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차기 총리
2006-08-09 글/ 정경부 수석
대북강경발언으로 경쟁자 후쿠다 밀어내고지지 선두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의 뒤를 이어 일본을 이끌어가게 될 새 총리 후보가 오는 9월20일 선출될 예정이다. 7월 11일 일본 집권 자민당은 오는 9월 30일로 임기가 끝나는 고이즈미 총리에 뒤를 이을 후임 총리 후보를 같은달 20일 선출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민당 관계자인 시바타 마사토는 또 이를 위해 같은달 8일 당내 경선 운동 일정이 시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총선에서 압승, 중의원과 참의원의 양원 모두를 석권하고 있는 자민당의 총리 후보 선출은 사실상의 총리 지명을 의미한다. 현 의석 구조상 자민당이 내세운 총리 후보가 별 무리없이 총리에 취임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당초 차기 총리 후보군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관방장관과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전 관방장관 등이 이름을 올렸으나 아베 장관은 계속된 물밑 후보 경쟁을 통해 점차 독주 체제를 굳혀가고 있다.
북한 미사일 덕에 아베 지지도↑
차기 총리 후보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40% 안팎의 지지율로 독주해 온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올해 초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면서 2위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추격이 거세지고 있다. 언론은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좁혀져 총리 선거가 양자 대결로 압축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5월 15일 여론조사 보도에서 ‘차기 총리에 어울리는 인물’로 아베 장관을 꼽은 응답자가 33%로 1위였으나, 이는 지난 3월 조사에 비해 7%포인트 떨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후쿠다 전 장관은 21%로 2위였지만 지난 조사 때보다 7%포인트 높아졌다.
후쿠다 지지율이 높아지고 반대로 아베 지지율이 하락한 것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와 아베 장관의 아시아 경시외교에 불만을 느끼는 층이 후쿠다 지지로 돌아섰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또 다른 후보로 거론되는 아소 다로(麻生太郞) 외상과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楨一) 재무상은 각각 3%와 1% 지지에 그쳤다. 마이니치신문이 지난 13∼14일 실시한 전화여론조사에서도 ‘차기 총리에 어울리는 인물’로 아베를 꼽은 사람이 38%, 후쿠다를 든 사람이 20%였다. 그러나 차기 일본총리 후보로 유력한 대북 강경파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북한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급부상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 이후 강경노선이 두드러진 ‘아베 외교’가 일본 외교의 전면을 장식하고 있다면서 북한 화물여객선 입항금지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한 대북 제재결의안 등은 모두 그의 작품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신문이 7월 8, 9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포스트 고이즈미’에 걸맞은 인물이 아베 장관이라는 응답이 46%에 달해 2위인 라이벌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18%)을 큰 격차로 따돌렸다.
아베 장관은 외교 분야의 ‘집권 구상’을 담은 논문을 조만간 미국의 외교잡지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아베 장관측은 국내외에서 집권 후 국민들이 아시아 외교를 불안해하고 있는 점을 감안, 오는 9월 총재선거 전에 외교이념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 민주주의, 인권, 법의 지배 등 4가지 보편적 가치관을 아시아와 전세계에 확대시킨다는 것이 ‘아베 외교’의 골자다. 아베 장관은 이같은 가치관을 공유할 수 있는 국가로 미국·호주·인도 3개국을 꼽았으며, 이들 국가와 연대해 아시아를 중심으로 전세계로 적극 확대시킨다는 방침이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장관은 논문에서 북한과 중국의 인권상황에 우려를 나타내고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규탄했다. 중국의 인권상황에 대해 그는 “종교 및 언론 자유가 억압당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한에 대해선 “자유와 민주주의의 은혜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아울러 평화헌법의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고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대해 “전몰자에 애도의 뜻을 표하는 것은 각국 공통의 관습”이라며 이해를 요청하는 방향으로 내용을 조정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전했다.
일본인들, 왜 아베 장과 선호하나
차기 일본 총리를 사실상 결정하는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여론조사에서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을 계속 앞지르고 있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에 따라 아베 장관 등을 중심으로 ‘선제공격’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선거를 염두에 둔 발언이라는 분석이다. 두 사람이 출마 의사를 공식화하는 다음달 중순에야 선거 구도가 분명해지겠지만, 같은 모리파 소속인 후쿠다 전 장관이 대망을 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이번 선거는 독도 영유권 문제, 신사참배, 대북 관계 등으로 외교적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관심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장관은 지난달 초 94명의 현역 의원이 참여한 ‘재도전 지원 의원연맹’을 출범시켜 대중적인 인기뿐만 아니라 당 안에서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과시했다.
일본인들은 왜 대북 강경파인 아베 장관을 선호할까. 최측근을 자처하는 자민당 야마모토 이치타 참의원은 ▲북한에 대한 확고한 자세 ▲젊고 깨끗한 이미지 ▲대중에게 쉽게 설명하는 능력이라고 짚는다.
화려한 집안 내력 자체가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정치적 힘으로 작용한다. 그의 아버지는 1980년대 외상을 역임한 아베 신타로, 외할아버지는 강경파의 원조 격인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다. 대표적인 지한파 아베 전 외상은 다케시타 노보루 총리를 이을 재목감이었으나 1991년 갑자기 병환으로 눈을 감았다. 아베 장관은 대권을 눈앞에 두고 타계한 아버지의 한을 풀겠다는 뜻을 자주 내비쳤다. 아버지를 쏙 빼닮은 외모에도 불구하고 아베 장관은 정치적으로는 강경 성향의 외할아버지 기시 전 총리를 닮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다. 그 역시 “아버지보다 할아버지의 DNA를 이어받았다.”고 말할 정도다.
헌법 개정과 재무장론은 기시의 정치 노선을 이어받은 것이다.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등 강경우파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왔으니 일본 민족 우월주의라는 피도 물려받았다고 한다.
아베는 고향 야마구치현에 대한 자부심도 강하다. 야마구치는 메이지 유신과 조선 침략을 주도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이토 히로부미 초대 총리를 비롯해 야마가타 아리도모, 가쓰라 다로, 데라우치 마사다케, 다나카 기이치, 기시 노부스케, 사토 에이사쿠 등 7명의 총리를 배출했다.47개 광역단체 중 가장 많은 수이다.
1954년 기시 전 총리의 장녀 요코와 아베 신타로 전 외상의 차남으로 태어난 아베는 공부는 썩 잘하지 못하는 유력 집안 자제들이 다니는 세이케이 초·중·고·대학을 나왔다. 고베 제철소에서 3년 반 샐러리맨 생활을 체험한 뒤 아버지 비서관으로 들어가 정치수업을 쌓았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곧바로 지역구를 물려받아 1993년 37세에 중의원에 처음 당선됐다.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은 그가 총리 후보로 떠오른 결정적 계기가 됐다. 그는 고이즈미 총리에게 “납치 문제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전에 ‘평양선언’에 서명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평양에서 돌아온 뒤 납치 피해자 가족들을 찾아가 고개를 숙였다. 때마침 터진 요코다 메구미 가짜 유해 사건과 북한 핵개발로 일본내 반북 정서가 확산된 것도 그의 부상에 날개를 달아줬다.
강경 성향과는 달리 심약하다는 평판도 적지 않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몸집은 크지만 대가 약하다”고 지적했다. 지지하는 의원들의 응집력과 행동력도 느슨하다는 평이 있다.
경쟁자 ‘후쿠다’는 누구인가
후쿠다 전 장관 역시 후쿠다 다케오(1976.12∼78.12) 전 총리의 아들이다. 도쿄 북부 군마현 출신이다. 해발 2000m 이상의 명산과 이를 휘감아도는 강이 수려하며 기름진 평야도 많은 이곳은 예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올 지역”으로 손꼽혔다. 후쿠다 전 총리를 비롯, 나카소네 야스히로(1982.11∼87.11), 오부치 게이조(1998.7∼2000.4) 등 총리 3명이 배출됐다.
후쿠다는 언론과 접촉을 즐기지 않고 잠행하는 스타일이어서 화려한 편은 아니지만 아버지 후쿠다파의 정치적 유산을 많이 상속한 숨은 실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후쿠다는 도쿄 학예대학 부속초등학교를 거쳐, 명문 아자부 중·고를 나왔다. 와세다 대학 경제학과 출신으로 마루젠 석유에 다니다 1976년 부친 비서관으로 정치에 첫발을 디딘 것까지 아베 장관과 똑같다. 중의원에는 비교적 늦은 1990년 2월에 처음 발을 디뎠다. 당시 53세였다. 95년 외무차관을 거쳐 2000년부터 모리·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으로 일했다. 그는 역대 관방장관 가운데 1289일로 최고 재임기간을 기록했다.
특히 47세에 중의원에 당선돼 71세에 총리에 오른 아버지처럼 그 역시 70세가 되는 올해 총리의 꿈을 이루려 한다는 얘기들이 들린다.
후쿠다는 아시아를 중시하는 부친의 현실적인 외교 노선(후쿠다 독트린·1977년)을 이어받은 비둘기파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분명 자민당 안에서 가장 결집력 강한 우파 모임인 모리파 소속이다.
실제로 관방장관 시절 “이론으로만 보면 일본이 핵을 보유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발언을 했다가 소동을 빚었다. 그가 총리에 오른다 해도 한국·중국과의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거니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후쿠다 지원 그룹은 자민당 중진들을 축으로 하는 ‘반(反)고이즈미, 비(非)아베’ 진영이다. 후쿠다가 출마 기치만 들면 상대적으로 느슨해 있던 이들은 응집력 강한 지지세력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모리 요시로 전 총리, 야마사키 다쿠 전 자민당 부총재 등이 거들 것으로 보인다. 그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자 중진 그룹은 초조해하며 다른 후보 옹립 방안을 검토하는 등 한때 동요했다. 그러자 후쿠다는 지난달 말 “국민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며 “상황을 보고 판단한다.”라고 공언했다.
그의 장점은 17년의 월급쟁이 생활 등을 통해 체득한 상식과 균형감각의 풍부함이 꼽힌다. 반면 지나치게 신중한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특별한 좌우명도 없는 후쿠다는 시간이 나면 음악감상과 독서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별히 존경하는 인물도 없다.
아베 관방장관 본격 굳히기 돌입
아베 신조 관방장관은 지난 6월 18일 상반기 정기국회 회기가 끝나면서 일본 언론들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나타냈다. 마이니치·니혼게이자이 신문이 각각 조사한 여론조사에서 아베 장관은 한 달 전에 비해 각각 4%, 8%포인트 상승한 42%, 41%의 지지율을 나타냈다.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의 지지율은 각각 1%, 4%포인트 하락한 19%, 17%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양자간의 격차는 23~24%로 벌어졌다.
자민당 지지자만을 상대로 하는 여론조사에서는 더욱 격차가 커진다. 교도통신이 6월 17일 집계한 자민당 지방조직 간부들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아베는 50%로, 38%의 후쿠다를 앞섰다. 자민당의 소장파 의원들은 거의 아베 지지자라고 보면 된다. 지난 6월 2일에는 아베를 지지하는 자민당 의원들이 자발적으로 ‘재도전 지원 의원 연맹’이라는 것을 만들었다. 선거조기 과열을 우려한 자민당 집행부가 모임 결성을 막았지만 첫 모임 참석자는 예상을 뛰어넘는 94명. 아베의 측근들은 “이로써 후쿠다 전 관방장관의 출마는 힘들게 됐다”고 흥분했다. 물론 94명이라고는 해도 당 소속 국회의원의 4분의 1에 불과하고, 대세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올 들어 각종 여론조사에서 치고 올라오는 후쿠다에 대한 선제공격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국방족’으로 분류되는 아베는 집단적 자위권 용인 등 헌법 9조 개정을 주장해왔다. 1998년 아베는 일·중 관계자 간담회에 출석, 방일 중인 장쩌민 중국주석에게 “양국간의 모든 국민이 같은 인식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하다. 차이는 차이로서 인정하면서 서로 우호를 생각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직언했다. 모리 요시로(森喜朗) 총리 내각 때 관방부 장관직을 맡기 전까지 ‘일본의 앞날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소장파 의원 모임’의 사무국장을 하면서 “교원노조가 주도하는 교과서 채택은 이상하다. 일본인의 문화, 전통, 가치관에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평소 한국에 대해선 “중요한 나라”라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하지만 “야스쿠니 참배는 총리의 의무”라고 주장하고, 종군위안부를 부정하는 그의 굴절된 역사관은 고이즈미 총리보다 더 심각한 수준이다. ‘종군위안부는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 펴낸 후소사판 교과서의 채택을 조직적으로 지원했다. 그래서 아베 정권이 탄생하면 한·일관계는 더욱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日기업, 총리 신사참배 반대의견 압도적
일본 주요기업의 절반 이상이 고이즈미 일본 총리의 재임 중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반대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일본 마이니치신문이 158개 주요기업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응답한 77개 기업 가운데 44개 기업이 고이즈미 총리가 재임 중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자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또 8월 15일 참배에 찬성한다는 기업은 한 곳 뿐이었으며 9개 회사는 다른 날을 골라 참배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차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36개 기업이 자숙해야 한다고 응답한 반면 참배해야 한다는 기업은 3곳뿐이었고 다른 수단을 강구한 뒤 참배해야 한다는 기업이 17곳으로 총리의 신사참배에 반대하는 기업이 압도적이었다.
한편 차기 총리에 적합한 정치인과 관련한 조사에서는 대북 강경정책을 주도하고 있는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라는 기업이 37개 사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아베 장관을 차기 총리감으로 꼽은 37개 기업 중에서도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기업은 11곳뿐이었으며 16개 기업은 신사참배를 자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