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이 살아있는 현장에서 만년 현역으로 일하겠다”
평생 직업의 주인공은 나, 나만의 브랜드가 성공이다
‘100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40세’라는 나이는 이제 중년이라고 부르기가 무색할 정도이지만, 여전히 많은 이들이 적어도 마흔에는 인생의 안정기에 접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ING 정흥식 FC에게 40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격변기였다. 2007년 ING와 함께 새로운 인생의 서막을 연 그는 “앞으로 40년 더 만년 현역으로 ING와 함께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흥식 FC는 서울에서 나고 자란 서울 토박이다. 전방에서의 군 생활을 빼고는 줄곧 서울 시민을 유지해오고 있는 그는 대학 4학년 1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삼성전자를 공채로 입사를 하여 경제활동을 시작했다. 삼성전자를 거쳐 마침내 꿈에 그리던 삼성자동차에서 일하게 됐지만 이내 그의 인생의 전기가 되는 이벤트가 일어났다. 마케팅 담당자로 부산 연수원에서 신입사원들을 대상으로 Salesman의 Vision에 대해 강의를 하던 날이었다.
“강의 도중에 한 신입사원이 제게 ‘현장에 비전이 있다고 하시면서 왜 강사님은 본사에서 근무하시느냐’고 묻더군요. 기분이 상할 수도 있는 도발적인 질문이었지만 당시에 스스로도 이상하리만큼 차분하게 ‘제가 지금은 본사에서 근무를 하고 있으나 곧 당신 옆에서 Sales를 하고 있는 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라고 즉답을 했습니다.”
이후 앞으로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그는 당시 서울대 최재천(現 이화여대 교수) 교수의 <인생이모작>이라는 책을 접함과 동시에 그를 찾아가 직강을 경청했다.
“최 교수님의 강의를 듣고 고민한 끝에 회사에서 밀려나 시작하는 ‘Passive 인생이모작’이 아닌 ‘Active 인생이모작’을 하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삼성자동차를 퇴사하고 ING에 지원해 변함없이 7년차 FC로 일하고 있습니다.”
월화수목금금금, “그래도 행복합니다”
정 FC에게서 주말이 사라진지 어느덧 7년이 됐다. ING에 입사한 후 주말은 반납한 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입사 이후 줄곧 현장에서 FC로 일하며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그는 “FC가 이렇게 힘든 길인 줄 몰랐기에 그렇게 과감하게 사표를 내지 않았을까 생각 합니다”라고 고백했다.
입사 초기에는 ‘월화수목금금금’의 생활을 3년 동안 이어왔고 최근에서야 7일 중 하루를 쉬는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이렇게 지독한 일벌레인 그의 주말은 어떤 시간들로 채워질까. 그 하루의 시간 역시 지난 한 주 동안 만났던 중소기업 대표이사들의 고민에 대한 솔루션을 찾는 작업들과 국내 유수의 민간경제연구소와 국책연구소에서 발표된 보고서들을 속독하며 간접경험과 견문을 넓히고 자료를 축적하는 시간들로 채워진다. 몸은 고되지만 그 결과 정 FC는 그간의 상담 경험과 일련의 작업들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주변으로부터 소중한 경험을 나눠 달라는 청탁을 받게 됐다. 현장에서의 컨설팅 못지않게 많은 강의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그는 본지와의 인터뷰가 있던 날에도 신입 FC들을 대상으로 ‘연금의 이해’라는 강의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의 스케줄 표에는 ‘財테크5敵’ 교양 강의와 부동산컨설팅 회사에서 ‘상속증여세’ 강의 등 계획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제조업체에서 판매프로세스 강의 의뢰가 들어올 정도로 강의로도 이름을 알리고 있는 정 FC는 현장컨설팅, 강의, 콘텐츠 생산 등의 업무로 눈 코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어쩌면 우리 세대는 유사 이래처음으로 Demographic Bonus시대를 마감하고 Demographic Onus시대를 살아가는 첫 인류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한 마디로 경제의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이죠.”
개발시대에 뛰어난 지도자들과 스스로 팽창하는 근면 성실한 국민이 1960년대 후진국이었던 대한민국을 순방향으로 이끌어 왔지만 앞으로 3년 후인 2016년부터 대한민국의 생산가능 인구가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자칫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지 않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정 FC는 “이러한 흐름과 고령인구의 증가가 성장담론이 아닌 분배와 복지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고 있고 흡사 6.29 선언 후 민주화 욕구가 봇물이 되어 터져 나왔던 것과 같이 세상을 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으로 말미암아 이후로 복지재원인 ‘세금’에 대한 이슈가 더욱 심화될 것임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라며 “따라서 저는 중소기업 CEO, 자산가들을 점증하는 Tax Risk에 대해 설명을 드리고 절세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조정해 드리는 일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철저한 수신과 네트워크 구축 기반으로 성공을 이뤄간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지도 어느덧 20여 년이 지난 정 FC. 경제활동의 경험이 쌓이다 보니 성공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도 정리가 된다고 한다. 성공에 있어서의 잣대는 어느 분야에서나 같다는 그는 “금융계에서 필요한 성공의 기준과 제조업체에서 요구되는 기준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성공이란 철저한 수신 이후 네트워크 구축이 기본이 되는 것은 공통적이라는 생각을 감히 해 봅니다”라고 말했다.
2005년 근로자 생활을 청산한 정 FC에게 영향을 준 키워드는 ‘평생직업’이었다. ‘평생직장은 없고 평생 직업이 있을 뿐이다’라는 말이 그를 움직였다.
“ING는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 직업으로 안내하는 훌륭한 ‘gate’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고민하는 동료가 있고 그 산출물을 나누는 문화가 있는 조직이라면 충분한 메리트가 있지 않을까요? 그러나 성공은 타인이 담보해 주지 않습니다. ‘평생 직업’의 주인공은 본인 자신임을 자각하고 스스로의 브랜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흥식’이라는 고유한 브랜드를 만들며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는 정 FC는 강의를 수강하는 이들에게 “제 꿈은 70세까지 제 손으로 가방을 들고 건강하게 걸어 다니면서 강의하고 컨설팅하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그랬던 그의 생각을 짧은 기사 한 구절이 바꿔놓았다.“98세 어르신이 운전면허를 취득했다는 기사였죠. 면허 취득 이유가 무릎이 불편한 한 살 연하의 부인을 읍내 병원에 데리고 다니려니 운전면허가 필요해서라고 하시더군요. 그 기사를 보고 마음을 고쳐먹었습니다. 적어도 80세까지는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말이죠.”
의료계의 많은 이들이 곧 120세 시대가 도래 한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컨설팅하고 콘텐츠를 생산하며 그 경험들을 바탕으로 FC, PB를 양성하는 만년 현역을 꿈꾸는 정 FC는 “120세 시대가 도래 하면 정년 80세도 연장될지 모르겠습니다. 단 제 스스로의 척도로 행복하고, 고객으로부터 단순히 필요한 FC가 아닌 인생과 Biz의 Mentor가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라고 포부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