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 떠도는 ‘반기문 大權대망론’ 정치권 흔든다
대권과 관련해 심상찮은 태도 변화…여야 모두에서 러브콜 가능성
반기문 총장의 리더십은 온화하고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리더십으로 대변된다.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서번트 리더십이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 상대의 말을 경청하고, 식을 줄 모르는 열정과 추진력으로 일에 매진하면서도 늘 상대를 배려하는 외유내강 형 리더십을 보여 왔다는 평가다. 최근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건으로 정국이 다소 혼미한 가운데, ‘2018년 반기문 대권(大權) 대망론(大望論)’이 정가 안팎에서 모락모락 또다시 피어오르고 있다.
UN 사무총장은 흔히 오케스트라 지휘자에 비유된다. 놀랍게도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비슷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지휘자의 역할은 다양한 연주자들을 인도해 하나의 협주된 음률을 내도록 이끄는 것이다. 비록 악기를 연주하지는 않지만, 악보대로 각 연주자들이 최대한 역량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UN 사무총장의 역할도 그와 같다. 자신은 돈이나 자원, 군대와 같은 ‘악기’가 없지만, 유엔헌장이라는 ‘악보’에 따라 ‘유엔 회원국’이라는 ‘연주자’들의 연주를 돕는다. 193개 회원국이 있기 때문에 그만큼 다양한 악기의 소리, 즉 각국의 다양한 이해관계를 유엔의 목표인 세계평화 유지와 안보를 위해 조화로운 음색으로 창출해내야 하는 것이 사무총장의 주요 역할인 것이다. 현재 ‘UN’이라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바로 반기문 총장이다.
반기문 총장은 특유의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국제사회의 중재자이자, 조정자, 유엔 개혁의 지휘자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리더십을 일궈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 당선 당시 쇼맨십이나 퍼포먼스에 강했던 전임 사무총장들과 달리 겸손하며 조용한 리더십을 보여온 반총장을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고 비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2007년 유엔 사무총장 수락연설에서도 언급했듯 겸손하다고 해서 약속과 지도력이 결여되어 있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리더로서 표현에 있어서는 겸손했지만, 실천에 있어서는 강한 추진력을 갖고 몸소 실천해 보였으며 193개국 모두의 지지를 받으며 유엔사무총장 연임 확정으로 증명해 보였다. 기후변화의 이슈화와 분쟁 조정,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 및 얽히고설킨 각 나라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해 공감대를 이끌어 냈다.
특히, 코트디부아르 대선과 관련한 내전 사태에 적극 개입하고 ‘아랍의 봄’으로 일컬어지는 중동·북아프리카 민주화 사태를 맞아 시민들 편에 서서 단호한 목소리를 내는 등 그동안의 성과를 통해 ‘소극적’이라는 초기의 비판은 긍정적으로 바뀌었고, 갈등 중재자로서 유엔의 위상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 다시 불붙나
최근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 건으로 정국이 다소 혼미한 가운데, ‘2018년 반기문 대권(大權) 대망론(大望論)’이 정가 안팎에서 모락모락 또다시 피어오르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특히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의 지난 8말 공식 방한과 맞물려 이 같은 관측이 본격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다. ‘반기문 대망론’은 지난 18대 대통령 선거를 앞둔 시점에서도 정계에서 한동안 설득력 있는 카드로 제기됐었다.
정가에 잠복해 있던 ‘반기문 대망론’에 다시 불을 붙인 장본인은 민주당의 실세(實勢)이자 책사(策士)로 꼽히는 박지원 의원이다. 박지원 의원은 지난달 한 방송에 나와 반기문 UN사무총장에 대해 “본인이 원한다고 하면 상당히 경쟁력 있는 대통령 후보”라며 그의 영입 문제를 직접 끄집어냈다.
박 의원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 직전 반기문 총장의 영입을 시도했었으나 반기문 총장으로부터 “정치권에 들어올 생각이 없다”는 대답과 함께 거절당했던 일화도 털어놨다. 새누리당도 비슷한 시기, 친이(親李) 그룹을 중심으로 반기문 총장의 영입을 시도했다는 것이 정가의 공공연한 비밀이다. 특히 4년 후 19대 대선 무렵에는 이런 반기문 총장 영입 노력이 한층 활발하게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많다. 무엇보다 여야 정치권 모두에 ‘거물급 잠룡’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향후 일정도 ‘반기문 대망론(大望論)’에 힘을 실어 주는 형국이다. 2011년 연임에 성공한 반기
문 UN사무총장은 2016년 12월31일 그 임기가 끝난다. 별다른 과오 없이 임무를 마치고 한국에 금의환향(錦衣還鄕)한다면 국내에서는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질 것은 분명한 사실. 그의 임명 직후처럼 한동안 ‘반기문 신드롬’ 비슷한 ‘열풍’이 불게 될 공산이 크다. 그리고 그로부터 채 1년이 지나기 전인 2017년 12월20일, 제19대 대통령 선거가 열린다. 반기문 총장에게 대통령의 ‘꿈’이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정표인 것이다.
정부·국회 접촉 ‘광폭 행보
반기문 총장의 대망론에 더욱 불을 지핀 것인 지난 8월 5박 6일 동안의 한국 방문이 계기가 됐다. 그가 방한한 명분은 공식적으로는 ‘휴가’였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읽을 수 있다. 반기문 총장은 귀국 바로 다음 날 청와대를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을 접견한 뒤 한국 정부의 ‘비무장지대(DMZ) 세계 평화공원 조성’과 관련해 “유엔 차원에서 어떻게 도울지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강창희 국회의장 및 정홍원 국무총리와의 면담, 윤병세 외교부 장관 만찬 등의 일정을 소화했고, 자신의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의 한국어판도 방한 기간에 맞춰 출간했다. 방한 4일차인 지난달 25일에는 서울 한 호텔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인 영남대 최외출 부총장을 만나 새마을운동의 세계화를 논의했다. 최외출 부총장은 대선 당시 박근혜 후보 캠프에서 기획조정특보로 일했으며 지금 정부에서도 그는 ‘숨은 실세(實勢)’로 통한다.
하루 뒤인 26일 반기문 총장은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自請)해 ‘개성공단 운영 정상화 합의’,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협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방북계획’, ‘동북아 3국의 긴장관계 문제’, ‘일본의 역사인식 문제’ 등에 대해서도 발언을 쏟아냈다. 휴가 중인 국제기구 수장(首長)으로서는 평범하게 만은 볼 수 없는 파격적인 행보이다.
반총장은 유정복 행정안전부 장관과도 만났다. 흥미로운 것은 반기문 UN사무총장 본인의 태도도 예전과는 달라졌다는 점이다. 그는 8월26일 당일 기자회견에서 “(한국에서) 대선 출마 제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대변인이 답변하세요”라고 답했다. 이전까지는 분명하게 “출마하지 않는다”고 선(線)을 그었었다.
반기문 총장이 어느 정당에 더 기울어 있는지도 관심사다. 지난 대선 당시에는 여야 모두가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었다. 이번은 다른 기류가 감지된다. 3년 전 그의 입당 의사를 타진했던 박지원 의원은 8월 인터뷰에서 “만약에 정치권으로 온다면 그분이 과연 무슨 당을 선택할 것인지도 의문”이라며 “섣불리 말하기 곤란하다”고 말했다.
반기문 총장은 2009년 비공식 방한 때에는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하면서 야권의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었다. 하지만 최근 발간한 대담집 ‘반기문과의 대화’에서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미 정상회담 실패를 거론하며 “당시 직업 외교관으로서의 생명이 끝날 뻔했다”고 했다.
반대로 박근혜 정부와는 호흡을 곧잘 맞추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기문 총장은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당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새마을 운동 보급에 유엔이 적극적으로 협력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고, 그 다음 달 뉴욕시 할렘 고교 졸업식에 초청되자 곧바로 연설에서 새마을 운동을 거론했다. 이번 방한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이례적으로 청와대 본관 현관까지 나아가 반 총장을 영접하기도 했다.
세계 대통령, ‘반기문 바람’불까
현재 반 총장에 대한 관심은 여야를 막론하고 뜨겁다. 지난 대선 당시 ‘반기문 영입설’을 흘릴 정도로 호감을 나타냈던 새누리당 친이계는 마땅한 대권 주자를 찾지 못해 반 총장을 그 대안으로 거론했다.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대권 후보다.
친이계 한 인사는 “반 총장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럽다. 그러나 정치권에선 진작부터 대권 주자로 점찍고, ‘세계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논리로 영입을 준비하려 했다”며 “정치인의 색깔이 덜한 사람이고, 정치적 성향이 새누리당과 맞다. 그리고 정치적 이력, 경륜을 봤을 때 이만한 대권 후보는 없다. 때문에 반 총장은 ‘지금도 살아있는 대권 후보’다”라고 말했다.
이어 “야당에서는 안철수 의원, 문재인 의원, 안희정 지사 등의 대권 후보주자들이 많은 반면, 여당은 여전히 안개 속이다.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있지만 신선하지 못할 뿐 아니라 안 의원과 대적했을 때 승산이 없다”며 “그리고 차기 대권 후보로 거론되는 인사들은 대부분 박 대통령과 적을 두거나 경쟁관계에 있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새누리당의 잠재적 대권 후보로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몽준 전 대표, 김무성 의원, 안대희 전 대법관, 김태호 의원, 김황식 전 총리 등이 거론되고 있다. 하나같이 친이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청와대에선 ‘포스트 박근혜’로 특정 인물이 주목받는 것을 싫어한다. 국정운영에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거론 인물들이 친이계 인사들인 만큼 비박 내지 반박 진영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견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친박계 대권 후보로 불리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등이 있으나 이들에 비해 약하다. 이 때문에 친박 측근그룹과 청와대에서 반 총장 이름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반 총장 본인은 “대권은 전혀 생각 없다”고 말하지만 정치권은 대체로 ‘아직까지 그렇게 단정하기는 이르다’는 게 중론이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대권 출마를 할 당시 ‘안철수 바람’이 불었을 때 그가 정치권에 때가 묻지 않았다는 점도 한몫했다. 반 총장도 정치인의 색깔이 덜하고, 세계 대통령이라는 점에서 ‘반기문 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한다. 어쩌면 더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일각의 중론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이 반 총장을 영입하려 했다는 것과 박 대통령이 반 총장을 차기 대권 후보로 밀어줄 수 있다는 점은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반기문 카드’ 회의적 시각도 만만찮아
현재 새누리당에서 ‘포스트 박근혜’로 거론되는 이들은 박 대통령에게 그리 달가운 인물들이 아니다. 친이계 일색이라는 점 뿐 아니라 임기 초부터 당내 주자들이 대권 행보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불쾌해 하고 있다. 더구나 역대 정권에서도 대통령들이 차기 대권에 적극 개입해왔던 만큼 박 대통령도 차기 대권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친박계에서 마땅한 후보가 없는 박 대통령으로서는 세계의 대통령으로 불리는 반 총장이 매력적일 수밖에 없다.
특히 안철수 의원이 차기 대권 주자로 유력한 만큼 이를 견제할 세력으로는 ‘반기문 카드’가 가장 위력적이라는 게 당·청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재로선 반 총장의 영입설은 하나의 설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적 예상이지만 2017년 대선 정국과 안 의원을 대적할 만한 당내 대권 후보가 없는 상황에선 외부 인사인 반 총장을 영입해 대권 후보로 내세우는 구상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분위기다.
이는 박 대통령이 여전히 ‘혼자 대통령이 됐다’는 인식이 강할 뿐 아니라 당을 바라보는 인사들에 대해 비관적이라는 점에서 ‘박근혜, 반기문 차기 대권 지원설’이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다. 하지만 이런 ‘정치 가공적 해석’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반론도 존재한다. 우선 반 총장의 대권 출마 의지에 대한 의지 여부가 중요하다. 그리고 반 총장 자신이 ‘세계 대통령’이라는 명예직이 아니라 ‘이전투구, 복마전’으로 대변되는, 골치 아픈 한국 대통령 자리를 맡으려 할지에 대해서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반 총장이 국제기구 수장으로 무난하게 임기를 마친다고 해서 곧장 한국의 대통령 유력 후보로, 즉 정치인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장담하기는 힘들다는 관측도 만만찮다. 무엇보다도 평생을 직업 공무원으로 보내온 반기문 총장의 개인적 성품과 자질이 많은 사람들을 설득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해야 하는 대중 정치인의 그것과는 거리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 총장이 ‘갈등 조정’이라는 측면에서 국제적으로 높은 점수를 얻지 못한 것도 약점으로 지적된다. 다르푸르 사태에서부터 최근의 시리아 사태까지 반 총장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맨사 파워 유엔주재 미국 대사는 과거 사무총장의 영문 직함(Secretary General)을 언급하면서 “반기문 총장은 장군(General)보다는 비서(Secretary)에 훨씬 더 가깝다”고 꼬집었다. 이와 함께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임기가 끝나고 대선 정국이 시작되는 2017년에는 반 총장이 73세가 된다는 점도 부담이다.
2017년 12월20일 제19대 대통령 선거일까지 아직 갈 길은 멀다. 분명한 것은 현직 대통령으로 가장 신경 쓰이는 것 중의 하나가 후임 대통령이고 보면, ‘반기문 카드’는 분명 ‘포스트 박근혜’를 잇는 최고의 호재일 수 있다. 독자적인 세력을 거느리지 않은 ‘후임자’가 기꺼울 수 있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