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의원 내란음모 혐의 인정 34년 만

6개월 공방 끝 첫 공판 결과에 대한 논란들

2014-03-04     최유경 기자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에 대해 ‘내란음모’ 혐의 등이 인정돼 징역 12년이 선고됐다. 내란음모 혐의가 인정된 것은 1980년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34년 만이며, 현직 국회의원이 연루된 내란음모 사건은 1966년 한국독립당 김두한 의원 이후 48년 만이다. 선고를 내린 수원지법 형사 12부는 17일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내란음모 사건 제보자의 진술 신빙성이 인정되며,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이 존재한 사실도 인정된다”며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RO는 내란음모를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이석기 의원이 총책이라고 판결했다.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일지
2013년 8월28일 오전 이석기 현역 의원의 자택과 사무실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련 사무실 10여 곳을 압수수색한 국정원은 내란음모죄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진보당 당직자 3명을 전격 체포했다. 이날 체포된 3명은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으로 이들은 이 의원이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직후 국가기간시설 타격을 모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3년간 이들을 내사한 것으로 알려진 국정원은 “유사시에 대비해 총기를 준비하라”는 등의 녹취록을 증거자료로 확보해 이들에게 ‘국가 기간시설 파괴를 모의하고 인명살상 방안을 협의한 혐의’를 적용했다.
이날 압수수색 영장에 적힌 혐의는 ‘내란죄’였다. 국정원법은 내란죄와 국가보안법이 적용되는 사건의 경우 국정원이 직접 수사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의원실 압수수색에 투입된 국정원 직원은 모두 30명으로, 이들은 현장 압수수색 영장 외에도 의원실 보좌관들에 대한 신체 압수수색 영장도 발부받아 증거인멸 시도를 원천 차단했다.
이 의원 등은 지난해 5월 비밀회합에서 지하혁명조직 RO 조직원들과 국가기간시설 타격 등 폭동을 모의하고 북한소설 ‘우등불’ 등을 소지하면서 반국가단체인 북한을 찬양·동조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국정원은 이날 이 의원 자택 및 국회의원 사무실을 비롯해 우위영 전 대변인, 김홍열 경기도당 위원장, 김근래 경기도당 부위원장, 홍순석 경기도당 부위원장,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이영춘 민주노총 고양파주지부장, 조양원 사회동향연구소 대표, 한동근 전 수원시위원장, 박민정 전 중앙당 청년위원장 등 통합진보당 및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자택 및 사무실에 대해 압수수색을 집행했다.
청와대는 이날 이 의원을 비롯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들이 내란 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국정원과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데 대해 “보도된 내용이 사실이라면 정말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라고 밝혔다. 이에 반해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는 “아버지나 딸이나 위기탈출은 용공조작 칼날 휘두르기”라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강하게 비난했다. 통합진보당 당원 6명은 국정원의 압수수색이 진행된 이날 경기 수원시 정자동 이상호(50) 수원진보연대 지도위원의 집 앞에서 ‘공안탄압 중단’, ‘국정원 해체’, ‘유신독재 부활’ 등의 피켓을 들고 항의시위를 벌였다.
한편 새누리당은 종북·친북 세력의 이적 활동을 철저히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유일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 의원 등으로부터 북한이 침략했을 때 이를 돕기 위해 파출소를 습격하고 무기저장고를 폭파하는 계획을 세웠다는 의혹이 나오는 등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를 주고 있다”면서 “사실일 경우 법에 따라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밝혔다. 반면 민주당은 구체적인 언급을 삼간채 사태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는 입장만을 밝혔다. 배재정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국정원이 국회까지 들어와 현역의원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하는 사태를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을 뿐 더 이상의 언급은 피했다.

안팎으로 소란스러웠던 이석기 의원 공판
이 의원은 17일 오후 수원지방법원에서 열린 선고공판에서 내란음모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인정받아 징역 12년, 자격정지 10년 형을 선고받았다. 함께 법정에 섰던 이상호 경기진보연대 고문 등 RO(Revolution Organization: 지하혁명조직)의 핵심멤버 6명에게도 각각 징역 4~7년에 자격정지 4~7년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이석기 피고인은 회합에서 지속적으로 명령과 지시조 발언을 한 점, 130여 명 참석자 앞에서 자신의 불쾌감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모습 등을 종합적으로 보면 RO의 총책임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선고 공판에서 “RO는 지휘체계를 갖춘 조직으로 인정되며 이 의원이 혁명동지가인 ‘적기가’를 부르고, 이적표현물을 소지해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제보자 진술에 대해서는 “일관되고 구체적일 뿐 아니라 진술 태도도 자연스러워 신빙성이 있다”며 “제보자 진술과 증거들을 종합하면 RO 모임의 실체 및 이 의원 등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 실행을 모의한 내란음모죄를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이 의원 등이 내란 모의를 통해 대한민국의 존립과 자유민주주의 질서에 실질적이고 명백한 위험을 초래해 죄책이 매우 무겁다고 설명했다.
이에 앞서 결심공판이 열린 3일 수원지방법원 앞에서는 진보·보수단체의 집회가 잇따라 진행됐다. 통합진보당은 이날 오후 6시30분부터 수원지법 앞에서 촛불집회를 열고 내란음모 사건 구속자 석방 요구와 정부 규탄 발언들을 쏟아냈다. 집회 참가자 300여 명은 법원 앞 교차로 주변 3곳에 나눠져 촛불을 들고 ‘내란음모 조작한 박근혜 정권 규탄한다’, ‘내란음모 조작수사 정치검찰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통진당은 17일 오전까지만 해도 무죄를 확신한다는 반응이었다. 오병윤 원내대표는 “권력집단으로부터 독립된 법관에 의해 엄격한 증거주의에 입각한 판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진당의 공식 입장과 달리 당 내부에서도 중형이 선고될 것이라는 예상 또한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판결이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정당해산 심판에도 영향을 미치는 만큼 통진당은 “항소 여부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에 대해 이 의원 측 변호인단은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칠준 변호사는 “정해진 결론에 일사불란하게 맞춰진 느낌을 지울 수 없다”며 “1심이 간과한 쟁점을 항소심에서 명백히 밝히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선고가 끝나자 이 의원과 지지자들의 얼굴에는 낙담한 기색이 완연했다. 한 피고인의 부인은 결과가 믿기지 않는 듯 울다가 쓰러지기도 했고, 재판부에 “정치법원 부끄럽지도 않으냐”고 소리치는 사람도 있었다.

‘이석기 사태’ 여러 논란 가져와
이 의원 등에게 중형이 선고된 데 대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됐다”며 우려하는 입장과 “종북 실체가 드러났다”며 환영하는 목소리가 엇갈렸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선고 직후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은 한국 사회에서 다져왔던 인권의 성과를 훼손한 것”이라며 “정부 정책에 비판적인 개인·단체를 공격하기 위해 양심·사상·표현의 자유가 제한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천주교인권위원회, 인권운동사랑방 등 18개 인권단체도 성명에서 “이번 판결로 생각과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감시와 체포, 구금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역사가 반복될 것”이라며 “개혁 대상인 국정원에 날개를 달아주고 마녀사냥의 빌미를 줬다”고 비판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이 의원이 단순히 RO 모임에서 발언한 내용만으로 내란 음모를 했다고 하기에는 구체성과 근거가 매우 미약하다”며 “2심 재판부는 이 부분을 최소한의 의구심이 없도록 밝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바른사회시민회는 “이번 판결로 종북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의 종북 논란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며 “통합진보당은 이제 스스로 해산해야 도리다”라고 강조했다.
내란 혐의가 인정돼 1심 재판에서 징역 12년을 선고받았지만 이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즉시 상실하는 것은 아니다. 국회법·공직선거법 등에 따르면 금고(禁錮) 이상의 형(刑)이 확정돼야 의원직에서 물러나게 돼 있다. 이 의원의 경우도 앞으로 대법원에서 금고 이상 형으로 확정 판결을 받아야 의원직이 박탈된다. 징역은 금고보다 무거운 벌이기 때문에 상급심에서 이 의원이 감형을 받더라도 징역형으로 확정된다면 의원직은 상실된다.
이러한 가운데 새누리당은 이 의원에 대한 제명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일명 ‘이석기 방지법’으로 불리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하기도 했다. 이석기 방지법은 내란음모죄를 범하거나 국가보안법을 위반했을 경우, 5년간 피선거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또 이와 같은 범죄로 비례대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면 해당 정당에서 비례대표 의원직을 승계할수 없도록 하는 내용도 담고 있다. 내란음모 혐의로 구속된 이 의원이 의원직을 박탈당할 경우, 비슷한 성향과 전력을 가진 비례대표 후순위 후보가 의원직을 승계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조치로 풀이된다.
피고인이 현역 국회의원이었다는 점, 지난 2010년 6·4지방선거와 맞물려 수원과 하남 등 지자체까지 여파가 미친 점, 향후 6·4 지방선거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 등 때문에 이번 재판은 여러 가지 사회적·역사적면에서도 의미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조작된 증거에 의해 기소됐던 과거의 내란죄 관련 사건과 달리 ‘내란죄의 법리’를 정면으로 다룬 점, 무려 45회에 걸쳐 집중적으로 재판이 이뤄졌다는 점 등도 의미를 더했다. 이번 선고로 인해 향후 여러 가지 사회적 파장도 커질 전망이다. 우선 앞으로 전개될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내란음모죄 법리 적용 등을 놓고 펼쳐질 법정 공방이 더욱 뜨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변호인단은 1심 선고를 면밀히 분석해 향후 재판에 나서겠다고 밝힌 만큼 다시금 진실공방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반면 검찰은 이번 재판결과에 대해 법원이 혐의를 인정한 만큼 계속 유죄를 주장하며 추가적인 항소여부를 가름할 것으로 예상된다.
헌정사상 최초의 정당해산사건인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심판’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도 관심사다. 이 의원 등의 내란음모 사건 1심에서 유죄 판결이 내려짐에 따라 현재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통합진보당에 대한 위헌정당해산심판 청구 사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의원 등이 RO 사건으로 유죄를 받은 형사 사건과 통진당이 당사자인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법률적으로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다. 헌법재판소도 RO 사건과 정당해산심판 사건은 영향이 없다며 확대 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통진당에서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이 의원의 내란음모 혐의가 통진당의 목적과 활동의 위헌성을 입증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줄 것”이라고 평가했다. 통진당은 여전히 “RO를 승인해 준 적 없어 개인활동이지 당과는 무관하다”는 주장을 반복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심리 과정에서 RO 활동과 통진당의 연관성을 놓고 치열한 다툼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당장 이 의원의 유죄판결 이후인 18일에는 통진당 해산사건 2차 변론이 진행된다. 이 변론에서 법무부는 기존의 위헌 요소를 더욱 강조하며 해산의 당위성을 강화할 것으로 보이며 통진당은 이번 재판결과와 별개로 정당해산 문제를 다룰 지, 아니면 재판결과와 연계해 진보세력의 탄압으로 변론을 전개할 지 주목되고 있다.
오는 6월4일 열리는 지방선거 역시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지난 6·4지방선거와 같이 민주당과 통진당 간의 연대는 사실상 물 건너 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야권 안에서의 진보당 고립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여권은 이번 판결을 선거전에도 활용할 가능성이 높아 자칫 이번 지방선거, 특히 경기지역 선거는 이데올로기 논쟁으로 전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정치권에선 ‘이석기 사태’가 몰고 올 영향에 분주하다. 통진당은 당 조직을 투쟁본부로 전환하고, 31일 국정원 앞에서 촛불집회를 벌일 계획이지만 혐의가 사실로 입증된다면 당 존폐 위기에 처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우파성향단체인 국민행동본부 등은 통진당 해산 청원서를 제출했고, 법무부는 청원을 접수해 타당성 여부를 계속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내란음모보다 예비가 중한 처벌이 내려진다. 내란으로 이어질 경우 주도자는 최고 사형, 음모에 그쳐도 3년 이상 징역에 처해지는 중형이다. 누구까지 연루됐으며, 최근 내란 관련 혐의를 적용해 수사한 사례는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도 파장은 더 커질 것이다.
이 의원 변호인단 측은 “재판부가 사실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했고 법률 적용에 문제가 있었으며 국가정보원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주장을 가중적 양형 요소로 본 것도 인정할 수 없다”며 사실오인, 법리오해, 양형부당 등의 항소 이유를 설명했으며 “재판부가 받아들였으리라 생각하고 1심에서 굳이 입증에 나서지 않았던 부분들까지 2심에서는 확실히 밝히겠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도 법원에서 판결문을 받아 항소 여부를 검토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