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대입제도 개편안 국민참여형 ‘공론화’ 선택
8월 최종 권고, 쟁점 많아 의견 수렴 반영 우려도
신인령 의장 “다양한 의견 충실히 수렴”
(시사매거진241=신혜영 기자) 교육부가 대통령 직속 자문기구인 국가교육회의로 이관한 ‘2022학년도 대입제도 개편안’이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오는 8월 최종 권고안이 마련된다. 최근 교육부가 발표한 정시모집 확대 계획을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자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여론을 묻기로 한 것이다. 공론화위는 권역별 국민토론회, TV토론회, 온라인 플랫폼 운영 등으로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최종안 발표까지 4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데다 공론화 범위, 의제 설정, 개편 방향 등 단계마다 국민 의견을 묻고 공론화하기로 함에 따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난 4월 11일 교육부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에 관한 사항을 국가교육회의에 이송하면서 5개 모형의 개편 시안을 공개했다. 이날 교육부가 발표한 대입제도 개편안의 핵심 쟁점은 수능개편, 학교생활기록부 개편, 수시·정시 통합 등이다.
하지만 교육부가 대입제도개편안을 발표하자 논란이 일었다. 대학별 고사, 수능과목 구조 등 교육부가 복수로 제시한 안들이 많아 대입 예측 가능성을 크게 떨어뜨린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수능 시행 과목, 수능 평가체제, 수시·정시 모집 시기, 학생부 등 아무것도 결정된 것이 없어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지적이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일제히 안갯속 정책이라며 불만을 터뜨렀다.
11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은 “교육부가 제시한 안에 따른다면 지금까지 추진돼왔던 대입제도 개혁이 오히려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고 비판했다.
전교조는 “낡은 주입식 교육을 강요하는 수능의 영향력을 약화시켜야 한다는 암묵적인 사회적 합의에 따라 수능 중심의 전형 비율을 축소하고 일부 과목의 절대평가 전환이 이뤄졌던 것인데 이번 이송안에는 수능전형 확대를 위한 전형 간 선발 비율의 조정 논의를 요청하고 있고, 수능 상대평가 유지와 원점수 기재 등 오히려 수능의 변별력 강화를 추구하는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고 말했다.
교육부, 대입제도 개편 시안 핵심쟁점만 나열…혼란 가중
11일 교육부가 내놓은 개편 시안에 따르면 수능을 9개 등급으로 구분해 평가하는 절대평가 안의 경우 수능 100% 전형을 실시하는 대학들에게 예외적으로 원점수를 제공해 동점자 처리에 활용하도록 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김상곤 부총리는 “과도한 점수 경쟁을 완화하고 학생의 진로·적성에 맞는 학습을 위해 수능 평가방식을 절대평가로 전환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는 반면 변별력 확보를 위해 상대평가를 선호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라며 “지난해 수능 개편과정에서 가장 큰 쟁점이었던 만큼 학생, 학부모, 교사 등 국민들의 뜻이 모아져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입에서 원점수가 반영되지 않아 수능 성적표에는 등급, 표준점수, 백분위 점수 3가지만 공개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원점수가 입시에 반영되면 원점수를 알 수 없는 학생들은 불만을 토로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유웨이중앙교육 이만기 교육평가연구소장은 “수능 전과목이 절대평가 될 경우 수능 변별력 약화로 대학 입장에서는 학생들을 변별하기 위한 논술 등 대학별고사를 활용할 수밖에 없고 이 경우 현재와 같은 수능 중심 전형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수능 개편방안에 따르면 수능 100% 전형의 경우 대학에 원점수를 제공해 동점자 처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원점수 제공은 상대평가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에 대해 김상곤 부총리는 “대학이 요구하면 수능 절대평가 결과를 원점수로 제공할 수 있다. 대학이 학생 선발에 어려움이 있으면 원점수를 아주 제한적으로 제공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답했다.
이투스교육평가연구소 김병진 소장은 “상대 점수 체계가 발생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인 과목 간 학습 노력이나 배점의 차이를 무시한다는 문제가 발생한다”라며 “과목별 문항 당 점수가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1점의 차이를 전혀 고려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국어 원점수 96점과 수학 원점수 96점은 틀린 문제의 개수가 다르다. 원점수 체계는 이 두 점수의 학생들을 동일하게 평가한다는 문제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대학별 고사의 필요성이 부각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수시·정시의 통합 여부도 의견이 갈리고 있다. 대학입시를 단순화하고 고교 3학년 2학기 수업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수시와 정시를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가 하면 수시와 정시를 통합하면 학생의 대입 선택권이 제약되므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에 김상곤 부총리는 “그동안 분리되어 왔던 수시와 정시가 통합되는 것은 대학입시제도에 있어 매우 큰 변화”라며 “학생과 학부모들의 다양한 의견을 경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의 공정성 제고방안에 대해서도 국민참여 정책숙려제를 통해 의견을 모으겠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은 학교의 변화를 이끈 원동력이었지만 제도에 대한 신뢰가 없으면 국민들의 공정한 입시에 대한 염원을 담을 수 없다”라며 “생부종합전형을 철저하게 내실화하고 공정성을 확보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번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에 ▲학생부 기재 개선 ▲학생·학부모들의 대입정보 격차 해소 방안 ▲대학의 평가기준 및 선발 결과 공개방안 등을 제시했다.
‘주먹구구식’ 대입 정시 확대…학생 학부모 혼란 가중
앞서 2일 교육부는 ‘주먹구구식’ 대입 정시 확대를 추진해 논란이 일었다.
이진석 교육부 고등교육정책실장은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백브리핑을 갖고 “50대 50이었던 수시와 정시 비율이 최근 거의 80대 20이 됐다”며 “지난해와 올해 수시 쏠림현상이 너무 크게 나타나다보니 수능 위주인 정시로 가려는 학생과 학부모 입장에서는 대입의 문이 너무 좁아졌다”고 정시 확대 취지를 밝혔다.
교육부의 갑작스런 정시 확대 추진으로 정부 정책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대입전형을 실시하는 대학들까지 큰 혼란에 빠졌다. 지금까지 교육부는 정시축소·수시확대 기조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예상 수치를 내놓지 않았다. 올해 2월말 대입정책 포럼이 마무리된 후에도 정시 확대 입장은 없었다.
교육부는 이 같은 우려에 “과도한 수시 쏠림현상이 우려된다는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한 것”이라고만 입장을 내비쳤다.
교육부는 4차에 걸친 ‘대입정책 포럼’을 통해 학생과 학부모 등의 의견을 수렴한 결과를 바탕으로 급격한 수시 비중 확대에 따라 정시 비율이 현저히 낮고 수시 비율이 높은 서울 주요 5개 대학에 수시 쏠림 현상을 우려하는 현장의 목소리를 전달했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교육부는 대입전형 시행 주체인 대학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절차를 생략했다.
교육부는 “대학들이 수시, 정시 비율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돼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입학전형 계획 제출을 코앞에 둔 대학들로서는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단 교육부는 이 문제를 국가교육회의로 넘겨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로 했지만 현재로선 수능 위주의 정시 비율이 어떻게 변화할지 예측이 불가능한 상태다.
공론화 출구 선택…난항 예상
지난 4월 16일 교육부가 발표한 정시모집 확대 계획을 두고 논란이 뜨거워지자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여론을 묻기로 하고 오는 8월 최종 권고하기로 했다.
국가교육회의는 “대입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여러 주장과 갈등이 혼재하는 상황에서 정책 결정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와 국민 신뢰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전문가, 학생·학부모 등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면서 국민참여형 공론 방식을 활용하는 방안이 적합하다”라며 “이번 방안에 따라 국민참여형 공론화 과정을 추진하며 그 결과를 반영해 오는 8월 초까지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을 제안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 과정의 체계적인 추진 및 대입제도 개편 권고안 마련을 위해 대입제도 개편 특별위원회와 공론화위원회를 구성·운영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위원회는 국가교육회의 위원을 비롯해 대학·전문대학 및 시·도교육청 협의체가 추천한 교육 전문가 등 13인 내외로 구성된다. 국가교육회의 상근위원인 김진경 위원을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위촉, 위원으로는 국가교육회의 전문위원회 위원장,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 추천 인사, 학계 등 교육전문가 등이 포함됐다.
특별위원회는 공론화 범위를 설정하고 공론화위원회 활동을 지원하며 공론화 결과를 바탕으로 대학입시제도 개편 권고안을 마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공론화위는 권역별 공론화 의제가 결정되면 TV토론회, 권역별 국민토론회, 온라인 플랫폼 운영 등으로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참여형 공론화’ 절차는 참여자들에게 지금까지 수렴된 다양한 의견과 자료가 제공되며 의제별 심층적 이해 및 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쳐 대입제도 개편 방안에 대한 의견을 도출한다. 도출된 방안은 국가교육회의 전체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신인령 국가교육회의 의장은 “대입제도 개편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과 갈등이 존재한다”라며 “공론화 과정에서 국민의 의견을 충실하게 수렴하고 국민참여를 확대해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공론화 과정도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최종안 발표까지 4개월여 밖에 남지 않은 데다 공론화 범위, 의제 설정, 개편 방향 등 단계마다 국민 의견을 묻고 공론화하기로 함에 따라 정책에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위원회는 “지난해 연말 출범 이후 국가교육회의는 교육전문가 및 공론화전문가와 협의 등을 통해 대입제도 개편에 적합한 공론화 방안에 대해 검토해왔다”라며 “주어진 4개월 동안 최선을 다해서 국민의 의견을 듣고 공론화 과정을 잘 꾸려 나가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재철 한국교원단체연합회 대변인은 “현장 교사의 참여를 통해 철저히 현장성과 전문성, 공정성을 담보하지 않으면 논의 과정 및 결과에 대한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