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도박에 빠진 연예인, 무엇이 문제인가

베팅 상한액 제한 없는데다 익명성 보장돼 중독성과 후유증 더 심각

2013-12-09     안정근 상임회장

그야말로 예능이 초토화 됐다.
방송인 이수근(38), 탁재훈(45)을 비롯해 붐(31, 본명 이민호), 토니안(35, 본명 안승호)과 신화의 앤디(32, 본명 이선호), 개그맨 양세형(28) 까지 주요 방송프로그램의 진행자로 활약하던 방송인들이 줄줄이 불법 스포츠 도박 혐의로 소환됐다. 지난달 이수근, 탁재훈으로 시작된 줄소환은 매일매일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며 메인 뉴스를 장식했다. 덕분에 지난 한 주 방송가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불법 도박 혐의에 이름을 올린 방송인은 즉각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하며 자숙을 시간을 갖겠다는 뜻을 전했다.
이번에 다수의 연예인들이 스포츠 도박을 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되면서 다시 한번 스포츠 도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높아졌다. 수억 원 혹은 수십억 원이 쉽게 오가는 불법 사설 스포츠 도박(이하 사설도박)은 합법적 스포츠토토와는 다르다. 스포츠토토는 한 번에 베팅할 수 있는 금액이 10만 원으로 한정돼 있고 베팅 횟수도 하루 최대 6번이다. 하지만 사설도박은 베팅 금액과 횟수 제한이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 번 발을 들인 사람들은 쉽게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합법적 스포츠토토가 있음에도 사설도박에 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스포츠토토는 배당률 자체가 너무 낮기 때문. 아무리 결과가 뻔해 보이는 경기라도 배당률이 1.2배 혹은 1.25배 등에 불과하다면 누가 돈을 걸겠나. 스포츠토토의 배당률은 베팅하는 사람을 끌어들일 매력 요소가 전혀 없다. 물론 이는 외국 베팅 사이트 역시 마찬가지다. 하지만 외국은 수십 개 내지 수백 개의 베팅사들이 있고 이들이 조금씩 다르게 배당률을 책정해 사용자들에게 선택의 폭이 넓다. 하지만 한국은 스포츠토토만 합법이라 선택이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사설도박으로 몰린다.
연예인들이 무더기로 적발된 것은 이들이 주로 함께 군복무를 하던 시절이나 동호회 모임을 통해 전파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들은 이 같은 공통분모가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문제는 이들이 억대 이상의 돈을 거는 경우가 다반사인 데다 이 같은 규모가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에 대한 통계조차 낼 수 없다는 점이다. 스포츠토토 역시 다양한 배당 조합을 만들어 진화하지만 사설도박 역시 진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번에 연예인들이 적발된 예에서 보듯 휴대전화를 이용해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베팅 정보를 제공하고 베팅은 물론 배당금의 이동을 위해 타인 명의의 계좌까지 개설했을 정도다.
최근 한국형사정책연구원 등에 따르면 국내 불법 스포츠 도박 시장 규모만 연간 13조∼39조 원으로, 합법인 스포츠토토 시장(2조 원)의 20배 가까운 규모다. 특히 인터넷 등을 통한 온라인 도박은 24시간 베팅에, 베팅 상한액도 제한이 없는데다 익명성이 보장돼 중독성과 후유증은 더 심각하다. 온라인 도박 시장 규모는 이미 전체 불법 도박 시장의 30% 이상으로 커졌다.
더 큰 문제는 이번에 적발된 연예인 대부분이 10대(代)에 인기 있는 인물들이어서 청소년층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당국의 단속은 겉돌고 있다. 불법 도박 사이트는 수시로 주소를 바꾸거나 해외 서버를 이용하고, 베팅 관리도 대포통장으로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기강을 크게 해치고, 미래 세대에 미치는 악영향이 크다는 점에서 도박장 개설자는 물론 도박 가담자까지 행정력을 총동원해 추적, 엄단할 필요가 있다. 이참에 차라리 특정 업체가 베팅을 독점하는 현재 방식 대신 외국처럼 복수의 베팅 업체들을 합법화해 투명하게 운영하도록 관리하고 업체들에는 수익에 상응하는 세금을 철저하게 징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