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생체징후 판단으로 수술 성공률 제고
마취통증의학 인식 새롭게, 아픔 없는 세상에 앞장서
‘마취’란 문자 그대로 ‘감각의 상실’을 의미한다. 우리 몸의 자율신경계와 통증감각은 위험을 피하고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기전이지만 사고로 손상을 입었거나 치료와 수술을 위해 손상을 가할 경우 말로 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된다. ‘마취’의 발전이 없었다면 통증의 극복은 물론 현대의학의 눈부신 발전도 이뤄질 수 없었을 것이다.
초기 ‘마취’는 통증 없이 수술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듯한 상태를 의미했지만 마취의 영역이 발전되고 확장되어 수술에 대한 전신마취, 부위마취, 수술 외 처치에 필요한 진정 외에도 수술실 밖에서 진행되는 각종 검사와 급성 및 만성 통증의 조절, 다양한 질환에 의한 통증 치료 및 중환자 관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마취통증의학으로 거듭났다.
마취는 고도의 전문 의료행위이지만 현행 의료법상 의사라면 누구나 마취를 할 수 있어 진료하는 의사가 마취를 행하는 경우가 많다. 대한마취통증의학회 홍기혁 이사장은 “마취는 환자마다 반응정도가 모두 달라 마취약의 양에 따라 어떤 돌발 상황이 발생할지 모르는 만큼, 환자 감시 장치를 부착한 상태에서 수술해야 하고 마취는 마취과 의사들에 의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부 연예인들이 수술 및 진단에 사용되는 전신마취제인 ‘프로포폴’의 오남용으로 물의를 빚었다. 이른바 우유주사로 불리는 프로포폴은 호흡기계 이상으로 인한 무호흡 또는 심혈관계 이상으로 인한 저혈압과 같은 치명적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음에도 일부 연예인들이 불면증이나 불안장애 치료, 피로회복 용도로 무분별하게 사용한 것이다. 환자의 생명에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만큼 올바른 관리와 사용이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고가 발생한 것은 아직 마취에 대한 사람들의 올바른 인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반증한다.
홍 이사장은 “마취를 전문의가 전담하도록 제한하거나, 진정마취의 교육을 받은 의사에 한해서만 약제를 사용하도록 해 마취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를 예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감시하 마취관리’ 제도 도입 시급
사람은 뇌에 4분간 산소와 혈액이 전달되지 못하면 뇌사 혹은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특히 수술 중 마취상태에서 위급상황이 발생하면 빠른 대처가 이뤄져야 하는데,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는 수술 부위에 신경을 쓰느라 환자의 마취 상태에는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때문에 전신마취의 경우 반드시 마취통증 전문의가 수술에 함께해야 하지만 우리나라 병원의 60~70%가 마취통증전문의 없이 수술을 한다고 한다. 위급 시 사용할 장비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성형외과에서의 많은 사망사고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셈이다.
홍 이사장은 “많은 사람들이 마취과 의사들은 수술 전 단순히 마취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수술 중에 환자의 호흡, 맥박, 혈압, 체온 등 생체징후를 유지시키고 수술 후 환자의 의식 회복 과정과 돌발 상황에 대한 조치를 하는 것 역시 마취과 의사들의 역할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마취통증전문의는 4,500여 명에 불과하다. 마취통증전문의들의 수요가 부족하지만 수가가 워낙 낮아 마취통증전문의의 많은 수가 통증클리닉 개원을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마취에 대한 보험수가 파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올해 9월 정확한 데이터가 집계될 예정이다. 홍 이사장은 수술시 마취통증전문의 상주 유무에 따른 의료사고 발생 및 위급 시 대처 등에 대한 데이터가 집계되면 마취통증전문의 양성의 필요성을 증명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마취통증 전문분야의 차별화를 위한 보건 당국의 제도적 보완이 시급한 가운데 대한마취통증학회(이하 학회)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마취과정에서 환자의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마취통증전문의를 진료실에 배치하는 ‘감시하 마취 관리(MAC)’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환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춘 MAC 제도가 도입되면 수면내시경과 같은 진단과정에서 마취통증 전문의가 환자의 병력과 혈압을 체크해 적절한 마취를 시행하고 다른 의료진은 검사에만 전념할 수 있어 환자가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진단 및 수술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홍 이사장은 “미국과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이미 MAC 수가제를 도입해 환자의 안전에 초점을 맞춘 마취를 하고 있습니다. 마취통증전문의가 ‘수면 시술’ 전에 환자를 면담해 병력과 혈압 등을 체크하고 수면제 투여 시 기도가 폐쇄될 우려가 있는지 평가한 뒤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수면제의 양을 결정합니다. 이처럼 환자가 마취제나 각종 진정제를 사용할 때부터 회복될 때까지 관찰하는 시스템으로 국민의 건강과 안전을 도모하는 최적의 방법입니다”라고 말했다.
마취통증전문의 정착화 위해 힘쓸 터
대한마취통증의학회 제18대 이사장으로 취임해 국민 건강 증진과 마취통증전문의의 권익 보호를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펼치고 있는 홍 이사장, 그가 상대적으로 환경이 열악한 마취통증학과를 선택한 것은 인턴시절 참된 의인의 모습을 보여준 마취과 교수의 영향이 컸다.
“미국의 경우 마취과에서 2년가량 전문 교육을 받아야 마취통증전문의로 활동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는 마취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이 어려운 실정입니다. 또한 현재 병의원에서 시행하고 있는 포괄수가제(DRG)는 마취통증전문의 초빙과 관계없이 수가가 같아, 마취료와 초빙료를 인정하지 않으면 환자의 안전이 위협받는 것은 자명합니다. 제도적 개선을 통해 안전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또한 응급상황 시 최첨병이자 전문분야로서 독립해야 하는 심폐소생전문 기술 보급을 위해서도 노력할 것입니다.”
한편 학회의 올해 학술대회는 11월6~8일 잠실롯데월드호텔에서 ‘2014 Seoul International Conference of Anesthesiology in conjunction with the 91st Annual Scientific Meeting of the Korean Society of Anesthesiologists’ 국제학술대회로 개최되며 10개국이 참가할 예정이다. 홍 이사장은 “한·중·일을 망라한 국제학술대회로 진행될 계획”이라며 기대감을 내비치고 오는 2022년 40여 개국, 5,000여 명이 참가하는 아시아-오세아니아 마취통증의학회 국제대회 유치에도 많은 관심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