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화 절대조건 “그곳의 문화를 이해하라”

지역사회와 정보공유, 문화교류 있어야 성공 가능

2014-03-04     김미란 기자

현지화는 해외로 진출한 기업이 현지에서 독자적으로 생존하고 현지국 기업으로 정착해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이는 단순히 생산 분야의 협조나 융화에 그치지 않고 지역사회와의 정보공유나 문화교류를 통해 달성이 가능하다. 성공적인 현지화 전략을 위해서는 현지화와 관련한 기업의 내외적 요인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현지화는 생산·인사·연구개발·마케팅 등 경영관리 기능별 측면과 현지사회 속에서 기업의 역할, 현지기업의 자율권 위임 등으로 전략을 나눌 수 있다.
우선 ‘생산 및 기술 현지화’는 원부자재의 현지 조달을 통해 비용을 낮추고 현지에서 제품 개발 및 생산 능력을 갖춰 현지 시장의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것을 말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지법인 내의 기술능력과 더불어 현지 부품업체들의 기술수준과 생산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연구개발의 현지화’는 선진기업에서 기술개발의 국제화 전략을 위해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연구개발 거점을 해외로 이전하거나 새롭게 설치하는 것이 그 방법이다. ‘마케팅의 현지화’는 진출한 각 지역의 다양한 고객 요구에 대응하고 이를 상품 전략이나 사업 전략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이다. 한 연구보고에 따르면 현지법인에 자율적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기업이 성공적인 영업실적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지 환경이나 현지 시장에 적합한 상품 콘셉트를 개발하고, 기존의 현지 유통망을 이용하거나 독자적인 유통망을 구축해 적극적인 현지 시장 판매를 도모하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인적자원, 조직, 자본조달 등을 현지화 할 수 있다.

부품 현지조달과 현지 특성 고려한 모델로 인도 점령

1997년에 LGEIL(LG Electronics India Ltd.)을 설립하며 인도에 진출한 LG전자는 끊임없는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인도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뉴델리 인근 노이다 지역에서 TV, 냉장고, 전자레인지, 세탁기, 에어컨 등 주요 가전제품을, 뭄바이 근처 뿌네에서는 핸드폰 등을 생산하고 있다. 2001년에는 에어컨이 시장점유율 1위를 달성하고 2003년에는 냉장고가 1위를 달성하는 등 현지인들에게 높은 인기를 얻었다. 또 2006년에는 PC 모니터를 100만 대 판매하는 기록도 올렸다.
LG전자는 부품의 현지조달 확대와 원가절감으로 현지화 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매년 20∼30%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인도시장을 생산거점으로 육성하기 위해 집중적으로 투자한 덕분이다. 기존의 인도 업체나 글로벌 기업들이 유통망과 AS서비스망을 직접 구축해 운영하는 것에 비해 LG전자는 인도 현지 채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지방이나 농촌을 포함한 인도 전역에 제품 공급 및 서비스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LG전자의 지역거점은 46개소, 지역사무실은 124개소에 달하며 딜러는 3,200개, 간접 딜러(Sub Dealer)는 8,700개에 달한다. 또한 서비스 거점은 전국 2,700개소에 달해서 다른 경쟁기업들을 압도하고 있다.
같은 시기 인도에 진출한 현대자동차도 진출 2년 만에 인도 소형차 시잠을 점령했다. 2006년에는 생산 개시 8년 만에 100만 번째 차량을 생산하기도 했다. 이는 인도의 최단기간 기록 갱신이었다.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인도 시장 특성을 고려한 모델 개발과 효과적인 마케팅 및 AS망 구축이 큰 몫을 했다. 현대차는 한국모델 아토스를 현지에 맞게 변형시킨 Santro, the Getz Prime, i10과 인도에서 해치백 부문에서 인기가 높은 i20, 준중형차 부분에서 Accent(한국 모델명 베르나), Verna, 엘란트라(한국 모델명 아반떼)와 소나타 트랜스폼 등 54개 차종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인도 전역에 걸친 260개의 딜러 망을 통해 소비자들과 만난다.
현대차는 2008년 2월 첸나이에 생산능력을 60만 대 수준으로 늘리기 위한 증설작업(제2공장)을 완료했다. 인도에서 2번째로 큰 자동차 조립업체이자 최대의 승용차 수출기업인 현대차는 2008년에 48만 9,328대의 차량을 판매했는데 이는 전년대비 무려 49.8%나 증가한 것이었다. 차종별로는 Santro, i10, Getz & i20가 판매량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인도 문화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대우차는 쓴 맛
우리나라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인도로 진출한 기업들에서 성공과 실패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로 몰리는 것은 인도가 새로운 경제대국으로 부상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LG전자와 현대차가 인도 시장에서 모범적인 성공사례를 쓰고 있다면 대우자동차는 그 반대다. 반복하지 말아야할 실패의 교훈을 알려준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우차다.
대우차는 1994년 DCM 도요타를 인수하면서 인도 시장에 진출했다. 소형차 시장은 이미 다른 브랜드가 선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대우차는 중형차 중심의 진출 전략을 세웠다. 그리고 대우차는 철저한 시장조사 보다는 예약 판매로 시장 수요를 파악했다. 11만 명이 예약을 하자 설비능력을 10만 대 규모로 확대한 대우차였지만 실제 구매로 이어진 것은 1만 대뿐이었다. 수요예측 실패로 위기를 맞게 된 대우차는 부품 현지화를 통한 원가 절감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공장을 신축하는데 추가 투자금이 소요돼 결국 대우차는 비용 부담으로 인도 진출의 실패 사례를 쓰고야 말았다.
그리고 또 하나, 대우차가 현지화 전략에서 실패한 데에는 그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도 중요하게 작용했다. 당시 인도인들에게는 ‘예약판매’라는 개념이 생소하기만 했는데 대우차는 이에 대한 조기 파악이나 대책 마련이 부족했던 것. 또 자존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인도 특유의 문화를 무시하고 현지 관리직에게 공장 바닥청소를 시키는 등 한국식 직장문화를 강요해 현지 지원들의 큰 반발을 사기도 했다. 대우차는 2001년 결국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한데다가 본사의 파산까지 맞물려 조업 중단 및 청산 절차를 밟았다.
미국 엔론사(Enron Corporation)의 경우에는 정치적 리스크로 인도 시장 진입에 실패했다.
1992년 엔론은 마하라슈트라 주정부와 28억 달러에 이르는 인도 최대 화력발전소 건설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사상 최대 규모의 외국인 투자였다. 당시 엔론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 대금 미 달러 지불, 20년 간 운영권 보장 및 국유화 조치 불가 등 자사에 유리한 조항을 계약 체결에 포함시켰다. 환경영향평가를 면제 받아 특혜 시비도 일었다. 이 같은 사실들은 엔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이러한 가운데 집권당이 된 국민당은 “이전의 수의계약에 지나친 특혜가 있었다”면서 계약을 무효화했고 이에 엔론이 조항을 수정해 합의점을 찾는 듯 했으나 주정부가 설계사양의 문제를 들어 엔론에 벌금을 부과하고 미국 본사까지 파산하면서 발전소건립 프로젝트는 무기한 중단되는 사태를 초래했다.

실패를 교훈 삼아 재도전에 성공한 르노

인도 시장이 접근 기업들에게 실패만 안겨준 것은 아니다. 르노(Renault)는 쓰디쓴 실패의 경험을 교훈 삼아 결국에는 성공사례를 남긴 대표적인 기업이다.
르노는 루마니아 자동차 회사인 다치아(Dacia)를 인수해 저가 중소형 세단인 로간(Logan)을 개발했다. 2004년 본격 생산에 들어간 로간은 유럽시장에서 큰 성공을 거뒀고, 이에 르노는 급성장하는 인도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마힌드라(Mahindra & Mahindra)와 손을 잡았다. 르노는 마힌드라로부터 인도 시장과 소자에 대한 노하우를 전수받아 현지화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이미 저가 제품이었지만 생산비용을 15% 더 절감했고, 인도 문화에 맞게 핸들도 오른쪽으로 이동시켰다. 디자인도 약간 수정했다. 그리고 드디어 2007년 5월 르노는 마힌드라와의 합작 첫 작품으로 중소형 세단 로간을 선보였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성적은 저조했다. 현지 고객들은 바뀐 로간의 외형을 외면했다. 가격도 낮췄지만 마루티 스즈키(Maruti Suzuki)의 스위프트 드자이어(Swift Dzire)나 포드의 피에스타(Fiesta) 보다 가격 경쟁력 면에서 뒤쳐졌다. 결국 르노와 마힌드라는 첫 작품만 내놓고 결별하고 말았다.
2012년 르노는 로간의 실패를 경험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결국 성공했다. 마힌드라와 합작계약을 깨고 첸나이 지역 근처에 공장을 설립하고 신모델을 발굴했다.
르노가 가장 먼저 한 것은 인도 고객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르노는 5개 도시의 30가구를 선별해 고객의 동의하에 제품 개발자들을 고객의 집에 투숙시키는 등 강도 높은 고객 조사를 실시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유럽형 SUV인 더스터(Duster)를 출시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더스터는 1년 만에 인도 콤팩트 SUV 시장의 점유율 20%를 넘겼다.
세계 최대 다이렉트 네트워킹 기업인 암웨이도 철저한 현지화로 인도에서 성공했다. 인도를 이해하고 변화와 도전에 적응할 준비된 자세가 주효했다.
암웨이 인디아 핀크니 사장의 지론은 ‘외부에서 개발, 수입된 비즈니스모델은 인도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암웨이는 인도문화와 인도인의 정서에 맞는 인도 모델을 발 빠르게 개발했다. 사람관리, 고객접점 중시, 더블 브랜드, 현지 계약 생산 등으로 배달기간을 대폭 축소하기도 했다.
매출이 2007년 80억 루피에서 2009년 141억 루피로 늘어난 암웨이 인디아는 2015년까지 연평균 25%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제품도 매 6∼8개 출시한다는 계획이다. 소비자 접근과 인지도를 개선하는데 노력을 집중한 결과다. 암웨이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고 55억 루피를 투자해 남인도 타밀나두 주에 최고의 암웨이 인도 생산 공장을 건설한다는 계획에 타밀나두 주정부와 MOU를 체결,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제품 생산에 착수할 예정이다. 또 생산 공장과는 별개로 뭄바이, 푸네, 콜카타 등 인도 전역에 연구개발센터를 설립해 인도에 특화된 상품을 생산하고 점유율 확대에 주력할 계획이다.
바비인형도 중국 소비 정서 앞에선 무릎을…
바비인형으로 유명한 마텔(Mattel) 그룹은 중국에서 호된 실패를 경험했다.
2006년부터 바비인형 플래그십 스토어를 계획한 마텔은 파리, 런던, 밀라노, 뉴욕 및 마텔 본사가 위치한 LA와 남미의 리우데자네이루, 멕시코시티, 아시아의 상하이, 홍콩, 도쿄 등을 후보에 올렸다. 그리고 중국 내 시장 위치 확대를 위해 상하이로 최종 결정을 했다. 2009년 3월 세계 최초로 선보인 바비인형 플래그십 스토어는 6층짜리 건물에 매장면적이 3,500㎡에 이를 정도로 큰 주목을 받았다.
마텔은 플래그십 스토어를 통해 중국 내 자사 제품의 매출을 높이고 바비인형 브랜드 문화를 전파한다는 목표였다. 이에 매장 내에 장난감, 의류, 액세서리, 주얼리 등 1,600여 종의 바비인형 연관 제품과 여자 어린이 전용 레스토랑을 비롯해 SPA미용센터 및 화장대, 칵테일 바 등 초호화 시설을 갖췄다. 이를 통해 마텔은 소비계층도 기존의 3∼12세 여자 어린이에서 30대 성인 여성까지 소비계층 확대를 노릴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원대한 포부는 2년 만에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기대와 달리 마텔은 개점 직후부터 줄곧 적자 경영을 면치 못했다. 이에 2011년 3월7일 마텔 본사는 상하이 플래그십 스토어를 전격 폐점하기로 결정했다. 중국 진출 당시 금융위기 등을 고려해 목표 매출액도 약 30% 하향 조정했으나 폐점 8개월 전까지 이의 1/3도 채우지 못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렇다면 전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바비인형이 왜 중국에서는 실패한 것일까. 전문가들은 중국 소비 정서를 이해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 학부모들은 장난감 소비에서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 바비인형보다는 학습용 장난감 등을 더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1자녀 가구가 보편화된 중국은 대부분 자녀의 학습에 도움이 되는 장난감을 선호한다. ‘낯선 문화’도 실패를 거들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여성 소비자들은 대체로 귀여운 소녀풍을 선호하는데 바비인형은 여성의 인체 곡선이 강조된 섹시한 이미지였던 것. 또한 미국에는 바비인형을 수집하는 등의 취미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반면 중국은 그 수가 극히 드물었다는 게 실패로 이어졌다.

현지화의 첫걸음, 진출국의 문화 이해

일본의 도요토미(Toyotomi)는 등유난로로 칠레 난방기 시장을 점령했다. 칠레의 경우 난방시설이 부족해 겨울을 나려면 난방기가 필수다. 그러나 가구별 사용전력할당제를 실시할 정도로 심각한 전력난을 겪고 있는 탓에 전기난방기 사용이 어렵다. 도요토미는 칠레의 이러한 사정을 간파해 등유난로를 선보였다. 등유난로는 초기 구입가격은 높지만 저가의 등유를 원료로 사용해 유지비가 적고 석유난로와 달리 냄새가 없다는 게 장점이다. 이러한 점들 덕에 2008년 칠레 시장에 진출한 도요토미는 2년 만에 전체 난방기 시장에서 80%가 넘는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칠레 난방기시장의 구조적 특징과 소비자 선호도를 정확히 파악했기 때문에 가능한 결과였다.
1990년 대 초 LG전자는 두바이에 진출하기에 앞서 시장조사 팀을 꾸렸다. 그런데 이들이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곳은 시장이나 가정집이 아닌 이슬람 사원이었다. 무슬림에게 종교가 어떠한 의미인지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사원을 드나들었다. 그 과정에서 무슬림들이 하루 다섯 번 정해진 시간에 맞춰 메카 방향으로 기도를 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다. 간혹 시간을 못 지키거나 방향을 알기 위해 나침반을 휴대하는 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LG전자는 무슬림의 문화에서 착안한 ‘메카폰’을 선보였다. 하루 5번 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 메카를 가리키는 나침반 기능을 갖춘, 그야말로 무슬림을 위한 휴대폰이었다. 뿐만 아니라 메가폰은 기도 중 전화가 올 경우에는 자동으로 수신거절과 함께 ‘기도 중’이라는 메시지가 전송되는 기능까지 탑재돼 있어 무슬림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이처럼 현지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나라를 이해하는 것이다. 아무리 자국에서 성공을 거뒀다하더라도 진출국의 정서와 문화를 간과하면 쓰디쓴 실패만 경험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한다. 그들의 우위에서 시작하는 게 아니라 하나부터 알아간다는 마음가짐, 그것이 바로 현지화의 첫걸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