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평생 사업에 바쳐온 열정으로 고향인재육성에 정진

(주)동원개발, 부산건설업체 1위 전국 1만 540업체 중 63위

2013-05-08     양성빈 본부장/김태인 차장

부산의 향토기업인 (주)동원개발의 장복만 회장은 고향인 경남 통영의 인재양성을 위해 500억 원에 달하는 사재를 쾌척해 전국 최고수준의 시설을 갖춘 신축학사를 완공했다. 장복만 회장은 지난 2000년 재단 이사장으로 취임하면서 학교법인을 동원송촌학당으로 변경한 후 학사이전을 추진해 왔다.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도 항상 고향을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하는 (주)동원개발의 장복만 회장을 만나 보았다.

 

학교법인 동원송촌학당 신축학사는 어릴 적 학교 공납금을 제때 내지 못해 벌을 서야했던 그가 학교 이사장이 돼 폐교위기의 학교를 500억 원에 가까운 사재를 털어 완공한 곳이다. 지난 2000년 폐교위기에 처해 있던 학교를 맡아달라는 주위 동문과 시민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동원 중·고등학교의 재단 이사장이 되어 두 번째의 인연을 맺게 되었다. 

동원 중·고등학교는 광도면 원문리 일원 부지에 연면적 3만 1,385m² 규모로 신축되어 지하 2층, 지상 4층 규모로 30학급이, 동원중은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18학급이 각각 들어서 모두 1,500여 명의 학생을 수용한다. 올해 개교 62주년을 맞는 이곳은 1947년 통영협성농상학원을 인수, 재단법인 송촌학당을 설립해 1951년 통영상업고로 재 개교 했다. 이어 1998년 통영제일고로 한 차례 교명을 변경한 뒤 신축학사를 이전하면서 현재 동원중·고등학교로 교명을 바꿨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 마음껏 공부하지 못한 것이 한

어린 시절 넉넉지 못한 가정 형편으로 마음껏 공부를 하지 못한 것이 평생의 한이 되었다는 장 회장. “가난과 무지는 우리 모두가 극복해야 할 공적이로되 이를 탓해 스스로를 포기하지 말지어다! 어린 시절 내게 주어진 가난과 무지는 한 순간의 고통은 될 수 있지만 이를 도전의 계기로 삼아 누구든지 열심히 노력하면 꿈을 성취할 수 있다는 굳은 신념을 품고 이 학당에 모이라. 내가 여기 꿈과 희망을 꽃피울 수 있는 배움의 전당을 사랑의 뜻을 담아 다시 세우니 귀함도 천함도 없고 강한 자와 약한 자도 없다. 오직 학문과 지식을 바로 익혀 세상을 더 크고 더 넓게 보는 눈과 귀를 여는데 매진하여 힘을 기르고 책임을 다하여 부강한 국가건설의 초석이 되고 인류공영에 이바지할 인재를 양성하고자 함이다” 그가 동원 중·고교의 신축학사를 건립하면서 밝힌 건학이념이다. 어릴 적 가난으로 못다 이룬 그의 꿈에 대한 한과 참된 인재양성을 위한 뜨거운 교육열이 느껴진다.

인생의 대전환점, 신흥철재상사 설립

그는 첫 직장이었던 대한상사(현 대한제강)를 1970년 2월에 퇴직하고 개인 사업을 시작했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업무처리 능력과 성실성으로 타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가 많았지만 그는 이를 모두 거절하고 신흥철재상사를 설립했다. 장 회장은 대한상사에서 3개부서의 과장으로 근무하면서 얻은 사회 경험을 바탕으로 건축용 철강제품 판매점을 운영하게 되었다. 단돈 140만 원으로 개업을 한 신흥철재상사는 성공을 거듭했다. 그가 사업을 시작했던 1970년은 우리나라의 고도성장이 시작되던 해로, 새마을 운동을 비롯해 1972년에는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한 주택건설 10개년 계획과 주택건설촉진법이 제정되었다. 이로 인해 전국적인 건설바람이 불면서 철근은 구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다. 이에 장 회장은 열심히 뛰어 신흥철재상사를 부산 남구지역에서 가장 큰 철재상으로 성장시켰다.

동원개발 설립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 경제성장이 개막되던 시기, 부산의 경제성장은 급속한 인구증가로 이어졌고 이는 주택보급률이 낮은 부산에 큰 압박요소로 작용하였다. 당시 부산지역의 주택업자들은 친목모임을 결성해 주택 건축에 관련된 각종 정보를 공유하며 사업을 하기도 했다. 철재상과 건재상을 운영하고 있던 장 회장은 그들과 거래를 하면서 신분이 쌓였고 이는 주택업계로 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직원들에게 신흥철재상사를 맡기고 1975년  개인사업체인 (주)동원개발을 설립하였다. 첫 아파트 광안동원맨션을 시작으로 동원개발은 승승장구 해 나갔고 1995년에는 한국 주택업계 최초로 금탑산업훈장을 수상하였다. 2001년 시공능력 평가액 700억 원을 돌파하면서 시공능력 1등급 업체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또한 동원개발은 2004년 전국 400대 기업, 부산 전체 기업 중 매출액 9위 및 순이익 4위 기업, 부산·울산·경남권 코스닥 상장기업 중 3개 부문 1위를 기록했고 2004년부터 2007년까지 건설 시공실적 부산기업 1위를 4년 연속 달성하게 되었다. 이어 2011년 6,000여 세대의 주택공급실적으로 전국 6위를 달성하였고, 2012년 현재 건설·시공 능력평가 부산지역 업체 1위를 이어가고 있으며 동원은 개인사업체에서 시작해 지금은 건축업계를 대표하는 명실상부한 전국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지역이 살 길은 무엇보다 인재양성이 첫 번째 지름길

그는 지역이 살 길은 무엇보다 인재 양성이 첫 번째 지름길이라 생각했다. 이에 내 고장 인재들이 고향에서 학교를 다닐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펼쳐 나가기로 결심한 그는 동원송촌학당과 함께 동원교육재단인 양산대학과 동원문화장학재단을 운영하며 교육·장학 사업에 힘을 쏟게 되었다. 장 회장은 지난 2000년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던 학교법인 송촌학당을 통영시민들의 요청으로 인수한 뒤 동원송촌학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최대 역점사업으로 학교 이전을 추진해 왔다.

 “통영제일고와 동중은 그동안 정량동 1만여m²의 좁은 부지에서 60년 된 건물을 같이 사용하면서 큰 불편을 겪어왔습니다. 이제 최첨단의 다양한 시설을 갖춘 새 학교 신축으로 고향 후배들이 더 나은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할 수 있게 돼 개인으로서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고향의 인재육성 뿐만 아니라 2000년부터 2012년까지 경남지역 불우학생 및 성적우수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 대학 진학 학생들에게 입학금 및 등록금을 후원하는 한편 경남대 등 2개교에 발전기금 기부 등 교육발전에도 기여했다.

“한 평생 사업에 바쳐온 열정을 마지막으로 고향 인재 육성에 쏟으려 합니다. 충무공의 얼이 살아 숨 쉬는 통영에서 뛰어난 인재가 배출돼 우리나라를 이끌어 가는 훗날을 그려가며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개인재산을 교육·문화사업에 투자했던 미국의 석유왕 록펠러와 철강왕 카네기 같은 인물에 비할 수는 없지만 기업인은 기업경영을 건실하게 해야 하며 남으면 사회에 보답해야 한다는 신념으로 어떤 방법으로든 언젠가 사회에 환원 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장복만 회장. 그가 인재육성에 쏟은 열정처럼 동원 중·고등학교에서 장복만 회장처럼 훌륭한 인재가 배출될 수 있도록 염원해본다.