든든한 지원군, 기업도 팬을 얻자

고객의 마음을 여는 열쇠 신뢰와 정을 쌓는다

2014-06-03     최진희 기자

기업 경영에서 팬들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기업과 고객 관계에서 발전해 기업과 팬 사이, 팬과 팬 사이 소통의 창구가 늘어나면서 팬과의 관계를 긴밀하게 유지하는 기업과 그렇지 않은 기업 사이의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스타와 팬의 관계, 사람간 친구 관계를 만들어 가듯 고객과의 더 많은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는다면 기업도 든든한 팬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코카콜라, 애플, 할리데이비슨.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자사의 제품을 변치 않고 아끼는 충성 고객이 많다는 것이다.
1985년 새로운 맛의 뉴코크(New Coke)가 출시되자 코카콜라에는 ‘내가 좋아하는 콜라를 되돌려 달라’는 항의가 빗발쳤다. 애플은 신제품을 출시하는 날이면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매장 앞에 밤새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할리데이비슨은 팬들이 함께 모여 라이딩을 하고 파티를 열며 함께 즐거움을 만들고 나눈다. 1983년 할리데이비슨 본사가 경영 악화로 도산 위기에 직면했을 때에는 고객들이 직접 나서 파산위기를 벗어나기도 했다. 이런 고객들은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하기도 하며 기업의 홍보효과를 배가시키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다른 고객의 애정까지도 두텁게 만들어준다.
반면 고객의 외면으로 고생을 한 기업도 있다. 1996년 나이키의 축구공이 빈국 아동들의 노동 착취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나이키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었다. 2011년 12월에는 물건을 안전하게 운반할 것 같던 광고와는 다르게 모니터를 시원하게 내던지는 페덱스(Fedex)의 배달 장면이 유튜브(YouTube), 미디어 등을 통해 퍼지면서 고객들이 등을 돌리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은 아껴주는 고객 덕에 성장하기도 하고 안티팬 때문에 주춤하기도 한다. 나의 편이 되어줄 팬을 가진 기업은 위기에서 탈출할 방법을 고객으로부터 얻을 수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기업은 헤어 나오기 어려운 위기에 빠질 수도 있다.
디지털 미디어와 SNS의 발달을 고객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점점 더 확장시킨다. 기업 경영에 있어 팬의 중요도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어떻게 내 편이 되어줄 든든한 팬을 얻을 수 있을까. 오랜 시간 팬에 의해 성장해온 대중문화에서 팬의 특징과 기업이 고민해야할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대중문화와 팬심
팬의 역사는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등장과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R.ef, 솔리드 등과 함께 팬 문화의 열기가 무르익었고 1990년대 후반에는 1세대 아이돌이라 불리는 H.O.T, 젝스키스, S.E.S, 핑클, GOD 등과 함께 꽃을 피웠다. 많은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의 무대를 찾아 각 스타를 상징하는 색상의 풍선을 들고 열성적으로 응원을 하고 선물을 보내기도 하며 애정을 표현했다.
몇몇 팬들은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스타를 향한 애정과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싸우고 스타의 무대를 찾기 위해 수업을 빠지기도 했다. 스타가 은퇴하거나 그룹이 해체하는 등 팬들이 원치 않는 결정들이 알려질 때면 스타의 소속사 근처 길을 막는 등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기도 했다.

성숙해진 팬의 역할
최근 몇 년 사이 팬들의 모습이 변하고 있다. 이제는 실질적으로 스타에게 도움을 주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고 과격한 방식으로 응원을 보내던 모습에서 이성적이고 실질적인 방식으로 스타에게 응원을 보내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움직임은 대중문화가 오랜 시간을 거쳐 발전하면서 팬 문화도 함께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과거처럼 마음과 체력 중심의 응원이 아닌 자신이 가진 전문 역량을 발휘하는 응원으로 영향력을 대중문화에 행사하며 성장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어주는 팬이 있는가 하면 광고인, 변호인의 역할도 자처하고 있다.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쓰는 팬도 있다. 팬이 마음을 담아 쓰는 소설인 만큼 주인공인 스타는 멋있게 그려진다. 마치 드라마나 영화에서 멋진 역할을 맡은 배우가 실제로도 그렇게 멋있을 것이라 간주되어 인기를 얻는 것과 같다. 또 좋은 카메라로 스타의 멋진 모습을 담아내는 팬도 있다. 수준급 사진을 촬영해 팬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이들은 다른 팬들에게 스타의 멋진 모습을 알리며 스타를 향한 애정을 두텁게 하는데 일조하고 있다.
요즘 뮤지컬 등 공연장에 가면 꽃으로 만들어진 화환 대신 쌀 화환을 자주 볼 수 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스타의 공연을 축하하는 의미로 보내는 쌀은 불우이웃을 돕는 일에 쓰인다. 대중문화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아지면서 쌀을 보내오는 국적도 다양해지고 양도 늘고 있다. 이렇게 모인 쌀은 스타의 이름이나 팬클럽의 이름으로 기부되어 스타는 물론 팬의 위상을 동시에 높이는 효과를 얻게 된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구성원 불공정한 계약을 이유로 소속사에서 나와 활동을 하려는 과정에서 많은 난관에 부딪힌다. 이때 팬들은 소속사를 배신한다는 비판을 받는 스타를 위해 계약의 부당함을 알리는 광고는 물론, 직접 사건을 조사해 새로운 활동을 방해하는 전 소속사의 행위를 막아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하기도 한다. 이처럼 팬들은 능동적으로 스타를 키워내는 든든한 지원군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감을 통한 팬 층 확대
팬은 스타를 소중하게 여기고 애정을 쏟는다. 하지만 종종 회의감에 젖어 ‘그에게도 나는 소중한 팬인가’라는 의구심을 갖고 마음이 흔들리기도 한다. 하지만 스타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표현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예를 들어 팬 커뮤니티에 댓글을 달거나 팬이 보낸 선물에 감사 메시지를 올리는 등의 행동은 팬들에게 큰 의미가 된다. 기업과 고객의 유대 관계 강화에서도 비슷한 방법이 쓰일 수 있다. KML네덜란드항공은 탑승객에 대한 관심을 담아 이벤트를 펼쳤다. 탑승 대기 중인 고객의 SNS를 확인해 고객이 좋아할 만한 선물을 준비해 전달했다.
항공사를 이용하는 수많은 탑승객 중 하나인 나에게 관심을 갖고, 나에게 꼭 맞는 선물을 해준다면 고마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감동을 받은 고객은 항공사에 대한 애정이 커지고 이 경험을 지인들과 나누며 관심을 이끌고 좋은 이미지를 만들어나간다. KML네덜란드항공은 이 이벤트를 통해 트위터에서만 백만 번 이상 노출되는 성과를 거두었는데 다른 미디어의 노출까지 감안한다면 그 파급효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의 공감을 원한다. 지난 소치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의 멋진 경기를 보고 난 다음날 점심시간에는 거의 어느 한 테이블도 빠지지 않고 함께 그 이야기를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심판의 공정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에는 다 같이 울분을 토했다. 다른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는 과정에서 좋은 감정이 커지고 나쁜 감정은 잦아들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준 레고도 그 중심에 팬들의 공감이 있다. 레고는 커뮤니티를 통한 사용자들의 교류가 즐거움을 배가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특히 정기적인 모임으로 서로의 창작물을 공유하고 창작 노하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그동안 알지 못했던 방법들을 배워간다.
이처럼 팬들과의 공감대를 형성할수록 레고를 향한 팬들의 애정은 더욱 커진다. 팬들이 만들어낸 창작품을 모아 전시회를 열고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레고는 팬 커뮤니티의 활동에 힘입어 성장할 뿐 아니라 동호회 활동을 지원하며 팬 층의 확대를 도모하고 있다.

마음을 여는 열쇠
스타의 소속사들도 적극적으로 팬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가수의 경우 타이틀곡, 후속곡 등을 선정할 때 팬클럽 사이트에 먼저 음원을 공개하고 여론조사를 시행하기도 한다. 더 나아가 콘셉트 회의 등에 팬클럽 임원을 초대해 함께 의견을 교환하기도 한다. 이렇게 팬의 의견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스타와 콘텐츠는 팬들로부터 더 큰 사랑을 받는다. 누구나 자신들의 노력이 반영된 결과물에 더 애정이 가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업무를 할 때도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작업에 더 애착이 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프로슈머(Prosumer)가 된 팬은 더 많은 팬을 끌어 모으는 원동력이 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스타를 향한 애정도 더욱 키우게 된다.
앞선 기술을 가진 구글도 팬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고 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을 가진 구글이라도 구글 안의 직원들내에서만 구글 글래스의 사용처를 모색하는 것은 한계에 부딪힐 수 있다. 구글은 전세계의 이목을 끈 구글 글래스를 팬들의 손을 빌려 더 좋은 제품으로 만들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구글은 팬들을 대상으로 ‘내가 글래스를 갖고 있다면(If I Had Glass)’ 콘테스트를 열어 글래스의 베타 버전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콘테스트 지원자들은 글래스를 활용해 하고 싶은 일을 담아 응모했고 구글은 의미 있는 아이디어를 제출한 지원자를 선발해 체험 기회를 제공했다.
고객의 마음을 여는 열쇠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좋은 이미지로 많은 고객을 얻었더라도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다수의 고객을 잃을 수도 있다. 스타와 팬의 관계,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는 사람사이의 관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 사이의 신뢰를 쌓고 가까워지는 과정을 주의 깊게 살펴본다면 스타와 기업도 대중과 고객의 마음을 여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기업이 눈앞의 판매량이나 이익에 급급하기 보다는 친구관계를 만들어 가듯이 고객과의 더 많은 교류를 통해 신뢰를 쌓아간다면 든든한 팬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