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90%가 장애인, 이들과 함께 한 유쾌한 성공담
“장애우들을 위한 복지타운을 만드는 것이 제 소원이죠”
전 세계적으로 기업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기업의 이념으로 내세우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활동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좀 더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지방경제시대에서 각 지역경제 구성원들은 지역사회를 위한 사회적 활동이 매우 적극적이며 내 고향, 내 삶의 터전인 지역경제, 지역사회를 위한 애향심이 크게 한 몫 하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게 일터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의 역할은 지역경제, 나아가 국가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며 사회적 약자인 이들에게 새로운 삶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을 주목해야 한다.
“장애우들은 이직률이 거의 없다고 보면 됩니다. 적응만 잘하면 퇴사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리고 정말 성실합니다. 하지만 서로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잘 안되다 보니 눈높이를 그들에게 맞춰야 합니다. 근무시간의 업무보다는 부가서비스가 많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이들의 눈빛만 봐도 파악을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기업 인가를 받기 위해선 여러 절차가 필요하다. 하지만 제일산업의 경우 사회적기업 인가를 받기 전 당시에도 26명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예비사회적 기업 절차 없이 사회적기업 인가를 바로 받았다. 사회적 기업은 이명박 정부 때 본격적인 화두가 되었으며 지금도 전국 여러 지자체들은 이러한 사회적 기업을 적극 육성시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제일산업은 현재 동종 업계에서 17%에 해당하는 생산량을 자랑한다. 이는 몇 몇 메이저급 기업을 제외하곤 상위그룹에 속하는 기업이다. 지금이야 업계에서 인정받는 기업의 모습으로 성장했지만 사업 초기부터 지금까지의 성장 과정을 들여다보면 진한 삶의 스토리가 담겨 있다.
기적같이 찾아온 행운
사업 초기 정 대표는 그의 와이프 및 아주머니 두 명, 총 넷이서 시작을 했다. 50평의 공간에 기계 두 대가 전부였다. 장애인을 고용하다보니 주변에선 인식이 좋지 않았으며 집값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말까지 들었던 정 대표는 보증금 500만 원에 월세 50만 원의 상황에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형편이 못 되었다.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기 저기 새로운 둥지를 알아보던 중 경매를 알게 됐다.
“사실 경매라는 것을 이 때 처음 알게 됐으며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죠.”
경매로 나온 공장을 본 그는 필사적으로 낙찰을 받아야겠다고 판단,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쏟아 부었다. 공장 관리인에게 막걸리도 사서 매일같이 찾아가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의 노력과 간절함을 알고 도움을 주기 시작한 것. 하지만 입찰금액이 문제였다. 그런데 운 좋게도 경매로 나온 공장에 있던 기계들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었고 정 대표는 기가 막힌 제안을 성사시키며 결국 14억짜리 공장을 4억 3,000에 낙찰을 받게 됐다. 내용인 즉, 공장의 기계 값을 미리 정 대표에게 주고 정 대표가 최종 낙찰을 받으면 기계를 가져가고 낙찰에 떨어지면 그 자리에서 건넨 기계 값을 다시 되돌려 주기로 한 것이다. 낙찰을 받은 새로운 공장은 그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50평에서 일하다 1,200평짜리 공장으로 옮기니 마치 축구장보다 더 넓어 보였습니다. 너무 좋아서 1톤 트럭을 몰고 공장 이 곳 저 곳을 돌아다녔으며 며칠 밤을 공장에서 자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사업자금이 없어 현금서비스 한도 50만 원짜리 신용카드 4개로 200만 원의 현금서비스를 받아 사업비로 쓴 그는 운영자금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을 그때서야 깨달았다고 한다. “최소 3~4개월치의 운영자금이 있었어야 하는데 정말 경영에 대해 무지했던 거죠. 매출액의 3~4배의 여유자금이 있어야 생산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그 때 배웠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습니다”
또 다른 기막힌 운이 그를 찾아왔다. 낙찰을 받을 당시 자금이 턱없이 부족해 대부분의 금액을 엔화자금으로 차입을 했는데 3년 후 상환시점에서 당시 1,290원이던 환율이 870원까지 떨어지며 큰 환차익이 생겨 67% 정도의 빚을 갚은 것이다. “정말 하늘이 도운 것인지 제게 너무 큰 힘이 됐었죠. 그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라고 웃음지은 정 대표. 그렇게 탄생한 제일산업은 사업 초기 5만개의 종이컵 생산에서 지금 하루 300만 개의 생산량을 자랑하는 탄탄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참 힘들었던 시절 그는 상당한 재력가인 가까운 지인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으나 매몰차게 거절당했던 지난 일을 떠올렸다. 그 때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반드시 스스로의 힘으로 일어서고 말겠다는 강한 오기와 끈기가 지금의 제일산업을 있게 한 원동력으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 것이다. “당시 돈을 쉽게 빌렸다면 그 소중함이 반감되어 지금의 저와 제일산업이 없었을 수도 있었겠죠. 그 때의 처절함, 절실함 등 힘들었던 상황이 오히려 미래의 성장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된 것이었죠”라며 “거절을 당한 후 심적으로 너무 힘이 들어 작업장에서 못 먹는 소주를 한 잔씩 하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어떻게든 일어서야겠다고 셀 수도 없이 다짐을 하고 또 다짐을 했죠. 그런 과정을 거친 후 드넓은 작업장을 마련한 후 밀려왔던 벅찬 감동과 기쁨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는 정 대표의 눈가엔 벌써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인터뷰를 끝으로 “세상에 절대 공짜는 없습니다. 내가 노력하는 만큼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라며 “앞으로도 초심을 잃지 않고 제 건강이 허락되는 한 최선을 다 할 것입니다”라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