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교육으로 배움의 한을 풀어준다
물질적 가치보다 정신적 가치 우선하는 인성교육 실시
배우지 못한 한(恨)은 평생을 간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형제, 자매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했거나 예기지 않은 사고로 학업을 중도에 포기했던 이들은 어디 가서 떳떳하게 말도 못하고 그 한을 평생 가슴 속에 묻고 산다. 뒤늦게 다시 시작해보려고 해도 막상 용기가 나지 않은 것이 바로 배움이다.
서울시 광진구 자양동에 위치한 상일봉사학교는 배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교육기관이다. 배움이 필요하나 어려운 처지에 놓인 학생들에게 전액 무료교육을 실시하는 것은 물론 지역주민들에게도 학교를 개방해 문화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열린 교육기관이다.
평생을 교육과 봉사로 살아온 정용성 교장이 세운 상일봉사학교는 1975년 하일 야학중학교를 시작으로 배움이 필요하지만 어려운 상황에 놓인 학생들에게 전액 무료교육을 실시하며 자신의 교육신념을 펼치고 있다.
별명을 얻는 동안 집을 잃다
평교사 시절부터 처지가 어려운 제자들이 가슴에 가시처럼 박혀 마음이 쓰였다는 정 교장은 그 시절 유독 많은 별명을 달고 다녔다. 많은 고아학생들을 돕다 얻은 ‘고아선생’이라는 별명부터 불우한 제자의 진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회양목 30만 주를 길러 ‘회양목 선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철거민 동네에서 운동회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관사에서 병아리를 기르다 ‘병아리 선생’이라고도 불렸으며 야학을 시작한 후로는 ‘올빼미 선생’으로도 불렸다. 그렇게 별명 부자가 되는 동안 그는 살던 집도 팔아 무주택자가 됐다. 하지만 그는 집을 잃은 슬픔보다 자신의 배움을 남에게 베풀 수 있다는 기쁨을 더 크게 느꼈다.
열악한 여건에 월급이 있을 리도 만무했다. 오히려 교사, 성동교육장으로 현직에서 버는 돈을 야학에 쏟아 붓는 격이었다. 자연스럽게 집안 형편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정 교장의 아내는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대신 남편의 길을 응원했다.
“아내가 학교 운영비 마련 때문에 많이 고생했다. 화장품 행상도 마다하지 않았다. 어느 날은 행상을 하다 큰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그 후유증으로 척추수술을 네 번이나 받았다. 그런 아내에게 늘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다.”
아내뿐만이 아니었다. 정 교장 자신도 2002년에는 손수 창고를 지어보겠다고 나섰다가 손가락이 절단되는 사고를 당했다. 남들은 여유롭게 여생을 보낼 나이, 그는 잠깐 학교 문을 닫고 쉬어볼까 생각도 했지만 이내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의 열정과 노력을 세상도 알았던 것일까. 정 교장은 한국교육자 대상, 서울시민대상, 아산봉사상 등을 수상하며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았다.
배움의 기회 제공하는 3無학교
상일봉사학교는 입학식, 수업료, 월급이 없는 3無학교다. 그렇다면 학교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할까. 이러한 궁금증에 정 교장은 “서울시내 300여 개 학교와 광진구청 등의 기관, 개인독지가가 뜻을 모아 상일봉사학교 후원금을 마련해주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학교는 문턱을 없애 누구나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무료로 이뤄지는 초등, 중등교육은 전·현직 유자격교육자가 책임진다. 전·현직 교사, 대학교수,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성인한글반, 대입검정고시반, 고입검정고시반 등을 운영해 배움의 의지와 열정을 불사르는 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하고 있다.
상일봉사학교는 물질적인 가치보다 정신적인 가치를 우선한다. 인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물질만능시대에 지켜야할 기본과 근본을 가르친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태어난 학생이더라도 인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으면 참된 인간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정 교장은 이러한 지론을 바탕으로 인성 중시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인성 교육을 뒷전으로 하고 있다. 학생들이 인성이 바르지 않은 것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학교가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서 나타나는 결과다. 그래서 나는 그동안 물질적으로는 좋은 환경에서 자랐지만 인성적으로 문제가 많은 학생들이 올바른 인성을 갖춘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바라왔다. 학생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갔고 그들과 소통했다.”
상일봉사학교는 지역주민과도 활발하게 소통하며 상생을 이어가고 있다. 어머니교육반, 주민체육대회, 경로잔치 등 여러 행사를 마련해 지역주민과 함께 나눈다. 유명인사 초청강연, 도서관 운영, 컴퓨터교육반 운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역주민들에게 제공하고 있다. 물론 이 역시도 무료로 이뤄진다.
자연에서 함께하는 문화교육
정 교장은 학생들이 자연과 함께 하길 바란다. 이에 전라남도 영광에 인성교육장도 마련했다. “우리학교 부설교육기관인 인성교육장은 우리 집안의 230년 된 고택을 수리해 만든 것”이라고 소개한 정 교장은 230년 된 고택을 보존하면서 많은 이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쏟았다. 이곳에서는 농촌 문화체험과 인성교육장으로 쓰인다. 그렇게 그는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내어 놓으며 학생들이 백제 불교문화를 탐방하고 자연과 함께하며 인성을 길러나가길 바라고 있다.
정 교장이 무료교육을 실시하기 시작했을 때 사람들은 그에게 정신 나간 사람, 불행을 자초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다. 사정이 딱한 사람들이 배움의 기회를 얻어 인생의 참 재미를 얻는 것을 볼 때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이 자랑스럽고 뿌듯하다. 그래서 그는 조금 더 달려볼 생각이다. 세월이 무심해 그를 가만 내버려두고 있지 않지만 그는 누구보다 젊은 열정과 의지로 학생들의 앞날에 환한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