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외국사례 분석

2006-08-06     글/ 이종철 기자
한·미 FTA 3차 협상 앞두고 해외 사례 ‘시끌’
정부 “경제지표 모두 상승” 반대파 “노동환경 악화될 뿐” 대치
한미 양국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위한 제3차 협상을 9월 4일 이후 개시하기로 했다. 2차 협상이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에 대한 미국의 불만 제기로 파행 양상까지 빚어진데 따라 3차 협상도 난항이 예상된다. 핵심 쟁점들도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의 생각을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품목별 개방안(양허안)을 놓고 본격적인 이익 챙기기에 나섬에 따라 협상 양상은 더욱 복잡하고 치열해질 전망이다. 그 와중에 국내에서는 FTA를 둘러싼 다양한 논란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기존 FTA를 체결한 국가의 경제지표에 대한 설전이다.



미국은 2차 협상 둘째 날인 지난 11일 의약품·의료기기 작업반 회의에서 우리 측의 건강보험 약가 책정 적정화 방안을 듣다가 일방적으로 협상장을 떠났다. 이어 다음날로 예정돼있던 작업반 회의도 취소시켰으며 또 13일로 잡혔던 무역구제와 서비스 등 2개 분과 회의도 불참하면서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미국측이 문제를 삼은 부분은 건강보험 약가 책정 방안의 ‘포지티브 시스템’(선별목록)으로 이는 효능을 인정받은 신약이라고 해도 모두 건강보험 적용대상에 포함시키지 않고 가격 대비 효과가 우수한 의약품만 선별해 등재하는 방식이다. 이와 관련, 정부는 최근 건강보험 약제비 적정화 추진방안을 발표해 오는 9월부터 포지티브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는 허가된 의약품을 대부분 건강보험 대상에 포함시키는 네거티브 시스템이 시행돼왔다.
미국은 오는 9월로 예정된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의 시행 일정을 취소하고 대체 방안을 협의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측 김종훈 수석대표는 “정부의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 추진 입장은 확고하다”고 전제한 뒤 “기본적으로는 포지티브 시스템이 신약에 불리하다는 오해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해를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울러 포지티브 시스템을 구현하는 과정에는 많은 요소가 담겨있고 포지티브 리스트 목록 평가 방식 등은 협상에서 정할 수 있다고 밝혀 기본적으로 약가책정 적정화 방안을 계속 추진하되 운용 과정의 투명성 제고 등 타협안 도출이 시도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2차 협상에서 미국이 강력 반발한 의약품 문제는 향후 양측이 원만한 타협점을 찾지 못한다면 한미 FTA의 진로에 큰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미해결된 핵심 쟁점 수두룩
이밖에 농산물, 의약품, 개성공단 생산제품 원산지 등 핵심 쟁점들은 양측 입장이 좁혀지지 않아 3차 협상 때도 팽팽히 맞서는 양상이 예상된다.
농산물의 경우 우리 측은 단기, 중기, 장기, 기타 등 5단계 방식의 개방안 틀을 2차 협상 때 제안하면서 장기를 한-칠레 FTA때 적용된 수준(16년)으로 제시했으나 미국 측은 상품분야처럼 기타 부문이외에는 최장 10년 수준으로 제한할 것을 주장,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아울러 농산물 분야에서는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의 발동 요건, 국영무역의 투명성 제고 문제 등을 둘러싸고 양측 이견이 여전하다.
섬유는 우리 측이 5년 이내 관세 철폐를 주장하면서 공세를 폈으나 미국이 자국 기업 보호를 위해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개성공단 생산제품에 대한 한국산 원산지 인정문제도 양측 협상단이 맞서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는 다른 FTA에서 역외 가공에 대한 특례 인정 사례가 있었음을 제시하면서 구체적인 방식을 제시했으나 미국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양국 정상회담 등 정치적인 통로를 통한 해결이 시도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시하고 있다.
자동차의 경우는 배기량 기준 자동차세 과세, 자동차 표준이나 소비자 인식 등에 대해 미국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개방안 틀 단계의 협상이 양측 협상단간의 탐색전이라면 서로의 생각을 담은 개방안을 까놓고 벌이는 협상은 진검승부가 될 것으로 보인다.
관세 감축을 둘러싸고는 서로 구체적인 품목을 놓고 요구사항을 제기하는 단계로 진입한다. 양측은 8월 중순 상품, 섬유, 농산물 분야의 개방안을 서로 교환한 뒤 오는 9월 4일 이후 미국에서 열리는 3차 협상장에서 본격적으로 붙게 된다.
결국 상호 개방안에 대해 추가 요구를 제시하면서 공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이번 2차 협상기간에 교환된 서비스·투자 유보 안에 대해서는 3차 협상 전에 추가 요구사항도 서로 교환할 예정이어서 협상장에서는 구체적으로 트집을 잡고 회유하고 상처를 입히는 힘겨루기 양상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김종훈 수석대표는 “미측의 서비스·투자 유보안은 기존 FTA 때 제시한 것과 유사한 내용으로 비교적 높은 수준의 개방안으로 평가 된다”며 “우리측의 유보안은 대단히 보수적인 개방 내용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입장에서는 이 부분도 문제를 삼을 것으로 예상된다.

멕시코 주요경제지표 놓고 논란중
한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앞두고 지난 94년 미국·캐나다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를 체결한 멕시코의 사례가 FTA 반대론자들의 논거로 등장하면서 여론이 FTA반대로 모이는 듯 하자 재정경제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이 적극 방어에 나서고 있다.
재경부와 KDI의 반론의 핵심은 NAFTA 체결 후 멕시코의 미국 시장 점유율과 국내총생산 등이 급증했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재경부와 KDI는 NAFTA체결 이후 멕시코 사례보도와 관련해 세계은행(WB),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 보고서를 근거로 NAFTA체결 이후 멕시코의 실질 GDP성장률, 외국인투자 및 대미 수출 등 경제지표가 모두 상승했다고 밝혔다.
재경부와 KDI에 따르면 NAFTA 발효 이후 멕시코의 실질 GDP성장률은 대규모 외국인투자가 유입되면서 수출입이 크게 늘어 체결 이전(1991∼1993년) 3.2% 수준에서 체결 이후(1996년~2000년) 5.4%로 증가했다.
폐소화 위기가 닥친 1995년( -6.2%)과 2001∼2003년 ‘9·11 테러’의 영향으로 미국경기가 침체되면서 실질 GDP가 0.63%에 머무는 등 성장세가 위축됐으나 최근 다시 4.2%수준을 회복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KDI는 멕시코의 미국시장 점유율 승상을 주목하고 있다. 멕시코의 대미 시장 점유율은 NAFTA 체결전인 93년에는 6.87%로 일본의 18.5%에 비해 크게 낮았다. 그러나 NAFTA체결후 멕시코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94년 7.46%에서 98년 10.38%, 2000년 11.16%, 2005년 10.17%로 높아졌다. 이 기간 중 일본은 18%에서 13.3%, 12%, 8.3%로 줄곧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같은 기간 중 한국 상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겨우 2.9%에서 3%선을 오르락내리락하다 2.6%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중국산 제품의 미국 시장 점유율은 지난 93년 5.4%에서 14.6%로 크게 높아졌다.
일본산과 한국산 제품이 차지하고 있던 미국 시장을 멕시코와 중국산 제품이 치고 들어간 셈이다. 아울러 외국인투자도 멕시코로 급증했다. 멕시코의 저임금과 NAFTA 원산지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 소형자동차, 자동차부품, 산업용기계 등 제조업을 중심으로 NAFTA 이전 연평균 40억 달러 수준에서 152억 달러 수준으로 급증했고, 예상외로 마킬라도라(보세가공업체)에 외국인 투자가 확대되면서 고용과 수출액이 각각 2배와 5배 이상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FTA 반대론자들은 NAFTA체결 이후 10년 멕시코의 실업률은 9.7%에서 15.1%로 증가했고, 제조업 노동생산성이 60% 증가한 반면, 실질임금은 최고 80%까지 떨어졌다며 노동환경이 악화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최근 방송사들을 중심으로 미국과 NAFTA를 체결한 뒤 빈곤층의 증가와 양극화 문제 등 멕시코가 사회·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하자 FTA 관련 논평을 자제했던 청와대가 언론이 멕시코 사례를 왜곡보도, 국민여론을 오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백만 청와대 홍보수석은 지난 7월 13일 청와대 브리핑을 통해 “멕시코의 양극화와 중소기업의 대량부도, 대량실업이 NAFTA로 인한 것이라기보다는 95년 폐소화 위기에 따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수석은 “언론이 멕시코의 사례를 보도하면서 폐소화위기를 언급하지 않고 현재 멕시코 경제상황을 NAFTA탓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전형적인 편파보도”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미국과 FTA 맺은 외국의 사례
미국·캐나다·멕시코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나프타)을 체결한지 12년이 지난 지금 멕시코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을까. 나프타발효 직후 멕시코에서는 실업률이 낮아지고 외국인 직접투자(FDI)가 3배가량 폭증했다. 미국과의 교역량도 1993년에 비해 약 180% 정도 늘었다. 각종 거시 경제지표는 멕시코가 미국과 담을 허문 뒤 매력적인 투자처로 비쳐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화려했던 초기 실적은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외국 자본은 중국이라는 더 큰 시장으로 빠져나가고 있고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농민들은 고향을 버리고 도시로 떠나거나 미국 국경을 넘고 있다.
나프타는 지난 7월 2일 치러진 멕시코 대선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였다. 집권 국민행동당(PAN)의 펠리페 칼데론 후보에 맞선 좌파 민주혁명당(PRD)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후보는 미국과 농업 부문을 재협상하겠다고 공약했다.
유권자의 표심은 정확히 반으로 나뉘었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중산층이 칼데론 후보를 밀었고 농민, 저임금 노동자 등 빈곤층은 오브라도르 후보에게 투표했다. 두 후보간 격차는 고작 0.57%포인트. 양극화의 길을 걷고 있는 멕시코의 오늘을 투영한 듯한 결과다.
농업부문 재협상은 새삼스러운 이야기가 아니다. 2003년 감자·밀·사과·양파 등 21개 농산품에 대한 관세 철폐를 앞두고 수도 멕시코시티에선 24개주에서 올라 온 농민들이 농업 조항의 효력 동결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이들이 “나프타는 곧 죽음”이라고 외쳤던 까닭은 각종 통계에서 드러난다. 나프타 발효 이후 2002년까지 멕시코 국내총생산(GDP) 중 농업 부문의 비중은 7.3%에서 약 5.0%로 떨어졌다. 멕시코 국립자치대학 연구에 따르면 농업을 포기하고 도시 빈민으로 전락하거나 미국으로 밀입국한 인구는 1천5백만여 명에 달한다.
2008년에는 멕시코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인 옥수수와 콩의 관세가 철폐된다. 옥수수 수입이 이미 112% 증가한 상황에서 이는 3백만 멕시코 농민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수십만 명의 농민·노동자들이 오브라도르의 대선 패배에 쉽게 승복하지 못하는 이유다.


미국에 종속된 멕시코의 경제시장
당초 멕시코가 미국과 나프타 협상을 시작한 주목적은 단순한 시장 개방이 아니었다. 85년부터 시작된 무역 자유화 정책으로 멕시코 시장은 상당 부분 개방된 상태였다. 카를로스 살리나스 당시 대통령은 외국인 직접투자(FDI) 유치를 슬로건을 내걸었다. 나프타를 맺을 경우 미국 시장에 진입하기를 바라는 외국 자본까지 멕시코로 끌어들일 수 있어 경제성장이 가속화된다는 논리였다.
실제 94년 나프타 발효 이후 FDI는 급증했다. 93년 43억8천9백만 달러였던 FDI는 94년 1백50억6천6백만 달러로 1년 사이 3배 이상 증가했다. 이중 대부분이 미국 자본이다. 94년에는 전체 FDI의 46%, 2001년엔 78%를 차지했다.
외국 자본이 국경 근처 수출품 가공·조립 공장인 ‘마킬라도라’에 지사를 열면서 일자리가 창출됐으나 임금은 낮았다. 98년 미국 노동자의 최저임금이 1시간당 5.15달러였던 반면 이곳 노동자는 하루에 3.4달러를 받았다. 그나마 2000년대 초반부터 멕시코에 진출했던 다국적기업들은 생산비가 저렴한 중국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2002년 한해동안만 공장 5,000여개가 문을 닫았고 2000년 이후 25만여 명의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멕시코 수출입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절대적 위상도 멕시코 경제를 외부 충격에 취약하게 만들고 있다. 80년 멕시코의 대미 수출 비중 64%였지만 2000년 89%까지 증가했다. 같은 기간 수입도 61%에서 73%로 늘었다. 대미 수출은 점점 늘어 2006년 현재 90%를 돌파한 상태다.
멕시코 경제는 사실상 미국에 종속됐다. 미국 경기가 부진해 수요가 줄면 멕시코의 수출 물량도 함께 줄어든다. 이는 다시 제조업의 붕괴와 실업으로 이어진다. HSBC 수석 이코노미스트 조나단 히스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대미 의존도 심화 현상이 궁극적으로 멕시코 경제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은행은 지난 2003년 나프타 10년을 점검하는 보고서에서 나프타가 멕시코 경제에 미친 이득이 미미하다고 결론 내렸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증가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 나프타 가입 이전인 85년부터 단행된 개혁조치 때문이라는 것이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보고서도 나프타가 실질적인 고용증대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수출 확대로 인한 일시적인 효과는 미국 경기가 침체되고 값싼 중국 제품과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이 때문에 지난 10년간 미국과 멕시코의 소득격차는 더욱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 것이다.
2002년 미국 워싱턴 소재 우드로윌슨 센터는 나프타가 미친 영향에 대해 멕시코인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응답자의 29%만이 나프타가 멕시코에 이득이 됐다고 답했다. 33%는 오히려 해가 됐다고 말했고 33%는 나프타 이전과 이후에 별 차이가 없다고 응답했다. 12년 전 정부가 약속했던 장밋빛 ‘멕시칸 드림’은 미국에 대한 종속만 심화시킨 채 여전히 실현되지 않은 꿈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