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 리베이트, 무조건 제약업체만 문제?

쌍벌제 시행 비웃듯 지속적으로 터져 나와

2013-12-31     김득훈 부장

제약업계의 리베이트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당연한 수순이라고 여겨질 즈음, 정부는 리베이트를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모두 처벌하겠다는 ‘쌍벌제’를 감행했다. 지난 2010년 11월부터 시행된 쌍벌제 이후 적발된 의약사 수만도 5,600여 명, 물론 ‘적발된’이라는 단서가 붙어 있다. 하지만 이들도 실제 처벌된 경우는 아주 소수라고 하니 딱히 쌍벌제를 두려워 할 이유가 없는 듯하다. 그래서 제약업체의 리베이트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제약업체의 리베이트가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고 있다. 쌍벌제 시행 이후, 서로가 몸을 사리다 이제는 리베이트인 듯 아닌 듯 새로운 모습으로 둔갑하고 있다. 이러한 리베이트 문제의 1차적 원인은 당연히 제약업체에 있다. 하지만 ‘병원=슈퍼 갑’이라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리베이트는 점점 더 교묘해질 것이다. 물론 제약업체 처방약의 경쟁력이 외국과 비교해 떨어지는 등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근본적으로 제약업계는 병원에 공급하는 ‘업체’이기 때문이다. ‘을’이라는 말이다. 실제 진단하고 처방을 하는 것은 의사가 한다. 이는 결국, 의사에게 찍혔다가는(?) 특정업체의 약을 처방에서 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어떤 제약사의 제품이 더 좋아서 사용하기 보다는 의사의 처방전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한 방법은 없을까. 리베이트를 없애고 이 막대한 비용을 신약개발과 약의 질 향상에 쓰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제약업계도 그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칼을 대야 하는 것일까.

제약 리베이트, 여전히 현재진행형
2013년 2월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의학회는 기자회견을 열고, “앞으로 약품 처방을 대가로 의사 개인이 직간접으로 금품이나 향응을 받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자체 윤리규정을 마련해 단속하겠다며, 제약업계에 대해서는 ‘리베이트 공세’를 중단하고 빠른 시간 안에 의료계처럼 리베이트 제공 단절 선언을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2012년 10월 동아제약에 이어 대웅제약이 리베이트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삼일제약은 2013년 5월에 이어 12월에 또 적발되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3억 3,700만 원이 부과되었다.
삼일제약은 어린이 해열제 부루펜 등 자사 제품을 처방해주는 대가로 병의원에 수십억 원대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것으로 공정위 조사 결과 드러났다. 이에 공정위는 “병의원에 의약품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삼일제약에 3억 3,700만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법인 및 담당자인 영업담당 이사를 검찰에 고발했다”고 15일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삼일제약은 2009년 11월부터 2013년 5월까지 새로 출시한 의약품 처방처를 늘리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처방실적에 따라 제품설명회 명목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해왔다. 알레르기성 비염 치료제인 쎄렌잘의 경우 월 80만 원 이상 처방한 곳은 2개월간 월 20만 원씩, 월 200만 원 이상 처방한 곳은 2개월간 월 30만 원씩을 지급했다.
삼일제약은 또 인터넷 설문조사(웹컨설팅 프로그램)를 한다며 설문조사 참여 및 자문비 명목으로 의사 수백 명에게 월 20만 원씩을 지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삼일제약은 지난 4년여 간 병의원 등에 7,000여 차례에 걸쳐 총 23억 원 상당의 현금, 상품권, 물품 등을 제공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정위는 “지난해 고발조치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리베이트를 제공해온 점 등을 고려해 검찰에 고발조치 하기로 했다”며 “조치 결과를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국세청 등 관련기관에 통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일제약은 지난해 11월에도 전국 병의원에 총 21억 원 상당의 리베이트를 제공한 행위로 공정위부터 과징금 1억 7,000만 원을 부과 받고 검찰에 고발 조치된 바 있다.
이에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지적으로 제약사의 자체 노력만으로는 리베이트를 근절시키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제약사가 리베이트를 제공하지 않기로 약속하지 않는 이상, 또한 그것이 지켜지지 않는 이상, 오히려 불법 행위를 일삼는 일부 업체만이 시장에서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다.
리베이트의 근본적인 문제는 외국 제약회사들의 처방약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것도 있지만 환자의 처방과 진단을 100% 의사가 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국내제약사들이 영업사원을 통한 복제약을 팔기 위해 리베이트가 관행적으로 되풀이 되고 있다.
남윤인순 민주당 의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2013년 8월까지 제약회사 84곳이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서도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리베이트 사건은 현재진행형일 것으로 생각된다.

신약개발 통한 외국사와의 품질경쟁만이 해답
전문가들은 한결 같이 경쟁력이 있는 ‘신약개발’을 주문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는 매출 1조 원이 넘는 제약사가 없을 정도로 영세한 제약사가 난립해 있어 언감생심 신약개발을 꿈도 꾸지 못하는 업체들도 많다. 정부나 대형 제약업계에서 신약개발을 추진하고는 있지만 실질적으로 개발에 성공한 케이스가 적다는 것도 문제다. 게다가 신약의 가치를 저평가해 제약업체들이 의욕이 사라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된다.
지난해 11월 부산 파라다이스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국보건행정학회 학술대회에서 성균관대학교 약대 이의경 교수는 ‘OECD 약가비교 연구’를 주제로 한 발표에서 현재 급여 등재된 국내의 신약가격이 경제협력개발기구(이하 OECD) 국가 평균가격의 42% 수준이라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최저가 품목은 147개로 198개 비교약품의 74%가 OECD 국가 중 가격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토론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변영식 이사는 “우리나라는 신약가격이 최초 도입부터 OECD 최저 수준인데다 그 후에도 사용량-약가 연동제 등을 비롯한 계속되는 규제 정책으로 약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특히 선별등재제도 전에도 OECD 반값 수준이었는데 후에는 더 떨어진 이번 결과에서 보듯이 국내 신약가격이 높다는 것은 오해”라며 “중국이나 중동 등 우리나라의 신약 가격을 참조하는 국가가 더욱 증가하는 상황에서 국내의 신약 도입이 지연되는 등 환자의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이 악화될 가능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제약업계 구조조정, 시작되나
이를 두고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영세한 업체가 난립해 무늬만 ‘제약회사’라는 주장마저 제기되는 상황이기에 구조조정은 불가피한 듯 보인다. 최근 45년 역사를 지닌 안과용 약 전문기업 한불제약이 부도처리 되면서 제약업계 안팎에선 구조조정의 신호탄이냐 아니냐를 놓고 설왕설래다. 또한 이를 두고 보건산업진흥원 정윤택 제약산업단장은 일본의 예를 들면서 본격적인 제약업계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냐는 말을 했다. 일본 제약사들은 강화된 약가규제 등의 여파로 불과 12년 만에 제약업체 수가 1,512곳에서 380곳으로 줄었다. 이에 대한 결정적인 원인으로 인구 고령화와 규제 강화의 연관성이 매우 깊다. 이 점에서 우리나라도 일본의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최근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지분을 캐스팅보드로 쥐며 M&A 관련해 매체에 오르내리고 있다. 시나리오는 이렇다. 지난해 녹십자가 일동제약의 주식을 집중적으로 사들이면서 보유 지분율을 15.35%까지 끌어올리며 2대 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녹십자 측은 ‘단순 투자 목적’이라면서 선을 그었지만 양사 간 합병이 상당한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녹십자의 적대적 M&A 시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나 녹십자는 백신, 혈액제 등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 복제약 비중이 높은 일동제약과 사업 영역이 겹치는 분야가 많지 않아 M&A에 성공할 경우 국내 제약업계 전반을 뒤흔들 일대 M&A 사례로 관측한 것이다.
의사들이나 제약업계 모두 입을 모아 “리베이트 관행을 없애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양측 다 쌍벌제도 중요하지만 리베이트 발생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해 근절시킬 것을 정부에 바란다고 했다. 이들은 대가성 리베이트와 합리적 연구 참여에 대해 정확한 파악을 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날이 갈수록 진화하는 리베이트 수법을 캐내는 것이 정부로서도 녹록치는 않을 것이다.
주는 쪽도 받는 쪽도, 억울하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억울한 것은 국민들이다. 리베이트는 결국 신약개발의 의지를 꺾고 기존 약값만 올릴 뿐이다. 리베이트는 ‘나부터, 나만이라도’의 선구자적 법칙이 통하지 않는 영역이다. 제약업계 모두가 함께해야 가능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테니 새해에는 ‘주지도 받지도 않고’ 진정 국민의 건강을 위하는 모습으로 바뀌기를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