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담은 대통령 기록, 정쟁으로 실종

사초 게이트, 정쟁에 이용된 사료의 운명 드러내

2013-07-31     지유석 기자

역사는 기록에 의존한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 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 반면 기록은 오해의 소지를 없애고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려준다. 따라서 기록과 이의 보존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특히 특정 사건에 대한 기록이 과거를 재구성할 기초자료라면 그 중요성은 더할 나위 없다. 그런데 대한민국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기록이 증발해버리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른바‘사초(史草) 게이트’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하 회의록)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여야는 국회 표결을 통해 회의록 원본 열람을 결정한 뒤 7월15일 국가기록원을 방문했다. 이때 정치권 안팎에서는 회의록 원본이 없다는 의혹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의 한 소식통은 “국회열람위원들이 지난 15일과 17일 회의록을 열람하기 위해 국가기록원을 방문했지만 회의록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이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청와대에서 국가기록원에 넘긴 대화록 원본이 없다는 것이다”고 밝혔다. 이 같은 의혹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실로 확인됐다.

열람위원회 간사 자격으로 대화록을 예비 열람한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18일 결과 보고를 통해 “(국가기록원) 방문 첫날인 15일 여야의원들은 문서목록상 나타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나 녹음기록물이 없음을 확인하고 기록원측에 문의한 결과 제시된 키워드와 유사 용어를 모두 이용하고 기록원의 목록을 가지고 확인했으나 해당 문서를 찾을 수 없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그러나 열람위원들은 그 문건은 반드시 찾아야 하는 문건이니 추가 기록을 통해서라도 찾을 수 있도록 검색어를 추가로 기록원측에 제공하고 48시간의 여유를 줬다”고 덧붙였다.

여야는 19일부터 22일까지 나흘에 걸쳐 회의록을 검색했으나 허사였다. 새누리당 황진하·조명철, 민주당 박남춘·전해철 의원 등 여야 열람위원 4명은 최종 검색작업을 실시한 후 오후 6시 경 결과보고를 통해 사실상 ‘회의록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정치권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여야는 서로를 의심하는 양상이다. 여권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입장이다. 여권의 한 고위 소식통은 17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2007년 당시 회의록은 국가정보원 원본과 청와대 사본 등으로 두 군데에서 동시 보관해 오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말~2008년 초 폐기를 지시했다”면서 “이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보관용은 파쇄돼 폐기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를 통해 “일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조짐이 있지만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규정과 정의는 2004년 4월27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만들어서 대통령기록물이란 지위를 최초로 공식화한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라면서 “참여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이 기록을 삭제 또는 파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회의록 부재엔 공감, 해석엔 이견
회의록의 행방이 묘연한데 대해 여야의 입장은 미묘하게 엇갈린다. 새누리당은 ‘원본이 없다’는 입장인데 비해 민주당은 ‘아직 찾지 못한 것’이라고 반박한다. 회의록의 부재는 인정하면서도 시각은 달리하는 셈이다. 열람위원회 간사를 맡았던 새누리당 황진하 의원은 “17일 여야 열람위원 전원은 재차 기록원을 방문해 추가 검색 결과까지 확인했으나 여전히 해당 문건이나 자료를 찾지 못했다. 기록원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입장을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 간사인 우윤근 의원은 “국가기록원 담당자들이 새누리당 의원들이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걸 확인해 달라’고 질의한 데 대해 ‘기록원에 대화록이 없다고 확인한다’고 답변했다”면서 “이에 대해 민주당 의원 전원은 기록관리에 대해 ‘현재까지 찾지 못했다’는 게 옳은 대답이라고 질책했다”고 밝혔다. 우 의원은 이어 “(기록원 직원들이)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모든 방법을 다하지 않은 상태에서 없음을 확인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되지 않는다고 질책했다”며 “최선을 다한 건 인정하지만 모든 가능한 노력을 완벽하게 했다고 선언한 자체가 석연치 않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덧붙였다.

여야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리는 이유는 정치적 파장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국회가 회의록 열람을 결정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서해북방한계선(NLL) 논란이었다. 사실 NLL이 처음 쟁점으로 떠오른 시점은 지난 해 10월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이 회의록 내용을 일부 공개하면서였다. 정 의원은 이 일로 인해 민주당으로부터 고발당했으나 검찰은 그를 무혐의 처분했다.

NLL 논란은 지난 6월 또 다시 불거졌다. 국회정보위원장인 서상기 새누리당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국정원에서 노 전 대통령의 NLL 발언에 대한 열람을 공식 요청해 정보위 소속 의원들과 함께 검토했다”며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 포기 취지의 발언을 국가정보원에서 직접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러자 문재인 의원은 맞불을 놓았다.

문 의원은 6월21일 자신의 공식 블로그를 통해 이번 NLL 발언록 공개가 “대통령 기록물 관리법과 공공기록물 관리법을 위반한 범죄행위”이며 “정상회담 대화록을 정쟁의 목적을 위해 반칙의 방법으로 공개함으로써 국가외교의 기본을 무너뜨리고 국격을 떨어뜨렸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면서 회의록과 녹음테이프 등 녹취자료뿐만 아니라 NLL에 관한 준비회의 회의록 등 준비 자료와 회담 이후 각종 보고서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문 의원의 입장 발표 이후 회의록 열람 움직임은 급물살을 탔다. 여야 원내수석부대표는 7월2일 회동을 갖고 2007년 남북정상회담 사전·사후 회의록을 비롯한 자료 일체에 대한 열람 및 공개를 국가기록원에 요구키로 합의했다. 여야는 또 ‘NLL(엔엘엘)’, ‘북방한계선’, ‘남북정상회담’ 등 7개 키워드를 국가기록원에 제시해 자료 제출을 위한 목록 검색을 하기로 의견을 같이했다. 국회 본회의는 이날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대화록 제출 요구안을 가결해 회의록 열람이 본격 추진됐다. 일련의 과정에서 알 수 있듯 회의록 열람 취지는 NLL포기 발언의 진위여부 확인에 있었다. 하지만 회의록 원본의 행방이 묘연해지면서 오히려 더 큰 의혹을 증폭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사초 인멸, 전 정권의 소행?
현재 회의록 원본은 국정원이 지난 6월 공개한 발췌본만 남은 상태다. 그런데 이 발췌본 표지엔 ‘2008년 1월 생산’이라고 표기돼 있어 기록의 진위여부는 논란거리다. 더구나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측이 기록 작성 시점을 놓고 진위공방을 벌이고 있어 논란은 더욱 격화되는 양상이다.
김 전 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나는 분명히 (청와대 지시에 따라) 2007년 10월에 작성해 청와대와 국정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담당 국정원 간부에게 ‘1부만 보관하고 나머지가 있다면 전부 파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2008년 1월 작성한 것은 청와대에 보고하지도 않았으며 유일하게 우리만 갖고 있는 원본”이라면서 “2007년 10월 작성한 것은 대통령기록물이 맞네 안 맞네 할 시비의 소지도 있으나 2008년 1월 것은 청와대와 관계없이 우리가 작성해 가지고 있는 것이며 (두 작성본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야권은 이명박 전 정권이 회의록을 유출한 뒤 폐기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만약 이 기록물(회의록)이 없는 게 확인된다면 분명히 민간인 사찰을 은폐해 온 점이나 국정원 댓글 폐기와 조작 경험에 비춰 삭제와 은폐의 전과가 있는 이명박 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 전 <조선일보>와 가진 인터뷰 내용은 이 같은 의혹에 무게를 실어줬다.
이 전 대통령은 2월5일 이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 취임 후 대화록을 보고 분노했다는 말이 있었다. 어떤 내용이었느냐?”란 기자의 질문에 “격분하거나 화를 낸 것은 아니다. 다만 국격이 떨어지는 내용이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안 밝혀졌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사실 그 내용은 국격이라고 하기에도 좀....”이라면서 “(회의록에는) 한미관계 이야기도 있고 남북 관계 이야기도 있다. 이제 검찰(수사 과정)에서 일부는 나왔으니까 NLL 문제는 밝혀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대통령이 인터뷰에서 언급한 대화록은 정확히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적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인터뷰는 회의록을 열람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인정한 셈이어서 파문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신경민 의원은 “(새누리당) 정문헌, 김무성, 서상기 의원에 이어 이 전 대통령까지 대화록을 열람한 것으로 드러났으니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어떤 의도로 대통령기록물을 열람했는지 점입가경”이라며 “이 사람들 모두 다 줄줄이 수사 대상으로 올라간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이랬으니깐 오늘날 사초 게이트가 났고 나라가 이 지경에 오른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참여정부 인사들은 회의록의 존재를 확신한다. 이들에 따르면 청와대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회의록 2부를 만들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각각 1부씩 넘겼다. 조명균 당시 청와대 안보정책비서관은 2007년 10월3일 평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 배석했다. 조 비서관은 이 자리에서 디지털 녹음기로 회담 전체를 녹음했다. 회담 후 확인해보니 녹음상태가 좋지 않아 청와대는 녹음 복원을 위해 특수장비가 있는 국가정보원(국정원)에 녹음기를 보냈다.

국정원은 일주일만에 녹취록을 작성했다. 정상회담 회의록 초안 2부를 작성했고 이 가운데 종이문서로 작성된 1부를 청와대로 보냈다. 조 비서관은 이를 토대로 자신이 받아 쓴 메모와 각종 자료를 취합해 최종본을 전자문서로 만들었다. 김만복 전 국정원장도 회의록 작성과정에 관여했다. 이때가 2007년 12월이다. 조 비서관은 회의록 최종본을 청와대 전자업무관리시스템인 이지원에 올렸다. 이는 상급자인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을 거쳐 노 전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청와대는 국정원에서 받은 초안은 폐기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노 전 대통령이 이지원에서 회의록을 삭제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연합뉴스>는 7월25일 이지원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한 전문가와 김경수 노무현재단 봉하사업본부장의 언급을 인용해 애초 이 시스템에는 문서 삭제 기능이 없다고 보도했다. 

대통령기록물은 해당 국가의 역사 그 자체이다. 여기에 남북한 정상이 만나 대화를 나눈 정상회담 회의록은 보존가치가 높은 사료(史料)이다. 이 사료의 행방이 묘연해진 근본적인 이유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데 있다.
새누리당은 지난 해 10월과 12월, 그리고 올해 6월 차례로 회의록이 근거라면서 NLL포기 발언을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이 시기는 각각 대통령 선거와 국정원 대선개입 국정조사 여론이 비등하던 시점과 일치했다. 결국 국내 정치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보호받아야 할 사료가 수면 위로 드러난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른바 ‘사초(史草) 게이트’는 민감한 국가기밀을 담은 사료가 정쟁의 수단으로 이용됐을 때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헌정사에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