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생과 몰락의 기로에 선 통합진보당 ‘이정희號’
정치적 생사의 갈림길… 당 존폐여부 둘러싼 후폭풍 드셀 듯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같은 당 이석기 의원 구하기에 올인 했지만 형국을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인 모습이다. 그간 이 대표는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의원을 구원하기 위해 황급히 단식농성과 녹취록 발언 해명으로 불을 꺼보려 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쉽게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이석기 의원과 정치적 명운을 함께할 것으로 보이는 이정희 대표는 정치적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됐다. 만약 내란음모 혐의가 사실이라면 당의 존폐여부를 둘러싼 후폭풍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들만의 논쟁과 다툼으로 아까운 세월을 보내는 진보, 자기주장만 하는 경직성과 진보라는 우월성에 갇혀 대중성과 민심에 다가가지 못하는 진보는 시대적 요구와 국민적 갈망을 채워줄 수 없다. 새로운 진보 정치는 땀 냄새와 흙냄새 나는 민중의 애환이 솟아나는 노동 현장, 농민 현장, 빈민 현장에서 씨를 뿌려야 한다.”
정확히 1년 전, 강기갑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 전 대표가 분당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대표직 사퇴와 탈당을 선언할 당시 통진당과 진보 세력에 눈물로 호소한 말이다. 그러나 그의 간곡한 부탁은 ‘이석기 사태’가 터지면서 결국 울림 없는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통합진보당이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리며 지난해 2월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에 처했다. 19대 총선을 앞두고 당내 비례대표 경선 부정을 둘러싼 내부 갈등으로 지난해 9월 ‘분당사태’를 겪은 지 11개월 만에 당의 존망이 흔들리는 지경이 됐다. 더군다나 당의 ‘수장’인 이정희 대표가 또다시 정치적 생사의 갈림길에 놓였다.
이정희의 자충수
40대 여성 당대표로 진보 진영의 대표 정치인으로 떠오른 이정희 대표. 18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3번으로 국회에 입성한 뒤 그는 서울 용산참사 현장, 쌍용차 노조파업,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등 우리 사회의 약자들이 호명할 때마다 현장으로 달려갔다. 이해찬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은 이런 그를 두고 “이 시대에 보기 드물게 진정성이 있는 정치인”이라고 상찬했다. 이랬던 이 대표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이석기 의원 사태로 그야말로 궁지에 몰렸기 때문이다.
앞서 그는 사건이 터진 다음날인 지난 8월29일 전국 16개 시도당과 177개 지역위원회 모두 비상체제로 전환하고, 시시때때로 긴급 기자회견을 여는 것은 물론 9월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이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반대하는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앞서 단식농성 중인 가운데에서도 이 대표는 내란음모 혐의를 받는 이석기 의원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열고 ‘이석기 녹취록’에 대해 해명했다. 이 대표가 해명하겠다고 나선 녹취록은 지난 5월12일 이석기 의원 등이 참석한 회합 내용을 담은 것. 이 대표는 총기 탈취와 시설파괴 등의 발언이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녹취록에 대해서도 “녹취된 분반토론은 7개 조 가운데 1개 조, 130여 명 가운데 20여 명가량의 대화에 지나지 않아, 녹취록만 가지고는 130명의 참가자들이 나눈 대화 내용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며 “다른 6개 분반 대화의 내용을 확인했더니, 총기를 탈취하거나 중요시설을 파괴하자는 의지를 가진 발언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석기 의원에게는 본인이 직접 입에 담지도 않은 총기 탈취와 시설파괴를 지시했다는 허위보도를 쏟아 붓고 130여 명 참가자들 가운데 한두 사람의 말의 책임을 이석기 의원에게 지워 이들 모두에게 내란음모죄를 뒤집어씌우는 것은, 정치적 경쟁자를 말 한마디로 역모로 몰아 삼대를 멸하는 TV 사극의 익숙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서도 “실행하지 않는 이상 머릿속에 들어있는 생각만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근대 형법의 대원칙”이라며 “특별히 내란죄에 대해서는 음모도 처벌하지만, 내란음모죄가 되려면 그가 생각하고 타인과 합의한 것이 몇몇이 총을 사용하거나 시설을 파괴하는 것을 넘어 나라를 뒤엎을 만한 쿠데타 수준에 달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장난감 총 개조하는 정도에 머무른다면, 총기탈취 등의 말을 한 사람에 대해서도 내란음모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모든 노력은 내란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되기 전까지의 상황이었다.
정치적 명운 건 싸움
국회는 9월4일 ‘내란예비음모’ 혐의를 받고 있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을 처리했다. 찬성률은 89%로 재석의원 289명 중 찬성 258명, 반대 14명 기권 11명, 무효 6명으로 가결됐다. 이날 여야는 이 의원의 체포동의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를 열고 무기명 투표로 진행했다. 새누리당뿐 아니라 민주당과 정의당도 ‘당론 찬성’으로 체포동의안을 처리하기로 입장을 모았다. 결국 이정희 대표의 그간 노력은 사실상 숲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 대표가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정치적 명운’을 건 사건은 이번이 세 번째다. 앞서 두 차례를 더 겪었다. 당초 “여자 대통령감이다”, “가슴과 영혼으로 일하는 느낌을 준다. 13대 국회의 노무현 의원을 보는 듯하다” 등등 18대 의정활동과 관련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던 진보, 보수 진영이 그를 배척하기 이적까지만 이 대표는 ‘진보의 아이콘’이었다.
실제로 이 대표에게는 지금까지 ‘헌정 사상 최연소 정당대표’ ‘국회의원이 뽑은 후원하고 싶은 여성 정치인 1위(2009년)’ ‘차세대 여성리더 300인 중 1위(2010년)’ ‘트위터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인 1위(2011년)’ 등등의 수식어가 따라붙어 다녔다.
여기에 이 대표는 학력고사에서 인문계 여자 전국수석으로 서울대 법대에 입학했고, 사법고시를 거쳐 변호사를 지낸 인물로서 똑똑함과 논리적인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정도의 수재급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다만 이 대표는 두 차례 모두 ‘국민의 눈높이’에 맞춰 일을 해결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은 뒤 ‘진보의 스타’에서 ‘진보의 골칫덩이’로 전락했다. 현재 ‘이석기 사태사건’을 통해서도 동일한 얘길 듣고 있는 이 대표는 정치권서 ‘삼진아웃’이 될지도 모르는 위기에 놓였다.
특히 이 대표의 무분별한 ‘이석기 구하기’ 행보는 당이 긴급사태를 당한 보통 공당 대표가 취하는 행동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모름지기 대표라면 현 상황에서 개별 의원보다는 유권자에게 신뢰를 잃은 당 자체를 살리기 위해 대국민사과 및 해명 또는 이 의원 제명 등 당 혁신 방안에 중점을 둬야 하는데 이 대표는 이와는 반대 기조로 가고 있단 것이다.
갈등, 갈등, 또 갈등
근래 ‘이석기 사건’을 제외한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을 건 두 차례 사건은 지난 4·11 총선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발단은 이 대표 측의 여론조사 조작 의혹이었다. 당시 이 대표는 서울 관악을을 두고 김희철 민주통합당 후보와 야권 단일후보 경선을 벌인 결과, 이 대표 측 보좌진 등이 여론조사를 조작한 의혹이 드러나 문제가 됐다. 이 대표는 이 일로 인해 야권연대가 자칫 파기될 상황에 놓이자 즉각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논란의 불씨를 잠재웠다. 하지만 이는 전초전이었다. 총체적 부실·부정 선거로 드러난 총선 비례대표 경선에 대해 “상황과 이유가 어찌 됐든 가장 무거운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다면서도 즉각적인 대표직 사퇴는 거부했다. 그러고는 당 전국운영위원회에서는 “불신에 기초한 의혹만 내세울 뿐 합리적 추론도, 초보적인 사실 확인도 하지 않았다”며 경선 부정 진상조사 결과 자체를 불용했다.
이 대표의 이 같은 행보는 정파 이익의 틀에 갇힌 숙명적 한계라는 게 당 안팎의 해석이었다. 즉 이 대표를 정치권에 발탁시키고 그를 대표 인물로 키워낸 경기동부연합을 의식, 이 때문에 정치적 분기점에서 줄곧 정파의 이익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 이 대표는 해당 사건 직후 통진당 내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이 터지자 매우 예민한 입장을 보였다. 본격 사건은 이때 시작됐다. 그는 당 차원에서 꾸린 진상조사위원회에서 해당 의혹과 관련, “비례대표 경선과정은 총체적 부정·부실선거”라고 결론을 낸 데 대해 직전 사건과 달리 쉽사리 사건을 인정하지 않고, 진상조사위가 잘못 조사를 했다고 오히려 역정을 냈다. 공동대표인 심상정·노회찬·조준호는 이 대표와 대립했다.
특히 이 대표의 이러한 ‘돌출행동’에 진보진영 인사들도 분노와 실망을 표출했다. 시사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당시 자신의 트위터에 이 대표가 전국운영위 의장직을 다시 맡겠다고 말을 번복한 것과 관련해 “끝까지 지저분하게 군다. 막장도 이런 막장이…”라며 “의장 사퇴 약속을 번복하고 다시 의장직 맡아 필리버스터 할 겁니다. 이정희 대표, 순진한 당원들의 실수라고요?”라고 되물으며 비난했다.
진보 진영 논객을 자처하는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자신의 트위터에서 “계파의 이익이 당의 이익을 압도, 지배하는 것, 정당 바깥 진보적 대중의 눈을 외면하는 것은 망하는 지름길”이라고 꼬집은 데 이어,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 통합진보당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은 조준호 당 공동대표, 진상조사 발표에 부정하는 당권파 비판. 제발 좀!”이라며 통합진보당 당권파에 대해 막막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해당 사건은 결국 ‘당권파’에 속했다는 이 대표와 공동대표이자 ‘비당권파’로 불린 심상정·노회찬·조준호 간 이견이 적나라하게 표출되더니 당 중앙위원회 폭력사태를 계기로 통진당과 진보정의당(현 정의당)으로 분당됐다. 아울러 이 대표의 행동이 직전 사건과 판이하게 다른 것을 두고 ‘그의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처음으로 제기되기도 했다. 이처럼 진보 정치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화려한 정치 활동을 펼쳐 온 이 대표가 경선 부정 문제를 놓고 비당권파와 극도로 대립하다 당권파의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하는 ‘패권파’ 이미지에 갇히면서 추락했다.
이미지 쇄신 실패
비례대표 부정선거 의혹 및 분당사태 등으로 흠집이 난 이 대표는 대선서 ‘야당의 대선주자’로 나서 새누리당을 견제하고 무엇보다 야권연대를 통한 이미지 쇄신을 바랐다. 특히 ‘종북’(從北) 이미지를 씻고자 했다. 분당사태 등을 거치는 전후로 통진당은 당 공식행사에서 애국가를 부르지 않는다는 이유 등으로 ‘종북의 대표주자’가 돼 있었다. 이 의원의 “애국가는 국가가 아니다”, “종북보다 종미(從美)가 문제다”는 발언은 이에 더 힘을 실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이 대표는 실패했다. 오히려 그는 색을 더 짙게 만들었다.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4일 대선후보 TV토론회에 나와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계획에 대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지난 천안함 사건 때도 그렇지만 북에서는 아니라고 하고 남쪽 정부에서는…”이라고 언급하며 대한민국 정부를 ‘남쪽 정부’라고 표현했다. 그는 발언 직후 대한민국 정부라고 수정했지만 토론 직후 각종 온라인 포털 사이트 검색어에 ‘남쪽 정부’ 발언이 상위권에 오르며 누리꾼들의 질타를 받았다.
그는 또 당시 토론회서 박근혜 대통령 후보에게는 “박 후보를 떨어뜨리려 나왔다”고 해 파장을 일으켰다. 토론에서 이 후보는 당시 박(근혜) 후보가 “통합진보당은 애국가도 부르지 않고 국민의례도 하지 않는다”며 이석기, 김재연 통진당 의원의 이름을 잘못 거론한 것을 지적하며 “기본적인 예의를 지켜달라”고 신경전을 벌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외에도 이 대표의 정치적 명운을 건 ‘삼진아웃’에는 내란음모혐의로 드러난 것 외에도 모두 이 의원이 숨어 있다. 첫 번째 사건인 비례대표 부정경선 사태 당시 이 의원은 비례대표 2번이었다. 또 분당사태에서 이 대표의 배후로 당권파 및 이 의원이 거론됐다. 대선 당시 ‘종북’ 이미지를 씻기 위한 원인 제공에는 언급된 것처럼 이 의원이 한몫을 했다.
한편, 이번 이석기 사태에서도 ‘내란음모의 몸통을 따로 있고, 이정희는 깃털’이라는 가설이 대중에게 설득력 있게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은 누가 몸통인지 깃털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모양새다. 중요한 것은 이 대표가 내란음모의 몸통으로 지목되고 있는 이석기 의원을 구하기 위해 올인하고 있다는 것이고 만약 이 의원의 혐의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그는 또다시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공산이 크다.
사면초가, 위기탈출 해법은
현재 통합진보당은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지난 총선에서 연대를 구축했던 민주당마저 통진당과 선 긋기를 통해 결별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최근 김한길 민주당 대표는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가 변호인으로 참여해 (이석기 의원을) 옹호하고 방어하고 있는 것이 통진당의 입장이라면 우리는 같이 가기 힘들고 용납하기 어렵다”며 사실상 함께 할 뜻이 없음을 분명히 했다. 통진당과 한 때 같은 식구였던 정의당도 이석기 통진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에 대해 찬성 당론을 결정하며 등을 돌렸다. 심상정 정의당 원내대표는 “시대착오적이고 위험한 세력이 있다면 법에 따라 단죄해야 한다”고 밝혔다. 물론 새누리당의 공세는 더욱 거세다. 이 의원의 제명을 요구하는 징계안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에 제출한 것에서 나아가 통진당 해산론까지 제기하고 있다. 실제로 법무부는 통진당에 대한 해산 심판 청구의 법률적 검토를 위해 법무부 차관 직속으로 태스크포스(TF)도 꾸렸다.
아울러 믿었던 촛불집회 시민단체의 외면은 통진당을 더욱 뼈아프게 하고 있다. 주말 촛불집회를 주최하는 ‘국가정보원 시국회의’는 이정희 통진당 대표의 연설 순서를 촛불집회 행사에서 뺐다. 현재 통진당은 사방을 둘러봐도 모든 곳에서 차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처지에 겹쳐 통진당 내부에서도 이 대표는 비롯, 당 지도부를 비판하는 목소리마저 나오고 있어 내부 혼란까지 가중되고 있다. 한 통진당 당원은 당 홈페이지 당원게시판에 “진보당은 진실하고 아무 잘못이 없는데 국민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냐”고 반문하며 “지금 국민 대부분은 진보당을 외면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10명중 9명이 아니다라고 하면 왜 그런지 이유를 한 번쯤은 봐야 한다”며 “9명을 교육의 대상이나 척결의 대상으로 보지 말고 정말 우리당이 권력을 잡고 이상을 펼칠 의지가 있다면, 그들을 포용하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약으로 치료가 안되면 과감히 환부를 도려내야 한다. 아니면 생명이 위험하다”며 지도부의 자성을 촉구했다.
전문가들도 이정희 대표가 현재 통진당이 당면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선 북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현재 통진당이 하고 있는 해명은 국정원의 주장이 전부 거짓이고 날조됐다는 말 밖에 없다”며 “적극적으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잘못된 것은 받아들여만 공당으로서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