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브랜드들의 끝나지 않은 전쟁
1위 자리 수성 위해 광고 전쟁부터 장외대결까지 치열
소치동계올림픽을 끝으로 은퇴한 국가대표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는 선수 생활 내내 일본의 아사다 마오와 비교돼 왔다. 심지어 둘은 태어난 해와 달마저 같아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라이벌’로 지목되며 서로를 견제해야만 했다. 길었던 이 라이벌 구도는 소치에서 모든 경기를 마친 후 상대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네는 것으로 비로소 끝났다.
라이벌(rival), 같은 목적을 가졌거나 같은 분야에서 일하면서 이기거나 앞서려고 서로 겨루는 맞수를 뜻한다. 라틴어로 강을 의미하는 rivus의 파생한 것으로 알려진 라이벌은 ‘같은 강을 둘러싸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뜻에서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을 두고 싸우는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 그런데 이 라이벌 구도는 사람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기업, 구단, 브랜드 등도 수년의 시간을 지나오면서 자연스럽게 라이벌 구도가 만들어져 여전히 서로를 겨냥하고 있다.
빨간 콜라와 파란 콜라의 대결
2012년 6월4일, 브라질 벨루오조치에서 아틀레티코 미네이루와의 계약을 마친 뒤 기자회견을 가진 호나우지뉴. 흔히 열리는 계약 체결 기자회견이었고 별다른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이후 말도 안 되는 일이 그에게 벌어졌다. 기자회견 중 앞에 높인 콜라를 한 모금 마셨던 것이 엄청난 후폭풍을 불러온 것이다. 호나우지뉴가 그날 마신 콜라는 ‘펩시’였다. 그런데 그의 스폰서였던 ‘코카콜라’가 뒤늦게 이를 문제 삼았다. 코카콜라 측은 그가 중대한 계약 위반을 저질렀다며 불쾌감을 표했고 결국 100만 파운드 후원 계약을 파기했다. 마르셀로 폰테스 코카콜라 마케팅 이사는 “난처한 상황이지만 어쩔 수 없는 결론을 내려야 했다”고 입장을 밝혔다. 브라질의 ‘글로보’는 “코카콜라는 호나우지뉴에게 두 가지만을 요구했다. 콜라를 마시는 것 그리고 펩시콜라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며 계약 파기는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전했다.
톡 쏘는 중독성 강한 탄산음료 콜라는 크게 ‘빨간’ 코카콜라와 ‘파란’ 펩시콜라로 나뉜다. 똑같이 약사가 만든 콜라지만 100년 넘게 팽팽한 기 싸움을 벌이고 있다.
1886년 미국 애틀랜타 주의 존 팸퍼트라는 약사가 처음 만든 코카콜라는 코카잎과 콜라 열매 성분으로 만든 음료다. 적은 돈으로 부담 없이 마실 수 있는 음료로 큰 인기를 얻은 코카콜라는 1890년대 초반까지 유사제품이 생겨날 정도였다. 약국에서 원액과 탄산수를 섞어 제조하던 코카콜라는 이후 지역별로 병입 제조자와 계약을 맺고 대량 생산 체제를 구축,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펩시는 189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약사 칼랩 브래드햄이 만든 소화불량 치료약의 일종이었다. 이름도 소화효소인 ‘펩신’에서 따온 것이었다. 코카콜라의 후발주자였지만 1차 세계대전 전까지 미국 25개 주에 보틀링 공장을 두며 성공을 거뒀다. 그러나 코카콜라를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게다가 설탕 현물시세가 폭락하면서 도산 위기에 처했다. 이에 브래드햄은 코카콜라에 인수를 제안했지만 정작 코카콜라는 펩시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코카콜라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외에 참전한 미군에 콜라를 독점 공급하면서 펩시를 멀찌감치 따돌렸다. 이때 펩시는 코카콜라를 따라가기보다 다른 노선을 택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설탕 성분을 줄이고 젊고 경쾌한 이미지를 부각시켰다. 오토바이나 헬리콥터를 광고에 등장시키며 감성을 내세웠다.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약 5배 이상이던 코카콜라와 펩시의 차이는 3배가량으로 줄어들었다. 이처럼 펩시는 광고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특히 블라인드 테스트 방식을 도입한 ‘펩시 챌린지’ 광고는 혁신에 가까웠다.
1973년 펩시는 코카콜라 열성 소비자들을 모아 눈을 가린 뒤 코카콜라와 펩시를 맛보게 했다. 참가자 중 상당수가 펩시의 맛을 선택했다. 그리고 펩시는 이 장면을 그대로 TV 광고에 내보냈다. 펩시 챌린지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다. 이후 펩시는 종합식음료 기업을 표방하며 콜라의 비중은 줄이고 각종 주스와 스낵류 사업을 시작했다. 1998년 트로피카나를 인수하고 2001년에는 게토레이로 유명한 퀘이커오츠와 합병했다. 그 결과 2004년에는 매출액, 2005년에는 시가총액과 순이익에서 코카콜라를 앞질렀다. 하지만 2010년 펩시는 탄산음료 시장에서 코카콜라에 1, 2위(코크, 다이어트 코크)를 모두 내주고 3위 브랜드로 추락했다.
이 두 회사는 산타클로스를 사이에 두고도 경쟁했다.
코카콜라는 1931년 광고에 산타클로스를 등장시켰다. 그때까지만 해도 다양한 이름과 기념일도 제각각이었던 산타클로스를 코카콜라가 ‘산타클로스’로 한방에 정리한 셈이다. 산타클로스는 코카콜라의 상징인 빨간색 옷과 콜라 거품을 본뜬 흰 수염을 모티프로 미국의 화가 해든 선드블롬에 의해 탄생했다. 그리고 산타클로스는 종교적 엄숙함을 벗어던지고 아이들에게 선물을 주러 왔다가 냉장고에서 콜라는 꺼내 들이키는 모습으로 어린 아이들의 친숙한 친구가 됐다.
종합식음료 기업을 변신을 꾀하던 펩시가 콜라 시장으로 돌아오며 선택한 것도 산타클로스였다. 펩시는 산타클로스가 휴양지에서 펩시를 마시는 모습을 담은 광고를 선보이며 ‘여름엔 펩시’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다. 코카콜라의 상징으로 자리 잡은 산타클로스를 이용해 정면으로 도전한 것이다. 또한 오디션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을 후원하는 코카콜라에 맞서 ‘더 엑스팩터’를 후원하기도 했다.
발효와 효모로 승부수
칼스버그는 덴마크 왕실의 공식 맥주이자 안데르센과 더불어 덴마크의 자랑거리다. 창립자 제이콥 크리스찬 야콥슨이 아들 ‘칼(Carl)’의 이름과 언덕을 뜻하는 ‘berg’를 합쳐 1847년 만든 칼스버그가 대중들의 관심을 받은 것은 발효방식의 차이 때문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상면발효법으로 맥주를 만들었는데 야콥슨은 하면발효(라거) 방식을 선택해 맥주 맛을 더욱 부드럽게 만들었다. 결과는 대히트였다. 그리고 이후 맥주시장은 대부분 하면발효 방식으로 바뀌게 됐다.
하이네켄은 1864년 제라드 아드리안 하이네켄이 설립한 맥주회사다. 맥주 맛에 욕심이 많았던 그는 유럽 전역을 돌아다니며 맛있는 맥주 만들기에 열을 올렸다. 그러다 맥주 맛을 좌우하는 것은 ‘효모’라는 결론을 내리고 곧바로 새로운 효모 개발에 나섰다. 그는 루이 파스퇴르의 제자인 하토크 엘리언 박사를 고용해 ‘하이네켄 A-이스트’를 개발했고 이는 하이네켄 특유의 쌉싸름한 맛을 구현했다. 지금까지도 하이네켄의 모든 공장에서는 이 효모를 사용하고 있다.
칼스버그와 하이네켄은 맥주병 색깔만 같았지 사실 공통된 부분이 없었다. 창업주의 성향도 확실히 달랐다. 칼스버그의 야콥슨이 예술작품을 수집하거나 예술품을 기부하는 등의 예술가적 기질을 가지고 있었다면 하이네켄의 제라드는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 그의 관심은 ‘하이네켄을 어떻게 하면 오래 유지시킬 수 있는가’뿐이었다. 그런 두 맥주회사가 유일하게 가진 공통 관심사는 바로 ‘축구’였다.
칼스버그는 1990년대부터 홍콩축구협회가 주최하는 홍콩 구정 대회의 스폰서를 맡고 있다. 스폰서를 맡은 다음부터 이름도 ‘칼스버그컵’으로 바꿨다. 유럽 프리미어리그 구단 ‘리버풀’의 스폰서로도 유명했던 칼스버그는 1992년부터 무려 17년 동안이나 인연을 이어왔다. 현재는 EPL의 공식 후원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6년까지 EPL을 공식 후원하는 파트너십을 체결, 온라인과 소셜미디어를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 활동을 펼치면서 소비자들에게 칼스버그를 축구 대표맥주로 알리고 축구팬들과의 소통을 강화할 예정이다.
그런가하면 하이네켄은 2005년부터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의 공식 파트너사로 활동하고 있다. 2010년에는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와 공식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이처럼 맥주 브랜드의 장외대결도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월드컵 앞둔 나이키와 아디다스
로이터에 따르면 현재 국제 스포츠용품 시장에서 나이키와 아디다스는 각각 14.6%와 11.4%를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서유럽의 경우에는 아디다스가 13.2%, 나이키가 12.4%로 입장이 바뀐다.
일단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나이키가 웃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홈팀인 브라질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기 때문. 또 나이키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와 프랑크 리베리(프랑스)도 적극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나이키는 월드컵을 통해 매출을 올려 2015년까지 전체 판매액을 300억 달러(31조 7,000억 원)까지 늘린다는 목표다.
아디다스는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 메수트 외칠(독일) 등의 스타플레이어를 내세워 홍보에 나서고 있다. 브라질 월드컵 공인구인 브라주카도 아디다스 제품이어서 처음 공개한 날 태어난 브라질 아기들에게 공짜로 브라주카를 나눠주는 등 브라주카 홍보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아디다스는 축구용품 판매액을 20억 유로까지 예상하고 있다. 이를 발판으로 2015년 판매액 목표는 170억 유로(24조 5,700억 원)로 세웠다.
나이키와 경쟁 체제에 돌입하기 전 아디다스는 푸마와 집안싸움을 벌였다. 함께 스포츠용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형 루돌프 다슬러와 동생 아돌프 다슬러가 1948년 각각 푸마와 아디다스로 갈라섰기 때문이다.
형제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사후에도 두 집안이 이들 무덤을 가능한 한 멀리 떼어놓을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었다. 그만큼 두 회사로 갈라진 형제는 경쟁과 대립으로 일생을 살았다. 하지만 2009년 9월, 두 브랜드가 극적으로 화해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양사 대표와 종업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우애와 협력을 다짐한 것.
영국 인디펜던트 인터넷판에 따르면 이들 아디다스와 푸마는 2009년 9월17일 독일 헤르초게나우라흐에서 화해 행사를 열었다. 양측 대표는 악수를 나눴고 종업원들은 축구를 하며 그동안의 앙금을 풀었다. 이날의 행사는 ‘세계 평화의 날(Peace One Day)’을 창안한 독일의 영화제작자 제레미 길레가 주선한 것이다.
광고로 상대 깎아내리기
경쟁 브랜드들은 종종 상대 브랜드를 자신들의 광고로 끌어들이기도 한다. 버거킹과 맥도날드가 그렇다.
2008년 태국의 몽족을 비롯해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 농부들 앞에 모양과 크기가 다른 햄버거 2개가 놓였다. 태어나 한 번도 햄버거를 먹어보지 못한 이들에게 두 햄버거를 차례로 먹어본 뒤 맛있는 것을 골라달라는 주문이 주어졌다. 시험대 위에 놓인 햄버거는 버거킹의 ‘와퍼’와 맥도날드의 ‘빅맥’이었다. 결국 최종선택을 받은 것은 버거킹의 와퍼였다. 이는 버거킹이 ‘세계에서 가장 공정한 맛의 테스트’를 해보자는 취지로 기획한 이벤트였고, 이후 버거킹이 이를 광고에 대대적으로 활용한 것은 안 봐도 뻔한 일.
버거킹의 맥도날드 디스(?) 광고는 이뿐만이 아니다. 맥도날드의 마스코트인 로날드가 긴 외투로 몸을 가린 채 버거킹의 햄버거를 사 먹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광고를 내보내기도 했다.
맥도날드도 자극적인 광고에 버거킹을 끌어들였다. 한 소년이 맥도날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사 공원에서 먹으려고 하는 순간 주변에서 사람들이 몰려와 모조리 먹어치우고, 울상이 된 소년이 다시 햄버거를 사와 먹으려고 하자 또 다시 사람들에게 뺏기고 만다. 결국 소년은 버거킹 봉투로 감자튀김을 가리고 나서야 사람들에게 뺏기지 않고 맥도날드의 감자튀김을 먹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다. 사람들의 맥도날드 햄버거와 감자튀김은 빼앗아 먹지만 버거킹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것으로 상대를 깎아내린 것이다.
두 회사의 전쟁은 일찍이 메뉴에서부터 시작됐다. 1957년 버거킹이 와퍼로 엄청난 성공을 거두자 맥도날드가 이에 대적하기 위해 1968년 빅맥을 출시하면서부터다. 맥도날드는 버거 사이에 빵을 놓고 패티를 두 장 끼워 넣는 식으로 와퍼에 길들어버린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그 결과 출시 1년 만에 50억 개를 판매하는 기염을 토했다.
최근에는 빅맥과 빅킹으로 맞붙었다. 빅킹은 1997년 한정판으로 판매했던 제품이지만 정식 메뉴로 내놓으면서 빅맥과의 정면승부에 나선 것이다. 빅맥과 빅킹은 이름만 비슷할 뿐 아니라 모양도 거의 비슷하다. 소고기 패티 두 장에 빵 세장, 그리고 치즈, 양상추, 양파, 피클, 소스까지 똑같다. 이러한 이유로 표절 논란까지 일었지만 버거킹 관계자는 “빅킹은 고기를 직접 불에 굽는 버거킹만의 조리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른 회사의 제품과는 다르다”고 차이점을 설명했다.
버거킹은 맥도날드보다 적극적으로 광고를 활용하는 등 맥도날드 따라잡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러나 모건스탠리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맥도날드의 미국 햄버거 시장 점유율은 49.6%이며 버거킹의 시장 점유율은 12.2%다. 한참을 못 미치는 수치다. 이 엄청난 격차가 어쩌면 버거킹을 더욱 자극해 그들의 성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