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오해와 편견이 더 큰 화 부른다
극도의 불안, 공포 결국엔 자살에까지 이르러… 인식개선이 우선되어야
“잠들기가 힘들고, 그 사건의 장면들이 마음속에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해요.” “갑자기 울음이 나오기도 하고, 말수도 입맛도 줄었어요.” 지난 4월 세월호 침몰 사고로 전국이 슬픔에 잠긴 가운데 언론을 통해 비통한 소식을 전해들은 많은 국민들이 ‘대리외상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다. 대리외상 증후군은 사고·사건의 당사자가 아닌 제3자가 방송 등의 간접 경험을 통해 외상후 스트레스에 빠지는 현상으로 실제로 진도군민 10명 중 4명이 ‘세월호 스트레스’로 우울감과 불안감, 불면증 등에 시달리고 있다.
강원 춘천시에 사는 정모(24·여)씨는 최근 대학 고사기간이지만 시험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없다. 휴대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접하는 세월호 관련 기사에 도서관에 앉아서도 눈물이 나거나 멍하니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정 씨는 “침몰할 때부터 지금까지 지켜보니 남의 일 같지가 않고 심장이 두근거릴 때가 많다”며 “지금은 작은 농담에도 화가 나거나 상처를 받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평소 약한 우울증 증상이 있던 이모(34·여)씨는 최근 세월호 소식으로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이씨는 “아이들이 그 속에서 얼마나 춥고 무서웠을지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가슴이 먹먹하다”면서 “기사를 읽으면 불면증은 물론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01년 미국 뉴욕에서 발생한 911테러 당시 외상후 스트레스를 진단받은 사람만 50만 명이 넘는 것으로 조사돼 간접 경험으로 인한 외상후 스트레스의 위험성이 입증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재난이 예측불허하고 불가항력이라는 생각 때문에 사회 전반으로 안전 불감증, 정부에 대한 불신 등 부정적인 영향이 장기화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신질환은 어느 특정한 사람한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세월호 참사에서처럼 당사자가 아닌 제3자에게도 정신질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정신질환은 외상후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공황장애. 우울증, 조울증, 정신분열증 등 다양하고 그 증상도 가지가지다. 예전부터 정신질환으로 인한 자살, 살인 등 다양한 뉴스가 보도되면서 정신질환에 대한 심각성은 이미 대두되었다. 문제는 해마다 정신질환으로 고통 받고 있는 환자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환자 본인은 어떤 질환을 앓고 있는지 조차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그 종류도 다양하고 증세도 비슷해 판단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정신적 질환이라는 점에 쉽게 드러내지 못하고 있어 더욱 문제가 되고 있다.
마음의 감기 ‘우울증’
우울증이 사회문제로 대두된 지는 오래다. 우울증은 우울한 기분에 빠져 의욕을 상실한 채 무능감, 고립감, 허무감, 죄책감, 자살충동 등에 사로잡히는 정신질환이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평생 한 번 이상 우울증에 걸린 사람의 전체의 2001년 4%에서 2006년 5.6%, 2011년 6.7%로 매년 늘고 있다.
우울증은 감정, 생각, 신체 상태, 그리고 행동 등에 변화를 일으키는 심각한 질환이다.
분명한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지 않으나 다른 정신 질환과 같이 다양한 생화학적, 유전적 그리고 환경적 요인이 우울증을 야기할 수 있다.
우울증의 가장 심각한 증상은 자살 사고로 우울증 환자의 2/3에서 자살을 생각하고 10~15%에서 실제로 자살을 시행한다. 존슨홉킨스 의대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의 자살위험이 일반인과 비교하면 41배가 높으며 자살자의 70%가 우울증을 앓고 있다고 할 정도로 우울증이 가져오는 자살충동의 영향은 크다.
일부 우울증 환자는 자신이 우울증인 것을 알지 못하고 일상생활에서 상당히 위축되어 기능이 떨어질 때까지도 자신의 기분 문제에 대해 호소하지 않는다. 거의 대부분의 우울증 환자는 심각한 수준의 불면증을 호소한다. 수면제를 먹어도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우울증의 또 다른 대표적 증상은 심각한 수준의 집중력 저하다. 불안 증상도 90% 정도에서 보이는 흔한 증상이다.
일부 우울증 환자는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 내과적 검사를 반복적으로 시행하지만 명확한 원인은 나오지 않은 경우가 많고 우울증 진단과 치료가 늦어져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원인이 명확하지 않은 신체 증상이 지속될 때는 우울증을 의심해야 한다. 환자들 중에는 자신이 우울증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바라보면 우울증 환자를 감별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치료는 약물 치료와 더불어 정신치료적 접근을 함께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 이 외에도 전기경련 요법과 광선 치료 등이 활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rTMS(repeated Transcranial Magnetic Stimulation) 치료가 효과가 있음이 연구에서 보고되고 있다.
곧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은 ‘공황장애’
최근 들어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급격하게 늘고 있다. 공황장애는 곧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은 아주 심한 불안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공황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공황장애 환자는 2006년 3만 5,000명에서 2011년 5만 8,551명으로 급증했다. 매년 평균 10.7%씩 환자 수가 증가하고 있다.
공황장애는 이유 없이 극도의 공포감이 엄습하며 이로 인해 발작증상까지 나타난다. 공황발작은 극도의 공포심이 느껴지면서 심장이 터지도록 빨리 뛰거나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차며 땀이 나는 등 신체증상이 동반된 죽음에 이를 것 같은 극도의 불안 증상을 말한다. 대개 발작은 20~30분 지속되고 1시간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섯에 한 명 정도는 공황발작 시 실신에 이르기도 한다. 이 공황발작이 반복되다 보면 또다시 발작이 나타나지 않을까 미리부터 불안해한다. 보통 환자들은 이런 공포의 원인을 알지 못하고 혼돈스러워하고 집중력이 떨어진다.
공황장애는 광장공포증이 동반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번잡한 거리, 번잡한 가게, 밀폐된 공간, 밀폐된 차량에 혼자 놓여 있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공황장애는 대체로 청소년기 후기나 초기 성인기에 시작된다. 병의 경과가 다양하기는 하나 만성적인 경향을 가지는 경우가 흔하다. 대체로 30~40%는 증상이 없어지고, 약 절반은 증상이 있으나 가벼워 생활에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게 되고, 10~20%는 증상이 계속 심하다. 공황발작의 정도나 빈도는 다양한데 하루에 수차례 발생할 수도 있고 한 달에 1회 이하로 발생할 수도 있다. 특히 주기적으로 반복되거나 지속되면 우울증, 알코올 남용 등 합병증까지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에 올바른 대처법과 치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치료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약물 치료와 인지행동 치료가 대표적인 치료방법이며, 치료 시 대부분의 환자가 극적인 증상의 호전을 경험한다. 약물치료와 인지행동치료를 병행하면 공황장애치료에 좋은 효과를 얻을 수 있으며 가족 치료와 집단 치료도 환자와 환자 가족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불안과 공포스러운 ‘불안장애’
불안장애는 다양한 형태의 비정상적·병적인 불안과 공포로 인해 일상생활에 장애를 일으키는 정신질환으로 각기 다른 성격의 여러 정신질환 공황장애, 강박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특정 공포증 등이 이에 속한다. 복합적이라 원인을 한마디로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불안이나 우울 등의 정서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뇌신경 내의 신경전달물질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또는 사회심리학적인 측면, 과거의 경험과 현재의 받아들인 정보를 해석하고 판단하는 인지행동적인 부분까지도 병적인 불안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특히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급성 스트레스 장애는 극심한 정신적 충격을 일으키는 사고나 재해 등이 원인으로 주로 발병한다.
불안장애 환자들은 안절부절 못하고 사소한 일에 짜증을 잘 내며 예민해져 있고 닥치지 않은 상황에서도 위험을 느끼고 항상 최악의 사태만을 상상하는 경향이 있다. 또 무언가 끔찍한 일에 일어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아 근거 없는 불안으론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불안과 공포는 정상적인 정서 반응이지만, 정상적 범위를 넘어서면 정신적 고통과 신체적 증상을 초래한다. 불안으로 교감신경이 흥분되어 두통, 심장 박동 증가, 호흡수 증가, 위장관계 이상 증상과 같은 신체적 증상이 나타나 불편하고 가정생활, 직장생활, 학업과 같은 일상 활동을 수행하기 어려운 경우 불안장애로 진단할 수 있다.
불안장애의 진단을 위한 특별한 검사법은 없다. 불안을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신경과적, 내과적 질환의 감별을 위하여 혈액검사나 뇌영상(자기공명영상 촬영 등)과 같은 검사를 시행한다.
치료법은 불안장애의 세부 진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나 대체적으로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이용한 약물 치료가 가장 자주 이용된다.
감정의 장애 ‘조울증’
조울증은 조증과 우울증이 교대로 나타나는 질병으로 ‘양극성장애’라고도 한다. 감정의 장애를 주요 증상으로 하는 내인성 정신병이다. 조울증은 기분 장애의 대표적인 질환 중 하나로 기분이 들뜨는 조증이 나타나기도 하고, 기분이 가라앉는 우울증이 나타나기도 한다.
조증 환자들의 증상으로는 거짓말과 속이기를 잘해 신뢰성이 떨어지며 적절한 판단 능력이 떨어져 경제적 문제 등 다양한 직업적 사회적 문제를 일으킨다. 또 병적인 도박을 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하게 밝은 옷이나 장신구를 하는 일탈된 행동을 하기도 한다. 말할 때 목소리가 크고 상대방의 이야기에 정상적인 소통이 어려울 정도로 끼어들며 비정상적인 사고의 흐름으로 심한 경우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의 말을 한다. 대개 흥분되어 있고 이야기가 많으며 과잉 행동을 보이고, 심한 경우 행동 문제가 심해지면 자신의 질환에 대한 병식이 거의 없으므로 강제적인 입원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우울 삽화기에 접어들면 우울한 기분, 불안 초조함, 무기력감, 절망감 등으로 매사에 자신감이 없고, 이전에 해왔던 일들이 힘들게 느껴진다. 또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살을 생각하기도 한다. 또 외부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아무 일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내가 아닌 것 같다는 이인증과 주변 환경이 이전과 다르게 느껴지는 비현실감도 흔하게 나타난다. 환자들 중 상당수는 우울한 기분을 느끼거나 호소하지 않고, 자율신경계 증상이나 두통, 소화불량, 근육통 등의 신체증상만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조울증은 정신과적 상담과 검사를 통해 정신분열증, 성격장애 등의 타 질환과의 감별이 필요하고 다양한 내과적 신경과적 질환에 의한 발현 가능성도 고려해야 한다. 치료는 전통적인 치료 약물인 리튬(lithium) 이후 다양한 약물이 개발되어 진료 현장에서 활용되고 있고 전반적인 치료 성과를 거두고 있다. 단, 증상이 본인이나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는 경우, 신속한 약물조절을 요하는 경우, 약물 부작용 등 내과적 문제가 심각한 경우, 그리고 정확한 감별 진단을 원하는 경우 등에는 입원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선천적으로 충동성 ‘반사회적 인격장애’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반복적인 범법행위로 체포되는 등 법률적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또 자신의 이익이나 쾌락을 위해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기성이 있으며 충동적이거나 미리 계획을 세우지 않고 행동한다. 쉽게 흥분하고 공격적이어서 신체적인 싸움이나 타인을 공격하는 일이 반복된다. 또한 신이나 타인의 안전을 무모하게 무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입히거나 학대하는 것, 또는 다른 사람의 물건을 훔치는 것에 대해 아무렇지도 않게 느끼거나 합리화하는 등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
최근 대중화된 사이코패스(psychopath: 정신병질자), 소시오패스(sociopath: 사회병질자)라는 용어는 공식적인 진단명은 아니지만, 반사회적 인격장애자와 거의 비슷하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선천적으로 충동성과 감각추구 성향이 높다. 이들은 다른 사람의 권리를 무시하는 무책임한 행동양식을 반복적·지속적으로 보이며 많은 이들이 반복적인 범법행위에 참여하거나 연루되곤 한다.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한 관심이나 걱정이 전혀 없으며, 사기를 일삼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
대개의 경우 다른 사람이 느끼는 감정에 관심이 없지만, 타인의 고통에서 즐거움을 얻는 가학적인 사람들도 있다. 반사회적 인격장애는 마약 등 물질 남용과 연관성이 높다. 반사회적 인격장애자들은 주로 물질적 이익에 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런 행태를 보이며 충동성, 무모함, 무책임함을 보이는 경향이 크다. 원인은 유전적인 요소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반사회적 인격 자체가 유전되는 것인지 혹은 충동성·공격성 등의 기질이 유전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하지 않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환자들은 선천적으로 충동성과 감각추구 성향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보통 아동기에 행실장애를 보이는데 특히 10대 이전에 복합적인 비행을 보이기 시작하면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들면서 파괴적인 행동이 줄어들기도 하지만, 건강염려증이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경우도 있다.
치료가 되지 않는다는 속설과 달리, 통계적으로는 연령이 증가함에 따라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명 중 1명은 정신질환 경험, 관심과 배려 필요
누구에게나 존재할 수 있는 걸 알아야 한다. 최근 들어 일부 유명 연예인들 사이에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을 겪었다는 얘기가 종종 나오면서 이런 정신질환들이 이제는 결코 낯설지만은 않다.
스트레스가 많은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이라면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환이다. 실제로 국민 여섯 명 중 한 명꼴로 정신질환을 경험한 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제는 이상한 병이 아닌 누구에게나 생길 수 있는 병이다. 좀 더 따뜻한 시선과 좀 더 관심을 갖고 바라볼 줄 아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