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능성의 씨앗, Global Leading MetLife에 심다
“MetLife 중국 법인 최초의 한국인 수장 꿈꿔”
말단 영업 사원에서 시작해 국제 금융시장을 이끄는 골드만삭스 자산운용 사장의 자리에 오른 도키 다이스케는 <왜 나는 영업부터 배웠는가>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영업은 단순히 상품이나 서비스를 파는 일이 아니라 고객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판단을 돕는 일’이라고 서술했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부심은 결국 회사에 대한 Royalty로 이어지고 그 충성심은 다시 생산적이며 열정적인 Activity로 이어집니다”라며 “인생의 방향성은 결국 생각에 따라 달라지고 삶에 대한 태도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부지점장의 자신의 생각처럼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세로 삶을 대해 왔다. 1999년 12월 군대를 제대한 그는 방송국 PD지망생으로 오랜 시간 언론 고시를 준비했다. 그러나 연이어 고배를 마셨고, 그동안 쌓아온 스펙으로 방송국이 아닌 공기업에 입사했다.
평생직장이라는 안정성이 보장되고 입사 후 많은 것을 배웠지만 시간적인 제약이 많았고, 일한만큼 합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보람을 느끼지 못했던 그는 이직을 결심했다. 결국 2007년 국내 굴지의 골프&리조트 건설 및 운영회사인 에머슨퍼시픽에 특채로 입사했고, 당시 에머슨사가 금강산에 아난티 골프&스파 리조트를 건설하면서 금강산으로 떠나게 됐다. 금강산은 그가 대학교 4학년 재학 당시 금강산 사업에 관심을 느껴 현대 상선 북측 현지 가이드로서 생애 처음 직업을 가졌던 터전이기도 했다.
금강산에서 남북출입국관리사무소 수속팀장으로 근무하며 하루에 한 번씩 남북을 오가며, 재미와 보람을 느꼈지만 다시 한 번 위기가 찾아왔다. 2008년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이 전격 중단된 것. 첫 번째 이직은 행복을 찾고자한 자발적인 도전이었다면 두 번째 이직은 원치 않은 권고사직을 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두 번의 샐러리맨 생활이 안타깝게 끝나고 나니 제가 진정 주인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거액의 재산을 대물림 받는 상속자가 아니고서야 직업은 자아실현과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가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MetLife가 항상 이야기하는 ‘Financial freedom For Everyone’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재정적 자유를 빨리 찾을수록 나와 주변이 더 행복해진다는 진실을 월급쟁이 생활에 종지부를 찍은 34살에 비로소 알게 됐습니다.”
그렇게 MetLife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그는 FSR로서 자신의 삶의 주인공이 됐다.
김연아, 박지성과 같은 특별한 스타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재미와 보람, 소득의 3박자를 만끽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FSR이었던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것이 행복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최선의 삶은 피아니스트나 음악감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면 멋지게 벌어서 피아노를 제 2의 직업, 취미로 치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선택을 빨리 한다면 더욱 좋겠죠.”
자신의 경험에 비춰 후배들에게 가감 없이 조언을 하는 김 부지점장은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가장 어리석은 일이며, 그것은 나를 아끼는 사람들의 인생까지 침해합니다”라며 강한 어조로 “저 역시 방송국 PD가 아니라면 죽음을 달라고 할 만큼 간절한 꿈이었지만, 지금의 삶에 충분히 만족하고 스트레스 없는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성공의 8할은 ‘태도’
김 부지점장은 현재 B&B MGA 내에서 recruiting, training, management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팀원들을 이끄는 리더이자 모티베이터이다.
그의 팀은 23세에서 30세의 젊은 인재들로 이뤄져 있으며 이들은 모두 첫 직장을 MetLife 로 선택했으며 열정으로 똘똘 뭉쳤다. 김 부지점장은 원칙과 효율성을 강조하는 시스템화 된 management을 통해 팀원들을 이끌고 있다. 그는 “좋은 태도와 학습능력을 겸비한 젊은 팀원들은 무한한 잠재력 지녔습니다. 저희 팀 이야말로 ‘도전과 가능성’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팀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자랑했다.
그렇다면 김 부지점장이 팀원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는 “일을 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학벌, 성별, 나이, 외모, 출신지역이 아니라 ‘Attitude’입니다.
물론 저희 팀은 서울지역 4년제 이상이라는 기본 조건을 갖추고 있지만 성실하고 겸손하며 열정적인 태도를 지닌 인재라면 최소 기준까지 낮출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태도를 갖춘 인재라면 누구나 김 부지점장의 선택, 면담을 우선 거치고 직무설명회, 1~2차 면접을 통해 입사할 수 있으며 MetLife의 체계적인 교육을 마친 후 정식 비즈니스를 시작할 수 있다.
“가족과 이웃에 소소한 행복 전할 터”
도전을 거듭해온 김 부지점장. 그의 결혼도 도전의 연속이었다. 지난해 한국과 중국에서 두 번의 결혼식을 올린 그는 양가의 반대를 무릅쓰고 12살 연하의 중국인 아내를 맞았다.
“한국에서 유학 중이던 중국인 한족 유학생이자, 집안의 보배라고 하는 무남독녀 외동딸인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아내와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하지만, 팔불출을 마다하지 않을 만큼 어려운 과정을 거쳐 결혼에 골인했습니다. 30년 넘게 중국 공안국에 몸담고 계신 장인어른과 교육공무원이신 장모님에게는 청천병력 같은 소식이었을 테고, 경북 상주에 계신 부모님도 상상하지 못할 일이었죠. 하지만 결국 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결혼할 수 있었습니다. 인생은 끊임없는 도전이 아닐까요.”
소중한 아내와 든든한 팀원들과 함께 성공을 꿈꾸는 김 부지점장은 단기적으로는 역동적인 조직을 구축, 철옹성과 같은 견고한 팀을 꾸리고자 하며, 중기적으로는 MetLife 최초의 Young Branch를 론칭해 수장이 되고자 한다. 타사에서도 전례가 없는 젊고 역동적인 조직을 일궈 MetLife라는 비옥한 토양에 잘 자리 잡도록 하는 것이 그의 비즈니스 목표다.
또한 장기적으로는 무한 성장을 이뤄가고 있는 중국에서 MetLife 중국 법인 최초의 한국인 수장이라는 타이틀을 얻고자 한다. 그날을 위해 중국어와 문화를 배우고 있는 그다.
김 부지점장은 “MetLife를 통해 한국과 중국의 가교역할을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입니다”라며 “끝으로 저 하나만을 믿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한국에 와준 아내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가족에게는 소소한 행복을 찾아주는 남편과 아들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제 작은 힘이 타인의 삶에 윤기를 주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라며 사회봉사에도 작은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