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이순신의 반역>

2017-10-06     유광남 작가

(시사매거진234호/유광남 작가) 꿈인가 생시인가?

천지가 아득하다. 예측은 하고 있었으나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된 듯 기혈(氣穴)이 어지럽다.

금부도사 호령에 사령(使令)들이 달려드니, 이제야 실감난다.

오금이 저려야 당연컨대 어찌 실 웃음이 솟는 건가.

목을 내어 우는 식솔, 군관들이 애달프다.

의금부 죄인 호송 함거(轞車) 보니

이제 문득 항왜장 사야가 김충선의 통곡(痛哭)이 떠오른다.

 

이순신의 심중일기(心中日記)1597년 정유년 2월 26일 정해

 

“새 하늘을 여십시오!”

“그대 지금 무엇이라 했는가?”

이순신은 두 귀를 의심했다. 갑자기 사지가 벌벌 떨리고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벽력같은 노여움의 불두덩이가 치솟아 올랐다. 그러나 눈앞의 사내는 평소와 다름이 없었다. 그는 여전히 침착했고 당당한 몸가짐이었다.

“새 하늘을 여시라 했습니다. 조선 백성을 위하여 새 하늘이 열려야 합니다.”

새 하늘을 열라고... 반역을 하란 말이지! 피가 역류하며 온 몸이 떨려왔다. 왜구들의 함대가 미친 개떼처럼 바다를 뒤덮고 으르렁 거릴 때에도 이순신은 떨리지 않았다. 그들이 물고, 할퀼 때에도 이순신은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급소를 노려 일거에 함몰시켰었다. 그런데 지금은 두려웠다. 한 사내의 말이 이순신을 두렵게 만든 것이다.

“네 이 노옴!”

이순신은 그 혼미한 떨림을 잊기 위해서 노성을 내질렀다. 손으로는 대장검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발검(拔劍)할 기세로 상대를 노려봤다. 사내는 천천히 이순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지만 그는 추호도 물러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장군, 모르시는 겁니까? 정녕 모르시는 겁니까? 아니면, 포기하시는 겁니까? 저들은 장군의 목을 원하옵니다. 저들은 이 나라 조선의 내일을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어야 할 권력과 왕권과 안위가 목적이옵니다.”

“닥쳐라!”

이순신은 칼을 뽑아들었다. 도신(刀身)에서 뿜어지는 푸른 광채가 사내의 목에 닿았다. 이 사내의 이름은 김충선(金忠善). 일본 명(名)은 사야가(沙也可)였다. 그는 주저함이 없었다. 이순신이 알고 있던 그는 역시 대장부(大丈夫)였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면 감히 이 나라 조선으로 귀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사야가는 임진왜란 초기에 조선으로 투항한 항왜(降倭) 장수였다. 지난 수 년 간 그는 조선을 도와 일본과 대적 했다. 이순신과 더불어 일본의 왜성을 습격하는 수륙 작전을 여러 차례 성공적으로 치렀으며 도원수 권율과 의병장 곽재우의 신임을 받고 있었다. 또한 임금으로부터 조선의 이름을 하사 받았다. 그는 이제 조선인이었다.

“내 일신의 평안을 모색 했더라면 조선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순신의 대장검이 하늘로 치켜 올라갔다. 칼날은 섬세하였다. 예기의 푸른 섬광은 흔들리는 등불 아래 죽음의 그늘을 드리웠다.

“입을 다물라. 불충의 대역죄로 참수하리라!”

이순신은 그를 베고자 했다. 그의 목을 뎅강 절단하여 조선의 임금을 능멸(凌蔑)하고 나 이순신을 모욕(侮辱)한 대가를 치루고 말리라 다짐하며 손아귀에 힘을 실었다. 그런데 그가 고개를 쳐들었다. 울고 있었다. 자신의 조국을 당당히 배신하고 칼과 총을 귀신처럼 다루며 포화(砲火)의 전장(戰場)을 누비던 전사(戰士)가 지금 눈물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통곡(痛哭)이라 불러지는 울음이다.

이순신이 알고 있는 사야가 김충선은 비장하고 담대한 사무라이였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포기를 몰랐으며 군인의 명예(名譽)를 알고 있는 무장(武將)이었다. 전장에서 그의 손아래 희생당한 적병의 숫자가 수천 명은 헤아릴 수 있을 정도로 피의 전선을 넘나들던 용사(勇士)였다. 그러한 그가 울고 있다. 그의 눈물은 기이한 전율이 되어 이순신의 가슴을 파고들고, 심장을 할퀴었다.

“당장 거두어라! 그 독사의 세 치 혓바닥을 놀리지 마라! 궂은 날씨에 망령(妄靈)을 보아 허튼 수작을 하는구나!”

이순신은 이미 그 눈물의 의미를 알아보았는지 몰랐다. 능동적 행동보다도 뇌를 통한 반응이 더 민첩했다. 이순신의 목소리가 다소 떨리고 있음이 그걸 반증하고 있었다. 아니었다면 이순신의 칼은 사선을 그으며 김충선의 목을 사정없이 내리 쳤어야 했다. 혹시나 상대에게 이런 심경 변화를 들킬세라 이순신의 호흡이 다소 거칠어졌다.

“내 너를 아꼈었다. 내 너를 믿었었다. 내 너를 진심으로 대하였다. 그러 했거늘......”

그가 항변(抗辯)했다.

“그래서 아뢰는 겁니다. 장군은 어찌 왕을 장군의 왕으로만 섬기려 하시는 겁니까? 왕은 신의 왕이요, 만백성의 왕이십니다. 왕은 그 누구에게나 왕이신 겁니다. 하지만, 지금의 왕은 본인, 자신 만의 왕이십니다. 장군을 위한, 백성을 위한 왕이 아니시란 말입니다.”

칼을 쥔 손목의 힘줄이 푸르게 두드러졌다.

“네가 기어코 목이 떨어져야 제 정신이 들겠구나!”

김충선은 여전히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지난 해 이몽학의 난을 기억 하십니까? 반란은 개가 일으켰는데 죽기는 호랑이가 죽었습니다. 개를 때려잡는다는 핑계로 호랑이를 잡아 죽인 것입니다.”

김덕령(金德齡)을 말함이었다. 지난 해 병신년(丙申年) 칠월에 있었던 서얼(庶孼) 출신의 이몽학이 왜란의 혼란을 틈타서 역모를 꾀하였다. 왜적의 침입에 바로 대항하겠다는 거짓 선전으로 승려들과 가난한 농민들 수천 명을 규합한 반란군은 충청 지방의 관아를 차례로 점령하고 홍주성까지 진격하였다. 관군의 연합 대응과 이몽학 부하 반군들의 변심으로 인해서 난은 평정되었으나, 이 과정에서 의병장 김덕령이 모함을 받게 되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장수로써 임진왜란 초부터 활략하여 백성들의 인기를 얻고 있는 맹장이었다. 조선의 왕 선조는 그가 싫었다. 미웠다. 백성들은 오직 자신만을 우러러야 했다. 그래서 왕은 김덕령을 매질로 때려 죽였다.

“김덕령은 너의 막역교(莫逆交)이니 그를 두둔치마라.”

김충선은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장군은 저의 집우(執友)이십니다. 피하지 마십시오. 외면하지도 마십시오. 길은 오직 두 갈래 이옵니다. 새 하늘을 열어 조선의 백성을 지옥의 나락에서 구하든지, 아니면 몰염치한 왕의 희생양이 되시던지! 김덕령의 원귀가 밤마다 소신을 찾아옵니다. 그 억울한 한의 피눈물이 사무쳐서, 진정으로 사무쳐서 잠을 이루지 못하옵니다. 장군도 이제 그리 가시면 소신은 눈뜬 원귀가 될 것입니다.”

칼 빛은 섬뜩하고 이순신은 단호했다.

“눈을 감아라. 내 마지막 호의이니라.”

그는 눈을 감지 않았다. 울음도 멈추지 않았다.

“이레 전에 어전회의에서 장군에 대한 죄상을 논하였다 합니다. 지중추부사 정탁은 장군이 죄가 있다 하였고, 판중추부사 육두성은 장군이 조정의 명령을 거역하고, 전쟁을 기피하여 한산도에 물러나 있다고 통분해 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위험한 것은 왕의 발칙한 발언이었습니다.”

“무엄하다. 상감마마의 옥음을 발칙하다 하였는가?”

“시정하지요. 그 위선의 옥음으로 왕이 소리쳤다 합니다. ‘이순신은 용서할 수 없다! 비록, 그의 손으로 일본의 왜장 가토의 목을 베어 오더라도 결코 그 죄를 용서해 줄 수 없노라. 조정을 업신여기는 이순신을...!’ 이라고......왕은 장군을 죽이려 하십니다.”

이상하게도 이순신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이레 전에 어전에서 벌어졌다던 왕과 대신들의 입모양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구중궁궐(九重宮闕)의 담장 안에서 나불거리는 입들이 둥둥 떠다녔다. 시커멓게 썩은 혀는 날름거리고, 곪아터진 입술은 주둥아리가 되어 이순신의 온 몸을 벌레처럼 기어 다녔다. 그 주둥아리들은 임진왜란 내내 이순신에게서 기생(寄生) 했었다.

“장군, 이제는 깨어나셔야 합니다. 저들은 장군의 충정(忠正)을 오염시키고 장군의 충의(忠義)를 모의(謀議)로 해석하는 조선의 해충(害蟲)입니다.”

“어리석은 놈, 미욱한 놈! 해충이 존재함은 무릇 그 연유가 있는 터...그대는 어찌 하나만 바라보는가?”

“그렇습니다. 저는 오로지 장군만을 주시합니다. 왜냐하면 장군의 뒤에는 전란에 짓밟히고 못난 왕에 시달리는 수많은 백성들의 모습이 아른거립니다.”

이순신의 호흡이 비정상적으로 거칠어 졌다.

“날 더 이상 지켜보지 말라.”

이순신은 느끼고 있었다. 이제 조금만 더 지체 한다면 그의 지켜봄에 현혹 되리라. 흔들리고 또 흔들려서 이 사내의 눈물을 닦아줄지도 모른다. 멈추어서는 아니 된다. 이순신은 마지막 기력을 다하여 칼에 힘을 불어 넣었다. 혼신(渾身)의 기를 모았다. 이번에는 기필코 너의 목을 치리라. 칼끝에서 뇌성(雷聲)이 울고 벽력(霹靂)이 떨어졌다. 밖은 삼경(三更)이었고 이순신의 칼은 통곡하는 사내의 목을 겨냥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