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이반현상 가속화

2006-08-15     글/ 김정숙 기자
진보지식인들이 참여정부를 떠나고 있다
지지부진 개혁, 정책 혼선 등 실망으로 등돌려
2002년 대통령 당선에 큰 영향을 주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기반인 진보적 지식인들과 예술인들의 이반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믿고 의심치 않으며 ‘노무현 구하기’에 앞장섰던 진보성향의 지식인들이 이제는 앞장서서 노 대통령에게 창을 들이대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선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의사를 철회하는 진보성향 지식인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던 지식인들은 물론 집권이후 청와대에서, 혹은 내각에서 노 대통령을 보좌했던 지식인들까지도 잇달아 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서양 학자들이 일컫는 ‘지식인의 탈주’ 현상이 우리나라에서도 본격화된 게 아니냐는 느낌마저 준다.

노대통령에 대한 비난 쏟아져
노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 중인 한·미 FTA가 요즘 지식인 이반의 주요인이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골간을 만들었고, 청와대 정책실장으로서 노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온 경북대 이정우 교수는 이달 초 경제학자들이 발표한 한·미 FTA 반대 성명서에 서명했다. 청와대 노동비서관을 역임한 박태주 한국노동교육원 교수도 참여했다. 홍장표 대통령 인수위원, 김유선 박진도 이병천 교수 등 현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도 포함됐다.
가장 먼저 한·미 FTA에 반대하고 나선 정태인 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은 지금도 “다음 정권을 누가 잡든 노 대통령과 한·미 FTA 추진 4인방(김현종 외교부 통상교섭본부장,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 정문수 청와대 경제보좌관,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청문회에 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독설을 퍼붓고 있다. 그는 반FTA 진영의 핵심인사가 됐다. 소위 친노 지식인들의 이탈이 줄을 잇고 있는 셈이다.
정부 언론정책을 주도해온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최근 한·미 FTA 관련한 국정브리핑의 거짓기사가 물의를 빚자 “조작된 기사로 최소한 신뢰마저 상실한 국정브리핑을 계속 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고 현 정부에 날을 세워 눈길을 끌었다. 분배를 중시하는 경제학자들도 한·미 FTA 반대 진영에 서 노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
한·미 FTA 이외 사안으로는 노 대통령의 대연정 제안과 평택 미군기지 이전 문제 등이 진보적 지식인의 이반을 촉진시켰다. 지난 해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을 제안했을때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어정쩡한 연정보다는 차라리 합당하는 게 좋다”고 비판했고, 최장집 고려대 교수도 “다른 의도를 가진 정치적 알리바이일 가능성이 크다”고 반박했다.
대연정을 추진하겠다는 깜짝 발언은 개혁수행 과정에서 확인된 무능을 보수로의 투항으로 풀려고 한다는 반발을 낳았고 비정규직 법안은 진보진영의 전통적 지지 기반인 노동자·민중의 아픔을 외면하고 보수적 신자유주의 논리에 굴복한 것이라는 불만을 낳았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은 노 대통령이 초기에 보여준 미국에 대한 비타협적 자세를 포기하고 결국 친미적 패러다임에 투항한 것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 FTA의 추진은 진보진영에 ‘노 정권 변절의 종합세트’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부안, 사패산, 천성산, 새만금 사업 등 굵직한 환경 문제에서 번번이 보전론보다 개발론의 손을 들어준 것도 전통적 진보 지지층 이탈을 부른 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노 대통령 취임 초기만 해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을 ‘시정잡배들의 잡소리’라며 막아내던 도올 김용옥 씨가 올 3월 노 대통령을 “영원히 저주받을 사람”이라고 막말로 비판하고 나선 것도 현 정부의 환경정책에 대한 불만이 빚어낸 한 에피소드이다.
이 때문에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진보적 지식인들은 ‘좌파적 신자유주의’라는 노 대통령의 현 정부 노선 규정에서 ‘좌파’보다는 ‘신자유주의’에 무게가 더 쏠렸다는 최종 분석을 내놓고 있는 것. “좌측 깜빡이를 켠 채 우회전을 하고 있다”거나 “얼치기 좌파의 형용모순”이라는 비판은 바로 이러한 노 대통령의 ‘정체성 상실’을 겨냥한 것이다.


적극 비판부터 침묵까지 형태도 다양
노 대통령에 대한 이런 지지 변화에 따라 진보적 지식인 집단은 ▲비판적 차별화 집단 ▲지지철회 집단 ▲사안별 비판 집단 ▲침묵(?)하는 집단으로 나뉘고 있다.
비판적 차별화 집단은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 등 민주노동당을 지지해 온 PD계열 지식인들이다. 지지철회 집단으로는 최장집 고려대 교수와 강준만 전북대 교수, 조희연 교수 등이 꼽힌다. 사안별 비판집단으로는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은 지지하지만 한미 FTA 추진은 비판하는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등 계간 창작과비평(창비) 계열 지식인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참여정부의 환경·노동정책에 줄기차게 불만을 표시해 온 환경·노동운동 그룹의 상당수가 지지 철회 집단으로 이동하고 있다.
침묵하는 집단은 주로 참여정부 출범 이후 정부 각료와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던 지식인들이다. 이 중 노 대통령의 한미 FTA 추진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선 정태인 전 대통령국민경제비서관은 사실상 지지철회집단으로 이동한 셈이다.
한편 참여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했던 임혁백 고려대 교수, 김형기 경북대 교수, 김호기 연세대 교수 등은 직접적 비판은 피하면서도 새로운 진보를 표방하는 ‘좋은정책포럼’을 통해 현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대안을 모색한다는 점에서 우회적 비판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을 낳고 있다.
이밖에 진보성향의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은 지난 달 성명에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을 강도높게 비난했다. 아울러 2002년 대통령 선거 당시 서울대 학생의 56%가 노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올해에는 40% 포인트가 줄어든 16%만이 노 대통령이 시대에 맞는 대통령이라고 응답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다. 앞서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지난 2월 당시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과 만나 대화하던 중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서울대 교수 상당수가 지지를 철회한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윤덕홍 교육부총리,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윤성식 전 정부혁신위원장 등 노 대통령과 함께 일했던 상당수 학자들은 지금 학교로 돌아가 조용히 생활하고 있다.

문화예술계도 냉담
‘코드인사’라는 논란을 낳을 만큼 참여정부가 주도하는 각종 문화예술단체 수장을 배출해 온 진보 성향의 예술단체들도 최근에는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참여정부 출범 3년 반이 지났지만 문화예술계에 실제적인 변화가 체감되지 않는 것이 주된 이유다.
진보 성향의 예술단체로 분류되는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은 6월 13일 ‘참여정부의 말뿐인 문화예술계 지원을 비판 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참여정부의 문화예술정책을 총체적으로 비판했다. 민예총은 이 성명에서 “문화예술현장에서 바라보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그저 말만 앞세우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참여정부가 문화예술 현장의 깊어진 불신감을 해소시키기란 거의 불가능한 일로 보인다”고까지 주장했다. 출범 이후 참여정부가 펼쳐 보인 장밋빛 청사진과는 달리 문화 관련 예산은 광주문화중심도시조성사업과 언론 관련 사업에 집중돼 문화예산이 늘기는커녕 줄고 있다고 비판한 것. 또 다른 진보적 문화단체인 문화연대도 국립극장장 임명 문제와 여러 사회 현안에서 참여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최근 들어선 잇따른 성명서를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래를 팔아먹는 일이며 정신 나간 환상이라고 맹공을 가하고 있다.
스크린쿼터 축소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는 영화계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계에 진보적 아웃사이더의 상상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진보정권의 출범을 환영했고, 또 문성근 명계남 씨 같은 사람들이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와 긴밀했기 때문에 영화에 관한 소통이 원활하리라고 기대했다”며 “그런데 정부가 어느 순간 스크린쿼터 축소를 들고 나오고 두 사람은 이에 대해 침묵하며 아예 영화계 모임에도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서 솔직히 배신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영화인들의 배신감은 이념의 문제라기보다 실용적인 문제라는 시각도 많다. ‘왕의 남자’의 이준익 감독은 “이는 친노냐 반노냐 하는 사람에 대한 호불호 혹은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미시적인 정책을 둘러싼 견해차”라고 말했다.

지식인 탈주의 원인들
대구대 홍덕률 교수는 “노 대통령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이 이를 거둬들인 것은 대부분 현 정부 개혁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데다 신자유주의가 노골화되고 있는데 대해 실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 노무현 정부가 추진한 개혁정책이 기대 이하인데다 임기 말에 접어든 정부에게 더 이상 개혁을 기대할 게 없어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5·31 지방선거 이후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서 열린우리당 참패 원인으로 51.4%가 ‘정책혼선’을 지적하고,31.1%가 ‘미흡한 개혁정책’이라고 응답한 것과 비교할 때 진보성향 지식인들이 이탈하는 근본이유가 민심과는 다소 다른 데 무게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현 정부의 문제점으로 널리 지적돼온 것들도 진보성향의 지식인 이반을 부추기고 있다. 즉, 통합 보다 갈등·분열을 조장하는 통치 스타일, 코드 중심의 회전문 인사, 아마추어적이고 독선적인 국정운영 방식, 집권 핵심인사들의 신중치 못한 발언 등이 반복돼온 데 대해서도 이들은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5·31 지방선거가 끝난 지 두 달이 다 되어가지만 노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지지도는 계속 추락중이다. 노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도가 최초로 10%대로 떨어졌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반면 진보성향의 지식인 이탈로 현 정부를 비판하는 세력의 스펙트럼은 더욱 넓어졌다. 그 만큼 노 대통령으로서는 우군을 찾기 힘든 상황이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임기가 끝날 때까지 ‘마이웨이’할 태세다. 이를 지켜보면서 일부 지식인들은 안타까움을 표하며 “노 대통령이 정권 재창출을 포기한 게 아니냐”고 말하고 있다.

*박스기사
여당 8.15 특별 대규모 사면 추진

열린우리당이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특별사면을 8.15 광복절을 기념해 단행할 것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건의할 예정이다.
열린우리당 우상호 대변인은 “최근 서민경제회복 추진위원회 활동과정에서 경제사면과 민생사면을 단행할 필요가 있다는 논의가 이뤄져 방향과 내용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현재 실무선에서 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조만간 지도부 회의에서 검토하게 될 것이지만 현재 확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이번 8.15 사면에는 지난해 사면에서 제외된 화물과적 차주 등 생계형 사범과 행정법규 위반 사범, 신용불량자가 주로 포함되고 일부 기업인들도 사면 대상에 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사면은 422만 명에 이르렀던 지난해 광복절 사면에 비해 소폭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번에 사면은 소규모에 그칠 가능성이 있으며, 기업 비리사범을 포함해 이번에 반영되지 않는 대상자에 대해서는 국민화합 차원에서 연말이나 내년 초에 대규모 사면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특별사면을 추진하는 것은 당의 설명대로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국민화합 차원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당내 의원들도 생계형 사범을 중심으로 준비되고 있는 8.15 특별사면에 대해 일단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국민화합 차원에서 큰 틀의 사면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고 또 다른 의원도 “생계형 사범을 중심으로 한 사면에 대해 거부감을 갖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해마다 되풀이 되다시피 하는 사면이 사법권을 무력화 시킬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5.18 선거 참패로 드러난 민심 이반을 사면으로 돌파하려 한다는 비난여론도 적지 않을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