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동 걸린 남북화해 움직임

우위에 있는 쪽이 손 내밀어야

2013-06-12     지유석 기자

급물살을 타던 남북 화해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남북 양측은 당국회담을 열자는 데에는 합의했지만 세부적인 이행방안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남북이 견해차를 드러낸 대목은 수석대표의 ‘격’이었다. 한국 정부는 실무접촉 단계에서 남북관계 총괄 부처장인 통일부 장관이 회담에 임할 것이라고 명시한 뒤 북측에 이에 상응하는 통일전선부장(이하 통전부장)이 나와줄 것을 요구했다. 통전부장이 남북관계를 책임지고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대화 상대방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북한은 이에 대해 난색을 표했다. 대신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 서기국 국장을 단장으로 보내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 이러자 한국 정부는 통일부 차관을 수석대표로 내세우겠다는 입장을 북측에 전달했다. 북측은 이 같은 입장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다. 통일부에 따르면 북측이 “우리측(한국 정부)에서 장관급이 나오지 않으면 남북당국회담이 열릴 수 없다”는 의사를 전했다고 한다.

여기서 관건은 북한이 보내기로 한 조평통 서기국장이 어느 정도의 ‘격’이냐는 문제다. 한국 정부는 “(조평통 서기국장이) 권한과 책임을 인정하기 어려운 인사”라는 입장이다. 반면 북한 전문가들 사이엔 조평통 서기국장이 장관급 내지 부총리급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조평통 서기국장은 부총리급으로 봐야한다”고 밝혔다. 김창수 한반도 평화포럼 기획위원장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수많은 부위원장보다 서기국장이 알짜배기다. 강지영 이전 서기국장이던 안경호는 초강성 인물인데 그는 사실 장관급 이상이다. 강지영은 나이가 그보다 젊지만 조평통 서기국장이니 우리 장관급이라해도 무방하다”라고 적었다. 김 위원장은 이어 “북한 조평통 서기국장은 과거 장관급 회담에 나온 내각책임참사보다 급이 높다. 오히려 남한이 요구하니 북한이 급을 높여서 나온 것이다”고 덧붙였다.

수석대표의 급을 둘러싼 남북의 설전은 결국 상호체제에 대한 몰이해의 문제로 귀결된다. 만약 서로의 체제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면 이런 설전은 애초부터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북 간엔 현안이 산적해 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인 의제도 논의해야 한다. 사실 수석대표의 급은 의전상의 문제다. 협상에 임하는 상대가 의제로 알력을 빚는 건 빈번하다. 하지만 의전상의 문제로 회담 자체가 결렬되는 일은 드문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남북이 공감대를 형성해 나가는 일 자체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준다.

한국은 세계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경제대국이다. 반면 북한은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북한이 핵개발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핵을 생존을 위한 선택지로 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우월적 위치에 있는 쪽이 아량을 보이는 것이 도리다. 의전 문제로 옥신각신하기보다 통 큰 자세로 상대의 체제를 이해하고 먼저 손을 내미는 도량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