임과 관련해 “비싼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핵실험 뒤 처음으로 남북 관계의 파국을 경고했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서명한 6·15 공동선언의 파기 가능성까지 거론하면서 비난 공세를 펼쳤다. 북한이 문제 삼은 부분은 세 가지로 ▲쌀, 비료 지원과 수해 구호물자 제공 같은 인도주의적 사업의 중단과 ▲남북 경협 사업(금강산관광·개성공단 등)에 제동을 걸려고 한다는 것. ▲미국이 주도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움직임이다. 이 중 북한이 내놓을 사항은 금강산관광·개성공단 사업 중단일 가능성이 지적되고 있다. 남한 기업들에 실질적 타격을 주는 한편, ‘포용 정책의 상징 사업’을 무력화시키는 효과까지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대북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실험이 ‘성공적으로 끝났다’는 국제사회의 인식이 형성되면 북 핵문제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논리로 해법을 찾게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日, 북한 2차 핵실험 오보 소동, 해프닝으로 끝나
일본 닛폰 TV는 지난 10월 11일 오전 8시40분쯤 긴급 자막으로 “북한이 7시40분쯤 2차 핵실험을 실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일본 정부 소식통을 인용하며 가장 먼저 보도했다. 이어 일본 NHK방송 등 일본 언론은 이날 오전 북한이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고 보도하면서 한반도를 비롯한 관련국들을 긴장시켰다.
그러나 청와대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에 거듭 확인했지만 북한으로부터 아직까지 특별한 징후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미국 백악관도 “2차 핵실험 가능성이 확인 안 된다”고 했다. 이후 9시10분쯤 아베 총리가 “북한이 2차 핵실험을 했다는 정보는 없다”고 공식 부인함으로써 ‘2차 핵실험 보도’는 오보로 판명 났다. 한·미·일 당국은 북한의 2차 핵실험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보를 수집 중이지만, 일본 언론 보도처럼 2차 핵실험 징후는 확인된 것이 없는 상태다. 유명환 외교부 차관 북 핵 특별대책팀장은 “북한의 2차 핵실험 첩보가 있었는데 워낙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이것이 와전된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