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

역사에 ‘기록되지 않은 자’들과 만나다

2018-04-23     이선영 기자

[시사매거진=이선영 기자] 19세기 역사를 21세기에, 왜 오늘날 홉스봄의 ‘세계사’를 읽어야 하는가?

‘에릭 홉스봄 시대 3부작 SET’는 에릭 홉스봄(Eric Hobsbawm)의 대표작 세 권 <혁명의 시대>, <자본의 시대>, <제국의 시대>를 모았다. ‘혁명’(1789~1848), ‘자본’(1848~75), ‘제국’(1875~1914)의 시대를 다룬 3부작은 홉스봄을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만들어준 연작이다. 도식과 단순화를 거부하고, 직접 발굴한 방대한 사료를 학자로서의 통찰을 바탕으로 유기적으로 엮어냈다. 특히 기존의 역사서가 무시하기 일쑤인 민중의 활동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에서 그가 그린 역사의 풍경은 매우 역동적이다.

무엇보다 3부작은 ‘19세기’를 다루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다. 19세기는 역사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근대’와 ‘현대’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우선 홉스봄이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이라 부른 여러 ‘전통’이 완성된 시기다. 영국 왕가의 의례에서부터 연애나 가족의 구성 양식까지 대부분 19세기 후반에 완성되었다. 서로 아무런 연관도 없어 보이는 이것들은 이중혁명(산업혁명, 프랑스혁명)으로 씨앗이 뿌려진 자본주의와 부르주아지 문화의 열매다. 이 거대한 흐름을 홉스봄은 ‘세계사’라 불렀다.

홉스봄이 보기에 그가 살았던 20세기와 21세기 역시 세계사의 거대한 흐름에 속한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흐름은 전쟁, 파시즘, 냉전, 테러 등으로 점철된 암울한 자화상을 귀결된다. 물론 이것은 역사의 파국이 아니다. 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파국일 뿐이다.

훗날 홉스봄이 ‘극단의 시대’ ‘파열의 시대’라 부른 20세기에 태어나 ‘폭력의 시대’라 부른 21세기의 초입을 사는 우리는, 그렇다면 어떤 역사를 낳아야 할까. 홉스봄은 과거의 자유주의를 왜곡한 신자유주의도, 과거의 사회주의적 몽상에 사로잡힌 혁명도 결코 희망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가 강조하는 것은 ‘현재’다. 19세기를 산 이들이 19세기의 역사를 만들었듯이,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21세기의 역사를 만들어야 한다. 주어진 현재의 조건하에서 끊임없이 대안을 추구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이라는 이중혁명 <혁명의 시대>

1962년에 출판된 <혁명의 시대>는 19세기의 첫 번째 국면인 산업 자본주의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홉스봄은 산업 자본주의가 승리한 이유를 이중혁명, 즉 산업혁명과 프랑스혁명에서 찾는다. 18세기 유럽은 농업과 절대주의가 지배하고 있었다. 이 중세적 구조의 산업(경제) 부분은 산업혁명이, 정치 부분은 프랑스혁명이 균열을 냈다는 것이 일반적인 역사 해석이다. 홉스봄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산업혁명은 단순한 산업 일반의 발전을 이끈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적 산업’의 승리를, 프랑스혁명은 ‘부르주아지적 자유와 평등(자본주의적 정치)’의 승리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19세기 세계의 경제가 주로 영국 산업혁명의 영향 아래 형성되었다면 그 정치와 이데올로기는 주로 프랑스혁명으로 형성되었다.

물론 19세기 초까지만 해도 유럽을 지배하는 이들은 봉건 귀족이었다. 또한 농노제처럼 사람을 일정한 공간에 묶어놓는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이 불안정한 사회는 19세기 중반에 접어들면서 새로운 질서를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바야흐로 ‘자본의 시대’의 막이 열린 것이다.

승리의 깃발을 흔든 부르주아지 <자본의 시대>

1975년에 출판된 <자본의 시대>는 19세기의 두 번째 국면을 다룬다. 홉스봄은 여기서 불안정했던 유럽 사회가 세계 자본주의의 승리를 통해 발전하고 확정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 시기에 지구적 규모로 확대된 자본주의는 급격한 사회적 변동을 일으켰다. 산업혁명의 연장선에서 자본주의가 세계를 향해 강력하게 뻗어 나갔다면, 정치혁명의 연장선에서 벌어진 1848년 혁명은 실패하고 만다. 자본주의가 모든 사회 변화의 동인이 된 것이다. 정치혁명의 주요 세력이었던 노동자와 빈민 계급이 치열하게 투쟁했는데도 대세를 꺾지 못한 이유는 자유주의자들, 즉 부르주아지들이 구체제의 지배계급과 타협했기 때문이다. 이전 ‘혁명의 시대’에는 혁명의 주역이었던 이들이 ‘자본의 시대’에 들어 차를 바꿔 탄 것이다.

당시 런던 노동자 계급 중 ‘최소한 어느 정도나마 안락과 상대적 안정’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노동자를 부르주아지의 세계와 갈라놓고 있는 간격은 매우 넓었으며 메워질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간극’은 호황과 불황의 반복이라는 자본주의 경제 특유의 리듬과 맞아떨어지며 유럽에서 빈부격차를 심화시켰고 중심부 국가가 주변부 국가를 착취하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바야흐로 ‘제국의 시대’의 먼동이 트고 있었다.

부르주아 세계의 파국 <제국의 시대>

1987년에 출판된 <제국의 시대>는 19세기의 최종 국면, 즉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파국을 맡은 부르주아 사회를 다룬다. ‘제국의 시대’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만든 모순들이 모습을 드러낸 시대였다. 홉스봄은 무엇보다 부르주아지들의 극적인 퇴보를 강조하는데, ‘진보’의 실현자를 자처하던 그들은 노동자와 식민지 민중의 노동에 기생함으로써 역사적 정체성을 스스로 상실해버리고 말았다.

반면 노동자는 대중적으로 잘 조직되어 하나의 계급, 즉 프롤레타리아로서의 정체성을 띠게 된다. 이들은 자본주의의 전복을 주장했고, 연장선에서 정치적 권리(참정권)의 확대를 강력하게 요구했다. 결국 부르주아지는 정치권력의 주변부로 밀려나게 된다.

계급의식이 가장 직접적으로 근대사회의 사회적·경제적·정치적 체제를 위협하게 된 계급이 바로 프롤레타리아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대공황이 발생했다. 정부와 기업은 보호무역주의로 이를 극복하려 했는데, 그들은 사소한 문제의 해결에도 무력을 동원하는 실수를 범한다. 물론 선진국은 내부적으로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나 식민지는 폭동과 혁명, 제국주의적 전쟁으로 매우 혼란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모순이 축적돼 세계는 결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된다. 19세기를 찬란히 빛내던 부르주아 세계가 파국을 맞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