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기기결함 없다”, 韓 “조종사 과실 속단하지 말라”
‘마의 11분’ 넘기지 못하고 16년 만에 국적 여객기 사고 발생
1990년대 크고 작은 사고들을 많이 냈던 우리나라 국적기들은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단 한건도 발생하지 않으며 무사고 행진을 이어왔다. 그러나 지난 2011년 아시아나 화물기가 제주 해상에 추락하면서 12년간 이어온 국적기 무사고 행진이 끝났다. 그리고 지난 7월7일 16년 만에 우리나라 국적 여객기 인명 사고가 발생했다. 한국시간 7월6일 오후 4시35분 인천공항을 출발한 아시아나항공 214편 B777-200ER이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 착륙 시도 중 사고를 일으켜 3명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다쳤다.
조종사들이 기피하는 ‘마의 11분’ 넘기지 못해
항공기 조종사들 사이에는 ‘마의 11분’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이륙 후 3분과 착륙 전 8분이 가장 위험하다는 데서 생겨난 말이다. 실제로 전체 항공기 사고의 70~80%가 마의 11분 안에 발생했다는 것이 항공계의 분석으로 228명의 인명피해를 낸 괌 대한항공 여객기 추락사고와 80명이 숨진 트리폴리 대한항공 여객기 사고는 모두 착륙 직전에 발생했다. 이번에 발생한 아시아나항공 착륙 사고도 이 시간대에 발생했다. 현지시간 7월6일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사고 여객기는 활주로에 닿기 직전 앞바퀴와 꼬리 날개 부분이 방파제에 부딪쳤다. 충돌 순간 비행기 꼬리 날개가 동체에서 떨어져 나가며 불이 붙었고 동체는 활주로 위에서 500m 가량 미끄러진 후 멈춰 섰다. 사고기의 도착 예정 시간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 3시25분, 사고시간은 새벽 3시27분이었다.
사고기에는 한국인 탑승객 77명, 중국인 141명, 미국인 61명과 승무원 16명 등 총 307명이 타고 있었으며 이 사고로 중국인 여학생 3명이 숨지고 중상자 50여 명 등 200여 명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사고 즉시 외교부는 국토교통부 조사팀과 아시아나항공 사고대책반 등 30여 명의 사고대책반을 마련해 현장에 급파했고, NTSB(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가 사고 여객기의 비행기록장치(블랙박스)를 회수해 사고 원인 분석에 들어간 가운데 아직까지 구체적인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이번 사고 역시 사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알려진 ‘마의 11분’을 넘기지 못하고 대형 사고로 이어졌는데, 항공업계에 따르면 착륙 전 8분에는 비행기 출력을 비행 능력 이하로 떨어뜨려 지면과 가깝고 위기 상황이 갑작스레 발생해도 기수를 높이는 데 한계가 있어 사고가 잦고, 이륙 시에는 항공기가 최대 힘을 출력하기 때문에 이륙 후 3분 내에 기체 결함이나 위험 상황을 발견하더라도 운항을 중단할 수 없어 사고 발생이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한국, 교신 내용에 대한 해석 달라
이번 사고와 관련해 기장의 경험 미숙 논란도 불거졌다. 조종사에게는 항공기 운항을 위해 정해진 기준만큼 연습비행을 하는 이른바 관숙비행 요건이 있다. 규정에 따르면 20회 이상의 관숙비행 후 단독비행을 하도록 되어있는데, 사고기를 조정했던 기장은 9,700시간 이상의 비행경험을 지녔지만 사고기인 보잉777을 운행한 경험은 9차례, 43시간이었다. 때문에 조종사가 관숙비행 요건을 갖췄는지도 중요 사안으로 떠올랐다. 이에 아시아나 항공은 항공기 운행 1만 시간 이상의 숙련된 교관기장이 비행을 책임지고 운항 중이었으므로 문제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사고 당일 CNN과 비즈니스 인사이더 등 미국 언론들은 사고기 기장과 관제사가 나눈 교신 내용을 근거로 착륙 전 이미 공항 지상요원들이 사고기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았고, 비상상황에 대한 교신을 주고받았다고 전했다.
같은 날 윤영두 아시아나 사장은 서울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관제탑과 기장 사이의 교신 시점은 착륙 후로 알고 있다. 승객들에게 착륙 안내 방송을 정상적으로 했고 비상상황을 알리는 방송도 없었다”고 밝히며 “착륙 이전에 관제탑과 비상상황에 대한 교신이 있었다면 아시아나항공 본사에도 자동으로 연락이 왔어야 하는데 그러한 기록이 없었고 기체에 이상이 발생하면 아시아나항공 통제센터에 자동으로 메시지가 뜨게된다”라고 말해 외신보도와 차이를 보였다. 또한 “비행기가 지면에 충돌한 뒤 ‘안전하게 착륙했다’라는 기내 방송이 나왔다”라는 사고기 승객의 증언도 나와 논란이 가중됐다.
다음은 아시아나 항공 기장과 관제탑이 교신한 내용이다.
▶OZ 214편 : “관제탑 굿모닝 아시아나 214편이다. 활주로까지 7마일 남았다.”
▶OZ 214편 : “관제탑 아시아나214편이다. 최종 접근중이다.”
▶관제탑 : “무슨 일이지?”
▶관제탑 : “모두 통신을 멈추고 대기하라”
▶OZ 214편 : “관제탑, 관제탑, 아시아나 214편이다.”
▶관제탑 : “아시아나 214편, 구급차가 출동하고 있다.”
▶관제탑 : “응급차량 준비됐다. 모든 요원이 대기 중이다.”
▶다른 항공기 관제탑 호출 : “근처에 즉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이 살아있으며 주변을 걸어 다니고 있다.”
유례없이 빠른 조사 브리핑, NTSB의 설레발 지적
NTSB(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는 사고 발생 하루만인 7일 기자회견을 열어 조종사와 관제탑의 교신 내용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NTSB 데보라 헐스먼 위원장은 “조종사는 사고 1.5초 전에 재상승을 시도했고 착륙 적합 속도인 137노트에 미달했다”라고 말해 사고 조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조종사 과실로 여론을 몰아가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이뿐만이 아니라 NTSB는 7월12일 마지막 브리핑이 있기까지 매일 브리핑을 열어 조종사와 면담한 내용까지 공개했으며 아시아나측의 현지 브리핑을 제지했다. 우리 국토교통부와 아시아나항공은 뒤늦게 NTSB가 전해주는 제한된 정보만을 받아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항공기 사고의 원인분석은 매우 복잡해 조종실 음성 녹음 장치(CVR)와 비행 자료 기록 장치(FDR)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NTSB가 시시각각 단편적인 정보들을 쏟아내는 것은 잘못된 예단을 불러오기 쉽다며 우려했다. 비행기 사고 조사에 신중을 기하는 NTSB의 이러한 모습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괌에서 발생한 KAL기 추락사고의 경우 2년 넘게 걸려 발표한 정보를 일주일도 안 돼 쏟아냈다.
한국 측 사고조사단장인 함대영 전 건교부 항공안전본부장은 “객관적 데이터인 FDR자료와 달리 조종사의 사적 영역인 CVR은 최종 공청회에서나 공개되게 되어있다. 이것을 공개했다는 것은 NTSB 내부 규정 위반이라 할 수도 있다”고 꼬집었다.
이외에도 NTSB의 조사 진행 상황 과잉 공개에 대한 지적은 끊이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와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은 NTSB가 조종사 실수 가능성에 힌트를 줬다고 보도하기도 했으며, 세계최대 조종사노조인 국제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는 7월8일 성명을 내고 현장사고 조사가 진행되는 중에 여객기 고도와 속도에 대해 많은 정보가 알려진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조사내용 공개가 성급해 잘못된 결론을 유도할 수 있다며 이들은 사고기 조종석 대화 등을 공개한 것은 시기상조였으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NTSB 데보라 헐스먼 위원장은 CNN방송과 인터뷰를 통해 정보공개에는 문제가 없다고 반박하며 “조사 활동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투명성이며, 사고 현장 방문, 브리핑 등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공개된 정보는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편, 성명을 발표한 ALPA는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전 세계 33개 항공사 조종사 5만여 명이 가입된 세계 최대의 조종사 노조다.
오토 스로틀의 작동 여부, 사고 실마리 풀까
NTSB는 7월12일 마지막 현지 브리핑을 통해 “사고기의 자동 비행 장치들은 비행 중 정상적으로 작동했다”고 말해 사실상 기기 결함을 부인했다. 또한 “조종사들은 충돌 9초 전에야 사고 위험을 인지했다. 고도 152m 지점에서 충돌 9초 전에 해당하는 고도 30m 지점까지 아무도 비행 속도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고 9초 전 자동 고도 경보가 울리자 그제야 한 조종사가 처음으로 비행속도 문제에 대해 언급했으며 충돌 8초 전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외쳤고 충돌 3초 전 2번 ‘복항’을 외쳤다”라고 말해 사실상 조종사의 과실로 사고 원인을 추정했다. 이에 한국 측 조사관들은 “조종사 과실로 단정할 근거가 없다”며 반발했다. NTSB가 현재까지 분석한 블랙박스 항목은 엔진과 날개 작동, 비행장치 작동 등으로 1,400여 가지 항목 중 220여 개에 불과하다.
한편 조종사들은 한미 합동조사단과의 면담조사에서 “오토 스로틀을 켰지만 작동하지 않았다”라고 진술했다. 이에 한국 조사단은 자동속도조절장치인 오토 스로틀의 작동 여부가 쟁점이 될 것으로 보고 조사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 오토 스로틀은 조종사가 속도를 맞춰 놓으면 자동으로 엔진 출력을 조절하는 장치로서 오토 스로틀이 켜져 있었다는데 한미 양국의 조사 결과가 일치한다. 그러나 NTSB는 오토 스로틀을 켠 상태에서도 조종사의 적절한 조작이 있어야하기 때문에 오토 스로틀에 문제가 있었더라도 조종사에게 최종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오토 스로틀 외에도 충돌 상황에서 관제사들의 근무 상황, 사고기 조종사들의 기체 고도 문제 인식 시점 등에 대한 블랙박스 분석 결과가 나와야 종합적인 원인을 규명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사고기 조종사 4명은 지난 7월13일 화물기를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극비로 귀국했다. NTSB는 조건부로 이들의 귀국을 허락하고 귀국 후 사고조사에 영향을 끼칠만한 발언을 하지 말고 필요시 NTSB의 조사에 즉각 협력할 것을 조건으로 내건 것으로 알려졌다.
사고 난 보잉777-200, 사고 적은 안전한 기종
사고가 난 보잉777-200ERR 기종은 1995년 취항 후 18년 만에 첫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종은 현재 아시아나 항공이 사고기를 포함 12대, 대한항공이 18대를 보유하고 있으며 인천공항에서 유럽이나 미국 서부로 가는 장거리 직항노선에 주로 투입된다. 한 대당 약 2,653억 원 수준으로 전 세계 33개 항공사에서 418대를 운항 중이다. 사고기는 총 214회 운항했으며 항공업계에서도 사고가 적은 안전한 기종으로 꼽힌다. 그간 사망사고는 없었으나 지난 2008년 영국항공과 2011년 이집트항공에서 운항관련 사고가 있었다. 에어버스 A380과 보잉 B747 다음으로 큰 비행기로 최대 운항시간은 14시간50분, 최대 항속거리는 1만 4,316km이다. 지난 7월2일 같은 기종의 대한항공 여객기가 왼쪽 엔진 유압기의 이상으로 러시아 극동 지역에 비상착륙했는데, 대한항공 사고기는 규모가 조금 더 크고, 재너럴 일렉트릭(GE)사의 엔진을 장착하고 있었던데 반해 이번 아시아나 사고기는 프랫&휘트니(Pratt&Whiteny)사의 엔진을 쓰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