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 핀 청춘 불꽃처럼 살다...유관순 열사 순국
(시사매거진245호=신혜영 기자) 오직 내 나라의 독립만을 위해 불꽃처럼 살다 간 순국열사 유관순이 1920년 9월28일 서대문형무소에서 옥사했다.
유 열사는 충청남도 천안에서 태어나 1915년 선교사의 소개로 이화학당 보통과 2학년에 편입했으며 1918년에는 고등과 교비생으로 입학했다. 1919년 이화학당 재학 중 3·1운동이 일어나자 만세 시위에 참가했다. 총독부 임시휴교령에 따라 학당이 휴교하자 유관순은 고향인 충청남도 천안으로 내려와 조인원 이백하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을 규합하기 시작했고, 4월1일 아오내[竝川] 장터에서 3,000여 군중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며 독립만세시위를 벌였다. 이 사건으로 유관순의 아버지 중권(重權)과 어머니 이씨(李氏)는 일본 헌병에게 피살되고 집마저 불탔다.
유 열사는 오빠 관옥(寬玉)과 함께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유 열사는 공주 검사국으로 이송되었고 공주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언도받고 항소했으나 경성복심법원에서 기각 당했다. 유 열사는 재판장에게 자신의 투쟁이 정당하다는 것을 끝까지 항변하며 의자를 집어던졌고 그로 인해 법정모욕죄까지 가산되어 징역 7년형을 언도받았다. 일제의 모진 고문으로 몸이 상했으나 복역 중에도 독립만세를 고창했고, 이 때문에 더욱 혹독한 형벌을 당해 건강이 악화되어 17세의 나이로 못다 핀 꽃봉오리 같은 삶을 옥중에서 마감했다.
8·15광복 후 충청남도와 천안군의 협력으로 병천면에 유관순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 건립되었고,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 그리고 1996년 5월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명예졸업장을 추서했다. 유 열사 추모제는 해마다 10월12일에 열렸는데, 2005년부터 매년 9월28일에 열사 순국일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충남 천안시 사적관리소는 독립기념관 및 독립운동사 연구학자들의 연구 결과 유 열사 순국일이 9월28일로 밝혀져 추모제 날짜를 바로 잡았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독립기념관은 조선총독부 관보를 통해 ‘유관순 열사가 석방 이틀을 앞둔 1920년 9월28일 고문으로 얻은 병이 악화돼 서대문형무소 감방 안에서 순국’한 사실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