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록 정국, 새로운 국면 진입

野, 이명박 전 정권에 의심의 눈초리

2013-07-18     지유석 기자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이하 회의록)을 둘러싼 논란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복수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 청와대는 2007년 10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회의록 2부를 만들어 청와대와 국가정보원(국정원)에 각각 1부씩 넘겼다. 이 가운데 청와대가 소장한 회의록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하면서 국가기록원으로 이관됐다.

만약 국가기록원에 회의록 원본이 없는 것이 최종 확인된다면 회의록은 국정원이 지난 6월 공개한 발췌본만이 남게 된다. 그런데 이 발췌본 표지엔 ‘2008년 1월 생산’이라고 표기돼 있어 기록의 진위여부는 논란이 될 가능성이 충분하다. 더구나 김만복 전 국정원장과 현 국정원이 기록 작성 시점을 놓고 진위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이라 이 같은 전망은 더욱 힘을 얻고 있다.

김 전 원장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시는 내가 국정원장에 재임하던 시기였는데도 2008년 1월에 작성한 사실조차 몰랐다”며 “나는 분명히 (청와대 지시에 따라) 2007년 10월에 작성해 청와대와 국정원 각각 1부씩 보관하도록 담당 국정원 간부에게 ‘1부만 보관하고 나머지가 있다면 전부 파기하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정원측은 “2008년 1월 작성한 것은 청와대에 보고하지도 않았으며 유일하게 우리만 갖고 있는 원본”이라면서 “2007년 10월 작성한 것은 대통령기록물이 맞네 안맞네 할 시비의 소지도 있으나 2008년 1월 것은 청와대와 관계없이 우리가 작성해 가지고 있는 것이며 (두 작성본은) 전혀 다른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의록의 행방이 몰고 올 파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무엇보다 새누리당이 줄곧 주장해온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북방한계선(NLL)포기 발언’의 근거를 무색하게 할 것으로 보인다. NLL포기 발언을 처음 제기했던 새누리당 정문헌 의원은 지난 해 10월 제2차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내용을 공개한데 이어 김무성 의원은 12월 부산지역 유세 연설을 통해 회담 당시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을 읽어 내려갔다. 특히 김 의원의 발언 내용은 국정원이 공개한 발췌본 내용과 토씨까지 똑같아 회의록을 사전 열람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김 의원측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이후 민주평통 행사 등에서 NLL문제와 관련해 발언한 내용을 종합해서 만든 문건”이라면서 “이 문건을 갖고 부산유세 당시 연설에 활용한 것”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한편 최초로 회의록 내용을 공개한 정 의원은 “청와대 통일비서관으로 재직할 당시 회의록을 접했다”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회의록의 행방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이 두 의원의 주장 역시 근거를 의심받게 됐다. 회의록 원본이 사라졌다면 정 의원이나 김 의원 모두 국정원이 2008년 1월 작성한 발췌본에 근거해 NLL 포기 발언을 주장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권은 노 전 대통령이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다는 입장이다. 여권의 한 고위 소식통은 17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2007년 당시 회의록은 국가정보원 원본과 청와대 사본 등으로 두 군데에서 동시 보관해 오다 노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말~2008년 초 폐기를 지시했다”면서 “이 지시에 따라 청와대 보관용은 파쇄돼 폐기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은 이 같은 주장을 일축했다.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18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정책회의를 통해 “일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우려는 조짐이 있지만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규정과 정의는 2004년 4월27일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을 만들어서 대통령기록물이란 지위를 최초로 공식화한 사람이 바로 노 전 대통령과 참여정부”라면서 “참여정부나 노무현 정부가 이 기록을 삭제 또는 파기했을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강조했다.

전 원대대표는 이어 이명박 전 정권에게 화살을 돌렸다. 전 원내대표는 “만약 이 기록물이 없는게 확인된다면 분명히 민간인 사찰을 은폐해 온 점이나 국정원 댓글 폐기와 조작 경험에 비춰 삭제와 은폐의 전과가 있는 이명박 정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