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전세자금 대출’인가

막무가내식 전세자금 대출 권유, 서민들 악순환 계속 돼

2014-07-01     (주)피플부동산 이준원 대표

대출이자를 최대한 줄일 수 있는 방법, 대출금리 비교 사이트 등이 활개를 치고 있다. 서민들은 이러한 정보를 이용해 대출이자를 한 푼이라도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대출이자가 싼 곳으로 갈아탔을 때 뿌듯함을 느낀다. 이 얼마나 이율배반적인 얘기인가.
국가는 부동산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서민들을 위한 전세자금 대출자격을 완화해 삶의 질을 향상시켜 준다고 하지만 어차피 그것이 다 이자를 내야 하는 대출이고 빚인 셈이다. 국가가 발 벗고 나서 서민들에게 빚을 권하고 있는 것이다.
강남에 사는 김 모 씨(여. 45세)는 “1억 원으로 전셋집을 구하려 했는데 임대인의 동의 없이도 전세자금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서 1억 5,000만 원 짜리 집을 구했어요. 이자가 저렴하니 이왕이면 좀 좋은 집에서 사는 게 좋죠”라며 최저금리로 전세자금 대출을 받고 집도 마음에 든다며 기뻐했다.
강남에서 부동산을 운영하다 보니 빈번하게 보는 사례다. 굳이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도 이자가 낮다고 하면 일단 대출을 받아 좋은 집을 구하려고 한다.
각종 매체에서도 대출이자가 싸니 안 받으면 손해, 못 받으면 바보라는 식의 홍보를 한다. 더불어 손쉬운 전세자금 대출로 인해 전세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전세금 또한 상승한다. 서민들은 전세금이 올라 집을 구할 때 더 많은 대출을 받아야 한다. 결국 이러한 정책은 금융권과 은행만 배불리는 꼴이다.
가까이에 있는 부동산 관계자들 또한 “2008년에만 해도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7%였는데 올해 4월을 기준으로 3.69%로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며 “전세가격과 매매가격 격차가 줄고 금리가 낮아져 주택을 구입 여건이 과거보다 좋아졌다”고 말한다. 이왕 빚을 진다면 이자가 쌀 때가 좋다는 말이다.
‘가계 부채를 줄이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대출 금리를 비교해 싼 곳으로 갈아타라’는 신문기사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야 말로 병주고 약주는 셈이 아닌가. 집을 장만하기 위해 대출을 권하고, 이왕 빚을 졌으니 싼 이자를 쓰라는 것이다.
나는 강남에서 10년이 다 되도록 부동산을 경영하고 있다. 서울의 심장부 강남은 부동산 정책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 손에 꼽을 만한 부자도 살지만 소시민들도 많이 있다. 나는 가급적 전셋집을 구하는 우리 고객들에게 현실적인 지출금액 내에서 소비하기를 권한다. 전세자금 대출이 왜 서민을 위하는 정책인지 모르겠지만 정작 돈이 없어 집을 구해야 하는 소시민들은 대출자격이 안 된다. 그저 직장인들이나 애매한 중산층들을 싼 이자로 유혹해 금융권만 실속을 차리고 전세가를 올리는 악순환을 조장할 뿐이다.
물론 혜택을 본 사람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굳이 정부가 나서서 서민들에게 빚을 권유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