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반점의 ‘진짜’ 원조가 나타났다
맛 변질되는 안타까움에 현역 복귀, 프랜차이즈 준비 중
지난해 서울시와 경상남도 진주시가 때 아닌 원조 논란에 휩싸였다. 서울시가 11월에 청계천 등축제를 개최한다고 발표하자 진주시가 “진주남강유등축제를 베꼈다”며 축제 중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사태는 이창희 진주시장이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등축제 중단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는 것으로까지 심화되다가 서울시와 진주시가 상생협력에 합의하면서 일단락됐다. 하지만 원조 전쟁은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역사는 최초와 최고를 기억한다. 2등은 주목받지 못하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수많은 원조 논란이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러한 원조 논란은 특히 요식업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길게 늘어선 장충동 족발집의 원조가 누구인지, 잠원동 간장게장 골목의 ‘원조’ 간판은 누구에게 가야 맞는 것인지를 두고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는 것도 모두 그 분야에서 최초와 최고로 인정받기 위해서다.
원조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사이, 다른 한쪽에서는 원조를 본 딴 아류작들이 홍수처럼 불어나고 있다. 원조들이 수십 년 간 뼈를 깎는 고통과 시행착오, 노력으로 일궈낸 그들의 ‘이름’에 무임승차하려는 비양심적인 행태들이 보란 듯이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아류들은 참으로 손쉽게 그리고 허락도 없이 원조를 베끼고 있다.
교동반점의 ‘진짜’ 원조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강릉교통짬뽕의 원조인 교동반점. 하지만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사실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동반점의 원조 이만구 고문이 프랜차이즈 사업을 한 적이 없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에는 수많은 교동짬뽕집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나에게 직접 전수받은 사람은 11명뿐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프랜차이즈를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잠깐 동안 와서 배운 것을 전국적으로 퍼뜨렸고, 또 그것을 교동반점의 원조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제대로 된 프랜차이즈를 허락한 적이 없다.”
교동짬뽕을 탄생시킨 이 고문은 교동반점의 유명세에 무임승차해 흉내만 내고 있는 전국의 무분별한 가게들을 볼 때마다 깊은 한숨을 내쉰다. 간판은 분명 교동짬뽕인데 맛은 들쭉날쭉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수십 년간 교동반점을 운영하다가 일신상의 문제로 반점을 팔았다. 그런데 맛만 흉내 낸 교동짬뽕이 전국적으로 이렇게 많이 퍼져나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것까지도 괜찮았다. 하지만 그 맛이 변해가고 있어 가만 두고 볼 수만은 없었다.”
원조와 전문경영인의 만남
이 고문이 반점을 운영하던 당시,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자 직접 찾아와 짬뽕기술을 전수받으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하지만 돈만 가지고 온다고 무조건 그 기술을 가르쳐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거절할 수도 없었던 것이 하나같이 사정이 딱하고 ‘다시 인생을 살아보고 싶다’는 실낱같은 희망을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매정하게 딱 자를 수가 없었던 이 고문은 약간의 재료비만 받고 기술을 알려줬다. 그런데 그것이 오늘날과 같은 상황으로 번지게 된 것이다.
서로 원조라고 우기는 교동짬뽕이 전국적으로 우후죽순 퍼지자 이 고문은 ‘더 이상은 안 되겠다’는 생각에 자신의 이름을 딴 ‘이만구 교동짬뽕’의 특허를 완료했다. 그리고 제대로 된 교동짬뽕을 전국적으로 알려보자는 취지로 한정식집을 경영하던 라영갑 대표와 손을 잡았다.
현재 이 고문은 라 대표와 본격적으로 프랜차이즈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대가들의 만남에 비해 이들의 욕심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다. 그저 30여 년 넘게 유지되던 교동짬뽕의 맛이 변질되지 않길 바라는 게 이 고문의 욕심이다. 라 대표와 손을 잡은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라 대표는 원래 강릉에서 가장 큰 규모의 한정식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지만 그는 누구보다 교동짬뽕의 맛이 변질돼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와 의기투합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교동짬뽕의 제대로 된 맛을 전수하는 것은 물론 체계화된 프랜차이즈사업을 전개해 볼 생각이다.”
사실 그는 교동반점을 가업으로 이어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은 ‘선생님이 되겠다’고 했다. 아무리 부모여도 자식에게 억지로 업(業)을 권유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러던 차에 라 대표와 만났다. 원조와 전문경영인의 만남인 만큼 그는 앞으로의 교동짬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맛을 지키는 원조개발자의 자존심
흔히들 중화요리는 불 맛과 손맛이라고 한다. 불을 잘 다스리고 사람들마다 각각 갖고 있는 손맛이 비법이라는 것. 하지만 교동짬뽕의 최고 비법은 ‘좋은 재료’다.
이 고문은 신선하고 좋은 재료, 그 중에서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해 직접 말리고, 직접 빻은 고춧가루를 사용한다. 제대로 된 고춧가루를 써야 교동짬뽕의 진정한 맛이 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모든 수산물 역시 매일 매일 남해에서 공수해 사용하고 있다.
“신선한 재료와 양질의 고춧가루, 여기에 불 맛과 손맛이 어우러져야 교동짬뽕의 참맛이 나온다.”
이 고문은 불 맛에도 여간 신경을 쓰는 게 아니다. 그래서 그는 ‘중화요리화덕’을 자체 제작하기도 했다. 더욱 센 화력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이 화덕에서 우려낸 국물 맛을 수시로 맛보며 그는 교동짬뽕의 맛을 지켜가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 하나 더 하자면 강릉의 물맛 정도? 이렇게 이 고문은 한 치의 오차도 용납할 수 없는 원조개발자의 자존심으로 진정한 교동짬뽕의 맛을 지키기 위해 소매를 걷어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