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시작부터 구태모드…정책보단 부실·호통·막말득세

실제 국감 기간 15일 채 안돼, 상임위별 하루 평균 3~4곳

2014-10-10     공동취재단

   
 

2014년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지난 7일부터 시작됐지만 부실 국감의 우려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애초 이번 국감이 '수박 겉핧기' 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애초 실시예정이었던 분리 국감이 세월호특별법으로 촉발된 정국파행으로 무산된데다 이번 국감의 대상기관도 사상 최대인 672곳이기 때문이다. 국감 기간에 비해 피감기관이 너무 많아 효율적 국감이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감 기간은 21일간이지만 실제 주말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15일이 채 안 된다. 국회 운영위·정보위·여성가족위를 제외하면 상임위별로 하루 평균 3∼4곳꼴로 감사를 해야 하는 셈이다.

여야는 짧은 준비기간임에도 각 당의 정치적 목적에 맞게 성과를 내겠다고 다짐했지만, 지난 이틀간 진행된 국감을 살펴보면 앞으로 결과는 뻔하다는 비관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여야의 다짐과 다르게 예년과 같은 구태 국감의 모습이 여실히 나타나고 있어서다. 올해도 정쟁과 설전 속에 파행을 반복하는가 하면 증인채택을 놓고 여야는 정책 국감 보다는 양보없는 정쟁만 벌이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국감 첫날인 7일에는 여야가 곳곳에서 충돌하며 급기야 일부 상임위는 파행을 겪기도 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이날 환경부를 대상으로 한 국감에서 증인채택 문제를 놓고 논란을 벌이다 결국 파행했다. 야당 의원들은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등 기업 총수에 대한 증인채택을 요구했으나 새누리당이 이에 반대한 것이다.

국방위원회에서도 '28사단 윤일병 폭행사망 사건'의 수사 축소·은폐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책임자와 김규현 국가안보실 제1차장, 군 대선개입 문제와 관련해 연제욱 전 사이버사령관의 증인 채택을 둘러싸고 50여 분 동안 여야 간 설전이 벌어졌다.

8일도 정쟁·파행 국감은 이어졌다.

환노위는 전날 환경부에 이어 이날 노동부에 대한 국감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여야는 기업인 증인 채택 문제로 마찰을 빚다가 오전 11시45분께 개의했지만 30분간 공방을 벌이다 결국 정회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노사 분규를 비롯해 비정규직 고용, 하도급 직원의 부당 대우 문제 등과 관련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그룹 부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기업 총수를 증인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새누리당은 수용 불가를 밝히면서 견해차를 좁히지 못했다.

환노위 야당 의원들은 여당과 증인 채택 협상을 더는 진행하지 않기로 입장을 선회하면서 오후부터 가까스로 국감을 정상화했다.

국방위에서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야당 일부 의원들의 성향을 평가한 메모를 나눈 것이 공개되면서 한때 파행됐다. 전날 열린 국방위 국감에서 새정치연합 진성준 의원 발언 시간 중 정미경·송영근 의원이 주고받은 '쟤는 뭐든지 빼딱' '김광진·장하나 의원은 정체성이 좌파적' 등의 메모가 화근이었다.

새정치연합이 "동료 의원으로서 심한 모멸감을 느꼈다"며 즉각 사과를 요구했지만, 새누리당 송영근 의원은 '사적인 대화'라며 사과를 거부해 40여 분간 대립하다 국감이 정회됐다. 결국, 송 의원은 속개 후 사과의 뜻을 밝혔다.

정무위원회는 임영록 전 KB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 등 금융회사 수장의 증인 채택 여부를 놓고 여야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감사가 40분가량 중단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이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에게 "하기 싫으면 나가라"고 고성을 지르자 새누리당 의원들이 '사과'를 요구하고 나서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일단 정무위 여야 간사는 국감과 별도로 증인 채택 논의를 진행키로 하면서 오후 감사를 재개했다.

막말, 호통에 지역구 민원 챙기기 구태도 여전했다.

기획재정위의 한국은행 국감에서는 막말에 가까운 인신공격성 발언이 나왔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정해방 금융통화위원에게 기획재정부와 사전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협의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하면서 "한글도 모르느냐"등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국감에선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이 민원성 발언을 해 논란이 벌어졌다.

철도부품 납품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송 의원은 이재영 LH 사장을 향해 "지역구 의원이 사장에게 해당 지역에 아파트를 검토해 보라고 하면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장이 바쁘면 밑에 있는 직원이 보고서라도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쳤다.

정치권에서는 짧은 준비 기간에 인기만 끌려고 하니 계속 구태가 재연되고 있다며 지금처럼 하면 국감의 의미가 계속 퇴색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여야가 합리적 비판과 정책 대안을 제시하는 국감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여야는 9일도 '구태·방탄·부실 국감'에 대한 네 탓 공방을 벌이며 책임론 떠넘기기에 나섰다.

새누리당은 소모적 논쟁에서 벗어나야 하고 피감기관에 호통치는 태도는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숙 원내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정책경쟁의 꽃을 피워야 하는 국감 기간임에도 현재 몇몇 상임위에서는 증인 채택 문제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국감, 예산안 심사 등 국회 일정에 소모적인 논쟁에서 벗어나 국회가 생산적인 논의의 장으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대출 대변인은 논평에서 "일부 국감 현장에서 피감기관을 혼쭐내는 데 의도가 있는 듯한 인상마저 주고 있다. 이런 태도는 청산해야 할 구태 국감"이라며 "피감기관을 죄인 다루듯 인격적으로 무시한다고 해서 국회의 격이 높아지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당이 정부의 호위 무사를 자처하며 공공기관 낙하산에 대한 방탄 국감을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한정애 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새누리당 일부 국회의원이 실망스럽다. 과연 국민을 대변하는 입법부의 일원인지 의심스럽다"며 "기업들의 입장만 대변하고 정부의 든든한 호위 무사를 자처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국민에게 어떻게 비칠지 현명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근혜 정부가 선피아(선거캠프 종사자+마피아)들을 대거 공공기관 낙하산 인사로 투입하고 있어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다"며 "낙하산 인사와 대선 보은인사를 국감 증인으로 채택해 문제점을 조사하려 했으나 새누리당 의원들은 비협조로 일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상속세와 증여세 세제혜택 때문에 우후죽순 늘어가는 공익재단에 대한 국세청의 세정관리 감독 강화를 촉구하기 위해서 '청계 재단' 관계자들에 대한 증인신청 요청도 새누리당이 반대하고 있다"며 "국정운영의 책임 있는 여당으로서 국감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고 요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