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부는 한류, 오래 가려면 콘텐츠 폭 넓혀야

특정 스타·스타일 위주, 소비자 싫증 느낄 수 있어

2014-04-07     이지원 기자

1990년대 한류라는 표현이 처음 등장했다. 국내 아이돌 그룹이 중국 등지에서 인기를 얻으며 시작된 한류 열풍은 ‘겨울연가’, ‘대장금’ 등 국내 드라마가 해외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위세를 키워갔다.

지난 3월 종영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 대륙을 강타하면서 드라마 속에 등장한 ‘치맥’이 중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른바 치킨과 맥주를 함께 먹는 치맥의 인기로 중국의 치킨 집들은 발 디딜 틈 없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해외에서 한국 드라마 열풍이 시작된 것은 2000년대 초부터다. 2003년 방송된 MBC 드라마 대장금은 방송 이후 10년 동안 전 세계 90여 개국에 수출돼 220억 원의 직접 수익과 1,100억 원의 생산유발 효과를 올리며 한류 열풍의 주역이 됐다. 이후 2000년대 아이돌 그룹을 중심으로 ‘K-POP’이 아시아를 넘어 유럽, 중남미까지 확산됐으며 2012년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글로벌 메가 히트곡이 됐다. 그 영향으로 K-POP의 확산은 물론 음악, 드라마 외에도 예능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방송 프로그램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도 높아졌다.

주춤했던 한류 경제효과 다시 솔솔

LG경제연구원이 구글 트렌드를 통해 K-POP 가수들과 한국드라마의 검색량 추이를 분석한 결과, 한류 콘텐츠에 대한 관심은 2009년 이후 급속도로 증가했으며 최근에는 증가세가 다소 둔화되기는 했으나 한류 콘텐츠 및 한국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관심이 일본이나 중국에 비해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양한 형태의 한류가 확산되면서 경제효과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한류에 대한 검색량의 정도에 따라 한류 도입국가, 한류 성장국가, 한류 성숙국가로 나누었을 때 한류가 성장세에 있는 국가들의 경우 한국을 찾는 관광객 수와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냈고, 한류가 성숙단계에 있는 국가들의 경우 이들 국가로의 한국 소비재 제품의 수출과 높은 상관관계를 나타낸 것으로 조사됐다. 대한상공회의소(2012)가 주요 서비스, 제조분야 300개사를 대상으로 한류의 경제효과와 우리기업의 활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82.8%가 ‘한류의 확산으로 한국과 한국 제품에 대한 우호적인 이미지가 높아졌다’고 응답했으며 실제 ‘한류로 인해 매출이 증가했다’고 답한 기업도 51.9%에 달했다. 특히 서비스 업종인 문화, 관광, 유통 업종의 매출 증대효과가 크게 나타났으며 제조업의 경우, 식품, 전자, 화장품, 자동차, 의류 순으로 한류에 따른 매출 상승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화장품의 경우 한류 스타를 모델로 기용하면서 중국 및 아시아 지역에서의 매출이 크게 증가해 2000년 이후 꾸준히 수출이 늘었으며 최근 5년간 연평균 30% 가까이 수출액이 증가했다.
이러한 효과는 해외 팬들이 한류 스타를 보면서 그들이 입고 나오는 의상을 유의 깊게 보고, 그들이 사용하는 화장품, 들고 다니는 가방, 휴대폰 등에 관심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다. 한국 백화점을 찾는 중국인들이 한류 스타의 화보를 가져와 같은 상품을 찾을 정도로, 한류 스타들을 모델로 기용한 제품의 매출이 급성장하고 있다.

‘별그대’로 중국 공략하는 한국 기업

한류 열풍을 활용한 국내 기업의 마케팅 전쟁이 뜨겁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 시장인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자 ‘별그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배우 전지현, 김수현과 계약을 맺고 플래그십 제품인 갤럭시 S5과 초고화질(UHD) TV, 탭(Tab), 냉장고 등 주요제품 홍보에 나섰다.
박재순 삼성전자 중국총괄 부사장은 “중국을 매료시킨 전지현, 김수현과의 동반 모델 계약으로 제품 홍보는 물론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중국 소비자들에게 삼성의 브랜드 이미지가 더욱 친근하고 높아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별그대’ 열풍은 농심차이나(중국 법인)에 사상 최대치 매출을 안겨주기도 했다. 농심차이나는 지난 1~2월 매출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데 대해 “본격적인 서부내륙지역 신 시장 개척, 온라인 사업 확대와 더불어 최근에 끝난 SBS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 열풍이 판매를 이끌었다”고 분석했다.
농심차이나의 올해 1~2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3,00만 달러를 기록해 1999년 상해 독자법인 설립 이후 월매출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한류식품의 대표 격인 ‘신라면’도 이 기간 동안 900만 달러 이상의 사상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농심차이나는 중국 매출 급증이 최근 중국에 불어 닥친 ‘별그대’ 열풍과도 관계가 있다고 분석했다.
농심 관계자는 “최근 종영된 ‘별그대’가 중국인들로부터 ‘한국’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으며 특히 극 중에 나오는 한국 식품에 대한 호기심이 상상 이상”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농심 타오바오 쇼핑몰에서는 2월20일 도민준(김수현)과 천송이(전지현)이 여행지에서 라면을 끓여먹는 장면이 방송된 직후 주간 매출이 전주 대비 60% 올랐으며, 상해의 코리안 타운 격인 ‘홍천로’ 인근 한인마트에서는 최근 신라면 품절 사태가 빚어지기도 했다는 것이 농심차이나 측의 설명이다. 농심차이나는 한류열풍의 중심에서 ‘별그대’ 출연진의 광고모델 발탁 등 다각적 마케팅 활동을 고려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개인문화오락서비스수지 흑자 전환
한류 효과를 언급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지표가 개인문화오락서비스수지다. 개인문화오락서비스수지는 음악, 방송, 영상 콘텐츠 등의 수출입과 관련이 깊은 음향영상서비스수지와 기타서비스수지로 나뉘는데, 1990년대 이후 계속 적자상태였던 것이 한류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2010년 이후 적자폭이 줄어들기 시작해 2012년과 2013년 2년 연속 흑자로 전환했다.
여행수지도 한류의 영향을 받았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한류조사(2012)에 따르면 한류 콘텐츠를 경험한 사람 중 ‘한국에 가고 싶다’는 긍정적 답변을 한 사람이 58.1%에 이르고, 실제로 한국을 찾는 관광객의 증가로 여행수입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여행 수입의 증가 추세는 개인문화오락서비스 수입의 증가 추세와 높은 상관관계를 보인다.
한류가 확산되며 특정 드라마 촬영지가 관광명소로 인기를 끌고, 드라마 촬영지를 보러 오는 여행 상품이 개발돼 많은 한류 팬들이 한국을 다녀가고 있기 때문이다. 드마라 촬영지뿐만 아니라 K-POP의 인기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을 정도다.

WP, 중국 내 한류 열풍 소개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가 중국 내 한류열풍을 소개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3월7일 ‘왜 중국은 한국만큼 좋은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는가(Chinese officials debate why China can't make a soap opera as good as South Korea's)’라는 제목의 베이징발 기사를 ‘별그대’의 주연 배우인 전지현, 김수현의 사진과 함께 신문 1면에 실었다.
신문은 “중국은 테러, 부패, 경제시장 둔화 등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으며 최근 열린 중국 최대 정치행사인 ‘양회’의 관심사는 한국 드라마 열풍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여주인공이 극에서 언급한 맥주와 치킨이 온라인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가 됐으며 중국의 레스토랑은 맥주와 프라이드치킨을 팔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중국 내에서는 지도자들이 ‘왜 중국은 이런 드라마를 만들지 못하느냐’고 질책할 정도로 영향력이 있는 상황”이라며 “한국 드라마의 인기는 2009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쿵푸팬더’ 이후 자국 문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자부심에 큰 타격을 줬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별그대’ 열풍으로 중국이 느끼는 불안감은 ‘쿵푸팬더’ 때보다 더 한 것으로 한국 드라마가 스스로 동아시아 문화의 근원이라고 여기는 중국에 강력하게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중국 문화연예산업 대표자회의에서는 중국 내 한류 열풍에 대해 중국의 검열을 탓하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CCTV에서 방송되는 중국 최대 설 특집 방송 ‘춘제롄환완후이’의 총감독 평샤오강이 중국의 ‘검사와 인가제도’를 지적하며 “나의 상상의 날개가 꺾였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류, 지속가능하려면 폭 넓은 스펙트럼 갖춰야
한류 열풍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의 ‘新 한류 지속발전을 위한 6대 전략’ 보고서는 세계적인 인기에도 불구하고 한류의 미래를 낙관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태동 15년 만에 최고조에 달한 한류는 한국의 IT 경쟁력과 역동적 문화라는 강점에도 불구하고 콘텐츠 질의 저하, 대중문화 편중 등의 문제로 향후 지속 여부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K-POP은 여전히 아이돌 댄스 위주이고 상당수의 드라마들이 한국적이고 독창적인 스토리보다 한류스타의 출연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비슷한 결말이 반복되는 드라마나 유사한 콘셉트의 아이돌 가수 등 ‘스타일의 반복’으로 인해 소비자들이 싫증을 느끼기 시작했고 스타 중심의 대중문화에 편중돼 콘텐츠의 다양성은 갈수록 부족해지고 있다.
최근 들어 한류 인기 지역이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는 것도 문제점이다. 특정 지역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경우 그 지역의 정책이나 경제 상황 등에 따라 한류에 대한 관심이 단 기간에 가라앉을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뿐만 아니라 외부적으로 ‘반한류·혐한류 기류의 확산’도 장애물로 작용할 수 있다. 한류의 주 소비층인 중국과 일본 등에서는 일방적인 한국문화 전파로 자국문화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지면서 반한류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황금 시간대에 외국 드라마 방영을 금지하고 일본에서는 독도 문제와 맞물려 한류스타 퇴출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한류가 일시적 열풍을 넘어서 글로벌 사회의 주류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새로운 전략을 만들어 내야 한다. 전문가들은 非 인기 영역인 문화장르까지 포괄하는 ‘문화용광로’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문화 강대국은 전통과 현대를 망라하는 폭넓은 문화 스펙트럼을 보유하고 있다. 한류도 K-POP, 드라마 위주에서 벗어나 한국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줄 수 있도록 다양한 콘텐츠, 순수예술, 생활문화 전반으로 콘텐츠의 폭을 넓혀 시너지 효과를 내려는 노력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자료 출처: LG경제연구원·삼성경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