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라
어설픈 대화제의는 북측에 공격 빌미 줄 뿐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된 지 40여 일이 지난 가운데 남한과 북한이 볼썽사나운 설전을 벌이고 있다. 설전의 발단은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 관련 남북 당국간 회담을 제의하면서부터다.
통일부는 14일 김형석 대변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개성공단 현지에 보관중인 원부자재와 완제품 반출 등 입주기업의 고통 해소를 위한 남북 당국간 실무회담 개최를 제의했다.
이에 대해 북한측은 하루 만에 대화제의를 일축했다.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대변인은 15일 우리 측 대화제의를 “개성공단 사태와 관련한 책임을 모면하고 여론을 오도하기 위한 교활한 술책”이라면서 “우리에 대한 또 하나의 도발적 망발”이라고 비난했다. 북한 총국 대변인은 또 “개성공업지구 전망과 앞으로 북남관계 향방은 전적으로 남측 당국의 태도 여하에 달렸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며 “통신타발이나 물자반출 문제와 같은 겉발림의 대화 타령이나 할 것이 아니라 근본문제를 푸는 데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자 우리 정부는 북측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통일부는 16일 오전 ‘북한총국 대변인 문답 관련 정부 입장’을 통해 “기업들이 처한 절박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완화하기 위해서는 우선 원부자재·완제품 반출이 무엇보다 시급한 상황”이라면서 “이러한 정부의 진정성 있는 제안에 대해 북한이 어제 일방적 주장으로 이를 폄훼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이어 “북한은 근본문제 해결 주장 등 개성공단과 무관한 주장을 반복하기 보다는 기업의 투자와 자산을 보장하기 위한 약속부터 지켜야 한다”면서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북한은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대화제의는 여러모로 의미가 있었다. 개성공단이 잠정 폐쇄 수순으로 접어들면서 현지에 남겨 놓은 원부자제와 완제품 반출은 반드시 풀어야 할 현안이었고, 현안해결을 위해 남한 정부가 먼저 북측에 대화를 제의했기 때문이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첫 방미를 마치고 대북 정책에 대한 한미 공조를 재확인 한 이후에 이뤄진 대화제의여서 무게감도 더했다. 하지만 북측은 ‘교묘한 술책’이니 ‘도발적 망발’이니 하는 식의 무례한 언사를 동원해 가며 대화제의를 묵살했다.
사실 이 같은 사태 전개는 한국 정부의 즉흥적 발상이 원인이었다. 원부자재 및 완제품 반출에 대한 대화 제의는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에서 비롯됐다. 박 대통령이 관련 부처인 통일부나 외교-국방 등 안보라인과 협의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또 당시는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문 파동으로 인해 온 나라가 떠들썩하던 시기였다. 박 대통령의 지시는 국면전환용 카드라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박지원 민주당 전 원내대표가 15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통일부와 사전 교감 없이 너무 즉흥적으로 일처리를 했다"고 지적한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북측도 한국 정부의 의도를 일정 정도 간파한 것으로 보인다. “남조선 중소기업들의 불만과 민심의 비난을 무마해보려는 것과 함께 국제외교사에 일찍이 없는 윤창중 성추행사건으로 죽가마 끓듯 하고 있는 내외여론의 이목을 딴 데로 돌려 개망신당한 체면을 수습하고 ‘국면전환’을 해보려는 간교한 술책이 깔려있다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는 북한 총국 대변인의 발언은 비록 특유의 거친 언사에도 음미해 볼 가치는 충분하다.
남북 관계는 미묘하고 예측불허의 돌발변수도 많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박 대통령의 느닷없는 대화제의는 그래서 더욱 어설프게 보인다. 무엇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통일-외교-안보라인이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면 북한에게 또 한 번 모욕을 당할 수 있음을 기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