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에도 건재한 이건희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

끊임없는 변화 요구하는 이건희, 계열사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아

2014-02-10     박상목 부장

그룹사별 오너십이 더욱 강화되는 이유는 올해도 여전히 그룹의 체감온도 상승이 예측되지 않기 때문이다. 철저한 리스크 관리와 변화의 바람을 극복해야만 보다 안정적인 지속경영도 전개할 수 있다. 이는 삼성그룹이라고 해도 예외는 아니다. 삼성그룹은 갑오년 벽두부터 분위기 전환에 총력을 기울였다.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는 이건희 회장의 신년 하례식 발언 이후, 그룹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인 50조 원 안팎의 투자 집행 계획과 함께 발 빠른 시스템 혁신을 구축했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달 2일 하례식에서 “산업 흐름을 선도하는 사업구조의 혁신, 불확실한 미래에 대비하는 기술혁신, 글로벌 경영체제를 완성하는 시스템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라며 “다시 한 번 바꿔야 한다”고 혁신을 당부했다. 이 회장은 특히 “20년간 글로벌 1등이 된 사업도 있고, 제자리걸음인 사업도 있다. 선두 사업은 끊임없이 추격을 받고 있고, 부진한 사업은 시간이 없다”라며 경각심을 일깨우기도 했다.
이와 관련 5년 전과 10년 전 비즈니스 모델 및 전략, 하드웨어적 프로세스와 문화는 과감히 버리고,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는 사고방식과 제도와 관행 역시 떨쳐야 한다는 게 이 회장이 강조한 대목이다. 이는 이 회장이 시스템 혁신을 강조한 이유기도 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변화의 주도권을 잡기위해 시장과 기술의 한계를 돌파하며, 남보다 높은 곳에서 더 멀리 보고,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불황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인지 핵심사업 경쟁력 확보와 신사업 개척을 강조한 이 회장의 복안에 그룹전체가 여느 해보다 바쁜 한 해를 보낼 될 공산이 커졌다.

삼성 신수종사업은 안전한가
따라서 자연스럽게 시선은 삼성 신수종사업으로 쏠리는 형국이 돼버렸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주력 계열사들의 실적이 예전 같지 않지만, 이 회장의 말처럼 불황기에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발등에 불’은 신수종사업이다.
그룹은 지난 2010년 5대 신수종사업으로 ‘태양전지, 자동차용 2차 전지, LED, 바이오제약, 의료기기’를 선정하며 향후 10년간 23조3,000억 원 투자와 함께 4만 명 이상 고용창출 달성도 목표로 했다. 구체적으로 삼성은 태양전지에 누적투자 6조 원, 자동차용 2차 전지 5조4,000억 원, LED 8조6,000억 원, 바이오제약 2조1,000억 원, 의료기기 1조2,000억 원을 투자한다는 방침이다. 최근에는 바이오사업에 6,000억 원 추가 투자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어쩌면 전면 사업 수정을 감행해야 할지도 모른다.
당장 성과가 눈에 보이는 사업은 자동차 2차전지와 바이오사업 부문이다. 삼성SDI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자사 제품이 채용된 자동차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설명을 보탰다.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현재까지 삼성 제품이 적용된 자동차는 BMW의 i3, 하이브리드 스포츠카 i8과 크라이슬러 F500e이다.
이와 함께 바이오 사업도 일정대로 지난해 상반기부터 가동돼 관련 제품을 생산 중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 관계자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미국 바이오젠 아이텍의 합작 이후 2013년 상반기부터 정상 가동되고 있다. 위탁생산업체이기 때문에 제품명은 못 밝히지만, 미국과 스위스 등과 수주계약을 맺고 진행 중이다”라고 말했다.
그룹이 올해 투자한다고 밝힌 50조 원이 어느 분야에 집중될지, 또한 이 투자로 하여금 어떠한 변수가 발생할지는 여전히 지켜봐야 할 분위기다.

이건희의 두 번째 인재 개혁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의 인재 채용 방식을 다시 한 번 바꿨다. 지난 1995년 인재 채용 시 학력·성별·장애 등을 따지지 않는 열린 채용 도입 이래 약 20년만이다.
이 회장은 기업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사람이라고 여길 정도로 인재제일의 경영철학을 실천해왔다. 이 회장은 유능한 인재라면 나이·경력·국적·출신 등과 상관없이 많은 돈을 줘서라도 영입했다. ‘1명의 인재가 1만 명, 1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관이 묻어나는 부분이다.
이번 인재채용 개편도 직무 전문성 평가를 강화해 창의적인 인재를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기존 삼성직무적성검사(SSAT)의 단점을 보완해 소모적인 스펙 경쟁을 없애고, 사회적 비용을 줄인다는 취지다.
이 회장이 인재 경영으로 삼성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시킨 만큼 업계는 이번 삼성의 변화를 주목하고 있다. 이 회장의 두 번째 인재 개혁이 삼성을 다시 도약시킬지 업계의 관심이 쏠려있다.

삼성전자 거머쥔 이재용의 격상
삼성그룹은 ‘2014년 사장단·임원인사’에서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후계구도를 완성하고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제일모직 패션사업 부문을 삼성에버랜드로 이전한 그룹에서, 이 부회장은 전자와 금융계열, 이부진 사장은 서비스와 중화학계열, 이서현 사장은 패션·광고 계열을 각각 담당하며 역할 분담을 확실히 했고 삼성전자의 위상은 보다 강화됐다. 삼성 삼남매의 역할분담이 뚜렷해졌고 이에 따른 경영능력 평가도 확실해 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삼성전자는 유럽 경기 회복 지연과 신흥국 경기침체가 지속되고 환율 변동성도 확대되는 가운데 주력 제품의 가격 경쟁이 심화되는 등 어려운 경영 여건이 지속됐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이러한 경영 환경 속에서도 무선 사업의 성장세 지속과 메모리 반도체와 OLED 패널 등 부품사업 개선 등에 힘입어 매출은 지난 2012년 대비 14% 증가, 영업이익은 27% 증가하는 등 사상 최대 실적(연간 매출 228조6,900억 원, 영업이익 36조7,900억 원)을 달성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명실공히 ‘포스트 이건희’ 시대의 주역으로 격상된 데는 삼성전자를 거머쥐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부진과 이서현, “우리도 한 칼 있다”
당초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의 부회장 승진도 조심스레 예상돼 왔지만, 삼성은 올해 이서현 부사장의 에버랜드 패션부문 경영기획담당 사장 승진을 제외하고는 전반적으로 차분한 분위기를 보였다. 그만큼 이부진 사장의 약진에 기대를 모았다는 의미다.
호텔신라 대표이사 사장,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을 맡고 있는 이부진. 그는 최근 몇 년 동안 눈에 띄는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 형제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해온 사업들이 대부분 성공작과는 거리가 멀지만 이부진 사장은 대조적이다. 한 마디로 손대는 사업마다 승승장구하며 경영인으로서의 경쟁력을 피력하고 있다.
현재 신라면세점의 연 매출액은 약 2조 원으로, 세계 9위 수준이다. 국내에서는 롯데면세점의 3조2,000억 원으로 세계 4위인데 신라면세점은 롯데면세점에 이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라면세점의 성장은 놀라운 수준이다. 최근 신라면세점은 창이공항 입찰에 성공했고, 올 하반기에 제주 시내 면세점의 확장 영업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작년 실적부진은 올해 상당 부분 만회할 것으로 증권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또한 신라면세점은 롯데면세점 신영자 사장과 딸들의 전쟁에서 승리해 롯데면세점을 넘어 세계 3위로 뛰어 오르겠다는 목표를 설정해둔 상태, 이부진 사장에게 있어 1차 목표로 설정할 만한 수준이다. 단기간 내에 제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세계 3위를 꿰차게 된다면, 이부진 사장의 입지는 삼성그룹 내뿐 아니라 재계에서의 입지를 다시 쓰게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의 패션 부문은 이서현 사장이 이끌고 있다. 그는 삼성이 제일모직에서 삼성에버랜드로 넘긴 패션부문을 5년 내에 50% 이상 급성장시킬 방침이다. 삼성과 삼일PwC는 2012년 1조8,366억 원이던 매출이 2013년 2조574억 원으로 2조 원 고지에 오른 후 2018년에는 3조426억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다. 2003년 매출 1조 원 돌파 후 매출 2조 원이 될 때까지는 10년이나 걸렸지만, 2조 원에서 3조 원으로 불리는 기간은 5년으로 잡은 것이다. 결국 5년 후에는 패션부문이 삼성에버랜드 매출과 이익 대부분을 차지하는 최대 주력사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사상 최대 실적을 매분기 갱신하며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 중인 삼성이 본격적인 ‘이재용 시대’를 알리는 가운데, 이부진, 이서현 사장도 각각 한 칼 씩을 갖고 있다. 삼남매의 뚜렷해진 역할분담은 곧 경영능력으로 회자될 것이고, 이는 때에 따라서 후계구도도 바뀔 수 있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