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불교 역사의 산실, 하나의 거대한 보고

“찬란한 역사 간직한 화왕산 관룡사 옛길 복원사업에 심혈, 관계기관과 명품길 만들고자”

2014-04-09     박재형 기자

지난 3월12일, 문화재청은 경남 창녕에 소재한 관룡사 대웅전의 관음보살 벽화를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로 지정했다. 이로써 국보급 보물 6점과 지방문화재 5점 등이 있는 화왕산 관룡사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대표, 보고(寶庫)가 되었다.

11점의 보물창고, 한국 불교 역사의 산실

이번 국가지정문화재 제1816호로 지정된 관룡사 대웅전의 ‘관음보살 벽화’는 보타락가산에서 설법하는 유희좌(遊戱座)의 관음보살을 벽면 전체에 걸쳐 그렸다. 조선 후기인 18세기 불화의 특징을 잘 나타내는 한편, 관음보살이 머무는 보타락가산을 그리면서도 특징적인 물가 표현을 생략하는 등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색다른 표현 형식이 나타나 그 가치가 더욱 크다.
“이번에, 단독 벽화로는 유일하게 보물로 지정되어 더 의미가 있다”라고 설하는 관룡사 주지 광우 스님은 “참으로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지역을 넘어 범국민적 관심과 보호 아래, 보물을 지키고 복원해 나갈 수 있어 기쁘다”라고 소감을 밝히며, “명부전의 시왕상 또한 문화재 지정을 위한 1차 감정을 마친 상태이다. 앞으로도 관룡사 경내 다양한 문화적 가치를 발굴 및 복원, 수호해 나가겠다”라고 강조한다.
가야의 옛 도읍지였던 창녕은 제2의 경주라 불릴 만큼 역사유적과 문화유산이 많다. 특히 관룡사는 가야불교의 흔적과 함께 용선대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시대의, 약사전과 약사전삼층석탑, 약사전 내 안치된 석조여래좌상은 고려시대의,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대좌, 이번 보물로 지정된 관음보살 벽화 등은 조선시대의 불교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만큼, 한국불교 문화의 일대기를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보고 중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관룡사 사적기,부도,석장승 등 수많은 문화유산이 산재해 있어 불교문화유산의 산실로, 관룡사를 찾는 전국 각지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천년 고찰의 명성 그대로, 과거 모습을 되찾고자 혼신
관룡사는 오늘날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 통도사의 말사지만, 신라시대에는 8대 도량에 포함될 만큼 규모가 컸다. 진달래와 철쭉, 억새로 유명한 화왕산군립공원 내 관룡산 병풍바위 아래에 자리한 관룡사는 전통사찰 제1호로 내물왕 39년(394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원효대사가 중국 승려 1,000여 명을 모아놓고 화엄경을 설법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창건 당시 화왕산에 자리하는 연못에서 아홉 마리의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에서 사찰의 이름을 가져왔다.
현재는 과거의 규모와 명성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담한 모습이나, 산속 깊숙이 자리한 가람의 고즈넉하고 정갈한 느낌과 약사여래도량으로서의 위용은 어느 곳과도 견줄 수 없다.
일주문 대신 돌로 쌓은 소박한 산문이 있고, 산문을 통과하면 천왕문이 보인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관룡사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사라지고 오직 약사전만이 그 화를 면했다. 이 때문에 관룡사는 통일신라시대 전통적인 산지가람형의 도량임에도, 소실되어 그 규모와 면모를 가늠할 따름이다.
일찍이 교학연찬과 수행정진에만 매진해 온 광우 스님은 옛 명찰의 전통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조계종 종단의 뜻을 받아 지난 사월초팔일 이후, 주지 소임을 맡고 관룡사에 오게 되었으며, 천년고찰의 모습을 복원하여 ‘약사여래 영험기도도량’으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그 중수에 혼신의 힘을 바쳐 노력하고 계신다.
“지난 4월2일 과거 탱화로 모셔져 있던 사천왕을 역사적 사료에 따라 철저한 고증을 통해 복원했으며, 진입로와 일주문, 도난당한 대웅전의 후불탱화 등도 다시금 복원해 나갈 계획이다”라고 설하는 광우 스님은 “최근 전국의 사찰들이 외형에 치중해 일률적으로 변화하는 것이 안타깝다. 관룡사는 자연과 역사와 문화가 녹아 있던 옛 모습 그대로 회귀하고자 철저한 고증 아래 복원해 나갈 것이다”라고 강조한다.

관룡사 옛길 복원, 관계기관에 요구할 예정
최근 광우 스님이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화왕산 관룡사 옛길 복원사업’이다. 이미 동국대학교 산하협력단에 용역을 주었으며, 복원 범위와 방법에 대한 조사가 끝난 상태이다.
“찬란한 가야문명의 발상지 창녕의 화왕산은 수종분포가 다양하고 관룡사를 비롯한 역사문화적 가치도 높다. 과거 선조들이 보행하던 옛길 또한 아직 흔적을 찾을 수 있어, 이를 복원하면 지리산 둘레길과 제주 올레길을 잇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대표 명소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하는 광우 스님은 창녕의 문화적 가치에 대한 이해와 이를 보존해 나가려는 노력이 지역에 더욱 촉구되어야 한다는 조언과 함께, “스님의 원력이 다할 때까지 심혈을 쏟아, 관룡사와 용선대, 관룡산 주위의 사찰림과 화왕산을 아우르는 창녕의 대표적 명품길을 관계기관과 함께 만들어 보고자 한다”라고 덧붙이며, 관련부처, 지자체, 경남도의 적극적인 관심과 협조를 거듭 당부했다.

광우스님이 설하는,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

과거에서부터 21세기 첨단 사회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선악과 영혼, 육체의 삶을 주관하면서, 인간의 문화에 거대한 뿌리를 내려온 불교는 개인의 성찰과 동시에 사회의 정도에도 앞장서 왔다. 사회를 하나로 결속시키는 가치와 이상, 그리고 미래를 열어주는 깨달음을 전하며, 한국인의 정신에 뿌리 깊게 자리한 불교가 “‘아마존의 숲과 같이’ 모든 이들의 삶에 정신적 영향과 긍정의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라고 설하는 광우 스님은 관룡사가 불자만을 위한 공간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범국민의 안식처이자 기도도량으로 자리매김하길 발원한다.
끝으로, 21세기 정치적으로도 경제, 사회, 문화, 종교적으로도 무수한 갈등과 대립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위해 답을 구하자, “기원 전 동굴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 시대는 늘 갈등과 어려움의 연속이었다”라고 일축하는 광우 스님은 “과거를 궁금해 할 필요도, 미래를 걱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 현재가 과거의 결과이고 미래의 원인인데, 현대인들은 현재에 충실하지 않고 늘 지나간 과거와 오지 않은 미래를 걱정한다”라고 설하며 “현재에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스님과의 친견이 끝나고, 반야용선의 선봉에선 석조석가여래좌상을 직접 목견(目見)하고자 약 500m의 짧은 산길을 오르면서도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다. 하늘까지 다다를 그 끝에 용선대가 있다.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용선대의 모습이 광활한 바다를 운항하는 반야용선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천 3백여 년 동안 수많은 풍파 속에서도 오롯이 자리를 지키며 중생들을 극락으로 인도해 왔을 부처님의 모습이 감히 장엄하면서도, 애달프다.
전국에서 가장 터가 세다고 전해지는 용선대의 돌부처가 중생을 구제해줄 것이라는 믿음이 때문인지 석조석가여래좌상에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이뤄진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이 때문에 각지의 수많은 이들이 돌부처의 기운을 빌어 ‘꼭 한 가지 소원’을 청하러 이곳을 찾고 있으며, 그 발길은 1,300여 년이 흐른 지금에까지 끊이질 않고 있다.
석가여래와 같은 하늘, 같은 땅을 조우하며, 창녕 관룡사야 말로 평생에 꼭 한 번은 답사 해봐야 할 명소임을 다시금 되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