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속 세상으로 대중과 소통하다
미술적 이해와 기초 완벽, 구도의 美 살려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고 평가 받는 프랑스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평생 결정적 순간을 카메라로 포착하길 바랐다. 하지만 인생의 모든 순간이 결정적 순간이었다’는 명언을 남겼다. 그리고 그의 묘비에는 ‘사진은 영원을 밝혀준 바로 그 순간을 영원히 포획하는 단두대다’라는 글이 새겨졌다.
사진의 가장 큰 미덕은 시간을 프레임 안에 가둘 수 있다는 점이다. 회화나 영화, 음악 등의 다른 예술들과 달리 사진은 그 순간의 생생함을 기록한다. 그 순간의 인물들과 공간은 물론 바람과 공기, 분위기까지 프레임 안에 담아둘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사진을 기록의 예술이라고도 한다. 또 사람들은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진 안에 소중한 사람을 담고, 그들과의 소중한 순간을 담는다. 사진을 다시 꺼내보며 그 순간을 곱씹어보기도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진을 찍는 이유다.
미술학도, 사진작가로 변신하다
노상현 작가는 2003년 국민대학교 석사논문 및 청구전인 ‘인체와 패션이 조화된 주얼리 사진에 대한 연구’ 발표를 시작으로 2010년에는 개인전 ‘뉴욕에서 길을 잃다’(가나인사아트센터), 2011년에 ‘크로스오버 crossover’(가나인사아트센터), 2012년 ‘망상 delusion’(가나인사아트센터)에 이어 2013년에는 사이버 개인전 ‘풍경’과 ‘jazz’ 등을 선보였다. 이후로도 총 16번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의 활동은 사진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그는 재즈 다큐멘터리 영화 ‘브라보 재즈라이프’의 미술감독을 비롯해 잡지의 포토디렉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작품집으로는 ‘sleep walk’, ‘manhattan’, ‘wellington 바람의 도시’, ‘delusion 멈춰있지만 흘러간다’ 등이 있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
노상현 작가는 사진을 찍을 때 뷰포인트, 즉 시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 첫 번째가 ‘시각에서의 시점’이다.
“사진은 사진기를 통해 프레임에 세상을 잘라내는 것이다. 때문에 실질적인 ‘보는 위치’를 선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예민한 편인 나는 1㎜, 2㎜라는 카메라의 위치 변화에도 눈이 감각적으로 반응한다.”
미세한 차이의 변화에도 눈이 반응하기까지는 구도에 대한 이해가 머릿속에 완벽하게 들어있어야 가능하다는 노상현 작가는 기초적인 데생 능력이 없이는 구도 잡는 것부터 아주 힘들다고 덧붙인다. 그러나 작가 자신은 미술에 대한 이해가 바탕이 돼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반응하게 된다는 것.
“사진을 보통 ‘마이너스’라고 한다. 그런데 플러스를 못하면 마이너스도 없다. 이것은 기초의 문제다. 그림으로 따지면 플러스는 구도다. 기초적인 데생 능력이 없으면 구도 잡는 것이 아주 힘들다. 그래서 사진을 하는 젊은 친구들에게 늘 그림을 그리라고 강조한다. 나 같은 경우 학력고사 시절에 입시미술을 했기 때문에 치열하게 데생을 했다. 하루 종일 데생만 하기도 했다. 그 경험이 사진을 하는데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빈 종이를 채워봐야 프레임에 가두는 것도 잘 할 수 있다.”
그가 말하는 두 번째 시점은 ‘생각에서의 시점’이다. 이는 매우 중요하면서 어려운 문제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노상현 작가는 “세상에는 여러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시점을 많이 이해하면 이해할수록 깊이 있고 다양한 소재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같은 공간이지만 전부 다른 생각으로 각자 다른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자기 위치에서의 생각만 가지고는 안 된다는 것. 더욱이 작가는 생각의 폭이 넓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노상현 작가는 “종교나 이념에서 자유로워져야 솔직한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말한다.
2012년 인사아트센터에서 열었던 ‘망상 delusion’이라는 개인전은 이러한 그의 열망이 가장 잘 드러난 전시회였다. “많은 사람들이 망상에 사로 잡혀있는 것이 난지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그는 “잘못된 종교관이나 이념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기 때문에 민감한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양심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것을 여러 사람들과 이야기해보고 싶어 마련한 전시회였다”며 지난 전시회를 떠올린다.
전시회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
얼마 전에는 그의 인터넷 스튜디오이기도 한 ‘업노멀(www.abnormal.co.kr)’을 통해 중국 베이징의 한 지역인 난루오꾸의 사진을 선보이기도 했다. 중국의 오랜 전통이 느껴지는 골목길과 거리의 모습들, 서민들의 생활상을 흑백으로 담았다.
현재 그는 또 다른 사진전을 진행 중이다. 이번 전시회는 색에 대한 고민을 담았다. “사진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의 색감을 찾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는 그의 고민이 사진 속에 고스란히 나타난다.
“예술이란 것이 알면 알수록 어려운 것은 그만큼 폭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는 앞으로도 전시를 통해 많은 이들과 소통할 계획이다. 대중적인 작가는 아니지만 우리가 스쳐 지나가기 쉬운 것들의 가치를 사진이라는 프레임에 가둬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예술에는 경계가 없다고들 한다. 이념, 종교, 세대 등을 뛰어넘어 많은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는 작품을 하고 싶다. 단순히 찍는 것이 아니라 사진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훌륭한 시와 소설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