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동 45년, 한국야쿠르트 어디로 가나?

2세 경영 잰걸음, 신사업 추진에 박차

2014-06-05     신현희 차장

노란 유니폼을 입은 야쿠르트 아줌마는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다. 오늘 아침 출근길, 집 앞에서도 만나고 사무실 앞에서도 만났다. 내 첫 기억에는 여섯 살 때부터 야쿠르트 아줌마를 기다렸고, 마흔 살이 된 지금도 여전히 기다려진다. 내 삶에 있어 야쿠르트가 가장 충성도가 높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담없는 저렴한 가격, 매일 아침 원하는 장소로 배달, 건강과 허기를 동시에 채워주는 만족감, 이는 한국야쿠르트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공감할 것이다. 전국 1만 3,000여 명에 이르는 야쿠르트 아줌마의 최강 판매 조직은 주부들의 고용창출에 혁혁한 공을 세웠을 뿐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친근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야쿠르트 아줌마들은 아침마다 건강을 배달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심폐소생술 등 응급처치를 익혀 골목길 안전지킴이 역할까지 감당하고 있으니,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기업의 홍보모델인 셈이다.

일본과의 합작계약
지난 1969년 5월에 창립한 한국야쿠르트는 올해로 45주년을 맞았다. 국내 최초로 발효유를 선보이며 시장을 개척했으며, 이후 시장을 선도하며 국내 발효유업계 1위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는 한국야쿠르트는 창업주 윤덕병 회장과 그의 친척 故 윤쾌병 명예회장이 뜻을 모아 설립했다. 평소 우리 축산업의 미래가 우유가공업에 있다는 지론을 펼쳐오던 당시 건국대학교 축산연구소장 윤쾌병 교수가 일본 방문길에 우유를 유산균으로 발효시킨 야쿠르트를 처음 접하고 이에 주목했고, 친척인 윤덕병 회장을 만나 발효유 사업을 위한 한국야쿠르트를 설립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유산균 발효유를 자체 생산할 수 없었던 국내 기술의 한계로 일본야쿠르트사(야쿠르트혼샤)의 기술을 들여오기로 결정, 판매액 일부를 로열티로 지급하는 조건으로 일본야쿠르트사와 합작계약을 체결했다. 이를 통해 한국야쿠르트는 1971년 윤쾌병 사장과 일본야쿠르트사의 소마쇼지(相馬省二)씨가 공동 대표이사로 취임하며 합작사로의 시작을 알렸다.

내실경영 강조, 후발업체에 발목 잡혀

당시만 해도 유산균 발효유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었던 국내에서 야쿠르트의 등장은 극과 극의 반응을 가져왔다. 하지만 정장작용·영양증진 등 야쿠르트의 건강측면에 초점을 맞춰 홍보 마케팅을 펼친 결과, 이내 야쿠르트는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수요가 급증했다. 폭발적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야쿠르트 용량을 종전 80ml에서 65ml로 줄여 수요를 조금이나마 충족했다. 이와 함께 기존 안양공장 외에 평택공장을 준공, 대량생산 체제로 공급 안정화를 꾀했다.
이렇게 야쿠르트 사업이 최고조에 이르자 기업 내부적으로는 신규 사업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윤덕병 회장은 내실경영을 강조하며 “튼튼한 회사 하나가 허술한 회사 열보다 낫다. 무리하게 확장하다 기업이 망하면 기업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전 종사원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지나치게 안정적인 사업방식을 추구했던 윤 회장의 경영철학은 곧 발목이 잡혔다.
후발주자들이 한국야쿠르트의 승승장구를 지켜보지 만은 않은 것. 1977년부터 남양유업, 빙그레, 서울우유, 매일유업 등 유업체들이 너도나도 발효유시장에 뛰어들며 발효유시장의 경쟁을 심화시켰고, 독보적이던 한국야쿠르트의 아성도 점차 무너지기 시작했다.
우여곡절 라면사업
신규 사업 진출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야쿠르트는 1980년대 초 라면이 국내 쌀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이자 성장가능성이 충분하다는 판단 하에 라면사업을 주력으로 추진했다. 당시 농심과 삼양식품이 양분하는 라면시장에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고급화 전략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한국야쿠르트 측의 판단. 이에 농심과 삼양식품의 경력사원들을 대거 영입하는 동시에 제품개발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 일본 이찌방식품과 기술도입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1983년 최초 라면제품인 ‘팔도라면 쇠고기’, ‘팔도라면 참깨’, ‘팔도라면 크로렐라’ 3종의 봉지면을 시작으로 ‘팔도 도시락’, ‘팔도 왕뚜껑’까지 라면사업을 확장해왔다.
참신한 라면의 개발로 시작부터 해외시장의 주목을 받으며 제2의 효자상품으로 기대를 모았던 라면사업 또한 그리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 신규업체들의 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진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팔도설렁탕면’에 공업용 소뼈를 수입해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며 라면매출은 급감했고, 결국 라면사업 조직을 축소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하지만 라면사업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개발로,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011년 하얀국물라면 ‘꼬꼬면’을 앞세워 또 한 번 라면시장을 강타했다. 당시 꼬꼬면을 사기 위해 온 동네 가게를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꼬꼬면은 들여놓기가 무섭게 불티나게 팔렸다. 하지만 꼬꼬면 인기는 채 1년을 이어가지 못했고, 초반 인기만 바라보고 추진했던 공장라인 증설 등 설비투자도 본전도 찾지 못했다. 현재 한국야쿠르트의 라면사업부문은 지난 2012년부터 팔도라는 별도법인으로 분리, 운영되고 있다.

 

사업다각화로 신성장동력 찾기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1995년부터 20년에 걸친 신규 사업계획을 세웠지만, 여전히 그 중심에는 발효유 중심의 매출구조가 있었다. 지난 2012년 기준 한국야쿠르트의 매출 중 발효유부문 매출은 85%에 달하며, 이는 사업조정에 나섰던 1995년 80%보다 오히려 증가한 수치다.
그렇다고 신규 사업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다.
한국야쿠르트는 지난 2009년 능률교육을 인수한데 이어 2012년 한솔교육의 영어교육서비스사업인 주니어랩스쿨, 지난해 아동 교육 사업을 전개하는 베네세코리아를 차례로 인수하는 등 교육사업으로 사업다각화를 꾀했다. 뿐만 아니라 한국야쿠르트는 메디컬그룹나무를 설립하고 ‘플러스엔(이후 브이푸드로 통합)’, ‘한진생(홍삼)’ 등 브랜드를 론칭하며 건강기능식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더 나아가 의료용 로봇과 진단기기를 제조하는 큐렉소를 인수, 헬스케어분야로 사업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이렇듯 발효유 사업을 고집하던 한국야쿠르트가 전혀 새로운 분야로 사업다각화를 진행한 것은 창업주 윤덕병 회장의 외아들 윤호중 전무가 핵심역할을 했다. 특히 2009년 능률교육 인수를 시작으로 뛰어든 교육 사업은 윤 전무의 주요 경영행보로, 그의 경영능력 평가와 직결되고 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추구하는 대표적인 기업인 한국야쿠르트는 창업 당시부터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책임을 맡겨왔다. 이 같은 한국야쿠르트의 소유·경영 분리체제는 윤호중 전무로도 이어지고 있으나, 지주사 체제로 전환을 앞두고 있어 향후 윤 전무의 경영능력에 한국야쿠르트의 사활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건강한 아침을 깨우는 한국야쿠르트. 우리는 그 45년의 역사가 이어져 더 많은 야쿠르트 아줌마가 생겨나길 원하지만 기업의 생태계가 어떻게 달라질지 아직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