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만 키운 ‘3자회담’, 여야 대치정국 장기화

‘국정원·채동욱·민생’ 등 쟁점마다 ‘이견’…정국정상화 험로 예고

2013-09-17     김길수 편집국장

여·야 대치정국을 풀 분수령으로 여겨졌던 박근혜 대통령과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의 16일 국회 3자 회담이 성과 없이 끝났다. 이날 회담에서 양측이 서로 입장 차이만 확인한 채 사실상 결렬시킴에 따라 내년 예산안과 주요 법안을 처리해야 할 정기국회는 상당 기간 정상운영이 어려울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날로 47일째를 맞은 장외투쟁을 지속하기로 했고, 이에 새누리당이 국회 복귀 압박 강도를 높이면서 경색된 정국은 추석 연휴를 훌쩍 넘겨 장기화할 공산이 커졌다. 박 대통령과 여·야 대표는 이날 국회 사랑재에서 예상보다 30분을 넘긴 1시간30여분 동안 국가정보원 대선개입 의혹, 채동욱 검찰총장 사의표명 논란, 민생 국회 등 국회 정상화 방안을 논의했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우선 김 대표는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에 대한 박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내가 국정원에 지시할 위치가 아니었다. 도움을 받은 게 없다”고 반박했다.

박 대통령은 야당 측이 책임자 처벌과 사과를 요구하는 데 대해선 “수사 중이거나 재판 중인 사건에 대해 대통령이 사과할 수는 없다”거나 “전 정부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대통령이 일일이 사과한 일도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맞받았다.

김 대표는 이어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없애고 대공수사권을 분리해 검찰과 경찰에 맡기자는 요지의 제안을 했다. 그러자 박 대통령은 “국정원의 활동을 유효하게 하려면 대공수사권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주당 역시 국정원의 국내파트를 없애지 못했고, 국정원의 수사권을 존치시켰다”며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김 대표는 채 총장 사태에 대해서도 청와대 민정수석과 법무장관의 책임을 물을 것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이 같은 요구에 “채 총장이 의혹을 밝히는 어떤 조치도 하지 않는 마당에 법무장관이 감찰권을 행사한 것은 법적 근거를 갖고 진실을 밝히자는 차원에서 잘한 것”이라고 맞섰다.

김 대표가 “채 총장이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했는데 사퇴를 시키느냐”고 따지자 박 대통령은 “그래서 사표를 안 받는 것 아니냐. 진상조사가 끝날 때까지 사표 처리를 하지 않겠다”고 응수했다.

이후 김 대표는 “경제민주화 입법 때 새누리당이 속도조절을 내세웠다. 경제민주화법 83개 가운데 결국 17개만이 처리됐다”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를 따져 물었다. 박 대통령은 “경제민주화 의지는 확고하다. 모든 경제 주체들이 땀 흘린 만큼 보상받고 보람을 느끼고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면서도 “특정계층을 옥죄는 것은 곤란하다”고 답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는 사안마다 시각차를 드러냈고, 회담 후 여야는 상대방의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공방을 벌였다. 유일호 새누리당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민주당이 정쟁을 위한 자신들의 일방적 요구사항만 제시하는 실망스런 모습을 보였다”면서 “회담을 망친 민주당은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김관영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박 대통령의 현실인식은 민심과 괴리가 있음을 확인했다”면서 “김 대표는 천막당사에서 노숙을 계속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앞서 박 대통령은 이날 사랑재 본실에서 국회의장단과 여야 지도부를 만나 러시아와 베트남 순방 결과를 설명했다. 이 자리에는 강창희 국회의장과 이병석·박병석 국회부의장, 새누리당 황 대표와 최경환 원내대표, 민주당 김 대표와 전병헌 원내대표가 참석했다. 박 대통령이 국회를 방문한 것은 지난 2월 취임식 이후 처음이며 국회에서 야당 대표와 정국 현안을 논의한 것은 전례가 없다. 박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순방 성과를 알리면서 여야 의원들이 참여하는 ‘여야 동반외교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