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메가폰 잡은 영화감독 이장호
27년간의 내리막, 신작 발표하며 다시 비상을 꿈꾸다
꿈을 꾸고 이루고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든 사람들이 삶에 대한 꿈과 희망을 갖도록 독려하고 있으며, 소통을 통해 현대인들의 삶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준다. 이곳이 바로 ‘드림공화국’이다. 소통의 아이콘으로 정평이 나 있는 이곳의 손진기 대장이 본사 콘텐츠사업단 대표로 합류, 문화사업과 미디어의 만남으로 소통의 폭을 더욱 확대하고자 한다.
소통의 아이콘 손진기의 ‘꿈을 만드는 토크쇼’, 이번에는 19년 만에 영화 ‘시선’으로 돌아온 이장호 감독과의 뜻 깊은 만남이다.
손: 새로운 것들의 탄생을 알려오는 계절, 봄입니다. 볼 것이 많아 봄이라고 한다는군요. 여러분들은 이 봄에 무엇을 새롭게 발견하셨나요? 저는 요즘 새로운 영화 ‘시선’을 개봉해서 너무나 바쁘신 분 이장호 감독님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포스가 느껴지는데요. 별들의 고향으로 그것도 데뷔작인데 대히트를 치셨습니다. 20대 때셨지요.
이: 원래 작품은 친구인 최인호가 신문 연재소설로 히트를 친 것이 큰 덕을 봤지요. 중·고등학교 동창이거든요. 그래도 원작자에게 작품을 사야 하니까 동생한테 “야, 너 한 학기 정도 좀 쉬어라”하고는 동생 등록금 15만 원을 주고 원작을 사서 시나리오화 했지요. 원작이 좋았어요.
손: 그 당시 사회적으로 엄청난 파장이었지요?
이: 당시 서울에서만 40만 명이 넘었으니까 대단한 거였지요. 국도극장 앞이 장사진을 이뤘고 암표장사도 덕 좀 봤을 거예요. 안인숙이라는 여배우를 스타덤에 올려놓은 작품이구요. 제가 그 작품으로 대종상 최우수감독상을 받았으니까요. 대학 축제에서는 별들의 고향 대사가 축제의 하나의 콘텐츠가 되곤 했었지요.
손: 아, 저도 생각나요. 그대 극중에 문호라는 인물을 신성일 씨가 했었지요. “경아, 오랜 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그럼 경아 역할을 했던 안인숙 씨가 “추워요. 꼭 껴안아주세요.” 아~ 이 대사는 정말 20년이 넘도록 유행했었지요. 그런데 왜 중도에 작품을 쉬셨어요?
이: 그 이후에 만드는 작품마다 히트를 치는 거예요. ‘어제 내린 비’도 그랬고. 말하자면 조감독 생활하고 감독으로 만든 첫 작품이 대히트를 치고, 연속해서 히트를 치니까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죠. 준비 안 된 감독의 작품이 히트를 치고 돈이 들어오니까 대마초를 하게 되고 자꾸 다른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 당시 많은 연예인이 잡혀 갔는데 영화인으로는 제가 대표로 들어갔지요. 하하하. 그 후 한 4년간 감독 자격 박탈을 당해서 작품 활동을 쉬었어요.
손: 참 힘드셨겠어요.
이: 아니에요. 오히려 내게는 좋은 기회였어요. 제가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요. 그래서 사회 고발적인 영화, 전두환 정권이 가져다 준 사회적 부조리에 눈을 뜨고 사회고발적인 작품들을 만들기 시작했지요.
손: 그 때 나온 작품들이 어떤 작품들이었나요?
이: 바보선언, 외인구단, 어둠의 자식들, 바람 불어 좋은 날, 일송정 푸른 솔은 등 사회의 어두운 면을 부각시키는 영화들이 많았습니다.
손: 그런데 그 후 감독님의 작품을 보면 다시 에로와 멜로로 돌아온 느낌이 드는데요. 예를 들면 ‘무릎과 무릎 사이’, ‘어우동’ 같은…. 이게 어찌된 건가요.
이: 영화사에서 계약이 줄을 이었지요. 시쳇말로 돈 맛을 좀 봤지요. 그런데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에 반사회적인 작품들을 하니까 그냥 두었겠습니까? 안기부 블랙리스트 오르고… 현실에 타협했지요. 돈은 벌면서 생활은 좋아졌지만 타락하게 되었던 시기, 나의 정체성을 잃었던 시기였습니다.
손: 그래도 안성기와 이보희라는 배우를 발굴해서 지금의 국민 배우를 만드신 것도 크게 평가받고 있던데요.
이: 안성기 씨는 정말 국민배우예요. 원래 아역 때부터 연기를 했었고 이후 작품들에서 진주를 발견한 느낌이었어요. 내가 발굴하고 키웠다기 보다는 원래 그들이 너무 좋은 연기력과 성품을 가지고 있었어요.
손: 감독님 동생 이영호 씨도 배우지요?
이: 예. 사실은 저보다 제 동생이 더 똑똑하고 잘 생겼어요. 연기도 좋고 신인 연기상도 받고 했지요. 그런데 동생이 점점 시력이 어두워지는 병에 걸렸어요. 그래서 지금은 완전히 안 보이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동생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작품이 ‘시력’입니다.
손: 정말 안타까운 일이네요. 감독님 이번에 19년 만에 좋은 작품을 만드셨어요. ‘시선’이란 작품인데요. 일종의 기독교적인 종교영화인가요?
이: 저는 27년 내리막길을 걸어왔습니다. 그동안 내면에서 앓아왔던 것들이 내 인생에 약이 되었고, 사실 이 정도의 기간을 계속 내리막길로만 가다가는 내 인생에 오르막길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번 영화의 원작은 일본 소설인데 우리나라에도 아프가니스탄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종교적인 관점에서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이 이야기를 다루게 되었습니다.
손: 저도 이 작품의 예고편도 보고 영화관에 가서 보기도 했는데요, 멋진 말이 나오지요. “배교도 선교다. 하나님 왜 침묵하십니까?” 큰 감동이었고 많은 것을 느끼게 했던 영화인데요. 감독님 얼마 전에 어벤져스 영화 촬영이 서울에서 있었잖아요. 어떤 국가적 이익이 있고 영화산업은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이: 정말 좋은 기회지요. 이건 우리가 얻은 천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경제적인 효과뿐 아니라 국가홍보차원에서도 큰 이득이 있고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 될 때는 영화에 대한 관심도 엄청 높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좀 불편하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유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손: 감독님 혹시 자녀 중에 아버지를 따라서 감독이 되겠다는 자녀는 없나요?
이: 별들의 고향이 히트할 때 애들이 어렸는데 에로물이니까 친구들이 놀렸나 봐요. 너네 아버지는 이상한 영화만 만든다고. 그래서 애들이 아버지가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싫어해요. 두 녀석이 있는데 딸은 프랑스에서 무대 감독을 하고 있고 아들 녀석은 화가로 그림 그리고 있어요.
손: 감독님 오늘 나와 주셔서 너무 감사드리고요. 19년만의 스크린 나들이 대박 나시기 바랍니다.
이: 예. 오늘 불러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더 좋은 작품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