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말 노대통령 위기

2006-09-11     글/김정숙 기자
레임덕 위기 노대통령, 다섯 고개 넘으려나
최근 심경 토로, ‘바다이야기’ 게이트로 또다시 논란의 중심에

노무현 대통령이 8월 20일 청와대에서 가진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간담회에서 임기 말 위기와 관련해 “우리나라 대통령에게는 넘어야 할 5가지 고개가 있다”며 여소야대, 지역감정, 언론을 통한 정치적 공세, 여당의 공세, 권력기관의 공세를 꼽았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노 대통령은 “(언론을 통한) 정치적 공세가 계속될 때 그 다음 단계로 가면 여당의 공세가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권력기관의 공세가 있다”고 말해 언론을 통한 공세에 이은 여당의 동요와 청와대에 대한 공세, 권력기관의 이탈과 공세로 이어져온 과거 정권의 사례를 지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언급은 여당이 언론을 통해 제기되는 각종 의혹 공세에 흔들려 청와대를 공격하고 나서는 ‘임기 말 현상’을 경계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대통령의 임기말 현상 토로에 대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 13일에 열린 오찬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였다. 8월 13일 언론사의 외교안보 담당 논설위원을 청와대 관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하는 자리에서는 각종 현안과 정국 상황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토로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최근 레임덕(임기말 통치권 약화)으로 인한 고민을 토로했다는 언론 보도가 파장을 몰고 오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 당시 발언록을 공개하며 관련 보도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 8월 13일 ‘경향신문’, ‘서울신문’, ‘한겨레’, ‘한국일보’ 4개 언론사 논설위원과 비공개 오찬간담회를 열었으며, 이 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은 일부 언론은 “노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내 임기는 끝났다, 아무도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이제 개혁은 끝났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8월 20일 “언론은 오찬의 일부 내용을 왜곡, 편집한 상태로 일제히 보도했다”며 “오찬 내용이 이렇게 왜곡된 상태로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을 더 이상 지켜만 볼 수 없어 대담 내용 중 해당 부분을 발언 그대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특히 레임덕 논란을 불러온 “내 임기는 끝났다” 발언과 관련 청와대는 “대통령은 ‘내 임기는 끝났다’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며 “국회가 개혁입법을 처리하지 않는데도 낮은 지지율 때문에 여론의 압력이 없는 점을 걱정하면서 지지율에 관심을 갖게 됐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을 뿐”이라고 밝혔다.
청와대는 특히 “대부분의 언론이 대통령이 낮은 지지율로 초조해 하는 것처럼 제목을 달아 대통령 스스로 레임덕을 인정하고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국정과, 개혁과제를 포기한 것처럼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 장악력 놓치지 않았다”
또 일부 언론이 “노 대통령이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요지의 푸념을 했다”고 보도한 것에 대해서도 청와대는 “이는 사실과 다르며 마치 대통령이 국정에 대한 장악력을 모두 상실한 것처럼 왜곡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 부분과 관련된 발언록을 살펴보면 노 대통령은 “장관들이나 공무원들은 국정 시스템의 통제권을 따르고 있다”며 “소통령이나 비선권력, 게이트도 없을 것이고 적어도 정부에 대한 장악력은 놓치지 않을 것이다”고 적고 있다.
이밖에 인사 논란과 관련해 노 대통령은 “우리가 자격 안된 사람을 보내는 게 아니다”며 “내가 책임을 져야 되는 것인 만큼 (공기업에) 감사들을 많이 내려보낸 이유가 감사가 애정과 책임을 갖고 감사하지 않으면 대통령이 공기업을 통제할 수단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최근 정국의 뜨거운 논란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바다이야기’와 관련해서는 “지금 문제가 되는 부분이 성인오락실, 문화상품권인데 그것은 재임기간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전제한 뒤 “청와대가 할 수준은 아니고 부처에서 할 일이지만 그것을 컨트롤 하지 못했다”며 “정책적 오류말고는 국민들한테 부끄러운 일은 없다”고 노 대통령은 강조했다.

“다섯번째 고개는 게이트고개”
노 대통령은 8월 21일 국무회의에서 자신이 전날 여당 지도부와의 오찬회동에서 언급했다는 집권 후반기에 넘어야 할 ‘다섯번째의 고개’는 “권력기관 문제가 아니라 게이트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라고 그 취지를 설명했다.
노 대통령이 오찬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넘어가야 할 다섯가지 고개가 있다”면서 여소야대, 지역감정, 언론을 통한 정치적 공세, 여당의 공세, 권력기관의 공세를 열거했다고 전한 열린우리당측의 브리핑 내용을 직접 정정한 것.
노 대통령의 이번 설명은 다섯번째 고개 발언의 의미를 언론이 대통령에 대한 권력기관의 이반 또는 동요로 해석하고 있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소식지인 청와대브리핑도 “대통령 발언은 과거처럼 임기말에 각종 게이트로 인해 수사를 받아야 하는 상황을 되풀이해선 안된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청와대브리핑은 “결국 다섯번째 고개는 게이트고개로, 게이트가 없어야 마무리를 잘 할 수 있다는 의미”라며 “대통령이 권력기관을 장악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탈, 공세, 동요, 이반도 있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정태호 청와대 대변인도 오후 브리핑에서 “어떠한 게이트도 없어야 국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는 취지”라고 거듭 강조했다.



‘바다이야기’ 정국 뇌관 되나
그런 가운데 사행성 성인오락물인 ‘바다이야기’를 둘러싼 의혹이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이 바다이야기 제작과 상품권 유통과정에 명계남 씨 등 일부 친노 인사들이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가운데, 청와대 해명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조카인 지원 씨 연루설이 계속되면서 의혹은 확산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일부 언론사 논설위원들과 만나 “내 집권기에 발생한 사안은 성인오락실과 상품권 문제”라며 사실상 실정 사례로 시인함으로써, 이번 의혹은 사태 진전 여부에 따라 대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에 따라 이번 의혹은 유진룡 전 문화차관 경질 파문과 맞물려 임시국회의 최대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번 사건을 참여정부 최대 ‘게이트’로 규정하고 청문회와 국정조사까지 거론하며 진상 규명을 주장하고 있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아직 소문 수준에 불과한데 무조건적인 정치공세로 나오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일단 검찰 수사 및 감사원 감사를 지켜보자는 태도이다.
한나라당 주호영 공보담당 원내부대표는 “바다이야기가 전국에 보급된 배경에는 여권 실세와 노사모 공동대표였던 인사가 있었고, 거기서 나온 이득을 정치자금으로 쓰려 했다는 의혹이 나돌고 있다”고 주장했다.
주성영 의원은 “개입 의혹이 있다고 제보 받은 여권 의원만 2명이며, 이외의 인물까지 합친다면 개입 의혹 대상이 수명에 이른다”며 “청와대가 이미 세 차례에 걸쳐 관련 조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청와대는 내부조사 내용을 즉각 공개하고 검찰에 이를 이첩하라”고 요구했다.
나경원 대변인은 구두 논평에서 “당은 이번 사건을 대통령 측근이 개입한 정권 최대의 게이트 의혹으로 규정한다”며 “감사원과 검찰은 철저히 진상을 조사해야 하며 당은 국회 차원의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진상을 파헤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대통령 조카의 게임 관련 이권개입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며 “이 문제는 대통령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집요한 연속적 정치공세의 연장”이라고 반박했다.
노웅래 공보담당 원내부 대표도 “바다이야기가 영상물등급위원회 심의를 통과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비리나 부정에 연루된 것처럼 단정적으로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며 “감사원이 감사에 착수하면 실체가 가부간에 드러날 것”이라고 말했다.

“임기 끝나는 날까지 국정의 끈 놓기 싫다”
그런 가운데 노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지도부와의 오찬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이 넘어야 할 다섯가지 고개가 있다”면서 임기말 대통령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다섯고개’의 하나로 ‘여당의 공세’를 언급하며 도움을 호소했다. 노대통령은 “첫째는 여소야대의 고개이고 둘째는 지역감정의 고개, 셋째는 언론을 통한 정치공세”라면서 “다음에 누가 정권을 잡든지 언론과 권력투쟁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을 통한) 정치적 공세가 계속될 때 그 다음 단계로 가면 여당의 공세가 계속되고, 마지막으로 권력기관의 공세와 이탈이 뒤따르게 된다”고 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언급은 임기말 각종 공세 속에서 여당마저 ‘차별화’에 나서면서 ‘레임덕’이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지적한 것으로 해석된다.
노대통령은 국정에 대한 의욕과 여당의 협력을 원하는 속내도 솔직하게 털어놨다. 노대통령은 “마지막까지 국정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다”며 “큰 부도든 작은 부도든 위기신호가 있다면 미리 감지하고 통제하고 싶다”고 밝혔다. “나에게는 소통령도 없고 게이트도 없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위기를 관리하겠다”고 다짐하기도 했다.
이어 “당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최선을 다하고 싶고 당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싶다”며 “당에 여러 가지 움직임과 다양한 논의도 있겠으나 정치경험이 많은 여러분이 설득해 힘을 합쳐달라고 잘 설득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에 대해 김근태 당의장 등 여당 참석자들은 당·청이 ‘운명공동체’란 점을 강조하면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 적극 협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이날 4시간 가까이 진행된 만남에서는 당·청간의 거리를 좁히려는 안간힘이 곳곳에서 감지됐다. 지난 8월 6일 당·청회동에서 갈등을 빚은 ‘뉴딜’에 대해서도 오해를 푸는 모양새를 취했다. 김 의장은 “뉴딜을 막무가내로 하자는 것은 아니고, 깊은 고민과 문제의식이 있다는 점에 대해 대통령이 살펴봐주기를 바란다”고 요청했다. 노대통령도 “지난번 (회동에서) 절차상의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면서 “선뜻 손발을 못 맞춰드렸는데 가능하면 도와 드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뉴딜의 핵심인 출자총액제한제 폐지에 대해선 이견이 여전했다. 노대통령은 “사실은 예외규정을 두어 창조적인 투자의 길을 다 열어놓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의장이 “총론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하며, 그런 점에서 열어놓고 생각해달라”고 재차 요청하자, 노대통령은 “알았다. 제가 그 정도로 하겠다”고 서둘러 봉합했다.
노 대통령의 임기말이 다가오면서 최근 ‘친노’ 진영의 움직임이 가시화되고 있다. 백원우·이화영 의원 등은 원내에서 ‘오픈프라이머리’ 논의를 주도하고 있고, 이기명·강금원씨 등 측근 인사들도 언론을 통해 발언을 하고 있다.
외곽 세력도 전열을 정비하는 모습이다. 국민참여연대는 ‘1219 포럼’이라는 정치아카데미를 발족시켰고, 참여정치실천연대는 외연 확대를 시도하고 있다.
한 친노 인사는 “노 대통령은 당을 정치의 중심으로 세우는 데 관심이 많다”며 “내년 열린우리당 전당대회를 계기로 당이 안정적인 자리매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배가 튼튼해야 안이든 밖이든 노크를 하지 않겠냐”며 당·청 결속, 친노 그룹의 연대 등 ‘내부 통합’을 강조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미래로 향한 구상과 처한 현실의 간극은 크다. 한 정치전문가는 “우리나라에서 대통령만큼 어젠다(의제) 세팅 능력을 가진 사람은 없다”면서도 “국가경영자로서 힘을 잃었고 국민의 동의를 끌어낼지도 미지수”라고 말했다.
당장 임기 말까지 손발을 맞춰야 할 정부 내에서도 레임덕 조짐이 보이고 있다. 유진룡 문화부 차관의 인사 문제가 그 한 사례다. 노 대통령도 자신도 “주변 사람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공무원들의 기강해이를 우려했다.
노 대통령은 또한 전임자들에 견줘 자식 문제나 권력형 비리가 없다는 점을 자신하면서도 “내 집권기에 생긴 문제는 성인오락실 상품권 문제뿐인데 청와대가 직접 다룰 사안은 아니다”고 말해 의혹을 증폭시켰다. 청와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야당에선 국정조사와 특검 추진을 언급하며 ‘친인척 게이트’로 공세 수위를 높여 나가는 태세다.
당에선 곤혹스런 눈치다. 한 당직자는 “사실 당에서 대응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냐”며 “ 풀려진 측면이 있겠지만 상대방(언론과 야당)이 있는 게임이라 사태 파장을 예측할 수 없다” 말했다. 또한 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통합 노선’에 대해서도 “통합과 잡탕의 차이가 뭐냐”고 말해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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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기관 인사, 복수추천-심의 거친다

앞으로 공공기관의 장이나 임원으로 선임되기 위해서는 민간인이 절반 이상 참여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하는 등 절차가 까다로워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최근 유진룡 문화관광부 차관의 경질 파문 등에서 불거진 ‘낙하산 인사’ 문제가 줄어들지 주목된다.
기획예산처는 최근 공공기관의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을 담은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고 8월 20일 밝혔다.
법안은 공기업과 정부 산하기관의 기관장, 상임이사, 감사를 뽑을 때 임원추천위원회의 복수 추천, 공공기관 운영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도록 했다. 지금까지 공기업 기관장은 사장추천위원회의 추천과 주무부처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이 임명해 왔다. 또 법안은 임원추천위에 관련 공기업 임직원 등이 위원으로 참여할 수 없도록 했다. 한하 행정학 전문 교수는 “법안이 공기업 기관장 선임의 투명성을 높일 만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제도보다는 ‘정권의 태도’가 공기업 인사의 투명성을 좌우해 왔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