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빛의 화폭에 충만한 행복을 담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복됨과 사랑의 가치를 표현
무릇 짧고 간결한 말들이 뇌리에 더욱 강한 인상을 남기곤 한다. 다양한 색채와 재료를 쓰지 않지만 자신만의 세계를 화폭에 간결하고 강렬하게 담아내는 김일태 화백의 작품도 그러하다. 최소한의 터치와 표현에서 그가 추구하는 사랑과 행복이라는 단순하지만 깊고 소중한 가치가 묻어난다.
김 화백은 한국에서는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신진작가이지만 추상과 비구상 미술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개척하고 있으며 내면에 흐르는 동양적 감성과 사고를 서양 미술에 접목한 특유의 작품 세계를 창조해가고 있다.
자신만의 스타일로 세상과 소통하다
20여 년 전 불현 듯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 그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로 타고난 예술적 기질과 눈에 보이고 느껴지는 것을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와 욕구는 그를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게 했다. San Francisco Art Center 3년 과정과 Saipan Art Hall 1년 과정을 수료한 그는 한국에 돌아와 열정적인 예술혼을 불태우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청담동 작업실과 압구정동 자택을 오가며 수많은 작품을 창작하는 동안 그의 가슴에는 또 다른 갈증과 갈망이 생겼다. 걸출한 국내 작가들이 즐비한 한국 미술계에서 정형화된 스타일이 아닌 자신만의 철학이 담긴 스타일을 찾는 것. 그리고 작품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하고 지친 현대인들에게 행복을 전달하는 것이 그것이다. 꿈에 나타난 스승이 그에게 ‘사람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라’한 말이 잊혀지지 않았던 것도 어쩌면 그의 새로운 작품세계에 대한 예고였다.
국내 유일의 ‘금화’를 그리는 화가
스승의 말처럼 서양화의 색상들 중 동양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금색, 그리고 그 금빛이 오래도록 변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날 수 있는 기법을 모색한 그는 캔버스에 금을 입히는 작업을 시작했다. 김 화백의 작품은 바탕이 되는 캔버스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 해도 무색하지 않다. 순금가루에 접착제를 섞어 덧칠하는 방식으로 견고하게 발린 캔버스 하나의 제작에만 5개월이 넘게 소요되기 때문이다. 캔버스에 한 번 금가루를 칠해 말리는데 소요되는 시간 8일, 이 작업을 4~5번 반복하고 80℃ 가마에서 48시간 은근하고 정성스레 구워야지만 비로소 1,000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금빛 캔버스가 완성된다. 이른바 금화를 그리는 작가는 우리나라 1만여 명의 작가 중 김 화백 한 명으로 가히 독자적, 독보적이라 할 수 있다. 김 화백은 “오랜 인고의 시간은 내면을 더욱 굳건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보석세공의 과정만큼 오랜 시간의 정성과 장인정신으로 완성된 캔버스 위에는 오일과 금가루를 섞어 음양으로 표현한 장미와 새끼에게 젖을 물리는 어미 돼지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가 수많은 소재 중 돼지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다.
“서양화 혹은 현대미술을 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고유성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돼지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의미하며 예로부터 행운과 행복의 상징으로 우리 민족과 함께 했다. 이를 변하지 않는 금화로 표현함으로써 많은 이들이 그림을 대물림하며 간직할 정도로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작품을 그리고자 했다.”
이렇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랑의 모습 중에 가장 존귀한 사랑, 복 중에 가장 복된 복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는 김 화백. 그가 붓에 아름다운 내리사랑을 묻혀 칠하면 금빛의 화려함은 후광처럼 빛을 내며 깊은 감동을 남긴다. 특히 슬며시 웃고 있는 어미 돼지에게서 해학적 상징성이 느껴져 이만하면 자신의 작품이 행복의 이미지로 기억되길 바라는 김 화백의 바람은 성공적인 듯하다. 또 다른 대표작인 금빛의 장미는 현대인이 추구하는 물질적 욕망과 사랑을 담고 있다. 김 화백은 이내 시들어 버리는 장미가 아닌 변치 않는 장미로 영원한 사랑에 대한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금과 오일을 섞어 나이프로 거칠게 쳐낸 이 작품에는 금을 칠하고 마르는 긴 시간 동안 바람과 햇빛, 공기 그리고 김 화백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김 화백은 “눈에는 하나의 금빛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는 자연과 시간의 숨결이 스며들어 있어 포괄적으로는 자연을 주제 삼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인사동 북촌 민예관에서 첫 번째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마친 김 화백은 현재 일본 동경 록본기에서 작품을 전시 중이다. 올해 9월 청담동에 갤러리 ‘oro’를 오픈하며 본격적인 전시활동을 펼칠 예정으로 그의 작품은 가수 싸이가 반기문 UN 사무총장에게 선물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끝으로 김 화백은 “금화라는 독자적인 길을 개척할 수 있도록 아낌없는 격려와 후원을 보내준 북촌 민예관 김태형 관장님과 DI그룹의 박원덕 회장님에게 감사를 전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