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시대는 달라져도 변함없는 ‘떡국 한 그릇’
조선시대부터 오늘날의 설날까지…올해도 ‘그뤠잇’한 설 보내세요!
[시사매거진 238호=이선영 기자] 언제부턴가 새해가 되면 떡국을 먹는 것이 당연시 되어왔다.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왜 떡국을 먹는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자. 또,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각 지역의 제사음식부터 요즘의 트렌드까지 다가오는 명절을 대비해 속속들이 파헤쳐보자.
떡국은 언제부터 먹기 시작한 걸까?
‘떡국 드셨어요?’ 매년 설날이 찾아오면 인사치레로 한 번씩은 듣는 말이다. 떡국 한 그릇을 먹는 것은 한 살 더 먹는 의미로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전통문화다. 그렇다면 떡국을 먹기 시작한 기원은 언제부터였으며 왜 하필 떡국을 먹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자.
떡국은 상고시대 신년 제사 때부터 유래된 것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문헌 「동국세시기」에서 떡국을 흰 떡을 주재료로 하고 있어 백탕 또는 병탕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여기서 가래떡의 흰색은 시작과 순수함을 뜻하는 밝은 의미로 사용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또, 썰어놓은 가래떡의 둥근 모양은 둥근 태양 혹은 엽전을 상징했고, 길게 뽑은 가래떡은 모양 그대로 오래오래 살고자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해를 맞이하여 무병장수하고 풍요로운 삶을 기원하는 의미로 흰 가래떡이 들어간 떡국을 먹곤 한 것이다.
떡국이라고 다 같은 떡국이다? No!
특이하게 개성지방에서는 조롱박 모양의 조랭이 떡국을 끓여 먹는 풍습이 전해져 온다. 조랭이 떡은 가래떡의 가운데를 대나무 칼로 살짝 굴려 마치 동그란 구슬 두 개를 붙여 놓은 것 같은 모양이다. 일반적인 가래떡으로 만든 떡국에 비해 떡이 퍼지지도 않고 훨씬 쫀득한 이 조랭이 떡국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명한 일설로는 대나무 칼로 떡을 누르는 것이 개성사람들이 고려를 멸망시키고 조선을 개국한 이성계의 목을 조르는 것을 상징한다는 의미에서 조랭이 떡국을 먹는다는 것이다. 또, 조랭이 떡은 누에고치의 모양과도 비슷한데 옛날에는 누에가 길함을 상징하여 한 해 운수가 길하기를 기원하며 누에고치 모양으로 빚었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아이들이 설빔에 조롱박을 달고 다니면 액막이를 한다는 속설에 따라 귀신을 물리치는 액막이의 뜻으로 '조롱떡국'을 끓여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남쪽 지방은 설날에 떡국을 먹었다면 이북에서는 만둣국을 끓여먹곤 했는데 지형상 북쪽과 가까운 강원도는 떡국에 만두를 함께 넣어 만든 만두떡국을 먹곤 했다.
충청북도에는 멥쌀가루로 만든 떡에 미역을 넣어 일반 떡국에 비해 쫄깃함은 덜하지만 소화에 좋다는 특징이 있는 미역생떡국과 다슬기를 넣어 끓인 다슬기생떡국이 있다. 같은 충청도지만 충청남도에서는 충청북도와는 확연히 다른 특징을 가진 떡국이 있는데 바로 닭생떡국이다. 닭생떡국에는 닭육수에 떡국을 하여 고명으로 얇게 찢은 닭고기가 올라간다. 또, 충청남도에는 불린 쌀을 3등분 하여 한쪽에는 구기자 잎을 섞어 빻아 푸른색의 쌀가루를 만들고, 한쪽은 구기자가루를 섞어 붉은색의 쌀가루를, 나머지는 흰색 쌀가루를 만들어 뽑아 낸 가래떡을 어슷하게 썰어 멸치장국국물에 넣어 끓인 구기자 떡국이 있다.
전라북도에서는 설날이면 닭과 마늘을 넣고 삶아 건져낸 닭 육수에 가래떡과 두부를 넣고 끓인 두부떡국을 먹는 풍습이 있다. 전라남도에는 얇게 썰어 양념한 꿩고기로 우려낸 육수에 가래떡을 넣어 만든 꿩떡국을 먹곤 했는데, 예로부터 떡국의 국물은 꿩고기로 우려낸 국물을 최고로 상징하였으나 최근 들어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소고기로 바뀌게 된 것이다.
경상북도의 떡국으로는 일반적으로 어슷썰기를 한 가래떡과는 다르게 한 해의 무사안녕을 위해 태양처럼 둥근 모양으로 썬 가래떡을 넣고 끓인 태양떡국이 있다. 경상남도 지역만의 색깔이 느껴지는 떡국으로는 다시멸치로 맑게 우려낸 육수에 가래떡과 생굴, 그리고 두부를 넣은 굴떡국과, 구운 떡을 넣고 끓였다고 하여 굽은떡국이 있다.
우리나라 각 지방을 대표하는 지역별 명절 음식
우리나라는 작지만 지역별로 강한 특색을 가지고 있다. 제사 때마다 지역별로 상에 올라가는 음식도 달라지는데 음식 문화에 대해 알아보자. 서울은 조선시대 태조 이성계가 개성에서 수도를 옮기면서 1394년부터 600년 이상 우리나라의 도읍지였다. 때문에 아직도 조선시대 음식의 특색이 남아있는데 짜지도 맵지도 않은 중간 정도의 담백한 간에 양은 적고 가짓수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또한 한반도의 중심부에 위치하여 토질이 비옥하여 질 좋은 쌀이 많이 재배되었고 그에 걸맞게 제사상에 푸짐한 쌀밥이 올라간다. 또, 제사상으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는 예로부터 꼭 북어가 올라왔다. 내륙지역 특성상 생선은 건어물인 북어나 조기, 굴비가 올라가곤 했고, 전으로는 녹두를 갈아 만든 녹두전이나 빈대떡이 주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경상도는 바다를 끼고 있어 제사상에 다양한 해산물이 올라간다. 건어물류가 주로 올라가는 내륙지방과 달리 자반고등어나 민어와 같은 찐 생선이나 새우 같은 다양한 해산물이 올라온다. 귀한 음식으로는 천일염으로 간을 한 상어고기인 돔배기를 올리기도 하며 특히 경북지역에서 문어를 올리곤 하는데 그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유교사상의 중심지인 경북 안동의 선비문화의 영향이 있다. 문어는 한자로 글월 문(文)자와 물고기 어(漁)자를 합친 단어로 ‘글을 아는 물고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전해진다. 문어의 먹물에 비유하여 선비가 먹는 물고기라 불리기도 하며 실제로 문어는 연체동물 중에서 가장 지능이 높다고 알려져 있어 경북지역에서 귀한 손님상이나 제사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음식이라고 전해진다. 경상도만의 특색이 잘 살아있는 전으로는 잘게 다진 초피(제피)에 고추장을 섞어 만든 초피장떡이 있다.
또, 식문화가 발달하기로 유명한 전라도는 그 명성답게 다양한 음식이 올라간다. 지형적 특성상 호남평야의 풍부한 곡식과 서해바다에서만 나는 해산물이 풍부하여 여느 지역보다 음식의 종류가 많고 화려하다. 지역 특산물인 낙지나 꼬막 같은 해산물이 주로 올라가며 그 중 홍어는 예로부터 제사상에서 빠뜨리지 않고 올라가는 음식이다. 부침류로는 전라남도에서는 주로 싱싱한 굴을 이용한 굴전이, 전라북도에서는 불린 다시마에 달걀물을 묻혀 부쳐낸 다시마전이 있다.
충청도는 우리나라에서 바다에 접하지 않은 유일한 내륙지방으로 제사상에 수심이 깊은 바다에서 나는 해산물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민물 새우나 민물 장어, 올갱이 같은 민물생선이 명산물이다. 또, 충청도는 경기, 전라, 경상의 세 지역이 만나는 곳으로 인접한 지역에 따라 제사 음식이 달라지며 양념을 많이 쓰지 않고 자연 그대로의 맛을 살리는 것이 특징이다. 경기도와 인접한 지역은 배추전이나 녹두전과 같은 부침개류가 올라가며 경상도와 전라도와 인접한 곳은 건어물 혹은 낙지, 오징어 등이 주로 올라간다.
강원도는 태백산맥의 분수령을 기점으로 동쪽에 위치한 영동해안지방은 동해바다와 가까이 위치하고 있어 명태포전 같은 해산물을 이용한 음식이 제사상에 올라가곤 했다. 서쪽에 위치한 산간 지방에서는 주로 밭작물이 많이 났기 때문에 감자나 고구마를 이용한 전이나 나물반찬이 제사음식으로 올라왔다. 메밀이 유명한 평창 지방에는 메밀전이 주로 올라가며 가끔 귀한 재료인 송이버섯이 제사상에 올라가기도 한다고 전해진다.
섬 지역으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제주도는 명절음식 또한 다른 지역들보다 독특한 점이 많다. 섬이라는 지리적 요건으로 육지에서 볼 수 없는 전복과 옥돔이 올라가며 바나나, 귤,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이 올라가기도 한다. 이밖에도 제주도에서는 다른 지역의 제사상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음식이 올라가곤 하는데 바로 카스테라와 롤케이크이다. 제주도는 섬 지역으로 지형의 대부분이 현무암으로 이루어져있어 쌀이 귀한 지역이다.
변화하고 있는 명절 문화
시대가 변화함에 따라 설을 지내는 모습이 변하고 새로운 풍속을 보이고 있다. 고령화가 시작되면서 핵가족화가 되었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확대되고 3, 40대의 1인가구가 늘었다. 그러면서 명절이면 온 친척이 모여 전통놀이를 하며 제사를 지내는 모습은 이제 보기 드문 풍경이 되었다. 명절마다 여자들은 부엌에서 전을 부치고 남자들은 차례를 지내던 명절의 형식적인 절차가 점차 간소화 되었고 명절에도 ‘실속’이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명절 제수음식도 간편한 가정식으로 준비하는 가정이 늘고 있다. 제작년 설부터 동그랑땡 같은 냉동식품이 인기를 끌었고 부침가루나 나물종류는 매출 감소세를 보였다. 또, 설음식을 전문적으로 만들어 배달까지 해주는 설음식 전문 업체가 생겨났다.
2015년 제정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이라는 김영란법에 따라 식사·다과·주류·음료 등 음식물은 3만 원, 금전 및 음식물을 제외한 선물은 5만 원으로 지정하면서 명절 선물도 간소하게 바뀌었다. 한편 작년 12월 11일 농수축산물에 한해서는 5만원에서 10만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불고기와 국거리 등으로 구성된 한우세트가 인기 있을 전망이다.
본가에 가지 않고 아예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나홀로족’들도 늘어나면서 편의점에서는 이들을 겨냥한 간편식과 혼술세트 등의 독특한 명절세트를 선보였다. 편의점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명절 선물세트 트렌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다양한 먹거리부터 트렌드를 반영한 상품, 생활에 즐거움을 더해주는 상품까지 고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도록 준비했다고 말했다. CU에서는 자신에게 셀프선물을 계획한 욜로족들을 위한 공기청정기, 커피머신 등의 가전제품을 준비했고 세븐일레븐은 올해 설 선물세트를 새로운 소비 주체로 떠오른 나홀로족과 가치소비 문화에 주목하여 고시히카리 선물세트, 혼합곡 선물세트 등 가정간편식(HMR) 및 소포장 상품 구성비를 지난해 설 보다 두 배 가량 확대했다. GS25는 여러 가지 먹거리와 함께 명품백과 지갑, 가전제품, 반려견 용품, 안마의자 등 다양한 카테고리 상품을 지난해 보다 27% 늘려 역대 최다인 800종으로 준비했고 황금개띠 해를 맞아 반려견 용품 페이지를 구성했다. 또, 올해 설과 발련타인데이가 겹침에 따라 설과 발렌타인데이를 함께 준비할 수 있도록 콜라보레이션 선물세트도 선보였다.
편의점뿐만 아니라 호텔과 외식 프랜차이즈 업체에서도 이들을 겨냥한 다양한 상품 패키지에 주력하고 있다. 배달음식 업체에서도 작년 설 배달 주문량이 제작년에 비해 8배 가까이 증가하였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번 설에도 주문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여 대비에 들어갔다.
명절 때 장기 귀향 과정과 가사노동으로 인한 육체적 피로와 성 차별적 대우, 시댁과 친정의 차별 등으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지칭하는 ‘명절증후군’이라는 단어가 이제는 흔히 사용하는 말이 되었다. 명절에 시댁에 내려가서 일을 하는 것이 두려워 일명 ‘가짜 깁스’까지 생겨났는데 드라마와 언론보도를 통해 널리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시어머니가 가짜깁스를 하고 있다는 사례도 있어 씁쓸한 현실의 단면을 보여주었다. 사회가 변화됨에 따라 제사상이 간소화되기도 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 위한 욜로족이 늘어났다. 그러면서 명절 풍습도 바뀌는 것은 당연한 결과지만 무엇보다도 조상을 기리는 마음 하나 만큼은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