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학교폭력
2006-07-04 글/ 이현지 기자
학교폭력 피해신고 급증…최근 두달새 1,683건
교내 폭력을 당한 피해 학생의 신고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6월 5일 경찰청에 따르면 3월 13일∼5월 말 학교폭력 자진신고 기간 접수된 피해 학생의 신고건수는 1,68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86건에 비해 114.1% 증가했다. 경찰청은 이에 대해 정부 차원의 학교폭력 근절 대책 추진과 홍보활동으로 그동안 신고를 기피하던 피해 학생이 경미한 피해를 입어도 적극 신고했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피해 학생의 학교폭력 신고가 2배 이상 는 것과 달리 가해 학생의 자진신고는 702건으로 40.3% 줄었다. 교내 폭력서클 해체건수는 190개로 지난해(752개)의 4분의 1 수준으로 감소했다.
교내 폭력서클이 최근 이처럼 급격히 해체되면서 조직적 학교폭력이 급감, 학교폭력 건당 가해 학생수는 지난해 5.7명에서 올해 3.8명으로 감소했다. 경찰청은 “지난해 가해자로 신고된 학생 가운데 이번에 다시 가해 학생으로 신고된 학생은 1.1%인 104명에 불과했다”며 “학교폭력 가해 학생에 대한 선도활동도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이에 대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회 봉혜경 사무국장은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최근 줄어들면서 폭력 가해자가 수면 아래로 숨어든 것이지 이번 경찰 통계를 근거로 학교폭력이 줄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조폭 흉내 ‘섬뜩’
B학교 폭력이 수면하에서 여전히 심각하다. 더욱이 이들은 성인 조직폭력을 모방하는 등 조직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일부 확인돼 당국과 사회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요구된다. 지난 6월 5일 충남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 등에 따르면 중·고교생들이 같은 학교 출신이나 친한 친구들끼리 서클을 결성, 학내 다른 서클 또는 인근 학교 서클과 패싸움이나 “조직원”간 맞대결을 벌이는 등 마치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행동들을 일삼았다.
이들은 서클 이름도 지난해 크게 문제가 됐던 “일진회” 대신 자신들이 다니는 학교 명칭이나 출생연도를 조합해 만든 후 경찰 또는 학교의 단속망을 피해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는 몇 개 학교끼리 연계, 연합서클을 조직한 뒤 인터넷 등을 통해 다른 학교 서클을 불러내 싸움을 벌이는 등 조폭을 뺨치는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실제 대전 A중학교 등 3개교 불량서클 학생들은 올 초 연합서클을 조직했다. 이들은 인터넷 채팅사이트를 통해 인근 학교 서클과 공원이나 초등학교 운동장 등에서 1대 1로 5명씩 순차적으로 맞붙거나 집단 패싸움을 벌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 “다리까기”나 “다리박기”라고 불리는 우두머리(짱)끼리의 싸움을 통해 집단간 세력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학교 불량서클 내부의 폭력도 심각한 수준을 보였다. 대전 B여중 한 불량서클의 경우 2학년 선배 9명이 신고식을 명목으로 1학년생 4명을 노래방에서 집단 폭행하기도 했다. 또 대전 C중학교 불량서클도 돈 마련을 목적으로 선배들이 입던 옷이나 용품 등을 강제로 사게 했으며, 고학년 학생들이 저학년 학생에게 돈을 마련해 오라고 지시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인간 학교폭력도 여전하기는 마찬가지. 대전 D여중에 다니는 한 학생은 같은 반 친구에게 상습적으로 금품을 갈취당해 학교를 결석하기도 했다.
경찰 관계자는 “학생들의 폭력은 대부분 방과 후 학원이나 공원, PC방 등에서 이뤄진다”면서 “우려되는 점은 성인 폭력조직처럼 연합서클 등 조직화된 폭력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관계 전문가는 “요즈음 아이들은 폭력을 컴퓨터 게임이나 영화 쯤으로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학교 폭력이 상존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 폭력만을 단속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사회적으로 상존하고 있는 폭력문화를 보다 강력하게 규제하는 길만이 학생들을 폭력으로부터 구출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학교에서의 단체체벌 문제되기도
전국에서 학교폭력, 교권침해 사건이 잇따르고 있는 가운데 전남북 일부 학교에서 집단체벌, 학내분규 등 말썽이 계속되고 있다.
전북 익산 Y고의 Y(40)교사가 스승의 날 교내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학생들에게 집단체벌을 가했다. Y교사는 지난 5월 16일 점심시간에 2학년 5반과 4반 학생 38명을 운동장으로 집합시켜 엎드려뻗쳐를 시킨 후 죽도로 엉덩이를 5대씩 때렸다. 맞은 학생들은 모두 여학생이다.
이는 교사가 죽도로 엉덩이를 내려치는 체벌장면을 학생들이 휴대전화 동영상으로 찍어 유포시키면서 알려졌다. 학생들은 유 교사가 폭언과 함께 엉덩이를 때려 엄청난 수치심을 느꼈고 멍이 들었다며 적절한 조치를 호소하고 있다. 유 교사는 “스승의 날 행사는 등교일이어서 참석해야 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불참학생들을 적어오라 했지만 부실하게 적어와 교육적 차원에서 부득이하게 단체체벌을 가했다”면서 “맞은 학생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도교육청은 원칙적으로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전북 K고 3학년 1반 학생 20여명은 5월 22일 오전 영어교과 교사 교체를 요구하며 단체로 수업을 거부했다. 학생들은 지난달까지 담임이었던 S교사가 영어수업을 하려 했으나 어학실에서 학급회의를 갖고 교사 교체를 요구했다. 이는 담임인 이 교사가 지난 11일 학교 홈페이지에 학급에서 발생한 집단 괴롭힘 사건에 대해 학교 측의 조치가 미흡했다고 비판하면서 불거졌다. 이 교사는 같은 반 학생 2명이 한명의 코에 휴지를 말아 집어넣고 휴대전화로 촬영하는 등 인권유린행위를 자행했으나 학교 측이 안일하게 대처했다고 주장했다.
이 학교 사태는 동료 교사 간 맞고소로 이어졌다. 이 학교 Y교사와 K교사는 S교사의 담임교체 문제에 대해 말다툼을 벌이다 서로 김제경찰서에 맞고소했다. S교사는 지난 6월 4일 학교폭력사건에 책임을 지고 진학부장과 담임보직 사의를 표명했다.
한편 이 과정에서 학교운영위원장 P씨가 지난 5월 19일 41명의 교사 전체를 모아놓고 질책하면서 “S교사는 옷을 벗어라”고 발언, 교권침해 논란을 빚고 있다.
지난 5월 23일 여수 J여고 학생들과 학부모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이 학교 K교사가 디자인실에서 4교시 사진수업을 받던 3학년 8반 학생 33명 가운데 7명을 교실 안에 감금한 채 교실 문을 잠그고 나가버렸다. 감금당한 학생들은 점심시간이 지나도록 K교사가 문을 열어주지 않자 20여분 만에 안쪽에서 잠긴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려다 K교사에게 들켜 교무실 복도에서 벌을 받았다. K교사는 이후 학생들과 동료 교사들에게 사과를 하고 사유서와 각서를 제출했다.
‘폭력없는 학교’ 피해부모가 발벗고 나서
한편, 학교폭력으로 피해를 본 학부모들이 학교폭력 예방 단체를 만들었다. 회원 300명 중에는 학교폭력에 자녀를 잃은 부모도, 장기간 정신과 치료를 받는 피해 학생의 부모도 있었다. 피해 정도는 다르지만 단체를 만든 이들의 마음은 하나였다. 더 이상 학교에서 자신의 자녀들과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권이 침해되는 현실에서도 왕따와 집단구타, 금품갈취가 없는 학교를 만들고자 하는 염원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했다.
김모(43) 씨는 행사장에 모습을 나타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 최모(15) 양이 달라진 것을 깨달은 것은 지난해 7월쯤. 활달하던 모습은 간데없고 불안한 모습을 자주 보이다 자신의 지갑에서 돈이 없어진 것을 알게 됐다. 김씨는 지금도 그때 딸을 다그치기만 한 것이 가슴에 한으로 남아 있다.
최양은 중학교 2학년이던 2004년 가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1년 가까이 동급생들에게 돈을 빼앗겼다. 돈이 없으면 집단구타를 당했다. 1만원을 뺏은 친구들은 다음번에는 2만원을 요구했다. 급식비까지 뺏겨 물로 허기를 채웠다. 부모 지갑을 뒤지다가 급기야는 전단 아르바이트까지 했다.
최양 부모는 달라진 딸에게 이유를 물었고 딸은 어느날 눈물로 그동안의 고통을 전했다. 1년간 그렇게 당하고 살았다는 딸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김씨의 심장은 멎는 듯했다. 최양은 지금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
김씨는 가해 학생과, 관리를 소홀히 한 당시 담임교사, 서울시교육청을 상대로 힘겨운 소송을 진행 중이다. 김씨는 “소송을 하는 이유는 제 딸을 위해서가 아니라 제 딸과 같은 피해자를 막기 위해서”라며 힘겨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난해 부산 모 중학교 교실에서 벌어진 학교폭력으로 아들을 잃은 부모는 단체 설립 얘기를 전해 듣고 격려화환을 보냈다. 지난해 10월 충북 충주 모 여고 2학년에 다니다 또래 학생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한 뒤 가출해 경기도 시흥의 한 아파트 19층에서 투신해 숨진 이모(17) 양의 부모도 참여의사를 전해왔다.
이같은 사연을 가슴에 안고 있는 학교폭력 피해 학부모들은 23일 서울 방배동 방배유스센터에서 사단법인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이하 학가협)를 결성했다. 내 아이만 괜찮으면 된다는 위험한 생각이 제2,제3의 심각한 폭력을 부른다는 생각에서다.
학가협은 학교폭력 근절 캠페인을 전개하고 피해자들에 대한 법률·의료상담 등을 지원할 계획이다. 또 홈페이지(www.uri-i.or.kr)를 통해 학교폭력 온라인 상담을 진행하고 피해 부모들의 심성치료 활동도 펼친다. 학가협 관계자는 “학교폭력으로 인한 고통이 없는 학교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