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해당 불가(佛家)에 귀의

2006-08-31     편집국
달라이 라마를 접견하고 求道의 길을 선택하다
식이요법을 이용한 난치병 치료방법과 황토방을 이용한 건강 상식 전파
거제 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남북 분단의 아픔과 함께 전쟁으로 인한 동족상잔의 비극을 적나라하게 표현하여 국내뿐만이 아니라 일본 미국 프랑스 에 이어 독일, 이탈리아에 까지 번역 출간 된 장편소설 ‘뜨거운 눈 밭’ 의 저자 이해당 씨(본명 李玉明 64세)가 만고의 업장을 소멸하고 구도자의 길을 걷기 위해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제자 청전 스님으로부터 삭발 의식을 엄수 받고 한국 불교 여래종의 종정 인왕(仁王) 큰 스님으로부터 전법계를 받은 뒤 혜광(慧光)이라는 법명을 얻어 정식으로 출가(出家)의 의식을 감행했다.

사업가에서 자연건강 연구가로 변신
6. 25 동란으로 인한 분단의 아픔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던 전쟁문학의 백미 장편소설 ‘뜨거운 눈 밭’의 저자 이해당 씨는 성공한 중소기업가와 자연 건강 연구가로도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젊은 시절 피혁 공장을 설립. 한국의 경제 성장 발전에 원동력이 되었던 그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수출 실적으로 한국의 대외 수출 무역을 주도하며 중소기업 대상 수출 산업 금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출가를 결심하기까지에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민간요법의 자연건강 연구가로도 세간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어 그의 근황이 궁금하기도 하였지만 최근 스님이 주석하고 있는 사찰 약사암에 길조로 보이는 이적의 현상이 나타났다는 사실을 접하고는 무작정 발길을 푸른 물결 거제시의 동부면 바닷가로 향했다.
천혜의 자연 경관으로 바다와 들과 산을 한 눈으로 조명할 수 있는 거제시 동부면 바닷가 언덕 위 숲 속에 자리한 약사암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도 영험 도량으로의 면모를 충분히 갖추고 있었다. 일상의 생활 속에 깨달음을 추구하고 있는 약사암의 주지 혜광 스님의 청정무구한 삶의 철학은 푸른 물결 거제시의 또 다른 볼거리를 충분히 제공하고 있었다.


한국 불교 여래종의 제 8직할 선원 거제 약사암
최근 불사 과정에서 일어났던 기이한 현상 하나를 소개한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다소 고개가 설레 이기도 하겠지만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적의 가부(可否)를 떠나 사찰의 신비한 기운을 접하고자 사부 대중들의 발길이 잦아지고 있으며, 기도 영험도량의 신령한 자태 하나만으로도 약사암은 이미 전국의 많은 불자들에게 시선을 고정당하고 있다.
당연히 신도들의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부처의 형상을 하고 있는 바위다. 지난 해 7월 사찰을 정비하는 과정에서 신심 돈독한 약사암의 신도가 사찰의 주변 경관을 위해 보시한 조경석이 갑자기 갈라지면서 보기에도 선명하게 부처님의 형상을 하고 있었던 것. 화강암으로 된 바위는 사진으로 보기에는 미흡한 점이 많으나 가까이에서 눈으로 직접 확인을 해 보면 마치 둥그런 약 사발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 부처의 상을 닮아 정식으로 대내외에 알려도 좋다는 종단(한국 불교 여래종 종정 석인 왕 큰 스님)의 허락과 함께 이러한 현상은 종단의 경사이자 길조로 약사암의 신도는 물론 병고에 시달리는 모든 사부 대중 불자들에게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피력이 함께 하기를 기원하는 계기가 되었고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 져 불자가 아닌 일반인들도 멀리 지방에서까지 약사암을 찾아 소원을 빌고 있다.
특히 사찰의 주지 혜광 스님의 경우 스님만의 독특한 자연 건강법과 건강 법문이 KBS 방송을 통해 성황리에 방영이 되자 이를 본 수 많은 시청자들과 난치병 환자들이 약사암을 다녀갔으며 종교계· 학계· 의학계 등에서도 스님의 자연 건강법에 대하여 비상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더구나 많은 난치병 환자들이 스님의 특별 지도와 법문으로 병세가 호전되어 가고 있는 가운데 그 들을 위한 치료 방생 법회 때에는 맑은 하늘에 무 지개 빛이 발하여 이를 본 신도들은 거제 즉 거제(巨濟)의 지명 이름이 ‘크게 중생을 구제한다’는 뜻이라며 약사암을 거제의 또 다른 명소로 가꾸기 위하여 모두가 일심으로 뭉치는 화합의 계기까지도 마련되었다고 한다.

일붕 서경보 스님을 통해 발심(發心)
한국의 중소기업 수출 무역을 주도하며 사업가로써 승승장구하던 시절 스님은 지난 80년대 후반 과로와 스트레스가 겹쳐 쓰러지기에 이르렀고 설상가상으로 외국에서 불치의 병을 얻어 시한부적인 삶으로 생명을 포기해야 할 만큼 위기의 순간을 맞이했으며 스님의 잘 나가던 사업도 중국의 값싼 경쟁력에 휘말려 고전을 거듭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삶에 대한 희망만큼은 저버리지 않고자 스님은 철저한 자기 자신과의 싸움으로 자신의 병을 손수 자신이 치료하기 위한 자연 건강법 연구에 몰두하게 되었고 우연한 계기에 당시 한국 불교의 영원한 대들보이자 큰 스님이었던 일붕 서경보 대종사를 친견하고 나서부터는 삶에 대한 욕구와 집념이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그로부터 얼마 후 인도 캘거타에서 열렸던 세계 승왕청 주관 세계 불교 대회에서는 잠시 통역을 맡은 인연으로 세계의 역량 있는 종교 지도자들과도 교분을 나누는 계기가 되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마침내 지난 해 10월 불교의 성지이자 달라이 라마의 티벳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의 북부도시 다람살라에서 정식으로 달라이 라마의 한국인 제자 청전 스님으로부터 삭발의식을 엄수 받았고 한국 불교 여래종의 문도와 문중이 되어 승도(僧徒)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천만다행히도 부처님의 가피를 받아서인지 스님은 자신이 앓고 있는 불치의 병도 점차 호전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는 자신의 투병 생활을 거울삼아 자연 건강법 연구에 몰두하였다. 식이요법을 이용한 난치병 치료방법과 황토방을 이용한 건강 상식 등 신도들과 불치의 병으로 고생하는 환자들을 위하여 강연회에도 나가고 방송 출연도 나가는 등 스님만의 독특한 자연 건강법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승(僧)의 도(道)를 말없이 실천하며 부처님의 자비 사상을 행(行)으로 실천하기 위해 신도들과 사부대중들의 건강을 일일이 챙기고 있다.

‘뜨거운 눈 밭’ 은 분단의 아픔을 다룬 실화 소설.
‘분단의 아픔과 한국 전쟁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표현’
전쟁문학의 백미를 장식하고 있는 소설 “뜨거운 눈 밭” 은 거제도 인민군 포로수용소에서 벌어진 인민군 포로들의 일대기를 그려 낸 실화 소설로 전 세계 16개국 언어로 동시에 출판 되어 각 국의 관심을 불러 일으켰고 한국 전쟁의 실상과 분단의 아픔을 현실적이고 감각적으로 그려내고 있다.스님은 14만자에 달하는 장문의 원고를 일일이 펜으로 집필하여 나중에 원고를 탈고할 때는 손가락이 휘어지기 까지 했다고 집필 당시를 회고한다.
전쟁 문학의 대작으로 두 차례의 세계 대전과 한국 전쟁에 관한 기록을 꼼꼼히 살피며 작품을 위해 20년 이상을 구상하고 정리한 끝에 빛을 본 “뜨거운 눈 밭” 은 1950년대 한국 전쟁을 배경으로 당시의 참담했던 실상과 분단의 비극을 픽션과 논픽션을 가미하여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고 인민군 장성의 딸로 전쟁만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누구보다도 행복했을 주인공 ‘장애린’ 이 사랑하는 남자(낙동강 전투에서 포로가 된 인민군 장교)를 만나기 위해 자진해 포로가 된 뒤 25세의 꽃다운 나이로 숨을 거두며 거제도 바닷가 숲 속에 잠드는 장면은 이 소설의 절정을 이루고 있기도 하다.
소설가 이 해당이 아닌 스님의 신분으로 이제 혜광(慧光) 스님은 우리 곁에서 영원히 사부 대중들의 건강과 부처님의 자비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승(僧)의 사명감과 구도적 신앙심을 잃지 말고 스님만의 행(行)으로 이어가기를 용기와 희망과 격려의 메시지로 전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