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문경시는 과거 조선시대 영남지역에서 한양을 향하는 중요한 교통 요충지였다. 현재는 교통로로서의 중요성은 사라졌지만 오랜 시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옛 길과 자연의 아름다움, 문화유적으로 사람들이 붐비는 관광지로 유명하다. 수려한 자연 환경과 옛 것의 멋을 품고 있는 문경에 8대에 걸쳐 대를 이어 도자기를 빚고 있는 가문이 있다.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에 위치한 조선요는 8대조 김취정 도공이 240여년전 시작한 사기장 일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조상의 얼을 기리기 위해 박물관 건축 및 조선후기 가마터 보존에 힘쓰고 열정적인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문산(聞山) 김영식 도예가를 만나보았다.
8대를 이어오는 도자기의 종가(種家)
경북 문경시 관음리는 땅속에 도자기를 만드는 원료인 좋은 사토가 풍부하게 저장돼 있으며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소나무 등 땔감공급이 수월해 예로부터 사기 가마가 많았다. 일제 강점기 이전엔 35개의 가마가 존재 할 정도로 많은 도예가가 존재했었다. 관음리에 위치한 조선요는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 ‘망댕이 가마’가 있는 곳이다. 선조들의 손길과 그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는 이 가마는 조선 헌종 때인 1843년 조선요의 3대조인 김영수가 축조한 것으로 170여년의 세월 동안 수많은 자기를 구워온 우리나라 특유의 칸 가마다. 망댕이란 길이 20~25cm, 굵기는 사람 장딴지와 같은 모양의 진흙덩어리를 말한다. 이 덩어리가 쌓여져 칸을 이루게 되는데 아래에서부터 조금씩 크기가 커진 여섯 개의 칸으로 합쳐져 가마가 이루어진다. 가마의 구조가 독특해서 불길의 흐름을 부드럽게 해줄 뿐만 아니라 벽돌로 만들어진 가마와는 달리 가마 안에서 불을 지피면 그릇이 더 견고해지는 장점이 있다. 오랜 세월을 풍파를 겪으면서도 현재까지 잘 보존되고 있는 국내 유일 조선후기 전통 가마인 조선요 망댕이 가마는 1999년까지 김영식 도예가가 작업을 해왔으며 현재는 경상북도 민속자료 135호로 지정돼 보존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8대를 이어오고 있는 조선요의 김씨 가문은 국내를 대표하는 도자기 가문으로 손꼽힌다. 순수한 청와백자만을 만드는 김 도예가의 가문은 1대조 김취정도공이 충북 단양에서 처음으로 가마를 축조하여 도예 활동을 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김 도예가까지 240여년의 세월 동안 조선 백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증조부가 관요에서 일했다는 것은 구전으로만 알았는데, 이번에 ‘망댕이요 박물관’을 만들면서 자료를 찾다가 당시 하급 관리가 일기 식으로 쓴 ‘하재일기’라는 기록을 찾았다. 관요에 대한 기록인데, 거기에 증조부가 가마 만들던 기술이 대단하고 관요에서 일했다는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며 김 도예가는 8대째 가업을 계승하고 있는 전통이 있는 도예가문이란 자부심을 비췄다.편안함을 잊고 가업승계를 통해 전통을 잇다
“1989년 군복무 시절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젊은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진로에 대한 많은 갈등이 있었지만, 조상님들의 정신과 기술, 얼을 지키고 보존하기 위해 가업을 이어가기로 결심하게 되었다.” 21살이란 젊은 나이에 부친상을 당한 김 도예가는 당시를 회고하며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많은 노력이 있었다고 말했다. 유년기 시절부터 가마터에서 뛰놀며 자기 만드는 일을 보며 온 몸으로 익혀오던 그는 정식으로 가업을 승계하기 위해 열정적으로 도예에 대한 전문적인 기술을 공부했다. 근처에 있는 다른 공방에 들어가 자기를 직접 빚으며 이론뿐만 아니라 자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기술과 정신을 배웠다. “어릴 때 단순한 흙장난의 수준으로는 할 수 없었다. 아버지께서 해오던 모든 과정을 어깨 넘어 배웠지만, 자기를 굽는 것은 흙의 배합, 가마의 불 조절 등을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나의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에 다방면에서 공부를 하며 24년 동안 꾸준히 매진해 앞만 보며 달려왔다. 8대째 자기를 굽는 종가 집으로써 말로만 종가집을 이어온다는 소릴 듣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종가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는 김 도예가는 올해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개인전 및 부산 한일교류전에 작품을 출품하는 등 작품 활동 또한 열정적으로 하고 있다. 한 달에 한번 가마에 불을 때 작품을 만드는 그는 주로 청와백자 위주의 작품과 차인들에게 맞는 다완을 만들고 있는데, 요즘은 이도다완을 만드는 일과 집안에 내려오는 전통의 기술 보존과 전수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자고로 백자는 너무 화려해도 안 되며 들어가는 그림 또한 너무 화려해선 안 된다. 우리 조선백자는 여백의 미가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일본과 중국은 정교하면서 화려한 멋이지만 한국의 자기는 자연스러움으로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주는 매력이 있다. 우리의 옛 것을 재현해서 후대에 물려주고 싶다.”박물관 사업을 통해 백자의 멋을 알리기 위해 주력할 터
김 도예가는 2011년부터 사비 30억을 들여 조선요에 ‘망댕이窯 박물관’을 지었다. 박물관의 이름은 그가 우리의 고유한 말을 살리기 위해서 붙였다. 한국에서는 보기 드문 민간 공예박물관인 ‘망댕이窯 박물관’은 자료실과 전시실로 나뉘어 구성되어 있다. 자료실에는 김 도예가 집안의 문경 입향 시조부터 충북 단양에서 가마를 열어 이 집안의 도공의 역사를 시작했던 조상과 문경 관음에서 첫 망댕이 가마를 만들었던 3대조 할아버지 등 8대를 이어오면서 활동했던 기록과 남아있는 유물 등을 전시해 놓았다. 또 이 박물관에는 조부 김교수, 선친 김천만의 작품과 사진, 일본 도공인 고바야시와의 교류 등 총 100여점의 유물과 사료가 전시돼 있다. “조상님들의 업적과 유물, 역사성을 보여주기 위해 박물관을 지었다. 후손인 내가 조상님들의 얼과 정신을 이어받고 보존해야한다는 생각에 정부지원을 받지 않고 가꾸어 왔다. 단순히 유물을 보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런 자료들을 많은 사람들이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 또 작업에 사용되는 순수 우리말이 많은데 이런 것들을 정리해 책으로 만들 계획이다.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잘 이끌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문경도자기를 알리고 싶다”고 전하며, 현재 ‘망댕이窯 박물관’은 정식 사설박물관 등록을 추진 중이라고 했다.
또한 장기적인 투자를 통해 박물관 증축과 전시 유물을 더 확보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일반인들이 문경도자기를 좀 더 잘 알 수 있도록 만들 계획이라고 전했다. 문경에 뿌리내리고 한국을 대표하는 도예가문의 종손인 김영식 도예가가 앞으로도 열정적인 작품 활동과 박물관 사업을 통해 문경 도자기의 멋과 아름다움을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에게 전해져 한국의 문화유산의 긍지와 자부심을 펼쳐 나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